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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가 사용 설명서
<우연>
생애 첫 성형, 남편이랑 강남 성형외과로 나들이 갔다. 눈밑 지방 재배치랑 1+1인지 뭔지 반값세일한다고 매일 톡이 와서 겁 없이 질렀다. 그리고 망했다. 아버님께서 갑자기 돌아가셨다. 얼굴에 붓기랑 멍이 가득한 체 시트콤 주인공처럼 장례식을 치렀다. 선글라스랑 모자, 마스크를 썼다. 엘리자베스 여왕장례식 조문객처럼 한국최초로 베일까지 준비해서 장례문화를 선도해야 할지 망설였다. 양봉하는 사람들이 쓰는 그물모자나 이슬람 전통복장인 부르카라도 써야 할 상황이었다. 아랍의 여인들보다 더 철저하게 가렸다. 여동생이 벨모양의 모자인 클로슈를 사다 주었다.
머리통은 2배 커졌고 눈 주변은 붉은빛, 검은 보랏빛, 누른빛 금계보다 더 황금빛으로 빛났다. 세계최고 복싱선수 파퀴아오에게 맞은 마가리토처럼 변했다. 살면서 여기저기 운명에 많이 처 맞긴 했다. 어르신들께서 밤새 울어서 눈이 부었다고 생각하셨다. 효성지 극한 며느리라고 하셔서 몹시 부끄러웠다. 세상에서 제일 믿지 못할 것이 "금방 나아요, 별로 표 안 나요"라는 성형외과 실장들의 말이다. 4일장을 어찌 치러야 할지 막막했다.
조상들은 3년상을 어찌 견디었을까? 삶도 짧은데 공자가 부모님이 어려서 안고 먹이고 키운 그 시간만큼 예를 치루라 해서 생긴 장례문화였다. 건강하시던 아버님께서 갑자기 돌아가셨다. 순식간에 패륜 며느리가 되었다. 정말 아찔한 순간이었다. 심장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한 달이 더 지난 지금도 부기가 덜 빠져 인형극속 대갈공주처럼 변했다. 남편이 멀쩡한 얼굴 망쳤다고 화냈다. 어머님이 돌아가신 날엔 남편이 모처럼 파마를 했는데 상갓집에 온 손님들이 상주 머리꼬락서니가 그게 뭐냐고 해서 그 후, 남편은 다시는 파마를 하지 않는다.
< 준비되지 않은 죽음>
"지금 퇴원할게"가 마지막 말씀이었다. 온갖 장비 달고 목에 호흡기 꽂고 연명치료하다 돌아가셨다. 난 아무런 준비도 못했고 아버님 모시고 여름휴가 갈 생각뿐이었다. 정말 그랬다. 부모님들 모시고 해변을 거닐 계획이었다. 운명은 그렇게 바뀌었다. 그냥 병원에서 바로 퇴원하시고 부산서 대전으로 오셨음 이렇게 힘들지 않았을 것이다. 작별인사도 못 드렸다. 부산서 대전까지 운구차를 구하기가 어려웠다. 특별 엠뷸런스를 대여했다.
한 달이 넘어도 해야할일이 너무 많이 남아있다. 아무 준비도 못하고 돌아가셨다. 보험, 정수기, 커피머신, 비데, 아무것도 정리되지 않았다. 할 말이 많았던 나!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버님께서도 내가 차마 하지 못한 말이 무엇인지 이제는 영혼의 눈으로 보고 듣고 알고 계실 것이다. 인생은 더 빨리 흘러갈 것이다.
이제 나의 시간은 B.C도 A.D도 아닌 아버님 사후 1년 2년.. 이렇게 바뀔 것이다. 슬픔의 미세한 파동들이 심장을 뒤 흔들었다. 태풍이 지나간 자리 뿌리까지 뽑힌 나무 같은 삶이었다. 떠나간 자의 뒷모습을 정확히 기억하는 자의 슬픔과 두려움은 더 크다.
아무것도 모르는 게 나은 것일까? 우린 가족이니까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차마 하지 못했지만 남겨진 자의 미련의 말들이 이제부터 아버님께 하나씩 전해 질 것이다. 못다 한 많은 말들은 꼬깃 꼬깃한 지전처럼 가슴속에 남아 있다. 하루하루 조곤조곤 들려 드릴 것이다. 장례식 내내 아무것도 안 했는데 힘들었다. 그냥 허수아비처럼 서서 같은 말만 반복했다. 우스꽝스러운 광대처럼 서있었다.
