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나들이
어제 17일 대구동문들이 경북도청사 이전지와 영주 소수서원으로 봄나들이를 갔다.
원래는 도청이전지를 둘러보고 영주 선비촌과 소수서원을 거처 부석사까지 가볼 계획이었으나 시간이 없어 부석사를 생략했다.
어제의 여독이 덜 풀린듯 50장의 사진으로만 친구들의 모습을 보기로 한다.
어영부영하다 출발점 현대백화점 앞의 모습들을 촬영하지 못햇다.
늙었다는 징조가 틀립 없지?. 아직은 그러면 안 되는데...
참석인원
크고 작은 두 대의 버스에 분승하여 인원을 확인하니 남녀 모두 52명이다. 일일이 그 이름과 부인을 거명하자니 힘이 들어 기념사진의 인물로서 대신한다.
사진에서 앞줄 가장 우측의 분은 우리 친구가 아니라 우리를 안내 맡은 신도시지원과 권귀영 과장이다.
그러고 보니 이번 신청사 이전지의 방문과 영주 여행은 안동문화원장 아송 이재춘 동문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은 바 크다.
그는 마침 내일 18일 중국 시안시 찬빠생태공원에서 열리는 다보탑 제막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출국하고 없어서 오늘 우리의 행사에는 참석하지 못하였다.
그 대신 안동소주 20병과 경상북도 도청신설본부와 연락해서 우리들이 방문할 때 신청사 를 안내하고 설명을 부탁하고 떠났다. 그래서 우리들의 여행은 즐거웠고 얻은 바가 많았다. 아송 모두들 고맙다고 전하래.........건강하고 복 많이 받으시게
시안시의 다보탑 제막행사를 부언하자면 경북도가 18일 시안시 찬빠생태공원에서 김관용 경북도지사, 러우친지엔 산시성장, 불국사 성타스님 등 양국 관계자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한·중 우호를 상징하는 다보탑 제막행사를 가진단다.
다보탑 건립은 13년 4월 자매결연을 맺은 경북도와 산시성이 문화교류를 활성화하고 경제통상을 확대하며 실크로드로 전파된 불교문화를 통해 우호교류를 증진하자는 취지로 2년 동안 추진해 왔다고 한다.
반갑다 친구야
경북 예천군 호명면과 안동군 풍천면에 걸친 신도시부지의 중심지에 건설중인 경상북도청사 건축현장에 도착하니 도청신도시지원과 전귀영 과장이 직접 우리를 마중하여 안내를 한다.
경청하는 청친구들
전귀영 신도시지원과장의 신도시의 개황과 이전할 도청사 건축현황 및 미래의 모습 등을 영상자료를 보여주며 설명해 준다.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답변해 드리겠습니다.
너무 잘 설명하셔서 없심니데이...
청사 밖 둘러보기
전 과장의 해설을 들은 후 그의 안내를 받아 청사밖을 관람했다.
도청사 뿐만 아니라 교육청, 경찰청 등 주변의 모든 건축물이 한식으로 건축되었고, 각 건물 마다 지하주차장에서 바로 건물 안 사무실로 들어 갈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어 왜부에는 멀찌감치 대형주차장을 제외하고는 앞 마당에 주차장을 따로 마련하지 않았단다.
도청사 전경 파노라마
소년 소녀들 처럼 즐겁다
기념촬영을 한다니 얼른 가보세
기념촬영
모두의 출석부사진은 여기서 만들었다.
사진의 둘째줄 우측 초록색 상의를 입은 친구는 한 팔을 매달고 있다.
사연을 물으니 자전거를 타다 넘어져 골절을 했다나.
그러고 보니 우리 모두 걸음새나 자새가 예날 같지 않다. 속보도 안 되고 소피도 조절이 잘 안 되는 모양이다. 우짜든동 열심히 하여 9988하게 삽시다.
아직 감성이 풍부한 정봉호
청사 바로 뒤에 있는 산이 劍舞山
도청사는 이 검무산을 주산으로하여 건축되었다.
여자지를 배경으로 한 정봉호
이 못은 청사가 건축되기 전에 女子池로 불리었고 그렇게 불리게 된 전설도 있단다.
그런데 청사가 건축되고부터 발음이 듣기에 좋지 않다하여 새로운 이름을 구한 끝에 女자와 子자를 합하여 好자로 하고 이에 民자를 덛붙여 好民池라고 부르기로 했단다.
어떦 이는 그냥 好池라고 해도 될 것을 구태어 民자를 보탠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한다.
천문도와 금수강산
나오는 길에 천문도를 수 놓은 수석과 금수강산의 문양이 있는 수석을 만났다.
