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와 수소만으로 만들어진 탄화수소의 혼합물인 휘발유는 높은 온도에서 공기 중의 산소와 격렬하게 결합하여 물과 이산화탄소로 변환되는 산화 반응을 통해서 에너지를 방출하는 화석 연료다. 휘발유의 화학적 조성은 원유의 종류와 생산 공정에 따라 달라진다. 그래서 자동차용 휘발유는 화학적 조성이 아니라 그 특성을 기준으로 규정된다.
휘발유는 원유에서 생산된 '석유제품' 중에서 기체로 증발하는 정도를 나타내는 증기압이 일정하고(섭씨 37.8도에서 여름용은 44~82 kPa, 겨울용은 44~96 kPa), 섭씨 225도가 되면 모두 증발해버리는 것을 말한다. 자동차의 성능과 안전을 보장하고, 환경과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품질 기준'도 정해져 있다. 그런 휘발유는 대체로 탄소의 수가 5개에서 10개 정도인 다양한 탄화수소들이 혼합된 것이다.
원유를 증류해서 얻어지는 휘발유 성분에는 벤젠, 톨루엔, 자일렌과 같은 방향족 탄화수소가 들어있다. 휘발성이 큰 '휘발성 유기물질'(VOC)인 방향족 성분이 휘발유에 남아있으면 환경과 건강에 문제를 일으킨다. 그렇지만 방향족 탄화수소는 중요한 산업 원료이기 때문에 정유 공장에서는 별도의 공정을 통해서 'BTX 용제'로 분리해서 따로 판매한다.
휘발유의 품질을 향상시키려고 제거하는 불순물이 귀중한 산업용 원료로 둔갑을 하는 것이 바로 화학 산업의 매력이다. 그러니까 휘발유에 남아있는 약간의 방향족 물질은 일부러 넣은 것이 아니라, 분리 공정이 완전하지 못해서 남게 된 것이다.
그러나 원유에서 얻은 휘발유 성분은 고급 승용차의 연료로는 적당하지 않다. 엔진 내부에서 충분히 압축이 되기도 전에 점화가 일어나서 자동차의 출력을 떨어지게 만드는 '녹킹' 현상이 생기기 때문이다. 휘발유의 점화 특성은 헵테인(CH3CH2CH2CH2CH2CH2CH3)과 아이소옥테인((CH3)3CCH2CH(CH3)2)을 혼합해서 만든 '표준' 휘발유와 비교해서 결정되는 '옥탄값'으로 나타낸다. 우리나라에서는 1927년에 미국에서 정한 '리서치(Research)법'으로 측정한 옥탄값이 91 이상인 휘발유만을 판매할 수 있다.
시판되는 휘발유에는 옥탄값을 높여주는 '첨가제'가 들어있다. 옛날에는 1921년 미국의 토마스 미즐리가 개발했던 테트라에틸납((CH3CH2)4Pb)을 넣은 '유연 휘발유'를 사용했지만, 납 성분이 대기를 심각하게 오염시킨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1970년대부터 그 사용이 금지되기 시작했다.
그 대신 휘발유와 함께 완전 연소되어서 물과 이산화탄소로 변환되는 MTBE((CH3)3C-OCH3)라는 유기 첨가제를 넣은 '무연 휘발유'가 개발되었다. 우리나라도 1996년부터 무연 휘발유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산소가 풍부한 휘발유'라는 무연 휘발유 광고와는 달리 실제로 MTBE는 휘발유의 점화를 억제시켜서 옥탄값을 높여주는 첨가제다. 독성이 강한 일산화탄소(CO)와 질소 산화물(NOx)의 배출을 절감시키는 '삼중촉매 전환장치'를 사용할 수 있게 된 것도 MTBE 덕분이다.
그런데 정유 공장에서 분리한 석유 제품은 자동차의 연료로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플라스틱, 합성 섬유, 합성 고무, 의약품, 페인트 등 거의 모든 화학 제품을 만드는 데에도 쓰인다. '일반 용제(솔벤트)'라고 하는 것이 바로 그런 석유제품이다.
그래서 자동차의 연료로 사용되는 휘발유는 착색제를 넣어서 쉽게 구별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최근에 논란이 되고 있는 '가짜 휘발유'는 바로 그런 용제를 본래의 목적이 아닌 자동차의 연료로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물론 대부분의 일반 용제는 옥탄값이 낮아서 자동차에 사용하기에는 적당하지 않지만, '교통세'와 '주행세'가 부과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된다. 공장 출고 가격이 400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휘발유에 부과되는 교통세만 하더라도 630원이나 된다. 그러니까 가짜 휘발유를 사용하면 우리 사회 모두를 위해서 사용해야 할 세금을 정체를 알 수 없는 생산자의 주머니에 넣어주는 셈이 되어 버린다.
가짜 휘발유가 엉터리 생산 시설에서 만든 것이고, 자동차 성능과 우리 건강을 해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정부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과중한 교통세와 주행세가 세계적 과제가 되어버린 휘발유의 소비를 줄이기 위해서 우리 국회에서 신중하게 합의한 세금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밝혀주어야 한다.
