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원 앞바다에 떠 있는 조그만 섬 망산도(望山島)와 유주암(維舟岩) ~
그 곳에 숨겨진 옛 가야국(伽倻國)의 이야기.. - 부산 지방기념물
57호
▲ 육지와 붙어버린 망산도와 유주암
육지와 망산도 사이로 갯벌이 펼쳐져 있어 이 곳이 예전 바다였음을 말해준다. |
부산과 진해 사이에 들어앉은 용원(龍院, 진해시), 지금은 거의 육지가 되버렸지만 그 앞바다(행
정구역상 부산 강서구)에는 망산도(望山島)라 불리는 나무와 바위로 가득한 조그만 섬 하나가 자
리해 있고, 섬 남쪽에는 유주암(維舟岩)이란 바위가 있다.
10년 전 만해도 용원 앞바다는 제법 수심이 깊어 어항(漁港)의 역할을 했으나 녹산산업공단 개발
로 부산 명지동부터 용원까지 앞바다를 싹 메워버리면서 어항의 기능을 상실했다.
예전에는 배를 타고 들어갔으나, 이제는 가볍게 걸어 들어갈 수 있게 된 망산도, 겉으론 그저 보
잘 것 없어 보이는 이 섬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지방문화재로 특별히 지정되었을까?
이 섬을 비롯하여 용원 주택가에 있는 유주각에는 옛 가야국의 숨겨진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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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산도의 북쪽 부분
섬 안에는 가지각색의 모양을 지닌 바위와 돌들이 오랜 세월을
그렇게 누워있고
섬을 에워싼 갯벌에는 게를 비롯한 온갖 작은 동물들이 먹고 살기 위해 부산히 움직인다.
섬 건너로 보이는 곳은 망상도를 육지로 만들어버린 주범, 녹산산업공단 |
기원 1세기경. 변한연맹(弁韓聯盟)의 하나인 구야국(狗倻國, 지금의 김해)에서 가락국(駕洛國,
금관가야)을 세운 김수로(金首露)는 왕위에 오른지 7년이 넘도록 부인이 없었다고 한다.
보다 못한 신하들은 왕비를 맞이할 것을 줄기차게 건의했는데, 수로왕은 '왕비는 하늘이 정해주
실터이니 너무 걱정들 마시오' 하고는 유천간(留天干)이란 신하를 망산도로 보내
하늘이 보내주
었다는 왕비를 기다리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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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산도로 들어가는 길
저 길은 근래에 만든 것이다. 섬에는 몇십 ~ 몇백년 묵은 나무들과 이상하게
생겨먹은 바위들이 섬의 신비로움을 더해주며 후기신라시대와 고려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도질제 토기와 연질제 토기 파편들이 나오고 있어 제사관련 유적지로
추정된다. |
과연 몇일 뒤, 바다 서남쪽에서 붉은 색의 돛과 기를 단 돌배가 나타났다. 바로
인도 아유타국
(阿踰陀國)의 공주 허황옥(許黃玉) 일행의 배였다.
그들은 파신(派神)의 노여움을 잠재우고자 배에 파사석(婆娑石)을 잔뜩 실고 왔는데 가야에 도착
후 그 돌로 탑을 만드니 그것이 바로 오늘날 김해지역에서만 발견되고 있는 역삼각형 모양의 탑,
파사석탑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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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산도를 바라보며 서 있는 유주정(維舟亭)
근래에 솟아난 정자로 망산도와 유주암, 가덕도,
녹산산업공단이 한 눈에 바라보인다. |
배가 떴다는 보고를 받은 수로왕은 친히 망산도로 나와 환영행사장을 만들어 그들을 예로써 맞이
했으며, 김해로 돌아와 성대하게 국혼(國婚)을 치렀다고 한다.
허황옥 일행이 상륙하자 그들이 탄 돌배는 파도에 확 뒤집혀 바위로 변하니 그것이 망산도 남쪽
에 있는 '유주암'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그 형상이 배를 뒤집어 놓은 모습과 매우 흡사하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별
로 그리 보이진 않는다. 아마도 막대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유주암의 외모에도 많은 변화가 있
었을 것이다. 하긴 세월의 짓궂은 장난을 누가 감히 당해 내겠는가?
