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농어촌 희망문학상 우수작 수상작
망둥어깃발 외 5편 / 권여원
해 돋기 전,
아버지 망둥어를 게양하신다
한 사흘 민어를 물고 있던 게양대
어제 저녁 하향식을 마치자
들끓는 파리를 피해 망둥어가 허공을 타고 오른다
온전히 물기를 털어내려면
깃봉을 향해 올라야한다
자식들이 멀리 헤엄쳐 갈 수 있게
지느러미를 달아준 아버지
장롱 안 태극기가 누렇게 바랠 동안
한밤에도 펄럭이며 꾸덕꾸덕 말라간다
물결의 흐름을 기억하는 망둥어
아가미에 걸린 주파수가 레이더망을 돌리면
먼데서 소식이 날아든다
험한 물결에 길을 잃을까
비릿한 입술이 바짝 타들어간다
갯바람을 물고 꼬리를
치는 망둥어깃발
게양대가 질척한 갯벌 한 채를 끌어올린다
소금성전 / 권여원
염전에게 하늘은 신전
너울에 떠밀리던 바닷물이 쉬어가는
마지막 성지였다
소금은 아버지가 기르는 양떼
아버지의 발자국을 따라가면 빛에 궁굴려진
육각의 계명들이 고무판에 새겨져있다
소금밭의 주인은 하늘
하늘 한 조각에 바다 한 움큼씩 들여보내라는
말씀대로 꽁무니바람이 물의 둘레를 지킨다
여우비가 잠깐 다녀간 뒤 먹구름이 몰려오면
소금기둥이 된 한 여인의 울음소리 들려오고
그때마다 아버지는 해주에 소금물을 저장했다
아버지의 짜디짠 기도가 무릎을 적실 때
나는 바닷물이 허물 벗는 것을 보았다
바다의 영혼이 산다는 염부의 신전
바람에 등을 떠밀려온 새떼구름이
고봉으로 얹은 바다를
외발수레에 몰고 온다
햇살이 긁어낸 묵상의 시간이 끝나면
그득한 소금자루를 지고
태양은 뉘엿뉘엿 창고로 들어간다
어름산이*/ 권여원
허공은 그를 장전하고 있다
콩심기와 허궁잽이를 하는 아찔한 묘기에
튕겨나갈 것 같은 그의 몸
외줄이 저글링하듯 사내를 허공으로 던진다
녹밧줄이 활시위를 잡아당기면
부채 하나로 바람의 눈을 명중한 그의 춤사위에
허공은 반으로 갈라진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구름도 함께 출렁이고
구경꾼의 함성도 멍석 위에 깔린다
새들이 외줄에 앉아
창공의 현을 튕기며 날아가듯
사내를 튕겨낸 외줄
지난 해 바람의 발목에 걸린 사내가
땅의 과녁으로 추락한 적 있었다
그를 기다리는 허공은 그에게 곧 지상
허공이 다시 그를 장전하는 동안
낮달이 조바심으로 지켜본다
늙은 사내는 마지막인 듯 다시 외줄을 오른다
또 누군가를 노리기 위해 허공은 탱탱해질 것이다
*신의 경지에 다다른 줄타기의 장인을 일컫는 말
은사시나무의 날개 / 권여원
딱따구리를 품어 기르던 나무는
새가 되고 싶어
가슴에 파인 빈집을 동고비에게 내어준다
은사시나무 꽃을 물고 있던 새들이
붉은 음표를 팔랑거리며 노래를 매달고 있다
삐잇 삐잇, 하늘을 가르는 동고비
강가에 떠다니는 안개도 물어오고
바다에 밀려온 파도소리도 담아
상처 난 둥지에 스타카토로 발라준다
