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35년의 어느 날, 영국 청년 찰스 다윈(1809~1882)을 태우고 가던 탐사선 비글호가 풍랑을 만나
갈라파고스에 기착하게 되었다. 이 우연한 사건은 진화론 정립의 시발점이 되어 생물학계에 일대 혁
명을 일으켰다.
인류에게는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에 맞먹은 엄청난 축복이요 기독교에는 커다란 재앙이었다.
진화론으로 인해 인류는 비로소 모든 생명체가 신에 의해 창조된 것이 아니라 우연히 생겨난
원시 단세포 생명체로부터 꾸준히 진화해왔다는 진실을 알게 되었다. 다윈은 갈라파고스의 여러 섬
에 살고 있는 핀치(참새目 되새科의 작은 새)들이 서식하는 섬마다 서로 모양이 다르다는 사실에서
진화론의 메커니즘을 깨닫고 1859년 『종의 기원』을 출간함으로써 인류를 오랜 기독교 미신의 암흑
으로부터 구해냈다.
진화론을 깨닫게 된 대상이 핀치여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과학자들도 다윈이 동물학보
다 식물학에 더 큰 족적을 남겼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그가 식물학 관련 서적 6권과 70여 편의 논
문을 발표했는데도 말이다. 심지어 각종 인명사전에도 다윈을 식물학자라고 소개한 경우는 거의 없
다. 다윈을 식물학자로 알고 있는 과학자들도 그가 동물을 연구하다가 심심풀이로 잠깐 식물을 연구
한 정도로 알고 있다. 다윈은 대대로 식물학자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가 1842년부터 죽을 때까지 40여 년 간 가족들과 함께 살던 다운 하우스에는 드넓은 정원과 여섯
동의 온실이 갖춰져 있었다. 식물 연구에 최적의 조건이다. 다운 하우스는 런던에서 한 시간 가량 떨
어진 다운이라는 마을에 있었는데, 다윈은 여기서 잠시도 쉬지 않고 각종 연구를 거듭하여 식물학에
서도 창조설을 완전히 뒤엎은 진화론을 완성했다.

다윈은 동물보다 식물을 헐썩 더 좋아하여 식물을 예찬하는 칼럼도 많이 썼다. 그는 직접 집필한 자
서전에도 ‘식물을 체계화된 존재의 지위로 격상시키고 나면 언제나 기분이 좋아졌다’고 써놓았다. 다
운 하우스의 드넓은 정원과 식물원에는 그가 좋아하는 각종 꽃만 가꾼 게 아니라 여러 종의 사과나무
를 심어놓고 손수 접목을 하며 연구를 진행했다. 다윈은 대학에 다닐 때부터 식물학에 빠져서 열심히
강의를 들었는데, 그를 비글호의 선장에게 추천해준 인물도 스승인 케임브리지대학교 식물학과 교수
헨슬로였다. 다윈은 그에 대한 보답으로 비글호를 타고 세계일주 탐사를 하는 동안 방문지의 동물相
과 식물群, 지질학적 탐사記 등을 헨슬로에게 우편으로 보냈다. 헨슬로는 이 우편물들을 인쇄하여 관
련 학자들과 신문사 및 출판사에 보냈기 때문에 다윈이 귀국했을 때는 영국에서 이미 유명인사가 되
어 있었다.
사실 다윈이 갈라파고스에서 수집한 각종 새들의 표본은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대부분의 표본은 원
산지 섬들이 구체적으로 어느 곳인지도 기록되어 있지 않았으며, 심지어 라벨이 붙어 있지 않은 표본
도 있었다. 이에 반해 식물은 200종이 넘는 표본을 수집했는데, 이는 식물학사 전체를 통틀어 가장 영
향력 있는 자연사 컬렉션이었다. 식물학자들은 다윈이 갈라파고스에서 채집한 ‘진화한 종들의 데이
터’를 다윈의 업적 중 최고로 꼽고 있다. 평생을 두고 다윈과 가장 절친했던 친구도 왕립식물원 큐 가
든의 수석 연구원 조지프 돌턴 후커였다.