영혼이 털리는 느낌이었다. 이제 다른 장례식에 간다면 물도 안 마실 것이다. 장례식장의 음료랑 물 다 두 배이상 비싸다. 일단 상주에게 말을 걸지 않을 것이다. 일일이 대답하느라 진이 다 빠졌다 어떻게 살아왔느냐가 중요하지 어떻게 죽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다들 어떻게 죽었는지 호기심반 예의상 할 말이 없어서 물어보느라 대답하기 힘들었다. 궁금증인지 인사인지 사인을 물어보는 문상객들 때문에 힘들었다. 했던 말 수백 번 반복했다. 상갓집 에티켓 책이 세상에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갓집 가면 밥도 든든히 먹고 가야겠다. 음식값은 왜 그렇게 비싼지 오랜만에 오랜만에 흑우되었다.
삶의 위대한 여정을 끝낸 아버님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내 인생의 리허설, 장례식동안 많은 생각이 오갔다. 한 남자가 아내를 잃고 10년을 홀로 버티다 떠난 길이었다. 그리고 남겨진 자들의 숙제 중 오늘 한 과목을 끝낸 기분이다. 아쉬움과 미련 사이 화장터 먼 곳, 산비둘기 울음소리가 처량하다. 곰 같은 며느리가 아버님의 맘에 안 들었을지도 모른다. 따사로운 햇살을 머금은 봄바람 타고 아버님은 그렇게 떠나셨다.
가족이라는 유대의 끈은 얼마나 강하며 우리는 위기마다 하나가 되었다. 국방과학 연구소에서 핵개발하시던 당신은 공학자 중 손꼽히는 인재였지만 인생은 재난의 연속이었다. 내겐 아버님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핵폭탄이었다. 잘 배우건 못 배우건 인생은 거기서 거기다. 늘 두려웠다. 그 두려움으로 내 인생은 다 타들어갔다.
심연을 알 수 없는 바다 위 해파리처럼 두려움에 떨면서 언젠가 발이 닿기를 바라며 아등바등하기만 했다. 오르락내리락해 봐야 거기서 거기다. 바닥의 깊이를 가늠하고 싶어서 끝없이 발길질한다. 두려움의 바다가 나를 압도한다.
한 아버지, 죽어서 더 각인되는 멋진 장로님, 수십 년 동안 아무 말씀도 없으셨던 전형적인 대한민국의 남자, 늘 두려움이었던 일이 갑자기 일어났고 한 달 전 삶과 지금이 너무 달라서 당황스럽다. 견뎌온 시간들이 가져온 아픔들, 우리가 영원히 풀지 못하는 죽음이라는 미지의 영역에 대한 답사는 앞으로도 없으리라.
인간이 혹여 죽음을 정복한다면 더 풀 수 없는 난제가 되어 버릴 죽음, 이미 죽은 자들은 영원한 실종자가 되어버릴 것이다. 영원히 살게 된다면 보고 싶은 자들은 어디서 다시 만날까?를 생각하면 심장이 아려온다. 제발 죽음이여! 넌 죽지 말고 그 자리에 존재하기를!! 내가 널 꼭 찾으러 갈 것이다. 나이를 먹으니 그리운 이들이 지상보다 이상에 존재한다.
내가 아니 네가 존재했었을까? 꿈과 현실이 구분이 안 간다. 사실, 참척의 아픔으로 하루를 정신과 약으로 버티느라 제정신인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잘 모르겠다. 큰 슬픔은 모르는척해 주는 게 예의다. 위로가 없기 때문이다. 알면서 모르는척하고 묻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확인사살하는 이들이 너무 많다. 내 창자와 장은 이미 다 끊어졌다. 제발 묻지 말기를!!
최악의 건강 상태와 가족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장례식장에 오신 외삼촌, 가족이 너무 "보고 싶어서 왔다"라고 하셨다. 보고 싶어서라는 말이 그렇게 슬프고 애달팠다. 목소리에서 쉬익 소리가 났다. 때로는 보고 싶다는 생각을 와인 코르크처럼 돌려서 빼내고 싶다. 보고픔이 아픔이 된다. 너무 보고 싶어서라는 말씀 속에 진심이 들어 있었다. 마지막 인사를 하러 오셨다. 기적처럼 힘을 내셨다. 의사가 한 달을 넘기기 어려울 거라고 했다.
