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문학 [로판] 노예를 사랑한 천족과 얼굴도 모르는 여자를 8년 사랑한 북국의 왕, 두 남자에게 사랑받는건 저주일까 축복일까?

[안개]

출처: 방석 위로 모여라 영원한 너의 거짓말

스크랩 아닌 불펌 X

수메르 신화 바탕의 로판

<황금숲>

위대하신 이신다 여신에게 축복 아닌 저주를 받아 두 명의 사내를 만나는 레니에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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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 1 기치다

“내 이름은 기치다, 황금숲의 엔이쉬브다.”
“…….”
“레니에. 너는 앞으로 황금숲의 신전에서 일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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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름 끼칠 정도로 아름다운 얼굴이 눈앞에 와 있었다. 양젖처럼 희고 깨끗한 얼굴, 새파란 눈, 양귀비 꽃물을 짜서 떨어뜨린 것 같은 붉은 입술, 머리카락은 금을 녹여 만든 폭포가 흘러내리는 것 같다. 카타와 아르마누의 후손, 천족, 지상에 머무르는 천계의 신, 혹은 반인반신이라 불리는 황금숲의 신관들은 이렇게 세상 사람이 아닌 듯한 외형을 갖고 있었다.

기치다는 원리주의자 중에서도 진흙인간을 백안시하는 정도가 상당히 심한 골수 원리주의자였다. 그가 인간들과 접촉하는 것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봄의 축제에 숲에 들어오는 외부 사람들과 접촉하는 게 싫다고 제의에 참가하지 않은 적도 있었다

“그만 울라고 했다. ……시끄럽고 머리 아프다니까. 내가 노예 아이 우는 것까지 달래 주어야 해?”

하지만 기치다 님의 말과 행동은 따로 놀았다. 쯧, 짧게 혀 차는 소리, 당혹스러운 혹은 짜증스러운 듯한 표정, 서투르지만 토닥토닥 두드려 주는 손길 중 어떤 것이 진짜인지 알 수 없었다

기치다 님은 자신 때문에 태형을 받다가 의식을 잃었다고 들었다. 레니에는 남은 태형을 자신이 받을 수만 있다면 목숨이라도 내놓을 수 있었다.

레니에는 조금 뻘쭘해서 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렸다. 저번에도 그랬지만 어째 조금, 아니 많이 민망한 것이, 기치다 님은 집에서 꽤 점잖지 못한 옷을 입고 계셨다.

그 공간 한가운데서, 기치다는 긴 의자에 한쪽 팔을 괴고 비스듬히 누워 있었다. 길고 아름다운 금빛 머리칼이 의자 아래로 흘러내려 바닥에 사르르 휘감겨 고이고, 온몸을 감싸고 있는 얇은 아마포 신관복은 그의 늘씬하고 미끈한 몸을 가장 우아하면서도 관능적인 방식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숨이 턱 막혀서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기치다님께서는 노예 아이 앞에서 저러고 계셨단 말인가?

“3년 전에 네게 솔직하게 해야 했던 말이라고 했니?”
“예. 기치다 님.”
하…… 하하.
그가 흠뻑 젖은 얼굴로 웃기 시작했다. 웃음은 기꺼운 게 아니라 허탈하거나 혹은 당혹스럽게 들렸다. 달빛과 눈물에 잠긴 그의 얼굴은 슬퍼 보이는 대신 여전히 아름다워 그 또한 당혹스러웠다. 그의 입에서 낮게 잠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제 와서 못 할 건 없지. 그래.”
“…….”
“사랑한다, 레니에.”

“왜 하필 지금 이러세요? 3년 전에는 그 말이 안 나왔었나요? 고귀한 천족이 진흙인간에게 그런 고백을 하시기가 너무 힘드셨어요? 그래서 3년 동안 열심히 연습이라도 하신 거예요?”

“3년 동안 연습…….”
그는 레니에의 말을 천천히 되풀이한 후, 고개를 수그리고 웃었다.
“……그런 셈이지.”

“됐다. 그간 진흙인간 노예 계집애 따위에게 질질 끌려다니는 내 꼴이 끔찍하게 혐오스러웠고, 내 마음이 의지대로 통제가 되지 않아 비참했는데, 이렇게 정신이 번쩍 들게 해 줘서 고맙구나. 내가 아까 했던 말은 못 들은 것으로 해라.”