천문도는 인위적으로 새긴 것이나 산천의 문양이 있는 돌은 자연석이다.
천문도가 그려진 수석을 보자 長舟 이용식이 먼 조상이 생각났는지 내게 사진을 부탁하였다.
내 진작 우리 1만원짜리 화패 뒷면에 그려진 혼천의가 장주의 할아버지 작품이란 것을 알기는 알았지만 함자를 모르고 또 혼천의와 천문도가 관계는 있겠지만 어떦관계인지 몰라 잠시 인터넸을 뒤졌더니 아래와 같은 사실을 알고 놀랐고, 한 번은 읽어볼 만 하여 간략히 줄여 기록해 본다.
자세한 것을 알고 싶은 분은 이순지(李純之)를 검색하면 된다
이순지(李純之)
본관은 양성 자는 성보. 조선 전기의 문신·천문학자. 본관은 양성(陽城). 자는 성보(誠甫), 시호는 정평(靜平). 동궁행수(東宮行首)로 있다가 1427년(세종 9) 문과에 급제하고, 승문원교리·봉상시판관·서운관판사(書雲觀判事)·승정원좌부승지 등을 거쳐 1465년(세조 11) 판중추원사에 올랐다.
국립과천과학관의 설명에 의하면 장영실과 이순지는 조선 전기를 대표하는 천문학자이자 과학자. 이천(李蕆), 장영실과 함께 세종시대를 이끈 과학자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그런데, 국립과천과학관에는 명예의 전당에 오른 과학자들을 근세 전기, 근세 후기, 근대, 현대 전기, 현대 후기의 5가지 시대를 기준으로 구분하고 있는데, 그 중 근세 전기 과학자들 중 조선시대 대표 '과학자'는 장영실과 다소 생소한 이름의 이순지라고 한다.
그리고는 부언하기를 장영실은 정말 '과학자'일까? 라고 전제한 뒤 그는 당시 총책임자였던 이천(李蕆)과 함께 혼천의를 간소화한 간의, 휴대용 해시계인 현주일구, 천평일구, 해시계 앙부일구, 천문 관측기구인 일성정시의, 절기를 알 수 있게 만든 규표 등을 만든 기계기술자이고,
이순지는 조선 초기 우리나라 천문학을 세계 수준으로 올려놓은 천문학자로, 대표 업적은 「칠정산 내편」과 「칠정산 외편」이다. 이순지가 주도하여 펴낸 '칠정산 외편'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현대 과학 기술의 수치와 비교했을 때 1초 차이 밖에 안 날 정도로 정확하다. 이순지가 주도한 '외편'이 '내편'보다 정확하다. 칠정산으로 인해 조선의 천문학은 아라비아, 중국과 함께 당시 세계에서 가장 발달된 수준에 도달했다. 고 하여 세종시대 진짜 대표 과학자는 바로 이순지다. 라고 한다.
[출처] 명예의 전당 (Hall of FAME) (장영실, 이순지)|작성자 국립과천과학관
흠... 대단하신 할부지를 두셨구려, 그렇담 여기 천문도 역시 장주 할부지가 만들고 지으신 혼천의와 칠정산 내외편과 무관한 것은 아닐 것 같다.
그래서 열심히 처다 보는 장주
바닥의 얼룩은 그냥 얼룩이 아니라 이곳의 지형과 지맥을 그려놓은 것이란다.
청사관람을 마치고 전귀영 과장과 그 도시지원과 직원들과 기념촬영
해어지면서 전과장과 그 직원들이 떠나는 우리들에게 고맙게도 방문기념 선물까지 안겨 주었다.
드디어 달리고 달려서 영주 선비촌 주차장에 도착
그리고는 예약해 둔 종가집 식당으로 직행
중식
여기서 아송 이재춘이 보내준 안동소주를 내 놓았는데 처음에 20병은 너무 과하다 생각해서 절반만 가지고 왔더니 턱없이 모자라 나머지를 전부 가져오고서도 모자라 이집의 소주를 몇병 더 사마시게 되었다.
안동소주의 위력을 실감하였고, 그 덕에(?) 종가집식당의 매상고가 줄어들어 미안하게 되었다.
안동 소주도 그렇고 종가집 한우떡갈비도 좀 남겨놓고 먹지그래 !....
배도 불렀으니 다음 차례를 기다리며 한담
드디어 아름다운 해설사가 도착하였습니다.
해설사 따라가기
박물관에 들어가기 전에
ㅎㅐ설을 듣는거요? 해설사의 인물에 반한 거요?