허공을 쓸어 담은 나뭇가지가 바람을 붙잡고
지휘를 하면 노을에 물든 막이 오르고
백 년 동안 물에 잠기지 않던 뿌리가 날아오른다
날이 밝기 전 새들을 위해
수액을 짜내는 나무의 손끝이 저려올 때
시오리까지 날아가 소식을 물고 온 동고비가
은빛 세상을 둥지에 넣어준다
창공에 뿌려 놓은 나무의 음표들이
메아리 되어 돌아오는 새벽녁
동고비가 탁본해 온 산 너머의 풍경이
이파리마다 햇살에 반사되어 흔들린다
숲속 너머의 소식을 잘 알고 있는 나무는
자기 몸을 뚫어
섬마을 너머를 날아오르고 있다
쑥개떡 / 권여원
외며느리가 되려면 불덩이를 안고 가라던
친정엄마의 말을 귓등으로 흘렸다
파릇파릇 쑥이 돋는 봄, 그 집 며느리가 되었다
딸 삼겠다던 시어머니 말씀을 찰떡같이 받아먹던 나는
갈수록 배가 고팠다
가세가 기울자 새사람이 잘못 들어왔다는 말씀에
퍼렇게 쑥물이 들어버린 가슴
시누이들이 이마를 맞대고 쑥덕거릴 때면
나는 바구니를 끼고 쑥을 캐러
바람 부는 들판을 헤매고 다녔다
떡메로 나를 내리치던 세상
차지게 달라붙고 싶었지만 쉽게 떨어져나갔다
떡고물처럼 주워 먹던 말에 목이 메던 나날
서슬이 퍼런 시어머니 호령에 밤마다 짐을 쌌지만
어디에도 갈 곳이 없었다
퉁퉁 부은 눈으로 새벽밥을 지으러 나가면
부뚜막에 놓인, 나를 닮은 쑥개떡 한 접시
한입 깨물면 입에 쫙 달라붙어 아궁이에 쪼그려 불을 지폈고
나는 짐 보따리를 풀곤 했다
손톱에 짙은 쑥물이 드는 동안
열두 해의 봄이 지나고
나도 어머니처럼 쑥개떡을 잘 빚을 수 있게 되었다
가슴에 든 쑥물이 다 빠져나갈 때 쯤
늙으신 시어머니는 분홍보따리에 쑥개떡을 싸서
먼 길을 찾아오셨다
시어머니는 뒤늦게 나를 딸이라고 부른다
곰치국 / 권여원
늙은 시어머니가
곰치국이 먹고 싶다고 조른다
허리 굽은 며느리가 시장에서 사온 팔뚝만한 곰치
뭉개진 콧구멍과 사나운 이빨에서 새어나온
물비린내가 칼끝에 닿으면
숨 끊어진 바다가 도마 위에서 벌떡 일어섰다
파도를 거스리던 성깔은 아가미 사이로 새어나갔는지
못생긴 녀석은 물쿠덩, 젖살만 남았다
김치 쫑쫑 썰어 넣고 휘젓지는 마라이
살점 녹으니 한 김만 끓이라이
시어머니 어눌한 말을 이제는 흘려들어도 되는 며느리나이
곰치 같은 시어머니가 이제 물컹해졌는지
며느리는 지느러미 없이도 물살을 잘도 헤쳐 나간다
바다를 한 수저 떠 올리면
시든 몸이 어느새 흐물흐물 깨어난다
곰치국 한 사발이 병든 몸을 일으켜 세운다
당선소감
권여원
어느 날 들고양이가 우리 집 창고에 새끼를 세 마리 낳았습니다. 새끼에게 젖을 먹이는 어미의 눈빛은 다 주기로 작정한 듯 평안해 보였고 어느새 우리 집 식구가 되었습니다.
詩가 내 영혼에 깃들어 산다는 것을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밤에는 별처럼 깜박였다가 아침이면 사라지고 마는, 한줌 허공 같은 것이었습니다.