법적으로나 화학적으로도 말도 안 되는 '대체 연료'와 '첨가제' 논란에 휘말려서 '가짜 휘발유'를 막아내지 못하는 정부가 안타까울 뿐이다. 일반 용제에 옥탄값을 높이기 위해 메탄올을 넣었다고 '대체 연료'가 될 수는 없고, 가짜 휘발유만 넣어도 자동차가 움직인다면 그것은 '첨가제'라고 할 수가 없다.
어쨌든 폭발과 화재의 위험이 높은 화학물질을 엉성한 통에 넣어서 길가에 쌓아두고 판매하는 위험천만한 일은 반드시 근절되어야만 한다.
이 글은 교육용으로 사용해도 좋으나 출처를 반드시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흥미진진 과학세상] 휘발유와 경유 (소년조선, 2011.04.15)
연소 열량에 따라 용도도 달라
소형차는 '휘발유' 트럭은 '경유' 선박은 '벙커유'…
계속 치솟는 휘발유와 경유 가격 때문에 모두가 걱정하고 있다. 휘발유와 경유는 자동차에 사용하는 대표적 화석 연료다. 원유를 정제(精製·불순물을 없애 물질을 더욱 순수하게 만듦)한 성분에 몇 가지 첨가제를 혼합해 만든 것이다. 휘발유는 탄소 수가 6~10개, 경유는 탄소 수가 10~14개인 탄화수소(탄소와 수소로 만들어진 화합물)로 제조된다. 분자 구조가 조금씩 다른 수백 종의 탄화수소가 섞여 있는 혼합물이다.
자동차용 내연 기관은 공기 중 산소와 결합하는 산화 반응에 의해 많은 양의 열이 나오는 액체(또는 기체) 연료를 사용한다. 화학적으론 장작이나 석탄을 연소시키는 것과 같은 반응이다.
내연 기관에선 액체 연료를 공기와 혼합해 실린더 속에 내뿜은 후, 전기 방전(휘발유)이나 압축열(경유)을 이용해 폭발이 일어나도록 만든다. 연료 폭발에 이어 실린더 안 연료 혼합물이 폭발하면서 기체가 팽창하는 힘을 이용해서 바퀴를 회전시키도록 만든 게 바로 내연 기관이다.
오늘날 내연 기관에 사용하는 연료는 다양하다. 원유를 정제하는 과정에서 생산하는 휘발유, 경유(디젤), 제트유, 벙커유(중유), LPG(액화석유가스) 등이 그 예다. 천연가스를 액화시킨 LNG(액화천연가스)나 압축시킨 CNG(압축천연가스)을 사용하기도 한다. LNG와 CNG는 메탄이 주성분이고, LPG는 프로판과 부탄이 주성분이다.
연료를 연소시키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열량은 LNG, LPG, 휘발유, 경유, 벙커유 순(順)이다. 소형 자동차엔 가스 연료나 휘발유를 사용하고, 트럭이나 버스와 같은 대형 차량엔 경유를 사용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초대형 엔진이 필요한 대형 선박에선 벙커유를 연료로 사용한다.
휘발유엔 자동차의 성능에 맞도록 발화 특성을 조절하기 위해 MTBE(메틸-t-뷰틸에테르)와 같은 첨가제를 넣기도 한다. 최근엔 MTBE 대신 옥수수나 해조류를 발효시켜 만든 ‘바이오에탄올’을 첨가하기도 한다.
우리 사회에서 심각한 문제가 등장한 ‘유사 휘발유’는 MTBE 대신 원유를 가공해서 만든 석유제품인 메탄올과 BTX(벤젠-톨루엔-자일렌)를 섞은 것이다. 유사 휘발유는 법으로 정해진 유류세를 내지 않은 탈세 제품이기 때문에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화석 연료는 모두 먼 옛날, 식물이나 플랑크톤이 땅속에 묻힌 후 높은 압력과 뜨거운 지열을 받아 화학적으로 변화하며 만들어진 것이다. 인류가 이런 연료를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건 원유를 채취해 정제하고 운반·저장하는 기술이 개발된 20세기 이후부터였다. 액체 화석 연료는 자동차, 비행기, 선박과 같은 운송 수단의 혁명을 일으켜 우리 삶의 질 향상에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최근엔 화석 연료의 사용에 의한 기후변화가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 글은 교육용으로 사용해도 좋으나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첫댓글 언제 또 다른 글을 읽어 봉게....이른바 가짜 휘발유라는게 실제 시험해 보니까 쓸만하다고 하더마요...다만, 그것이 알려지면 정유업자들이 당장 망하게 생겼으니,
필사적으로 정부에 압력을 넣어설라무네...강하게 제재를 한다고 구라던뎅...위의 두 글로 보면..세금야그는 빼더라도... 그게 아니란 뜻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