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호무우(風乎無雩)
무우 땅에서 바람 쐬다
風 : 바람 풍
乎 : 어조사 호
無 : 없을 무
雩 : 기우제 우
논어(論語) 선진편(先進篇) 第25章
선진편은 문인들과 그 인물들에 대해서 평한 것이 많다.
모두 25장으로 되어 있다.
호인(胡寅)이란 학자는,
"이 편이 민자건(閔子騫)의 언행(言行)에 대하여
말한 것이 네 군데나 되고, 그 중에는
민자(閔子)라는 존칭이 있는 것으로 보아,
혹 민자건의 제자가 기록한 것이 아닌가 한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논어의 선진을 상하로 나누는 경우
제11편 선진(先進) 이상을 상(上)으로,
그 이하를 하(下)로 분류하기도 한다.
논어(論語) 중에서 가장 긴 글로,
네 사람의 뜻을 공자가 평(評)한 것이다.
사제지간(師弟之間)에 화기애애(和氣靄靄)한
봄바람이 넘쳐흐르는 듯한 느낌이 든다.
특히 증석(曾晳)이, 정치적인 것보다
유연자적(悠然自適)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자,
이에 공자가 찬성하였다.
노인에게는 편안하게 하고 친구에게는 믿음을 갖게 하고
어린이는 따르게 해야 한다(老者安之 朋友信之 少者懷之)라는 말은
학문(學), 예(禮), 인(仁), 정치(治)의 종국적 목적은
노인들이 평안히 잘살 수 있고, 친구, 동료,
사회인들이 상부상조하며 신의(信義)를 지켜 협동할 수 있고,
동시에 후세의 연소자들이 기존사회,
현세대를 보고 따르며 보호 육성되는 데 있다.
이리하여 과거와 현시대와 앞날의 세대가
서로 평안과 신의와 사랑으로 계승 성장하여,
인류의 문화는 발전하는 것이다. 군자(君子)나
인자(仁者)는 이런 흐름을 더욱 발전시키는 일꾼인 것이다.
(제자들의 포부)
쯔루, 젱시, 란유, 공시화가 참석했습니다.
자로와 증석과 염유와 공서화가 공자를 모시고 앉아 있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당신보다 하루 더 많은데,
왜 당신은 나를 모르십니까?
" 내가 집에 있을 때, 나는 말한다.
"당신은 나를 모르시네요.
누군가가 나를 안다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들 보다 몇 해 연장자이기는 하나,
주저하지 말고 말해 보거라. 너희들은 평소에,
'나를 알지 못한다'고 한탄하더니,
만약 남이 너희들을 알아 등용하여 준다면,
무엇을 하려 하느냐?"
자로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천 대의 전차를 가진 나라는 큰 나라 사이에 끼어 있다.
거기에 군대를 더해 기근을 일으키면,
그것을 용감하게 만들고 행동하는 법을
알게 하려면 3년이 걸릴 것이다."
자로가 얼른 대답하였다.
"천승의 나라가, 대국 사이에 끼여, 전쟁의 화를 당하고,
기근에 시달림이 있어도, 제가 이들을 다스린다면,
삼년 안팎에, 백성은 용기를 얻게 하며, 또 도의를 알게 하겠습니다."
스승님은 그를 비웃으며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드릴까요?”라고 물으셨습니다.
공자께서는 빙그레 웃으셨다.
그리고 구(求; 冉有)의 뜻을 물으셨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만약 당신이 60이나 70이라면,
마치 50이나 60처럼, 당신은 3년 안에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 있습니다.
예의와 음악처럼,
당신은 군자를 기다릴 수 있습니다."
염유가 대답하여 말했다.
"사방 6~7십리, 또는 5~6십리의 나라를,
제가 다스리면, 3년 안팎에, 백성들로
하여금 의식에 부족함이 없게 하리다.
다만 예악(禮樂)의 진흥은,
군자를 기다려 그 힘을 빌리겠습니다.
"赤, 爾何如?공자께서,
"공서화야, 너는 어떠하냐?"고 물으셨다.
그는 "아니요, 저는 당신에게서 배우고 싶습니다.
만약 당신이 종묘의 일,
예를 들어 단장푸와의 만남에 관심이 있다면,
저는 소신이 되고 싶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공서화가 대답하여 말했다.
"능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배우기를 원하나이다.
종묘의 일이나, 혹은 제후들의 회합 때에는,
검고 단정한 예복(禮服)과 예관(禮冠)을 쓰고,
군주의 예식을 돕는 소상(小相)이 되오리다."
흑, 여잔가?
공자께서, "증석아, 너의 생각은 어떠한가?"고 물으셨다.
鼓瑟希 其爾舍瑟而作 對曰 異乎3子 人 撰.
거문고를 뜸뜸이 뜯더니, 던지고 일어서며,
대답하여 말했다.
"저는 저들 세 사람의 생각과는 다릅니다."
子曰 何傷乎. 亦各言其志也.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어찌 저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가?
저들 모두는 저들의 희망을 말했을 따름이니라."
曰 莫春者 春服旣成 冠者五六人 童子六七人 浴乎沂 wind乎舞雩 詠而歸.
증석이 말하였다. "늦은 봄, 봄 옷이 만들어 지면,
갓을 쓴 어른 5~6인과, 어린 아이 6~7인을 이끌고,
기수(沂水)에서 목욕을 하고, 무우(舞雩)에 소풍을 나갔다가,
시(詩)를 읊으며 돌아 오겠습니다."
夫子喟然嘆曰 吾與點也.