비글호의 탐험경로
다윈이 식물학자로 알려지지 않은 원인은 자신에게도 일부 책임이 있었다. 스스로 식물학자가 아니
라고 부인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다운 하우스에서는 주로 식물학 연구에 몰두했다. 다윈이 자신은
식물학자가 아니라 지질학자라고 주장한 까닭은 당시 그가 알고 지내는 식물학자들이 탐구에는 소홀
하고 식물의 분류와 명명에만 탐을 냈기 때문이었다. 모두들 공명심에 사로잡혀 생색만 내려고 했던
것이다. 이에 반해 다윈은 식물의 구조와 형태를 관찰할 때 팩트뿐만 아니라 원인과 과정에도 세밀하
게 관심을 기울였다.
다윈이 식물 연구에 집중적으로 매달리기 시작한 것은 1859년 『종의 기원』을 출간한 직후부터였
다. 다윈의 자녀들도 즐거운 마음으로 연구에 동참하여 여기저기서 각종 식물을 채집해 왔다. 이때부
터 다윈은 관찰과 수집이 아니라 실험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꽃식물이 곤충을 꽃가루받이의 매개자
로 이용하는 방법도 중요 관심사였다. 그때까지는 곤충이 특정 꽃에 앉았다 날아갈 때 온 몸에 꽃가
루가 잔뜩 묻어 있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아무도 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없었다. 꽃은 자
기수분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종의 기원』의 주인공 핀치
다운 하우스 주변에 자생하는 난초는 가장 중요한 연구대상이었다. 다윈은 다섯 명의 자녀들에게 벌
들의 비행경로를 추적해달라고 부탁했다. 큐 가든의 원장으로 승진한 조지프 돌턴 후커의 도움도 컸
다. 다윈은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1862년 『영국과 외국의 난초들이 곤충을 이용하여 수분하
는 데 사용하는 장치의 다양성에 대하여』라는 책을 펴냈다. 당시에는 책 제목을 이처럼 길게 짓는
것이 유행이었는데, 『종의 기원』도 원제는 『On the Origin of Species by Means of Natural Selec
tion or the preservation of favoured races in the struggle』로 매우 길다. 다윈은 서문에서 ‘창조자
가 모든 생명체의 세부사항까지 간섭한다고 주장하는 기독교의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집필목적을 밝혀놓았다. 결론은 ‘꽃은 교차수분을 선호하며, 이를 촉진하기 위해 다양한
장치들을 진화시켜왔다’는 것이었다. 현재까지 변함없이 통용되고 있는 꽃식물 진화론의 핵심이다.

‘꽃의 색깔과 향기는 곤충의 감각에 맞도록 진화했다. 벌이 파란색과 노란색 꽃만 찾고 빨간색 꽃을
무시하는 이유는 벌이 적색맹이기 때문이다. 꽃들은 벌이 보라색보다 파장이 짧은 빛을 구분한다는
사실을 이용하여 자외선을 꿀벌 안내 표시로 이용한다. 나비는 빨간색을 인지하기 때문에 빨간 꽃의
꽃가루를 운반하는 대신, 파란 꽃이나 보라색 꽃은 인지하지 못하여 지나친다. 야행성 나방에게 꽃가
루 배달을 맡기는 꽃들은 색상이 다양하지 못한 대신 향기로 나방을 유혹한다. 파리에 의존하는 꽃들
은 썩은 고기의 악취를 내어 유인한다.’
이러한 내용의 책을 펴낸 후 다윈은 세상을 보는 눈이 완전히 달라졌다. 벌이 꽃 사이를 윙윙 날아다
니는 목가적인 풍경이 필사적이고 치열한 삶의 방법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출처:문중13 남성원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