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강아지를 소개한다. 여섯살에 이름은 짱구인데,어릴때 보니 앞이마도 튀어 나오고 뒷꼭지도 튀어 나와 우리집 사람이 작명해준 이름이다. 즉 왕짱구라 하면 정확한데, 우리는 그냥 "짱"이라 불렀다. 행동이나 의식구조로 보아 딱 어울리는 이름인데 , 테리어 혈통을 조금 가진듯하고 순수 혈통은 아니다. 우리 옆동네에서 키우던 사람이 구포 장터에 팔려고 차에 실어 놓은 놈을 사가지고 키웠다. 내가 선택했으니 짱구는 운이 좋다. 잠바 주머니에 들어갈 정도였으니 아마 갖 젖이 떨어진 상태로 보였다. 한 보름은 추워서 얼어 죽을까봐 밤에는 방에서 키우고 낮에는 마당에서 뛰놀게 보냈었다.
생긴건 귀여워도 개의 성품은 확실해서 무척 전투적이고 매사에 끼어들어 온동네를 시끄럽게 만드는 장본견이다.장본인이 아니고. 매번 밖으로 나갈려고 온갖 머리를 굴리고 반드시 성공한다. 집념이 무서운 놈이었다. 이건 아마도 숫개들의 천성인 모양인데, 어딘가 돌아다녀야 직성이 풀리는 모양이다.
말릴 수도 없고,그건 좋은데 문이 열렷을때 뛰어 나가 어디 먼곳에 놀러 가서 친구도 만나고 한참 놀다 오면 될건데 , 집집마다 남의 대문앞에서 집요하게 앙앙거리고 짖는게 취미였다. 우리 동네는 좀도둑이 자주 ?아와 집집마다 강아지를 키운다. 도심에서 좀 이상하지만 모두 단독주택이고 거리도 한산해 이 지저분한 불청객이 자주 등장한다. 이러니 한번 나가면 거의 온 동네집 강아지가 악악거리며 합창을 해서 무슨 일이라도 난듯이 떠들석했다. 강아지는 자기 영역에 대해 강렬한 지배욕이 있어, 그 영역을 침해하면 동물이든 사람이든 무조건 적대감을 보이며 짖는다.
그리고 청력도 예민하여 우리가 듣지 못하는 미세한 소리에도 극히 민감하게 반응한다. 내가 본바로는 한 20미터 멀리 골목길에 들어 오는 우리 애의 발자국 소리에 반응을 한 경우도 있다. 담이 있으니 후각으로는 모를건데 귀를 쫑긋 세우고 꼬리를 흔드니 무언가 인식을 한건 분명한것 같다. 물론 후각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발달되어 있다.
주인외에는 무조건 적이니 짖고 나서 생각해 보는 것이다. 좀도둑은 시시한 도둑이라 강아지가 짖으면 슬그머니 사라진다.
한번은 나가려는 놈을 붙잡아 목을 쥐고 교육을 시켜도 그때 뿐이고, 의사소통은 절대 불가다. 완전 구제불능이었다. 더우기 겁도 없이 주인인 나의 종아리를 물어 바지에 아기자기한 구멍을 뚫어 놓았다. 입이 작으니 다리 전체가 안물리고 바지가 물리는 것이다. 다시 교육을 시키려 몽둥이를 들고 때릴려하니 도저히 때릴곳이 없었다. 보이는건 새까만 콧등, 반짝이는 눈, 귀여운 귀, 날씬한 꼬리..... 그냥 땅바닥을 한번 때리고 웃고 지나가야 된다.
내가 이놈때문에 당한 고초는 무수하다.그러나 의사소통이 안되니 무조건 내가 참아야 하는 방법외에는 없다. 한때 세마리를 키울때인데 (내가 무슨 개를 각별히 좋아해서라기 보단 두마리는 아는 사람들이 도저히 못키워 우리에게 떠 넘긴 경우다) 좀 나이브한 생각이지만 귀여운 강아지가 주인을 못?는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가만 볼 수 없어 데리고 온 경우다. 강아지를 키우려면 잘 생각해보고 키워야지 엄벙덤벙 키워서는 안된다. 한번 주인과 인연을 맺으면 개는 주인과 생사를 같이하게 된다. 강아지는 키우다 중간에 버리면 죽게된다.야생이 아니라 혼자 음식을 구하지 못하니 생존이 불가능한 것이고, 인간이 그렇게 만든것이다. 이미 주인의 사랑을 모르는 강아지는 정말 가련한 신세가 된다. 더우기 키우다 버리는 비정한 인간도 가끔 보인다. 이건 인간답지 못한 행위며 개만도 못한 짓이다.
