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28일(목)
* 시작 기도
주님...
이스라엘이 출애굽 구원을 받은 것처럼 나 또한 주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죄에서 구원받은 주의 백성이요, 하나님의 자녀이오니 주께서 주신 생명의 길을 오늘도 넉넉히 걸어갈 수 있도록 나를 붙드소서.
마음조차 흔들리게 하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그리고 이생의 자랑 등에 마음이 빼앗기지 않게 하소서.
오직 주의 보혈로 나를 덮으사 주님의 품안에서 주님이 주시는 생명의 양식을 홀로 얻어먹으며 온전한 생명을 이어가게 하소서.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고 거룩한 불구자와 영적 하루살이의 삶에 만족하게 하소서.
나를 미혹하는 어떠한 것들로부터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막아서서 싸움이 끝난 후에 능히 설 수 있는 자로 삼아주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마음에 쫓겨 조급하지 않게 하시고 주님이 주시는 일정에 순응하는 자 되게 하소서.
이 하루도 주님의 날, 거룩한 날임을 믿습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고전 9:19-27
제목 : 자유로우나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19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20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에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21 율법 없는 자들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이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22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23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26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 나의 묵상
나는 자유합니다.
따라서 어느 누구에게도 매어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더 많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나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습니다.
율법 아래에 있는 유대인들에게는 그 유대인들을 얻기 위하여 비록 나는 율법 아래에 매여 있지 않지만 율법 아래에 매인 유대인과 같이 되었습니다.
또한 율법 없는 이방인에게는 내가 율법 없는 이방인과 같이 되었습니다.
물론 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이지만 율법 없는 이방인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목적 때문에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입니다.
마찬가지로 약한 자들에게는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되고 여러 사람에게 그들과 같이 된 것은 그들 중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입니다.
나는 복음이 주는 참된 복에 참여하기 위하여 그것이 무엇이든 모든 것을 행합니다.
운동장에서 달리기를 할 때 많은 사람이 달리지만 상을 받는 사람은 한 명뿐입니다.
여러분들 역시 상을 얻기 위하여 힘껏 달리십시오.
경주에 나서서 이기기를 원하는 자는 모든 일에 절제합니다.
이 사람들은 썩어 없어질 면류관을 위해서도 이렇게 최선을 다하는데, 하물며 영원한 영광의 면류관을 위하여 달리는 우리들이야 두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따라서 나 바울은 영적 달리기인 복음 전하는 일을 목표나 향방 없이 하지 않고 또한 허공을 치는 것처럼 하지도 않습니다.
무엇보다 나는 나 자신의 몸을 쳐서 굴복시키는 것은 내가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파한 후에 정작 나 자신이 상을 받기에 부적격자가 될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어떤 것에도 매이지 않고 자유하다.
심지어 그는 혈통적으로도 유대인이다.
하지만 그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자유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유대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율법 아래 매인 자처럼 행동하는 자유를 선택하였다.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처럼, 이방인에게는 이방인처럼 행동할 수 있다.
무엇보다 그는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을 구원하기 위하여 진리 안에서는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매인 자이지만 율법 없는 자처럼 살기도 한다.
바울의 관심은 온통 영혼구원에 있다.
복음을 전할 수만 있다면 내가 어떤 존재가 되든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바울을 보면서 나 자신이 그저 부끄러울 뿐이다.
나는 그저 사람들에게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기 위하여 내가 당할 상황을 어떻게든 모면하려고 하지 않았었던가?
옛날에는 복음을 잘 모르기도 했지만, 전도랍시고 아파트 단지에 가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맨 꼭대기 층으로 올라가서 한 층씩 걸어 내려오면서 각 집마다 초인종을 누르며 전도를 하였다.
그런데 초인종을 누르고 난 뒤에 내 마음속에서는 ‘제발 아무도 없기를...’ 하면서 얼마나 바랐는지 모른다.
그렇게 아무런 반응이 없을 때는 후유~ 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돌아섰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운동장에서 달리기를 하는 것처럼 영적 신앙의 달리기를 하는 바울은 오직 부르심의 상을 위하여 달렸다.
그래서 그는 썩어 없어질 면류관이 아니라 썩지 않고 쇠하지 않는 영원한 면류관을 바라보며 영적 경주를 마쳤다.
