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22일 연중 제29주간 (화) 복음 묵상 (루카 12,35-38) (이근상 신부)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 주인이 밤중에 오든 새벽에 오든 종들의 그러한 모습을 보게 되면, 그 종들은 행복하다!”(루카12,35-38)
이야기는 긴 옷을 묶는 '띠'라는 이미지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때 그 사람들은 긴 통옷을 입었다고 한다. 해서 일을 나선다는 것은 그 긴 통옷의 허릿춤을 띠로 단단하게 묶는 것이 맨 첫번째 행동이었다고 한다. 허리를 묶어 매며, 팽팽한 긴장으로 몸을 감는 것인데, 몸만이 아니라 마음도 단단하게 묶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숙고의 시간이 아니라 행동의 시간이며, 주저함을 끝낸 시간이다. 마음은 어쩌면, 생각은 어쩌면 아직 다 영글지 못하였을지 모르지만, 몸이, 그러니까 행동이 이미 시작된 사태. 깨어있는 건 그러니까 의지나 이해의 영역이 아니라 결단의 영역.
주인을 기다리는 자는 이렇듯 허리띠를 묶는 자들이다. 이건 그야말로 내일이나 모레를 기다리는 자들이 아니라 지금 막 일어날 일을 준비하는 자들. 깨어있는다는 것은 그런 점에서 어떤 정신적 마음의 자세를 의미하는 말이 아니다. 띠를 맨다는 것과 같이 이미 행동에 들어선 사태를 의미한다. 그러니까 일하러 나가며 몸을 일으킨 상태이고, 문을 나선 상태이며, 어떤 일이든 감당해야 하는 사태다. 투신한 사태.
뭘 알아야 투신할 수 있다고 철썩같이 믿는 오늘의 세태에 깨어있는다는 말처럼 어리석은 말이 없다. 오늘 우리의 세상은 깨어있기에 앞서서 보증을 받으라고, 먼저 알라고, 잘 알라고, 뭘 얻게 될지 다 안뒤에 내 것을 내 놓으라고, 그렇게 빈틈없는 거래를 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니 깨어있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아직 잘 모르지만, 아직 무엇을 받을 수 있는지 모호하지만, 아직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지만, 우리는 먼저 허리를 동여매도록 초대받았다. 닥치는대로 아주 가까이에서 우리게 다가온 초대에 응답하도록 그리 불리움을 받았다.
먼저 내 앞에 놓인, 너무 단순하고 소박한 선행을 해나가는 것. 먼저 뭘 좀 하는 것. 복음은 거기에 기쁨과 행복이 있으리라 증언하고 있다. 하고 나면 그 분의 허리띠가 보이리라는 예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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