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쇄살인범 강호순(39·구속)은 경찰이 주는 매끼 식사를 깨끗이 해치웠다. 유치장에선 한낮까지 코를 골며 잠을 잤다. 유치장에
함께 입감된 범죄자들과 과자도 나눠먹고 한담도 했다. 경기 서남부 지역에서 2년여에 걸쳐 여성 7명을 살해한 강은 시종 침착한
모습이었다. 검거된 지 9일째인 1일, 현장검증에 앞서 맞닥뜨린 기자들에게 "유족들에게 죄송하다"고 말한 게 다였다. 창백한
형광등 아래 밤샘 조사를 받을 때도 강은 움츠러들지 않았다. 수사관들과 여자 이야기도 하고 농담도 했다. 경찰 관계자는
"조사받을 때 보면 쌩쌩하다"며 "그런 모습을 기자들이 봐야 하는데…" 했다.
강은 2006년 12월부터 2007년
1월까지 24일간 5명을 죽였고, 22개월의 '공백기'를 거쳐 지난해 12월 이후 2명을 더 살해했다. 그는 "연쇄 실종이
언론에 보도된 뒤 한동안 살인을 중단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그러나 그가 "여자들을 쉽게 태우기 위해서" 에쿠스 승용차를
구입한 것은 이 '공백기' 때였다. 연약한 여성들을 해친 것을 후회하는 대신, 또 다른 희생자를 갈망하고 있었던 것이다.
검
거된 지 8일째인 31일, 연쇄살인범 강호순은 안산 단원서 1층에 있는 9.9㎡(3평)짜리 유치장에서 정오 가까운 시간까지
벽쪽에 누워 코를 골았다. 아침으로 경찰이 식판에 담아주는 밥, 다시마 어묵국, 김치, 콩자반, 단무지를 남김없이 먹은 뒤였다.
강은 점심을 먹은 뒤 강도·상해 혐의로 한 방에 들어온 파키스탄 출신 노동자(41)와 한국말로 이야기하며 과자를 받아 먹었다. 유치장 한쪽 세면대에서 온수로 세수를 하고 손에 물을 축여 몸도 닦았다.
이
어 강은 유치장에 연결된 진술녹화실에서 1일 새벽 3시까지 조사를 받았다. 저녁은 형사들과 함께 백반과 자장면을 시켜 먹었다.
조사가 끝나자 강은 다시 유치장에 누웠다. 잠깐 뒤척였지만 이내 코를 골았다. 유치장 직원은 "오전 8시에 아침밥이 나오면 내가
가서 깨워야 일어난다"며 "먹고 나면 점심 때까지 또 잔다"고 했다. 지난달 28일과 1일, 두 차례에 걸쳐 희생자들을
납치·살해·암매장한 장소로 현장검증을 나간 것을 빼면 강은 매일 이와 똑같은 하루를 보냈다.
- ▲ 연쇄살인범 강호순이 1일 경기도 화성시 비봉면 자안리 도로변에서 첫 번째 피해자인 배모씨 암매장 장면을 재연하고 있다.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지
난 31일 본지가 단독 입수한 사진 속의 강은 서글서글한 호남이었다. 특별수사팀 간부는 "실물이 더 잘생겼다"고 했다. 강은
경찰 조사에서 "내가 차에 타라고 하면 (희생자들이) 모두 순순히 탔다"고 했다. "사귀는 여자는 지금도 여러 명 있다"며
"살인을 한 것은 성욕을 해소하지 못해서도, 돈이 필요해서도 아니었다"고 했다. "만나는 여자를 다 죽이지는 않았다"면서
"노래방 가서 만나면 죽인 경우도 있고, 안 죽인 경우도 있고, 좋게 헤어진 여자도 있다"고 했다.
강은 "나는
평소엔 아주 정상적인데, 순간순간 스스로를 제어할 수 없었다"고 했다. 사회에 대한 불만, 좌절된 성욕 때문에 연쇄 살인을
저지른 유영철(39·2004년 검거), 정남규(40·2006년 검거) 등과 자신은 다르다는 얘기다. 강은 유영철, 정남규와
자신을 비교한 언론 보도를 보고 "내가 '살인마'면 내 아들들은 '살인마의 자식'이 되는 것이냐"라고 불쾌해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강
을 면담한 경찰청 범죄심리수사관 권일용씨는 "강의 범행에서는 분노나 격앙 같은 '감정'의 흐름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감정의
기복 없이, 체계적이고 냉정하게 살인 그 자체를 즐겼다는 것이다.강은 지난해 12월 19일 군포보건소 앞에서 A(당시
20세)씨를 납치·살해한 혐의로 지난달 24일 경찰에 붙잡혔다. 검거 7일째인 지난달 30일 새벽까지도 강은 여죄를 추궁하는
경찰에게 유들유들하게 "증거를 가져오면 자백하겠다"고 답변했다. 경찰이 "당신 옷에서 또 다른 실종 여성의 혈흔을 확인했다"고
물증을 들이민 뒤에도 당황하기는커녕 "나와 말이 통하는 형사를 불러달라"고 요구했다.
강이 '말이 통한다'고 지목한
경기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한모 형사는 "강과 대화할 때 '사이코'라고 느끼지 않았다"고 했다. 자백 후에도 강의 태도는 바뀌지
않았다. 1일 현장검증에 앞서 기자들이 "수법을 바꿔가며 다른 범행도 저지르지 않았느냐"고 묻자 강은 "옆에 계신 한 형사님께
물어보세요" 라고 했다.
검거 당일부터 지난 31일까지 강은 파키스탄 출신 노동자 등 2명과 한 방을 썼다. 심리적 안정을 위해 통상 강력범에겐 독방이 주어지지만, 경찰이 "지금 유치장이 꽉 찼다"고 하자 강은 선선히 "괜찮다"고 했다.
강호순 이전에도 연쇄살인범은 있었다. 그러나 범죄 전문가들은 "강은 '살인의 쾌락' 그 자체를 추구한 첫 연쇄살인범이며, 그런 면에서 앞서 붙잡힌 유영철, 정남규와는 차원이 다르다"고 했다.
유와 정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외톨이'였다. 유는 교도소 수감 중 마사지사인 아내에게 이혼당한 뒤 부유층 노인과 마사지 업소 여성 20명을 살해했다. 빈농 출신인 정은 "부자만 보면 죽이고 싶었다"며 서울 신길동, 봉천동 주택가에서 남녀노소 13명을 살해했다.
이
들은 강도·협박 등 다른 범죄를 거쳐 연쇄 살인으로 나아갔고, 자신들의 범행을 부풀려 존재를 과시했다. 유는 "시체 장기 일부를
먹었다", "이문동 초등학생도 내가 죽였다"고 거짓말했다. 이문동 사건은 훗날 정의 소행으로 밝혀졌다. 정도 "부자를 더 못
죽인 게 안타깝다"고 했다.
이들과 달리 강은 주위 사람들에게 호감을 사는 멀쩡한 가장이었다. 정기적으로 성관계를 갖는 복수의 여자친구, 자기 명의의 재산과 직장과 자식이 있었다. 그는 경찰이 증거를 확보한 사건만 자백했다. 백석대 김상균 교수(경찰학과)는 "한풀이나 존재 증명이 아니라 오로지 '절정감'을 위해 살인을 했다"고 분석했다.
지금까지 수사 결과만 보면 연쇄 살인 앞에 해당하는 단계가 없다는 점도 강의 특징이자 의문점이다. 경찰청 수사국 김원배 범죄수사연구관은 "강은 나름대로 완전범죄를 해왔다고 자신해왔다"며 "그는 아직 자포자기하지 않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