내안에 가득한 잡념을 버리기 위해 머물던 섬에는 그토록 찾아 헤매던 시의 뿌리가 매달려 있었습니다. 망둥어가 게양되어 올라갈 때 하늘이 보였고 시의 처음이 보였습니다. 바다를 껴안던 망둥어가 자신의 생명과 같은 바닷물을 피처럼 뚝뚝 흘리며 말라갔지만 망둥어는 갯벌 한 채를 끌어올리며 사명을 다했습니다. 내 시의 살점도 꾸덕꾸덕 말라가는 듯 바람의 방향에 몸을 맡기고 있었습니다. 삶도 시도 그렇게 피 말리는 저 장대 위에 올라가 자신을 내려놓고 누군가에게 상징이 되고 살점이 되고 피가 된다는 것을,
갯벌의 생명들이 망둥어 깃발을 보고 등대처럼 길을 찾듯 시인은 저 깃발처럼 자신의 영혼을 다해 이 세상 언어의 지표가 되어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내 집에 세 들어 사는 나도 나그네, 이제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내 눈을 들겠습니다.
깃봉을 타고 오르며 언어의 결정들을 소금처럼 궁굴려 이 세상 지친 이들에게 맛이 되고 방향이 되고 싶은 꿈이 생겼습니다.
목말라 물을 찾던 중에 당선소식을 들었습니다. 소나기 한차례 내 심장을 적시듯 시원한 물줄기였습니다. 내 시도 언젠가는 이 땅에 목마른 사람들에게 소나기 같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시처럼 살지 못해 절망하고 돌아서는 저에게 용기를 주시고 시심을 불러일으켜주신 마경덕 선생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골방에 앉아 시 한편에 집중할 때 나를 믿어주고 도와준 남편과 밤톨 같은 세 아들과 로미에게도 사랑한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내게 은혜를 주신 양명목사님과 배옥주시인, 제인자시인, 김수영시인, 임수련시인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활천문학 회원들과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지금은 시작에 불과하지만 먼 훗날 나의 묘비명에 시처럼 들꽃처럼 살다갔다고 쓸 수 있는 한줄 위안을 안겨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되신 하나님께 이 모든 영광을 돌려드립니다.
권여원
서울 출생
제3회 활천문학상 대상 수상
제11회 시흥문학상 장려상 <갯벌도서관>
첫댓글 수선화 님의 시를 읽고 있노라면 백석 시인이 시가 떠오릅니다. 우리의 삶에 들어찬 애환들을 맛깔스런 시어로 보듬어 엮어내는 솜씨가 백석 시인을 닮았습니다. 아름답고 주옥같은 시들... 분발하여 최고 시인이 되시길 바라며 축하의 박수를 드립니다. 짝짝짝~~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백석 시인이라뇨... 저는 다만 우리 삶의 모습을 아름답게 치환하고 싶은 소망이
있었을 뿐입니다. 목사님의 과찬에 고개가 숙여집니다.
바다내음 날라오는 것 같습니다 ~ 시 감동하고 갑니다 !
진주님안에 있는 보화를 캐 내세요...감사합니다.
깊고 오묘한 시심,,과연 깊은 의미들을 담고 있는 작품들입니다,,당선을 진심으로 추카,추카 드리며,
더욱 창대한 발전을 기원합니다..화이팅,,할렐루야.........
목사님.... 감사합니다. 오묘하다고 표현까지 해주시니..몸둘바를 모르겠어요...ㅋㅎㅎㅎ
당선축하드립니다. 고향이 바닷가인가요. 정말 맛깔나게 잘 쓰셨어요. 부럽습니다.축카축카
고향은 서울이에요...ㅎㅎ 바다를 워낙 좋아해서요... 감사해여..귀염둥이님..^^ 안뵌지 참 오래되었네요
다 는 못 읽고 쑥 개떡을 보며 맘 졸 이며 갑니다. 넘머지는 다음에 잘쓴 시 감동 먹고가요.
웨메 목사님 읽어주셔서 감사해여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