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생명으로 바꾼 데이터 분석 … 보건 행정의 혁신가
크림전쟁과 나이팅게일
입원·부상·질병·사망 등 야전병원 상황 도표화
통계·분석 이후 사망률 42%에서 2.2%로 급감
위생, 청결 등 환경 개선… 간호 원칙으로 자리매김
탁월한 행정능력, 타 군부서 조직관리에도 응용
기사사진과 설명

나이팅게일이 밤에 등불을 들고
회진한 것을 헨리 롱펠로는 ‘산타 필로메나(Santa Filomena)’라는 시에서 ‘등불을 든 여인을 나는 보았네(A lady with a
lamp I see)’라고 찬양했다. ?삽화=김성욱 |
오늘날 ‘백의의 천사’로 불리는 간호사 또한 전쟁에서 탄생했다. 즉 크림전쟁에 종군한 플로렌스 나이팅게일로부터 근대 간호학이 창시됐다고
말한다. 런던과학박물관 2층 의학 코너에 마련된 ‘헨리 웰컴의 유산’ 가운데는 나이팅게일(Florence
Nightingale·1820∼1910)이 사망 직전까지 사용하던, 도장이 새겨진 반지(signet ring)가 있다.
반지에는 간호사의 등불과 ‘밝은 날이 올 것이네(Brighter Hours Will Come)’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기사사진과 설명

나이팅게일이 그린 ‘동부전선의 사망
원인(Diagram of the causes of mortality in the east)’ 도표(Coxcomb chart). 필자
제공 |
크림전쟁 종군한 나이팅게일
나이팅게일은 영국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고등교육을 받았고 간호학은
영국과 독일에서 공부했다. 평소에도 병든 사람과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던 그녀는 가족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24세 때 간호사가
됐다.
크림전쟁(Crimean War)은 1853년부터 1856년까지 러시아와 연합국(오스만튀르크·영국·프랑스·프로이센·사르데냐)이
크림반도와 흑해에서 벌인 전쟁이다. 이 전쟁에서 많은 영국군이 부상과 질병으로 사망했는데 당시에는 야전병원의 위생 상태가 매우 열악했다. 전
세계를 위협하던 콜레라가 전장에서도 기승을 부렸다. 야전병원 운영을 요청받은 나이팅게일은 간호사 38명과 함께 스쿠타리(Scutari) 병원으로
갔다. 이 야전병원은 3000여 명의 부상병들로 꽉 차 있었을뿐더러 위생·세탁 시설이 전혀 없어 이와 벼룩이 들끓고
있었다.
크림전쟁 중 병원 상황 통계로 도표화
나이팅게일은 야전병원의
위생을 개선하기 위해 먼저 병원 상황을 정확한 숫자로 파악했다. 그녀가 숫자로 통계를 내기 전까진 크림전쟁의 영국군 사망자 수조차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입원·부상·질병·사망 등의 통계 내역을 통일했고 많은 사람이 보기 쉽게 어려운 통계를 도표화했다. 그 결과 야전병원의 사망률이
42%에서 6개월 후 2.2%까지 감소했다.
통계를 통해 깨끗한 위생 상태가 사람을 살린다는 증거를 보여주고 이를 근거로
청소·세탁·급식 상황을 개선했다. 위생위원회를 설립해 하수구를 수리하고, 급수 시설과 깨끗한 침대 보급에 힘쓴 것은 물론이다. 그뿐만 아니라
간호사들을 재교육해 엄격한 규칙을 적용했다. 부상병 간호에 성의를 다함으로써 간호정신을 다지게 된 것이다. 그녀의 행정 능력은 야전병원뿐만
아니라 다른 군부서의 조직 관리에도 응용됐다.
나이팅게일은 군의관들이 퇴근한 밤에도 간호사 회진을 돌았다. 그녀가 밤에 등불을 들고
회진한 것을 헨리 롱펠로가 ‘산타 필로메나(Santa Filomena)’라는 시를 통해 ‘등불을 든 여인을 나는 보았네(A lady with a
lamp I see)’라고 찬양했다. 이로써 ‘등불 든 여인’이 그녀의 이미지로 굳어졌다.
성
토머스병원에 간호학교 설립
전쟁에서 활약하고 영국으로 돌아온 나이팅게일은 국민에게 사랑받았고 그 인기를 토대로
정치력을 발휘해 1860년 런던 성 토머스병원(St. Thomas Hospital)에 간호학교를 설립했다. 또한 『간호 노트(Notes on
nursing)』라는 간호전문 서적도 편찬했다. 1858년 나이팅게일은 영국 왕립통계학회 최초의 여성회원으로 선출된 명실상부한 통계학자이기도
했다.
간호 원칙 담은 ‘나이팅게일 선서’ 제정
간호사로서의 윤리와 간호
원칙을 담은 나이팅게일 선서(Nightingale Pledge)는 1893년 제정됐다. 선서식 때 간호학도들은 하얀 가운을 착용하고 손에 촛불을
든다. 촛불은 주변을 비추는 봉사와 희생정신을, 흰색 가운은 이웃을 따뜻하게 돌보는 간호정신을 상징한다. 나이팅게일 이후 환기와 보온, 주택
위생, 청결, 소음관리 등의 환경 개선이 주요한 간호 원칙으로 자리 잡았다.
성 토머스병원에는 나이팅게일박물관이 있는데 그곳에
보관된 그녀의 육성을 들으면, 그녀가 기다리던 ‘밝은 날(Brighter Hours)’이 과연 무엇을 뜻하는지 새삼 생각하게
된다.
<황건 인하대 성형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