어느날 밥먹다 무슨 시비가 된건지 세놈이 한꺼번에 전투를 벌렷다. 애들은 한번 싸우면 그맹렬함이 끔찍하다. 그래서 니전투구란 말이 있는모양이다. 도대체 누가 누구와 싸우는지도 모르겠고, 그러니 누굴 말려야 할지도 몰라 그냥 보고만 있었다.
조금 밥그릇에서 떨어져 싸우면 될건데 (애들은 과거와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지금 여기에서 나의 문제가 중요하다 ). 단 1분뒤에 먹어야 되지만 그건 필요 없다. 이것은 불교 禪僧들의 태도와 유사하다. 지금 여기서 나의 일이 제일 중요하듯이. 확실히 강아지가 구현하고 있다. 그래서 쓸데 없는 망상이 없다. 우리 인간은 과거와 미래를 생각하다가 세월 다보내는 어리석음에 묻혀 있는데 강아지는 확실히 초월하여 살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無知가 아니다. 이미 지난 과거에 대해서는 바늘끝 만큼도 건드리지 못하고 , 다가올 미래는 지금 나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못미친다. 또 내가 그 시점에 존재 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과거와 미래 양자는 인식상의 허구 내지는 환상일 뿐이다. 다수의 사람들이 이 인식상의 허구에 사로잡혀 일생을 허무한 고통속에서 헤메다가 떠난다. 실제 이글을 쓰고있는 나도 그렇다. 그렇다고 우리가 밥상앞에서 국그릇을 엎고 싸울 필요는 없고, 문밖에 나가 조용조용히 싸우는게 나을 것이다. 그래서 서로 피해가 없으리라. 이미 이성을 상실하고 싸우니 밥그릇 세개가 하늘로 날아가 여기저기 떠돌고 밥은 땅바닥에 내동댕이 쳐지는 것이다. 이걸 치우는게 내 일이니 , 욕해 보았자 무의미한 일이라 ,에이 개같은 놈들 하고 혼자 생각할 뿐이었다.
이놈은 비위가 좋아 ,매번 뒷산에 산행 갈때 데리고 가면 등산온 아줌마들이 김밥 먹는데 가서 꼭 한개 얻어 먹고와 주인 체면을 손상시킨적은 한두번이 아니라 무수하다. 내가 무슨 밥을 ?긴것도 아닌데.... 불교의 스님네들 처럼 난 육식을 싫어해 여름철에 김치와 국한그릇으로 점심을 먹더라도 이놈들은 생선이나 돼지고기가 들어가야 맛있게 먹는다. 누가 상전인지 구분이 안된다 .물론 조금만 먹지만. 등산온 사람들이 먹는데 앞에 앉아 동그란 눈을 뜨고 김밥과 입을 번갈아 쳐다 보니 안 줄수 없는 상황을 만드는것이다.
게다가 새벽두시에 도둑고양이와 집요하게 싸우고, 동네 사람들 다 깨운다. 우리 동네 사람들은 모두 양반이라 그렇게 시비를 하지는 않아 큰 다행이다. 다들 강아지를 키우니 남의집 개가 좀 짖는다고 크게 탓하지는 않는다. 만약 성깔 고약한 이웃이라면 분명히 서로 욕을 할 정도로 시끄러운건 사실이다. 이래서 좋은 사람들이 사는 동네에서 살아야된다.상대적으로 옆집 개가 시끄러워도 그저 참아야지 아무 말도 못한다. 즉 우리집 강아지가 더 시끄러우니 말할 자격이없다. 또 비올때는 제자리에서 배설하지 않고 현관 앞에 실례를 하는 악습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비맞고 일보기가 싫은 모양인지.