“앞으로 너는 항상 내 시선이 닿는 곳에 있도록 해라.”
“……예, 기치다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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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 2 쿤


“후와투와 카할라의 아들이며 소금성의 주인, 북국 열한 개 부족 연합의 루갈, 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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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원래 너희 수인…… 북국 사람들은 다 귀 움직여?”
“……그건 아니다.”
“진짜 신기해! 엄청 귀여워! 강아지가 귀 쫑긋대는 것 같아! 한 번 더 움직여 봐.”

“가지 마! 가지 마! 가지 마아아! 이름이라도 알려 주고 가! 제발! 제발!”
그는 뒤에서 주먹을 움켜쥐고 엎드린 채 커다란 목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고함 소리는 점점 울부짖음으로 바뀌었다.
레니에는 그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귀를 틀어막고 달렸다.

쿤. 왜 이래. 왜 자꾸 이래. 넌 내 이름도 나이도 모르잖아. 아니 내 얼굴조차 모르잖아. 아는 게 하나도 없잖아. 그런데 어떻게 이런 감정에 빠질 수 있어?

“훔바, 나는 아내가 있고, 내 아내는 죽은 것이 확인되지 않았다. 아내가 아닌 여자를 통해 대를 잇는 것이야말로 옳지 못하다! 아내는 그날 나를 만나러 성에 왔었어!”

“아내…… 결혼도 안 하셨는데 왕비님이라뇨, 루갈? 그동안 몰래 밤마실을 다닌 겁니까? 아니, 왕비님을 원하시면 참한 신붓감 물색부터 하셔야죠.”
“참하다! 아주 참하고 용감한 신붓감, 아니, 아내다!”
“아내는 결혼을 하고서야 아내라 하는 것입니다!”

“훔바. 나는 아내의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입이 저절로 덩그러니 벌어진다. 처음 들어 보는 이야기였다. 그동안 왕비에 대해 슬며시 떠보기라도 하면 ‘최고로 예쁘다’느니, ‘북국에서 제일 아름답다’느니 하는 대답만 줄곧 튀어나와서 훔바는 정말 그런 줄로만 알았다.

뭐? 뭐가 어째?
암염으로 만들어진 아름다운 내실. 북국에서 제일 아름다운 내실의 주인, 그녀의 치마폭에 싸여 도낏자루 썩어 가는 줄도 모른다는 북국의 왕.
……그런데 그 내실의 주인이 나였다고?

“이제 말할 수 있어서 너무 좋다. 이제 매일매일, 아침이고 저녁이고 말할 것이다. 난 네가 좋다. 8년 전에도 좋았고, 지금은 더 좋다. 너무 좋아서 숨도 못 쉬겠다.”
뭐라 대답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그를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너는 여전하구나. 정말 변함이 없이, 8년 전에 내가 좋아했던 쿤 그대로구나.

“물론, 그, 그래야 하지만, 네가 예뻐서 더 좋다는 건 어쩔 수 없다. 너는 예쁘고, 음, 많이 예쁘고, 아니 어쨌든 숨도 못 쉬게 예쁘다. 처음에 예뻐서 반한 것도 조금 있다. 아니, 많이.”
“무슨 말이야? 나 안 보였잖아.”
“네 목소리나 냄새만으로도 네가 예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네가 걸어오는 소리만으로도 나는 네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는 것을…….”
“야야야! 됐어! 됐어!”

“레니에, 레니에, 이제야 네 이름을 부를 수 있게 돼서 너무 기쁘다. 밤새도록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레니에, 네가 좋다. 네가 정말 좋아. 좋아서 죽을 것 같다. 아아, 레니에, 레니에.”

넌 어쩌면 이렇게 누군가를 무방비하게 좋아할 수 있니.
나는 어떻게 이런 너를 암살하러 올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내가 미쳤었지, 내가 어떻게.

“난, 네가 좋아.”
“레니에.”
“어디서 무슨 말을 들었는지 모르지만, 내가 좋아하는 건 너 하나뿐이야. 남들이 무슨 말을 하든, 무슨 생각을 하든, 난 네가 좋아. 너만 좋아.”

이신나 여신이 레니에에게 내린 운명은 축복일까 저주일까?정말 여신의 말처럼 레니에는 두 명의 남자에게 사랑을 받아 죽음을 당하는걸까?

윤소리 작가님의 <황금숲>에서 확인하세요

웹툰도 있는데 웹툰 작화도 미쳤음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