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넓고도 좁다. 어디 가서도 정직하게 살아야! 이민복(대북풍선단장)
북한에서 저의 집까지 다녀간 탈북인이 처음 알려왔다. 집을 떠난 지 30여 년 만이다. 이 탈북인은 내가 탈북 전까지 있던 집에 와서 제가 연구한 종자를 얻어 갔다는 고마움을 잊지 않고 있다. 말하는 모든 것이 생생하게 정말이다. 너무 신기하다. 10여년 전부터 북한은 대남선전매체를 통해 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악평으로 선전했다. 제가 농민인데 <할머니를 강간하다 탈북한 놈>이라는 것이다. 또 최근년에도 제가 농민 출신인데 연구원으로 사기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이들은 특이하게 탈북하여 남한에 살면서 북한을 두둔하는 홍xx, 김xx 탈북 유튜버이다. 이들은 북한의 대남선전 내용을 <팩트 체크>로 삼고 주장한다. 이들에게 연구원인 저희 집까지 왔던 탈북인을 소개하면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다. 아마 마주세워도 이마저 가짜라고 우길 것이다. 워낙 고의적 종북주의 탈북인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팩트 체크한다면서 팩트를 전혀 체크하지 않는 자들이다. 그 대표적 실례 하나를 또 든다. 김대중 정권 시 남북교류가 비교적 진행될 때 남한 농학자로서 제가 있던 북한의 연구소까지 방문한 분이 있다. 김운근 한국 농촌경제연구원 북한담당 실장이시다. 이분은 이민복이 여기 연구소에 연구원이었냐고 물었다고 한다. 뜻밖에도 연구원이었다고 답하더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민복은 절대 간첩이 아니라고 하신다. 이런 대답까지 듣고 온 김운근 박사의 증언을 제시해도 홍xx, 김xx 탈북 유튜버들은 무시한다. 대화가 안 되는 고의적 북한 찬양자들이기에 문재인 정권하에서 기승을 부렸다. 이제는 국가보안법, 명예훼손이란 법적 대화만 남아있다. 세상은 넓고도 좁다. 1992년 6월, 탈북 망명지였던 연길시에서 있은 일이다. 어떻게 하면 남한대사관이 있는 러시아로 넘어갈까 궁리하면서 연길 서시장에서 돌아다녀 다리가 아팠다. 음식값도 부족, 그냥 식당의자에 앉아 쉬는데 마침 옆자리에 러시아에서 온 고려인 여인이 있었다. 대화를 나누기는 했지만 바닷물에 떨어진 물방울처럼 잊혀질 나그네들이었다. 정말 목표했던 모스크바 한국대사관에 도착한 지 1년 후인 1993년 여름이었다. 대사관 안 민원실 소파에 앉았는데 한 여인이 너무 반가워한다. 연길시 서시장 식당에서 우연히 만났던 그 고려인 여성이었다. 넥타이 정장을 한 저를 보고 대사관 직원인가고 하면서 도움을 요청할 정도였다. 사실 같은 민원인으로서 탈북 망명자인 줄 몰랐던 것이다. 여하튼 얼마나 신기한가. 그 먼 중국 연길 식당에서 만났던 분을 지구 맡은켠의 모스크바 한국대사관에서 만날 줄이야. 2013년 미국 시애틀에서 두 달간 교회 강의차로 갔을 때이다. 시애틀 시외 산 속에 사는 교역자 분이 저를 보고 너무 반가워한다. 1995년 한국에 입국한 저의 집까지 방문하였던 분이라는 것이다. 많은 사람을 상대하다 나니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그 분은 저를 생생히 기억하고 계셨다. 그 넓은 미국땅 산 속에서 이런 분을 만난다는 것 역시 신기한 것이다. 이런 기적은 여러 사실 더 있지만 생략하며 끝맺고 싶은 말은 어디 가서도 정직하게 살아야겠다는 것이다. 저 하느님은 다 보고 계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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