한때 남편보다 젊고 잘생기고 멋진 시삼촌께서 걸어오는데 너무 말라서 바지가 바람에 날리는 모습이 나뭇가지로 만든 의족처럼 느껴졌다. 차가운 세월의 매가 나를 때렸다. 인생길 어야 백 년도 안된다. 중요한 건 오십만 넘어도 여기저기 삐걱거린다는 것이다. 건강하고 멀쩡할 때 보고 싶은 이들 다 보고 밥 많이 사야 한다. 부고장은 또하나의 VIP초대장이라 생각해야한다. 한달이 지난후 부조를 한 장대B 조합장님의 모습에서 많은것을 배웠다. 한달이 지나건 두달이 지나건 지인이라 생각한다면 반드시 부조는 해야한다. 그분께 꼭 두배로 갚을것이다. 멀리서 걸어오시는 모습이 영화속 한장명 같았다. 심쿵했다.
생애 첫 남자와 만나서 결혼했다. 초등학교 졸업식을 막 끝낸 예비 중학교 1학년때 첫눈에 반한 남자와 13년 연애하고 결혼했다. 아버님의 첫인상으로 첫사랑이 시작되었다. 모든 게 다 치밀하고 영리한 나의 계획이었다. 친정아버지와 너무나 달랐던 국방과학연구소 문규열 공학박사이다. 아버님께서 미국 출장 가서 사 오신 최신 슬라이드 장비로 창조과학에 관한 영상을 보여 주셨다. 창조고 과학이고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아버님의 모습에서 남자가 보였다.
청바지에 체크 남방을 입고 영어를 섞어 설명하시는 모습을 보고 나도 꼭 저런 남자랑 결혼해야겠다고 맘먹었다. 오랜 시간 공들여서 꼭 닮은 그분의 아드님을 꼬셨다. 3년을 꼬박 따라다녔다. 남편은 현재 전자통신 연구원이다. 중3 때, 휘엉청 버드나무 아래서 눈감고 뽀뽀를 했다. 목련이 툭 떨어졌다.
심장에서 인류최초의 북소리가 울렸다. 옥상에서 커피를 마시던 엄마가 소리쳤다. 고모, 옆집아줌마도 목격자였다. 생애 최초로 큰 범죄를 저지른 느낌이었다. 엄마가 빗자루 들고 달려올까 봐 도망쳤다. 얄미운 보름달,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어긔야 어강도리.
결혼 후, 한 번도 힘들지 않다고 생각했던 새로운 시세상이었다. 돌아보니 27년 세월이 꿈같다. 좋아하는 이들, 최측근에게만 부고를 알렸다. 잠시 서운했던 이들도 이날을 통해 다시 화합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가족모두가 함께하는 자리였다.
나는 삶에도 죽음에도 강하다.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파퀴아오는 잃을게 없었다고 했다. 난 다 잃었다.가족이라는 위대한 이름 앞에 우리는 하나다. 어떻게든 해낸다. 가족에겐 불가능이란 없다. 아버님을 배웅하고 돌아오는 길, 아무것도 안 했는데 유독 힘들었다. 난 상냥한 여우 같은 며느리도 잘난 며느리도 아니었지만 단 한 번도 시부모님께 쓰는 돈을 아까워하지는 않았다. 부모님께 쓰는 돈만큼 행복하고 뿌듯한 건 없기 때문이다. 철없이 아직도 코인이나 다단계에 사기당하고 있는 친정어머니께도 모르는 척 몰래 용돈을 드린다.
수십 년의 미국 생활을 마치시고 대전에 자리를 잡으신 이과여자 약학박사 이모님, 이른 이 넘은 나이에도 여자는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보여 주셨다. 머리부터 발끝가지 우아함이 흘러내렸다. 멋진 박찬주 장군도 왔다 갔다. 한 사람을 볼 때 그 사람의 프로필이나 지위를 다 지우고 본다. 대한민국 대표최고의 남자를 보았다. 삶에는 분명 배움이나 출신과 상관없이 격이 있다. 박찬주 장군은 품격이 있는 사람이다.
