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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갑순 (클리앙)
2024-03-20 21:10:26 수정일 : 2024-03-21 06:47:32
우리는 왜 이렇게 오랜 시간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
저 뿐만 아니라 클리앙에 계신 분들도 많이들 하고 계셨을 의문일 것 같습니다.
지금은 지났지만, 코로나 시대 많은 사람들이 평소보다 더 적은 시간만 근무하더라도
자신의 일을 완수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실 전 재택 근무를 별로 하지 않아, 크게 와닿진 않았네요)
이러한 우리들의 모습을 50-100여년전의 학자들이 본다면 놀랄 것입니다.
왜냐하면 많은 학자들이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시대 쯔음엔
생산성과 자동화의 조화로 우리의 노동 시간이 크게 감소할 거라 예상했거든요
1930년 프린스턴 대학교 강의에서 세계적인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미래 도시를 풍부한 공간과 여유 시간이 있는 곳으로 전망했습니다. 일과 사생활이 엄격히 분리되고 “노동자들은 오전 10시에 도시로 몰려왔다가 오후 4시면 쫙 빠져나갈” 것이다라고 하였죠
또한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실 경제학자인 '존 메이너드 케인스' 는 그의 논문「우리 손주들을 위한 경제학적 예측」에서 1930년까지의 추세에 근거해 “100년 내로 경제적 문제는 해결될 수 있거나 적어도 해결 방법이 보이게 될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습니. 그리고 그 결과 2030년까지 평균 노동시간은 주15시간 이 될 것이며 그 시간조차 경제적이기보다는 인간적 필요를 반영 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듯이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왜 하루 4시간 노동이 도입되지 못했을까요?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버트런드 러셀에 따르면 ‘노예 상태의 법칙’과 종교 때문이었습니다. 개신교는 노동을 그 자체로 숭배하며 신의 선택을 받은 사람이라는 증거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막스 베버는 "증기기관과 공장, 임금노동의 기폭제는 기술이 아니라 이념" 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1960년대 미국 상원은 2000년까지 주14시간 노동이 실현가능하리라는 예측 보고서를 냈습니다. 영향력 있는 두뇌 집단인 랜
드 연구소는 인구의 2% 정도로도 미국에서 필요한 모든 것올 생산해낼 수 있을 거라고 예측했습니다.
하지만 그 보다 생산성이 증가한 현대에도 여전히 우리는 하루의 대부분을 노동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인류의 생산성이 폭증하게 된 1800년대 후반과 1900년대 초반이 지났지만, 노동자들의 대량 이탈을 막고 계속
회사에 붙잡아둘 방법들이 새롭게 고안되었고, 결국 인간은 여전히 그물침대에 누울 수 없었습니다.
고안 된 대표적인 방법은 사무직의 탄생이었습니다.
니킬 서발은 "큐브, 칸막이 사무실의 은밀한 역사Cubed:A Secret History of the Workplace" 에서 사람들은 처음에 사무 노동을 가혹한 육체노동에서의 해방으로 보았다고 설명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사무직이라는 새로운 발명은 원래 일을 더 쉽게 만들려는 의도였지만, 종종 온갖 종류의 새로운 절차와 새로운 형태의 감독, 그리고 새로운 직업을 요구했습니다.
세계 2차 대전 당시에 전쟁에 나간 남성들을 대신하여, 여성들이 노동 시장에 진입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전쟁이 끝나고도 일터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전쟁에서 돌아온 남성이 여기에 더해져, 노동력의 공급은 다시 한 번 폭증하게 됩니다.
이러한 시대상과 맞게 등장한 인물이 있었습니다. "프레드릭 윈즐로 테일러"입니다.테일러는 깨어 있는 시간 대부분을 효율성의 추구와 시간 관리에 바쳤습니다.
테일러는 공장들이 불필요하고 비생산적인 시간 낭비에 돈올 쏟아붓고 있다는 사실을 바로 알아챘습니다. 테일러의 해결
책은 생산공정을 일련의 단순한 행위로 해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각각의 처리 과정이 정확히 얼마나 걸리는지 관리자가 알 수 있도록 시간을 쟀습니다.
그의 발상이 현대 일터의 구석구석까지 널리 퍼짐에 따라, 직원이 하는 일을 감시하는 게 주 업무인 관리직 수가 늘어났습니다.
이 새로운 경영법은 아낄 수도 있었던 엄청난 자원올 먹어치우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정말로 거대한 정보 이동과 그 흐름을 유지하는 게 순 목적인 새로운 충위의 관리직이 출현했습니다. 그 결과로 더 많은사무직이 고용되었고, 사무직 노동 역시 효율성을
명목으로 점점 증가했습니다.