벌써 수십차례 이웃집의 늙은 마르티스를 물어 뜯어 그놈은 양쪽귀에 흉터가 즐비하다. 수시로 집에서 뛰어나가 결투를 하고 온다. 어찌보면 무슨 사명감을 갖고 집요하게 싸우는게, 아마도 타고난모양이다.
지난 여름엔 주둥이, 가슴, 어깨등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들어 오길래, 그야말로 붉은 피를 뒤집어 쓰고 아수라의 모습으로 들어왔다. 아이구! 이놈이 크게 다쳤구나 하고 피 묻은채로 온몸을 만져 보니 자신의 상처는 하나도 없었다. 어디 만만한 강아지를 되는데로 물어 뜯은 모양이었다. 언젠가, 우리 강아지의 배가 찢어져 병원에 데리고가 수술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수의사가 한 말이 생각난다. 개는 서로 싸우다 난 상처가 거의 총상과 마찬가지일 경우가 있다한다. 그 송곳니를 보면 충분히 이해가된다. 그리고 개의 턱이 가진 힘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인하다.
때로는 앞발을 절면서 오니 어디서 좀 당한것 같은데 금방 나아서 또 싸우러 나간다. 인간으로 치면 성깔 사나워 아무나 하고 싸우는 고약한 파이터,혹은 아수라인데, 개끼리야 서로 개같은 존재니 별 문제가 없겠지하고 생각해 본다.
'아수라"는 불교에서 말하는 싸움 귀신인데 아마도 전투함이 침몰할때가 이들의 모습과 유사했을것이다. 서로 살려고 싸우는 모습, 태평양전쟁때 일본군의 전함이 침몰해 구명정에 옮겨 타다가 너무 많이 타니 구명정이 갈아 앉을 위험이 있어 먼저 탄 사람들이 일본도로 뱃전을 잡은 사람들의 손가락을 무자비하게 잘라버렸다 한다. 그러니 배안쪽엔 살아서 꼼지락거리는 손가락이 이리저리 뛰고 있었다는데. 정말 끔찍하지만 일본인들은 그들이 지은 무수한 죄악의 업보를 확실히 되받았다.그 최후의 일격은 원자탄 두발인데, 동아시아에서 저지른 악업의 댓가치고는 좀 모자란 감이 있지만 인류 역사상 최초로 원자탄의 세례를 받은 것이다.
아수라의 명칭은 한문 음역인것 같은데, 불교가 적대시한 "조로아스트"교의 善神 "아후라 마즈다"를 의미 한다는 애기가 있다. 적의 主神이니까 악마라는 사고방식의 표출인데, 무한히 너그럽고 관대하며 자유로운 불교의 이념과는 배치되는 행위다. 즉 자기 새끼가 귀하면 남의 자식도 귀하게 생각해야된다. 이는 종교의 도그마가 만든 추한 행위인데 이것이 편협한 종교적 사고방식의 결함중 일부다. 종교인들은 좀 마음을 열고 세상을 볼줄 알아야된다. 이런 사고방식은 어린애들 장난이고 같은 종류의 인간밖에 안된다.
한해 여름엔 토요일이라 일찍 들어 오니 두놈이 현관앞에서 늘어지게 사이좋게 자고 있었다. 대문을 열고 발앞에까지 가도 모르고 신나게 자고 있었으니 , 하도 한심해 ,"야! 이놈들아 집좀 지키랬더니 자빠져 자고 있어." 호통을 치니 놀라 일어나 무슨일인지도 모르고 놀래서 우왕좌왕,허둥지둥 왔다 갔다 했다. 이건 자연상태라면 두놈은 이미 죽은 목숨이다. 즉 적이 발앞에 올때가지 몰랐던건 바로 치명적인 약점이니까 그렇다.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평생 칸트의 반신초상과 청동불상 그리고 강아지 한마리를 애지중지 했다는데 나는 이 개가 참으로 영물이라 생각한다. 쇼펜하우어가 살던 동네의 꼬마들은 이 강아지를 [작은 쇼펜하우어]라고 장난기어린 표현으로 불렀다는데, 기실 그는 이 강아지에게 [아트만]이란 거창한 이름을 부여했다. 한자로 眞我. 그는 키가 큰편인데 조그만 삽살개를 데리고 다녔으니 좀 우스운 모양이었을것으로 짐작된다.