공자가 슬픈듯이 탄식을 하며 말씀하셨다.
"나도 너의 말에 찬성하노라."
삼자자출(曾晳後) 曾晳曰 夫삼자자저지言何如?
세 사람이 나가고, 증석이 뒤에 남아 있다가, 증석이 말하였다.
"저들 세 사람의 말이 어떠하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들은 각자 자신의 포부를 표현했을 뿐인데,
그것으로 족하다.”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제각기 제 뜻을 이야기 했을 뿐이니라"
"스승님, 왜 당신을 비웃으세요?"
증석이 다시 물었다.
"선생님께서는 왜 유(由)의 말에 웃으신 것입니까?"
曰 爲國以禮 其言不讓 是故哂之.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나라를 다스림은 예로써 해야 하거늘,
그 말이 겸손치 않아, 그래서 웃었느니라."
당신은 왜 절단을 원하지 않습니까?
(증석이 다시 물었다) "염유가 말한 것은
나라를 다스리는 일이 아니오이까?"
安見方六七十 如五六十 而不邦也者.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사방(四方) 6~7십 리,
또는 5~6십 리가 되고, 나라가 아닌 것이 있으랴"
믿을 수 없는 건가?
(증석이 다시 물었다) "공서화는 나라를 말함이 아니오이까?"
宗廟會同 不諸侯而何? 赤也爲저지소 孰能爲지대?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종묘의 제사와,
제후의 회동이 어찌 군주가 하는 일이 아니겠느냐?
공서화가 소상(小相)이라고 한다면,
누가 대상(大相)이 되겠느냐?"
(논어 선진편 25장)
이 문장은 공자가 만년의 나이에 자로, 증석, 염구,
공서화와 함께 있는 자리에서 오고 갔던 대화 중의 하나다.
공자는 먼저 4명의 제자들에게 나이 많은 스승의 앞이라고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너희들의 포부를 말해보라고 하신다.
이때 자로가 제일 먼저 나와 자신은 혼란과 속박을 받고 있는
천승의 나라 제후국도 자신이 통치하면
금방 안정을 되찾을 수 있다고 호언한다.
뒤이어 염구는 사방 50~70리(里) 되는 작은 나라도
자신이 다스릴 경우 3년 안에 백성을
풍족하게 만들 수 있다고 자랑한다.
이에 공서화는 제후국과의 외교적 만남에서
집례자가 되고 싶다고 소망을 피력한다.
집례자는 지금으로 말하면 외무부장관이나 차관으로서
외교의 실무를 담당하는 직책을 의미한다.
공자는 이들 세 명의 제자들의 말에 탐탁치 못했기 때문에,
끝으로 남아있던 증석에게
"너는 무엇을 하고 싶냐?"고 재차 물으셨다.
증석은 논어 전편에 자주 등장하는 증삼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증석은 "늦봄이 찾아오면 어른 대여섯 명과
아이 예닐곱 명과 함께 기수(沂水) 가에서
목욕하고 무우(舞雩) 땅에서 바람 쐬고
노래 부르며 살겠다"고 대답한다.
공자는 증석의 말에 화색이 돌며
그를 최고의 제자로 받아들인다.
물론 이 4명 가운데 최고를 의미한다.
공자는 자로, 염구, 공서화 등 세 명의 포부를 들으신 후
그것도 저마다의 희망일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왜 증석의 말에는 맞장구를 치면서까지 기쁨을 표출하셨을까?
공자는 아마도 앞서 말한 3명의 제자들이
모두 사사로운 욕심과 포부를 던지며,
인생의 즐거움보다 찌들어 살아가는
속세의 일을 앞 다투고자 했던 모습에서
다소 실망감을 내비친 것으로 보인다.
그것도 정치적 자리를 탐내고 있었으니,
공자의 실망은 더더욱 컸을 것이다.
반면에 증석은 지엽적인 정치보다,
또 인간의 욕심과 야망을 내세우기보다,
현재 자신이 처한 위치에서 자연과 더불어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삶을 꿈꾸는 기상을 피력했으니,
공자는 그의 말에 감탄과 경의를 표한 것이다.
기실, 기수(沂水)는 공자의 고향 노(魯)나라의
도성 남서쪽에 위치해 있는 조그마한 강이며,
한서지리지(漢書地理志)에 의하면
온천이 샘솟는 지역이라고 기술되어 있다.
한편 무우(舞雩)는 대대로 기우제(祈雨祭)를 지내며
제단(祭壇)의 터가 있는 숭고한 자리라고 알려져 있다.
증석의 말에 비친 '기수'가와 '무우' 땅이 풍겨주는
이미지가 마치 공자가 늘 공경하던 예의(禮儀)를
치르기에 가장 적절한 장소였으니,
공자의 탄식을 자아내기에 더 이상 좋은 곳은 없어 보인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정치적 야욕과 야망을 불태우며
인간의 끝없는 욕심을 드러낼 때,
누군가는 자연을 벗삼아 조상의 얼을 모시며
유유자적하게 삶을 마감하고자 했던 모습을 보였다면,
정말 그들의 인생에 대한 격(格)을
다시 한 번 평가하게 될 것이다.
옛말에 '늙은 소나무가 고향을 지킨다'는 속담이 있다.
부귀영달을 쫒아 청운의 꿈을 품고 상경한 친구가 있는가하면,
고향에서 묵묵히 부모를 모시며 조상대대로
물려온 터를 지키는 대장부의 의연한 모습도
결코 실패한 인생은 아닐 듯하다.
-옮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