(딤후 4:7-8)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이런 바울의 모습은 곧 우리에게 완전한 영광의 면류관을 주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 그 자체이다.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얼마든지 마음만 먹으면 이 땅의 면류관을 쓸 수 있었다.
병든 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며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시는 모습을 경험한 이들이 예수님을 임금으로 삼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요 6:14-15) 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이 가진 원사도로서의 사명을 결코 잊지 않으시고 그 사명을 완수하셨다.
그것은 썩어 없어질 세상의 면류관이 아니라 영원한 영광의 면류관이었다.
그뿐 아니라 그 면류관을 당신을 믿는 자들에게 씌워주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무덤에 장사되시는 고난의 자리를 기꺼이 받으신다.
(요 6:38-40)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마 16:21)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많은 종교지도자들에게 고난을 당하고 십자가에 죽는 것이 곧 그를 믿는 자에게 영생을 주는 첩경이다.
그럼에도 이를 깨닫지 못한 베드로는 육신적인 면류관을 기대하였기에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죽어야 한다는 말을 듣자 오히려 예수를 향하여 항변하기를 마지않았다.
여기서 ‘항변하다’는 말은 예수를 꾸짖었다는 말이다.
당신이 살아서 우리의 임금이 되어야지, 왜 죽느냐는 것이다.
그는 잘못 짚어도 한참 잘못 짚었다.
그 때 예수께서는 베드로를 향하여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일갈하신다.
이는 베드로 그 자신이 사탄이라는 말이 아니라 사탄의 영에 놀아나는 그의 겉모습 곧 옛 사람으로 행하는 그를 꾸짖으신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마 16: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나는 썩지 않고 쇠하지 않는 영원한 영광의 면류관을 바라보며 사는 그리스도인이며 또한 목사요 선교사이다.
이런 나 역시 말로는 주를 위하여, 영원한 영광의 면류관을 위하여 산다고 하면서도 사람의 일을 생각하며 주님으로부터 책망을 받은 베드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아니 나는 베드로의 발바닥의 때만큼도 되지 않는 수준임을 잘 안다.
이런 나의 모습은 그저 주님께 아픔과 상처를 드린 자이며 죽기에만 합당한 자이다.
이런 나에게 딱 맞는 것은 오직 공의의 심판이다.
내가 복음을 알지 못했을 때는 심판이라는 말이 얼마나 두렵고 공포스러웠는지 모른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이런 심판만은 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디 주의 심판을 내가 피한다고 피해지던가?
오히려 주님의 심판을 통해서 내가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진짜 복음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리하여 오늘도 주의 심판을 기다리되 온전한 공의를 세우길 원한다.
이 공의의 결과는 영원한 안전과 평화이기 때문이다.
(사 32:17) 공의의 열매는 화평이요 공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라.
눈앞에 보이는 것에 목숨을 거는 부나비는 타는 불꽃의 화려함을 바라보다 한 순간에 불에 타죽고 만다.
이런 부나비의 인생이 아니라 오늘도 비록 거룩한 불구자로서 지나간 것을 족한 줄로 알고 영적 하루살이의 삶에 충실한 하루가 되기를 소망한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말로는 썩지 않고 영원한 영광의 면류관을 바라며 기대한다고 하지만 순간순간 넘어지는 나의 모습 속에서 그동안 얼마나 많이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 사람의 일을 생각하였던지를 돌아보면 나의 존재는 끔찍합니다.
이처럼 지옥의 아랫목에나 딱 맞을 인생을 위하여 창세전 하늘로부터 육신을 입고 오신 우리 주님은 십자가를 지시고 무덤에 장사되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무엇보다 그 주님을 믿는 나에게 새 생명을 주셔서 거듭난 생명으로 제2의 인생을 살게 하셨으니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복음으로 우리 주님과 연합되기 원합니다.
복음이 목적이 아니라 복음을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는 일에 매진하게 하시고 이 일에 이 종을 사용하여 주소서.
손목골절로 수술 후 회복을 기다리는 신수준집사를 성령께서 지켜주시고 주의 은혜로 회복되도록 인도하소서.
암수술 후에 잘 회복이 되어 일상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정희영집사에게 감당할 수 있는 은혜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