그리고 자식도 마누라도 없었던 때문인지 강아지가 그의 상속자가 되었다. 인간이 사육하는 동물중 오직 개만이 인간의 심리를 이해하고 충심으로 인간을 사랑하는 존재다. 고양이는 귀엽긴 한데, 좀 오만하다. 즉 자기가 짐승이라면 인간 너희들도 짐승종류가 아니냐는 태도고 실제 조금 자라면 집을 나가버린다. 그리고 절대 돌아오지않는다. 어쩌면 인간의 속성과 많이 닮은것 같다 아무리 봐도 고양이는 사람과 대등한 존재로 생각하는지 모를 일이다. 세상에는 개만도 못한 인간이 너무 많으니 , 오히려 배울점이 많다. .묘한것은 개는 이리나 자칼과 선조를 같이 하는 짐승이며, 이리는 자연상태에서 일부일처를 철처히 지키는데 개는 인간에게 사육되면서 다처다부가 되었다. 나쁜것만 배운것일까?
짱구는 애석하게도 작년 2009년 11월에 이미 먼길을 떠낫다. 난 차마 내가 키우던 강아지에게 죽었다는 말을 쓰지 못하겠다. 모든 강아지는 명이 짧아 꼭 그 뒷처리를 해주어야된다.원래 수명이 약 12년이라는데 8내지 9년정도 되면 세상을 떠나는것 같다.
수년전 우리집에서 태어나 키우던 강아지가 병사하고 나서 거의 반년동안 강아지의 빈집을 볼때마다, 너무 마음이 상해 다시는 키우지 않으리라 생각했지만, 오고 가는것 그것이 시절인연이고 부처님 말씀대로 생자필멸이니 내가 그리 애석해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을 바꾸어 다시 키우고 있다. 이것은 어느날 스스로 깨닫게된 진리의 일부다.확대하면 세상사 모든것에 적용할 수 있으리라.
이미 내힘이 미치지 않는 길로 갔고, 내가 슬퍼한다고 그 상대에게 무슨 덕이 될것도 없다. 불경에는 " 그대는 온 사람의 길을 모르고 간 사람의 길을 모른다. 생과 사의 양쪽끝을 모르면서 슬피운다"라고 통렬하게 지적하고 있다. 노장사상이 말하듯이 生이란 이세상에 잠시 온것이고 死란 잠시 저세상으로 떠나는것 뿐인것이다.
한평생 한사람의 주인만을 무한히 사랑하고, 아무 미련없이 떠나니 탐욕스런 인간이 배워야 할 점이다. 정말 순수한 애정과 신뢰라 해도 모자람이 없다. 이것은 꼭 불교적이 아니더래도 어떤 교훈 혹은 동물계에 존재하는 모든 동물들의 관계에 어떤 영감을 주는 요소라 볼 수도 있다. 어떤 인간이 태어나 죽을때까지 한사람만을 매일 아침 반갑게 눈을 반짝거리고 꼬리를 흔들며 충심으로 사랑할까? 그것도 내가 좋아해 달라고 부탁한것도 아니다. 만약에 있다면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나오는 [알료샤]가 이런 부류의 전형일것 같은데 그건 사람이라 그렇고 동물에게서는 기대하기 힘들다. 도저히 인간꼴이 아닌 아버지 표도르를 순수한 애정으로 예수님처럼 사랑하는 지고지순의 인간. 물론 희미하게 광신의 그림자가 비치지만, 어떤점에서 배울만한 점은 있다.
나는 운이 좋은지 다섯마리의 강아지를 키?는데 모두 주인에 대해 충직하고 완전한 애정을 가진개를 키워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 아마 다른 집들도 다 비슷하리라 믿는다.강아지는 밥을 준다고 주인이 아니고 인간처럼 자기를 아끼는 친구를 사랑하는게 분명한것 같다. 그리고 이것을 구분할줄 아니 무지한 동물이라 단정하기는 무리다.
끝으로 세상 모든 동물이 모두 유정물이니 그 영혼이 있으리라 믿고 짱구의 영전에 이 글을 바친다. |
출처: 淵山의 수상록(수필과 음악) 원문보기 글쓴이: francis k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