상가에 들어오는 순간에도 남을 향한 배려가 몸에 젖어 있다. 많은 정치가들을 만나면서 가면뒤의 얼굴을 보고 실망스러울 때가 많다. 백 년 묵은 구렁이 같은 양갈래의 혀를 가진ㅇㅇㅇ님 꼬리 9개 달린 구미호 같은 ㅇㅇㅇ님 인간적으로 어떻게 남을 다스린다는 건지? 거짓말과 뻔뻔스러운 얼굴은 그들의 필살기이다. 실망스러울 때가 많다. 거액을 드려 밥까지 사드렸는데 먹튀 했다. 밥값은 반드시 하시기를!!!
언제나 한결같이 상냥하고 지적인 이모부께서는 화장터에 자리까지 예약하려고 하셨다. 수목장으로 결정하셨는데 예약은 안된다고 했다. 죽음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고 미리 예습을 철저하게 하는 모습에 감동했다. 우리 가족은 아무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내 장례식에는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을 틀 것이다. 부조는 사절이다. 식사는 뷔페 진짜 좋아하는 지인 100명만 초대, 묘지는 바람과 산과 강이 있는 곳, 내가 상상하는 내 장례식만으로도 가슴 설렌다. 하늘을 더 자주 쳐다보게 될 것이다. 보고 싶은 얼굴들이 이제 이 땅보다 저 높은 곳에 더 많이 있다.
난 자유인이다. 이제 내 맘대로 살 것이다. 노력만큼 되는 것도 안 되는 것도 아닌 세상, 핵노답의 삶에서 오늘도 길을 잃다. 사랑만 남은 그리움이 고통스러운 건지 원망만 남은 사랑이 고통스러운 건지? 난 둘 다 부적처럼 지니고 고슴도치보다 까칠하고 일개 부대를 다 죽일 수 있는 독화살 개구리처럼 악만 남은 고아남편이랑 살아가야 한다. 8년 후, 남편이 퇴직하면 뉴욕에서 2년 하와이에서 2년 스페인, 프랑스 돌아가면서 살기로 했다.
<준비된 죽음>
아버님 돌아가시고 40일 광야 기도를 마치신 듯, 오늘, 외삼촌께서 돌아가셨다. 울산까지 KTX를 타고 갔다. 그 어떤 이보다 지적 호기심이 강하고 노력하는 분이었다. 나이가 들어도 모든 배움을 향한 뜨거운 열정을 가진 분이셨다. 울산대학교 건축공학과 서극수 교수님이다. 외숙모님의 말씀이 애절했다. 매형과 누나가 보고 싶어서 서둘러 가셨다고 했다. 모든 준비를 끝내시고 연명 치료를 중단하셨다. 상주 명원이는Seattle Microsoft 미국 본사에서 일한다. 오랜만에 보았다. 빌게이츠가 화환을 보냈을까? 빌씨의 부조는 얼마일까? 궁금해진다.
세상에서 가장 밝은 모습으로 다들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 이제 장례문화도 많이 바뀌었다. 곡소리가 멈추지 않아야 해서 관례상 상주가 지치면 카세트테이프가 대신 울어주던 그런 엉터리 시대여 영원히 안녕! 이제 한세대가 갔다. 우리 천사 은빈제자는 벌써부터 걱정한다. 선생님은 백세 시대지만 자신은 백이십세 시대라 백 년도 넘게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모르겠다고, 철드는 건 이제 영원히 불가능하다.
죽음이 멀게 느껴지거나 두렵지 않으면 철들기 어렵다. 난 영원히 철들지 않으련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그리움이란 질병은 낫지 않을 것이다. 살면서 그냥 다들 아낌없이 사랑하고 후회하지 않게 잘하면 된다. 참지말자. 보고 싶으면 보고 싶다고 외삼촌처럼 말하면 된다. 그리고 당장 보러 달려가면 된다. 언제나 단거리 주자처럼 총소리가 들리길 대기하고 있으면 된다. 죽음에 관한 준비는 철저해야 한다. 기억하라. 당신이 성형을 했건 파마를 했건 속옷을 벗었든 죽음은 상관없이 언제든 올 수 있다는 것을!!
세상의 모든 것들이 공부가 되는 새벽! 난 오늘도 공부를 한다. 진정한 학문이란 삶에 대한 바른 이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