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은 우리의 감정과 이성을 통하여 작용하신다. 직접적으로는 신체의 반응을 통하여 우리 자신을 보호하게 하시고 신체 보존에 필요한 것인 무엇인지 알게 하여 그것들을 추구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하신다. 그 다음 그것이 당장에 필요할 뿐만 아니라 지속적으로 자기 보존에 도움이 될 것인지 우리의 이성을 통해 다시 점검해 보도록 하신다. 또한 자기 보존을 위해서 타자를 위해 유익한 것이 될 것인지도 아울러 생각하게 만드신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우리는 신체적 감정과 이성을 통하여 자기 보존과 타자와의 관계가 원할하게 되도록 인도하시는 것이다. 하느님이 자연 외부에 존재하는 사람이나 사물과 같은 개체라는 생각은 마치 하느님이 홀로그램으로 구성된 어떤 물질과 같은 존재로 우리에게 환상이나 꿈으로 나타나 우리가 가야할 길을 우리의 언어로 직접 지시하는 것으로 착각하게 만든다. 그러한 교리들은 원시 신앙인들이 가졌고 현대까지 기독교파나 여러 종교에서 답습해온 방식이다. 그러한 교리들은 초자연적 기적이 가능하고 자연의 질서에 반하는 것이라도 무엇이나 마음만 먹으면 가능하게 되는 것으로 신을 묘사해 왔다. 그러한 초월적 신관을 가진 1세기의 그리스도인이라 하더라도 그들의 사고 한켠에는 하느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며 또한 존재하는 것들의 전체라는 개념이 존재하였다. 그 교리를 나타내는 단어가 '알파와 오메가'이다. 알파는 시간적으로는 모든 것의 출발이며 공간적으로는 사물 하나 하나를 가리킨다. 한편 오메가는 시간적으로는 모든 것의 완성을 나타내며 공간적으로는 존재하는 모든 것들 전체를 나타낸다. 하느님은 우리의 머리카락이나 세포 하나의 부분으로도 존재하시며 또한 전 우주적 전체를 이루시는 '전일하신 하느님'이시다. 그래서 그분은 알파요 오메가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의 느낌과 생각, 행동 하나에서 모든 활동들이 사실상 그분의 작용이이고 활동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피조된 입장에서는 수동적이고 강제되어 철저히 무능한 존재이며 자유 의지가 존재하지 않지만, 하느님의 활동적 존재의 부분이 된다는 점에서 우리는 모든 것이 가능하고 자유 의지가 충만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느님의 임재를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며 생각조차 될 수 없지만, 우리가 하느님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생산자로서의 창조자이며 가장 행복한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비록 현 존재가 죽음을 맞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죽음의 순간, 눈 깜빡할 사이에 시간의 벽을 뚫고 미래에 도착해 있음을 추론적으로깨닫게 된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그분의 일부로서 존재하는 한 우리는 영원성을 가지게 되며, 또한 현 존재와 같은 인간으로 나타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이다. 존재는 결코 비존재가 될 수 없다. 존재는 존재하려는 속성을 유지하면서 언제나 긍정적이 되고 능동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다만 현 질서 상, 현상은 변화에 순응하며 형태를 바꾸면서 순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러한 순환의 질서에 순응하면서 동시에 전체이신 하느님께 그분의 존재성을 강화시키려는 활동을 지속한다면, 인간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이고 인간이라는 지위에 적합하기 때문에 죽어도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상태에서 이러한 인식을 가질 때 영원히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요한 11: 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