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 도배와 홀로서기
김순자/경기도 부천시 조마루로
삼십 년 만에 다시 여성시대를 노크해봅니다. 삼십 년 전 당시 카폴로 출근하던 광경을 묘사한 글로 여성시대와 인연을 맺었었죠.
얼마 전 집에 도배를 좀 해보려고 알아보니 기술자들의 하루 인건비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높은 비용에 깜짝 놀랐습니다. 6개월 전 짝꿍이던 남편이 소풍을 가버린 뒤라 이젠 홀로 무엇이던 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68세의 홀로서기가 시작된 겁니다.
밤마다 자리에 누워 유튜브를 통해 살림 고수들의 집안 꾸미기를 보며 도배에 관한 지식을 얻으려 애썼지만 딱히 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아는 형님이 이전에 도배를 배워서 몇 번 따라다닌 경험이 있다고 하시며 돈 들이지 말고 우리 둘이 함께해보자 하시는 겁니다.
며칠 고민하다가 마음을 굳게 먹고 혼자 작은방 곰팡이가 핀 벽면을 테스트 삼아 뜯어보니 난방을 위해 여러 겹 붙여 놓은 스티로품 위로 20여 년 전 초배지가 삭아서 먼지가 풀풀 날리고 있었습니다. 순간 난감했지만 “그래도 이젠 내가 해야 한다. 할 수 있다. 아이 캔 두잇, 그래 한번 해보는 거야” 혼잣말을 하면서 여러 차례 다짐하고 마스크, 칼, 락스, 키친타월을 준비했습니다. 처음엔 손으로 뜯다 보니 비효율적이었습니다. 다시 형님에게 전화로 자문을 구하니 칼집을 낸 후 뜯으라고 해서 시키는 대로 했더니 한결 쉬웠습니다.
다음날 멀리서 사시는 그 형님이 아픈 무릎에도 불구하고 제가 한심하고 안타까웠는지 아침 일찍 와주셨습니다. 천군만마를 얻은 것같이 든든하고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도배지를 바르기 전에 곰팡이 퇴치가 급선무였기에 유튜브에서 본대로 락스를 분무기로 뿌리고 키친타월을 곰팡이가 있는 벽에 붙이니 점점 없어지더군요. 가슴이 뿌듯했습니다.
다음은 도배지 사기 사이즈를 잰 후 도배지 구입을 위해 나섰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한계에 부딪히고 말았습니다. 최소한 20개 들이 한 박스를 사야 배달이 된다고 하는데 순간 앞이 캄캄했습니다. 장바구니를 끌고 몇 차례 3층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했더니 무릎에서 ‘나 좀 살려줘∼’ 아우성이 새어 나왔습니다. ‘휴우∼ 힘들다. 이럴 땐 정말 남자의 손이 필요하네.’ 짐을 나르다 물을 마시려고 식탁 위 물 컵을 드는 순간 눈에 들어오는 게 있었습니다. 손녀 백일 때 찍은 가족사진 속 남편이었습니다. 온화한 모습의 남편을 보는 순간 곧장 하소연이 나왔습니다.
“여보, 나 정말 힘들어요. 당신이 있을 땐 이렇게 힘들진 않았어요. 한 번도 나에게 힘들다고 한 적 없이 그저 ‘난 괜찮아, 나가서 놀다와’하던 당신이 생각나네요.” 넓적하고 듬직했던 그의 손길이 눈물겹도록 그리웠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어요. 이미 떠난 사람을 소환할 수도 없고요.
도배지와 장판을 들고 3층까지 오르내리는 건 대략 난감 그 자체였습니다. 몇 개씩 들고 오르기를 서너 번 도배지는 올렸으나 마지막 장판은 도저히 올릴 수가 없어 아래층 계단 옆에 낙심하고 앉아 행여 누구라도 지나가 주기를 기도하고 있는데 마침 50대로 보이는 2층 남자가 ‘왜?’하는 눈빛으로 쳐다보기에 이때다 이걸 3층으로 올려야 하는데 도저히 내 힘으로 할 수가 없다는 진심어린 눈빛을 발사했습니다. 그분은 결국 저에게 평생 잊지 못할 고마움을 베풀어 주었습니다. 남자의 힘이 새삼 부러워지면서 한편으로 나도 남자로 태어났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스쳐 갔습니다.
사흘에 걸쳐서 작은방 도배와 장판 교체를 해냈습니다. 남은 방 2개와 거실은 도저히 불가능해 전문 도배사 한 명과 보조기사로 두 사위를 끌어들여 마무리 지었습니다. 가까스로 새 옷을 갈아입히고 나니 내가 살던 집이 아니고 새로 입주 한 것 같아 낯설기까지 했습니다
셀프, 요즘 어딜 가든 셀프가 대세인 시대입니다. 셀프가 아니면 햄버거 하나 사 먹기도 힘든 시대지만 도배만은 셀프로 해서는 안 되겠다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도배는 도배사에게 부탁합시다!
1인 가구가 넘쳐나는 요즘 시대에 홀로서기는 많은 이들에게 주어진 인생 과제인 것 같습니다. 배우자가 떠난 후 나는 미니멀한 살림살이로 새로운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진정 내 마음은 어떻게 홀로서기에 안착할 수 있을지 걱정 반 기대 반인 오늘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