박물관 내부가 어두워서 똑닦이가 놀라네
"有明朝鮮 端宗朝忠臣"
궁금하네 윗글을 "有明...."으로 읽어 "명나라 조정"으로 읽어야 할지 아니면 "有"를 단지 어조사로 읽고 해석하는지 아시는 분은 댓글을 달아주기기 바랍니다.
해설사의 음성은 그림자 속에서 낭낭하다.
이곳 서원의 원래 이름은 백운동 이었던 것을 이황의 진언에 따라 명종 임금이 소수서원으로 이름을 지어 직접 글씨를 써서 내린 현판
이 것도 궁금하네
왼쪽에는 宣賜(임금이 내려주다)는 이해가 가는데 오른쪽 상단에 明廟御筆이란 명종의 어필이란 뜻인데 명종이 이 현판글씨를 쓰면서 스스로를 지칭하는 뜻으로 스스로 明廟御筆이라는 글자까지 쓰는 것일까? 즉 "명묘어필"이란 4자도 명종의 어필일까?.
아는 사람 답해주소.
박물관을 나와 해설사를 따라가지 어느세 소수서원 뒷문으로 들어가 마당에 들어서게 되었다.
이구석 저구석 다니며 열심히 해설을 하고 있는데 열심히 듣는 사람 옆사람과 이야기 하는 사람, 이리저리 두리번 거리는 사람 해설사의 말이 노인네들의 귀에 드어가는지 마는지 알 수 없다.
500년되는 은행나무가 안 보인다 싶더니 알고보니 뒷문으로 들어가 앞문으로 나오고 있었다.
부근에 또다른 500년 은행나무
이 두 나무는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고, 은행나무는 영주시목인 모양이다.
문화해설사는 여기서 우리와 작별인사를 했다.
수고에 감사합니다.
내 카메라에 잡힌 다정한 도기칠 전회장 부부
원래는 소수서원을 거쳐 부석사까지 가보기로 했으나, 오후 6시에 대구 예전식당에 저녘을 예약해 두었으므로 부석사 방문은 시간상으로 불가능하였다.
그래서 생략하고 가는 길목에 있는 칠곡 다부동 전승기념관을 둘러보기로 했다.
다부동 전승기념관으로 가는 차중에서 기념관 사무실로 연락해서 문화해설을 부탁했더니 퇴근시간 전에 도착하란다.
문화해설사에게 우리들을 위해 퇴근을 약간 미루어 달라고 부탁하고 버스 운전기사에게도 특별부탁을 했더니 노인들이라 다~양해가 되는 모양으로 기분좋게 승낙한다.
전증기념관 도착
문화해설사가 전승기념관 앞에서 우리가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우리가 도착하자 우선 순국선열에 대한 의례부터 안내했다.
분향
문화해설사의 해설에 따라 회장 황영일이 우리를 대표하여 분향을 하고
일동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
문화해설사의 해설
의례를 마치고 해설사의 6.25에 대한 해설.
예전에 미쳐 듣지 못했던 이야기가 줄줄이 나왔다. 한 번은 들을 만 했다.
충혼탑 바로 뒤 즉 해설사가 서 있는 곳 바로 뒷쪽에 자그마한 "救國勇士의 墓"가 있다
거기에는 약 250여명의 무명용사의 유해가 안장되어 있는데, 매년 봄에 한 차례식 유해발굴작업을 하며 지금도 계속한단다.
원래는 "無名勇士의 墓"라고 이름하였는데 전사하여 신분이 밝혀지지 않았을 망정 이름 없은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해서 "救國勇士의 墓"라 고쳤단다.
전시관 건물의 모양은 전차(탱크)의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벽면에 그 유명한 낙동강 융단폭격의 모습이 양각되어 있다.
전시관 앞에서 이의익과 이효구
둘 다 미남일세
이때 이시장 뒤에서 부인이 자기도 같이 찍겠다며 달려드는 모습이 포착됬다.
덕분에 황영일 회장도 끼어서 한 장
속칭 호주비행기와 정봉호
사진의 좌측 하단에 보이는 비신이 이곳 칠곡면민과 동명면민이 세운 백선엽장군의 송덕비이고, 그 맞은 편 공지에 보이지 않는 조지훈의 시비가 있다.
내가 미쳐 그 사실을 몰라 근접촬영을 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바로 그 말이다.
6.25 당시의 탱크
이렇게 관람하고 예정된 예전식당에 도착하지 오후 7시가 되었다.
오직 우리들만이 식당을 가득 메우고 식사를 하면서 오늘의 즐거운 시간을 되뇌이다 작별했다. 내년을 또 기약하면서.
나도 정신이 빠져 즐거운 식사광경을 촬영하지 못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