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29일(금)
* 시작 기도
(시 84:10-11)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이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주님...
시인은 얼마나 주의 전을 사모했던지 주의 제단에 집을 지은 참새나 제비를 부러워할 정도였습니다.
심지어 주의 전에서의 하루가 악인들이 사는 궁전에서의 천 날보다 낫다고 노래합니다.
하여 주님의 성전 문지기를 사모합니다.
어찌 보면 좀 억지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성전이 좋아도 궁전의 천 날보다 나을까요?
하지만 영원에서는 그 나라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좋은 것을 믿습니다.
죽은 흙이요 티끌이며 먼지에 불과한 나이지만, 저 역시 주의 전의 문지기를 사모하오니 나를 불쌍히 여기사 오늘 하루도 주의 마당을 쓰는 마당쇠로 서게 하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어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워주소서.
이 아침에 나의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나는 죽고 오직 예수로 부요한 자 되어 거룩한 불구자로 서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고전 10:1-13
제목 :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1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2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3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5 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6 이러한 일은 우리의 본보기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악을 즐겨한 것 같이 즐겨 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7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 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8 그들 중의 어떤 사람들이 음행하다가 하루에 23,000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음행하지 말자.
9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시험하지 말자.
10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
11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
1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13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 나의 묵상
고린도 교회 성도 여러분이여, 나는 여러분이 분명한 것을 알기 원한다.
그것은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었고 또한 모두 바다를 무사히 건넜던 일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모두 구름과 바다 가운데서 세례를 받았는데 모세에게 속하여 받았다.
그들은 모두 같은 영적인 음식을 먹었고 다 같이 영적인 물을 마셨다.
우리 조상들이 마신 영적인 물은 그들과 늘 함께 했던 영적인 반석에서 나오는 물이었다.
그런데 이 물을 낸 반석이 바로 그리스도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런 영적인 체험을 한 우리 조상들을 그다지 기뻐하지 않으셨으며 그들이 다 광야에서 죽임을 당하였다.
이런 일은 오늘 우리에게 본보기가 되어서 우리는 그들처럼 악한 일을 즐기지 말라는 경고가 된다.
여러분들 중에는 우상숭배를 하는 사람이 있는데 우리 조상들처럼 우상숭배를 하지 말라.
성경 출애굽기 32:6절에 백성들이 앉아서 먹고 마셨으며 일어나 춤을 추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조상들 중에는 간음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우리는 그들처럼 간음을 하지 말자.
그들이 간음하다가 하루에 23,000명이 죽임을 당했다.
또 우리 조상들 중에는 하나님을 시험하다가 뱀에 물려 죽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니 우리는 그들처럼 주님을 시험하지 말자.
조상들 중에는 원망과 불평을 늘어놓다가 멸망시키는 천사에게 멸망을 당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원망과 불평을 하지 말 것이다.
이 모든 일들은 우리 조상들에게 본보기로 일어난 일들이다.
또한 세상의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경고를 하기 위해서 기록되었다.
따라서 자기가 굳게 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언제든지 넘어질 수 있으니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라.
누구나 겪는 시험 이외에 여러분에게 닥칠 시험은 없다.
하나님은 신실하셔서 여러분들이 감당할 수 있는 능력 이상의 시험을 당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신다.
또한 여러분이 시험을 당하면 그 시험을 잘 견디고 이겨낼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실 것이다.
바울은 지금 고린도 교회에 횡행하는 문제인 우상숭배, 음행,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 그리고 원망과 불평 등의 문제를 옛 조상들의 예를 들어 자세히 설명한다.
우리 조상들이 이렇게 행함으로 결국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광야에서 다 죽지 않았느냐고 말이다.
따라서 우리들도 늘 깨어 있어 그 경고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여 그들처럼 우상숭배나 음행 그리고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이나 원망하는 일을 하지 말 것을 권면하는 것이다.
조상들은 출애굽 할 때 구름과 바다에서 이미 세례를 받은 자들이다.
구름은 물 결정체의 집합이며 바다는 그런 물들이 모여 있는 어마어마한 장소이다.
이들은 물 결정체인 구름 기둥이 움직일 때마다 그 움직임 아래서 이동하였다.
또한 애굽 군대의 추격에 따라 도망하는 그 시간에 그들의 앞을 가로막은 것이 바로 홍해였다.
이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바다로 내려갔다.
바다로 내려갔다는 것은 곧 바닷물에 빠져 죽는 죽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들은 그 바다 속에 마른 길이 있을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미 바다 속에 마른 길을 만드시고 그들을 그 홍해로 인도하신 것이다.
이로 인하여 그들 모두는 이 바닷길 곧 마른 땅을 걸어 홍해를 건넜다.
출애굽을 주제로 하는 ‘십계’라는 영화를 볼 때 모세가 바다를 향하여 지팡이를 내밀자 곧 바다에 길이 열리고 물벽이 세워지며 그 사이를 이스라엘 백성들이 건너는 장면은 정말 지금 생각해도 감동이다.