유주암의 유(維)에는 '붙들어 매다' '굵은 줄로 잡아 매다'라는 뜻이 있어,
배가 뒤집혔다기 보
다는 배를 댄 곳으로 보는 것이 무난할 듯 싶다. 그들의 배가 닻을 내린 곳이 아마도 유주암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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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붉은 벽돌 담장으로 둘러싸인 유주각(維舟閣) |
허황옥이
정말로 인도 아유타국에서 왔는지는 지금도 의견이 분분하나 대체로 한나라를 무너뜨린
왕망(王莽) 세력이 후한 광무제(光武帝)에게 쫓겨 배를 타고 가야로 망명했다는 이야기에서부터
마한(馬韓)이나 낙랑(樂浪)지역에서 왔다는 이야기, 요즘은 학계 일부에서 진짜로 인도에서 남방
불교를 가지고 왔다는 이야기까지 정말로 다양한 학설이 나와 있다.
하지만 현재로써는 허씨 세력의 정체에 대해서는 속시원한 해답은 없다. 하지만 본 글에서는 '삼
국유사(三國遺事) 가락국기(駕洛國記)'에 나온 망산도에 얽힌 이야기에만 충실할까 한다.
망산도, 유주암에 얽힌 이야기는 수수께끼의 제국, 가야의 몇 안남은 이야기 중에 하나이다. 하
지만 그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믿으면 정말로 곤란하며, 그 전설에 숨겨진 뜻을 찾거나, 해석을
시도해야 된다.
이 곳에 얽힌 이야기를 통해, 허씨라 상징되는 세력은 이 곳으로 들어왔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금관가야(金官伽倻)의 핵심으로 상징되는 김수로는 그 세력을 자신의 신하로 받아들이고 그 세력
을 이끄는 우두머리의 여인을 맞이하여 서로 혈연관계를 맺었다고 보는 것이 무난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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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주각 비석
- 경남 지방기념물 89호
비문(碑文)에는 '大駕洛國 太祖王妃 普州太后
許氏 維舟之地'라 쓰여 있다.
즉 '대가락국(가야국) 태조대왕(김수로왕)의 왕
비 보주태후(혹은 진주태후)허씨의 배가 이른
곳, 배를 댄 곳'
글씨는 붉은 색이며 김해허씨 문중에서 시조(始
祖)의 한반도 상륙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
▲ 유주각과 담장 하나를
사이 둔, 최태원공
송덕비(崔太原公 頌德碑) -
비석의 모습이 참 특이하다, 비신(碑身) 머리
에 얹혀진 돌에는 연꽃 무늬로 보이는 꽃무늬
가 새겨져 있다.
최태원이란 사람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음.. |
유주암에는 유주암(維舟岩)이라 쓰인 비석이 세워져 있으며 용원 주택가 안쪽에는 허태후의 한반
도 상륙을 기리기 위해 세운 유주각이 있다.
망산도와 유주암, 유주각은 한 덩어리로 경남 지방기념물 89호로 지정되었으나, 녹산산업공단이
만들어지면서 망산도와 유주암을 비롯한 용원앞바다가 부산광역시 강서구에 편입되었다. 광역자
치단체가 지정한 지방문화재가 광역행정구역이 바뀔 경우는 기존의 등급과 번호를 버리고 새 광
역단체에서 새롭게 지정한다. 그런데 이들은 2008년 4월까지 따로 분류치 않고 경남지방기념물
로 두다가 2008년 4월 2일, 망산도와 유주암을 따로 떼어내 부산지방기념물 57호로 새롭게 지정
하였다. 단 유주각은 진해 땅이라 경남지방기념물 89호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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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원 유주각, 망산도, 유주암 찾아가기 (2008년 8월 기준)
- 지하철 1호선 하단역(5번 출구) 중앙차로 정류장에서 부산시내버스 58-1, 58-2번,
강서구마을
버스 9-1,17,17-1번을
타고 용원4거리 하차. 용원선착장 쪽으로 5분 정도 가면 왼쪽으로 보인
다.
- 진해시내에서 진해시내버스 105, 115번을 타고 용원 하차. 정류장 앞에 망상도가 있다.
- 부산서부터미널(2호선 사상역 3,5번 출구)에서 진해 방면 직행버스를 타고 용원 하차. 용원선
착장 쪽으로 10분 정도 걸으면 된다.
* 소재지 : ① 망산도와 유주암 - 부산광역시
강서구 송정동 188
② 유주각 - 경상남도 진해시 용원동 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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