그런데 이들은 생각없이 그 물벽 사이를 건넜을 것이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그 사건을 가리켜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았다고 천명한다.
세례란 나는 죽고 예수로 다시 사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이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은 모형이며 그림자이다.
따라서 그것이 정확하게 하나님 나라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모세도 광야 곧 모압 땅에서 죽었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 것 아닌가?
하지만 모세는 그렇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을지라도 당당하게 하나님 나라에 입성하였다.
그것은 예수님의 변화산 기사(막 9장)에서 잘 나타나 있다.
예수님이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 3명과 변화산에 오르셨을 때 예수님과 함께 대화를 나누던 구약의 인물 두 사람이 등장한다.
이 두 사람이 바로 모세와 엘리야이다.
만약 모세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했다면 예수님과 함께 변화산에 등장할 리가 없다는 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세례를 받았다고 해서 무조건 천국인 하나님 나라를 이어받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 땅에서 우리가 예수를 믿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받는 세례는 우리의 신앙을 확증하는 하나의 표지이다.
눈으로 보이는 세례를 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복음을 통하여 우리가 참 영생의 삶을 살고 누리는 것이다.
그런 믿음의 확증적인 삶이 있을 때 이 자리가 바로 하나님 나라가 된다.
또한 죽어서 가는 천국 또한 예외가 없다는 말이다.
복음을 바로 알기 전까지 나는 세례를 오해한 자였다.
세례를 받으면 당연히 죽어서 천국에 가는 것으로 말이다.
문제는 죽어서 천국에 가느냐, 못 가느냐가 아니라 이 땅에 살면서 아담의 생명이 아닌 아들의 생명으로, 진짜 하나님의 자녀로 영생을 누리느냐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은 죽어서 과연 천국에 갈 수 있는가에 있다.
그런 사람들은 이 땅에서는 어떻게 살든지 상관없이 내 맘대로 살다가 세례와 같은 형식을 통해서 천국에 가는 티켓만 얻으면 된다는 식이다.
하지만 우리 기독교는 그런 종교(?)가 아니다.
이 땅에 존재하는 많은 종교는 그런 차원에서의 천국을 원하지만, 기독교는 그런 종교를 넘어서 생명 그 자체이다.
따라서 이 땅에서 아담의 생명으로 살다가 예수를 믿어 위로부터 오신 아들의 생명을 얻어 그 생명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영생이요 하나님 나라이다.
죽어서 가는 천국만을 구하는 자들은 다분히 육신적이고 자신만을 위한 이기적인 신앙인 경우가 많다.
내가 바로 복음을 알기 전까지는 이런 반쪽짜리 신자였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하여 거듭나게 되어 아들의 생명을 얻었다.
그런 나는 이 땅에서의 삶이 어떠하든지 상관없이 늘 하늘을 살아가는 자로 영생을 누린다.
이전에는 알지 못하는 순간에 얼마나 많은 우상숭배를 행하였던가?
하나님을 섬긴다면서 하나님을 우상처럼 섬겼던 자가 여기 있다.
육신의 정욕을 이기지 못하여 음행과 음욕에 매몰되었던 자이다.
나는 하나님의 피조물인 주제에 내가 하나님을 시험하기도 했던 자였다.
원망과 불평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도 없다.
이런 나는 이스라엘의 조상들처럼 광야에서 마땅히 죽어야 할 자이다.
이처럼 나의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었다.
그런데 이 옛 사람 곧 나의 옛 자아는 한 번 죽는다고 영원히 죽는 것은 아니다.
십자가에 못을 박아도 또 다시 살아나고 또 살아나곤 한다.
그래서 날마다 내가 하는 일은 나의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일이다.
우리 주님께서는 이런 나를 창세전 언약을 통하여 영생을 주시고자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고 무덤에 장사되셨으며 사흘 만에 그 무덤에서 부활하신 것이다.
이를 믿으므로 나에게 아들 자신의 생명을 선물로 주셨다.
이제 나는 오늘도 그 생명으로 살아간다.
나의 정체성이 아담의 생명에서 아들의 생명으로 바뀐 것이다.
그런 나는 사망에서 생명으로(요 5:24), 흑암의 권세에서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골 1:13), 심판의 부활에서 생명의 부활(요 5:29)로 옮긴 자가 되었다.
이런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올려드린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복음도 모르고 영생도 모르며 맨날 오해를 일삼으며 하나님을 시험하던 자가 여기 있습니다.
영생을 오해하여 죽어서 가는 천국 정도로만 생각했던 나는 이스라엘 조상들처럼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어야 할 자였나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런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긍휼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이 죄인이 있어야 할 곳인 영벌의 자리가 아니라 영생의 자리로 옮겨주셨나이다.
이런 은혜를 어찌 나에게 베풀어 주셨나이까?
그저 죄스럽고 부끄럽지만 오늘도 주님이 주신 복음 안에서 담대하게 아버지 품으로 나아갑니다.
나의 힘과 의지가 아니라 주를 힘입어 파레시아로 나아가오니 이 종을 받아주소서.
주의 영광을 나타내소서.
주님의 품이 나의 영원한 처소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