과거의 노동에 대해 살펴보면 한 가지 의미심장한 경향이 되풀이되는 것음 알 수 있습니다. 누군가 더 효율적으로 시간을 절약
할 방법을 알아낼 때마다, 또 다른 누군가는 그 시간을 사용할 새로운 방식을 알아낸다는 것입니다. 이런 경향을 ‘지식사회’와 ‘지식
노동자’보다 노동시장의 변화를 더 잘 설명하는 개념은 없습니다.
산업혁명을 먼저 경험한 서구 선진국가에선 이젠 육체 노동은 중국이나 동남아 같은 국가에 외주를 주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럼 이제 서구 사회는 일을 적게 하게 되었을까요? 답은 당연히 아시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세계적인 경영 석학 피터 드러커는 1959년에 지식노동자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제안했습니다. 이 개념은 모든 육체노동이 인도와 방글라데시로 외주화된 지금 ‘우리는 대체 무슨 일을 할 것 인가’라는 서구가 당면한 문제에 대한 해답으로 많은 사람에게
환영받았습니다. 그의 해답은 고등교육에 대한 투자를 옹호하는 것이 었습니다.
그에 따라 회사로서는 최고의 인재를 영입해야 하기에, 교육올 적게 받은 사람도 얼마든지 잘할 수 있는 일자리임에도 굳이 더 높은 학위를 가진 사람들을 뽑으려 했습니다. 점점 더 많은 이들이 직업과는 관계없는 교육들을 많이 받게 되었습니다.
현대사회에도 여전히 많은 생산물과 다양한 유형의 서비스가 필요하다. 거기에 더해 고등교육을 받은 엄청난 수의 사람들에게도 역할을 찾아줘야 합니다. 그래서 최근 몇십 년간, 거의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온갖 종류의 업무가 생겨났습니다.
이렇게 생긴 현대에 생겨난 직종에 종사하는 상당수는 다른 이들에게 자신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설명하기 어렵다는 사실음 깨닫습니다. 지식사회는 온갖 종류의 업종과 몇 년 전만 해도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틈새 일자리를 고안했습니다.
주15시간 노동이 실현되지 못한 합리적인 이유를 우리 모두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지 않았을까요? 인류의 모든 발명, 우리가 진화해온 방식, 긴 기대 수명에 대가가 따르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1970년대 이후로는 근본적으로 새로운 개발이 이뤄진 게 없으니, 더욱 말이 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인터넷은 1960년대에 처음 발명됐지만 보통 사람들의 접근이 가능해진 이후에야 비로소 지금처럼 세상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여전히 1953년에 발명된 자동차를 몰고 다니고 과거와 똑같은 제트 비행기를 타고 날아다닙니다. 세탁기, 기차, 전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증조부모와 아주 다른 삶을 살고 있지만, 우리 조부모와는 그렇게 다르지 않고 부모와는 거의 비슷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지난 몇십 년간 세계는 생각만큼 바뀌지 않았습니다. 정말이지 진보가 정체되었다는 주장이 나올 만합니다. 오히려 우리는 아래 그림과 같이 혁신이 점점 줄어드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노동시간이 짧아지기를 멈춘,심지어 어떤 경우는 더 길어지기까지 하는 이유는 우리 사이에 퍼져 있는 어떤 통념 때문입니다.
전혀 힘들지는 않더라도 잔뜩 스트레스 주는 업무, 누구에게도 설명할 수 없는 업무, 누가설명해도 이해할 수 없는 업무를
포괄할 ‘텅 빈 노동’이라는 개념의 대안이 필요했고. 그래서 저자는 ‘가짜 노동’이라는 적당한 용어를 만들었습니다.
농업에서 공장, 사무실로 옮겨가는 동안 가짜노동은 더 흔해졌습니다.
무대 앞의 노동은 눈에 보입니다. 어느 시점에서든 걸린 시간과 이뤄진 진척을 계량할 수 있고 보통은 일처리에 걸린 시간을
반영하여 보수가 책정됩니다. 이런 노동으로는 버스 운전 같은 걸 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무대 뒤 노동은 반대입니다. 무대 뒤 노동은 직접 계량할 수 없고 (때로 계량을 위한 장치가 고안되기도 하지만) 눈에 띄는 경우가 드뭅니다. 게다가 끝나지 않는 일이기에 어떤 의미에서는 비극적입니다.
사무직은 대부분 무대 뒤 노동입니다. 비록 대부분의 사무실이 이제는 개방형이 되었지만 누군가의 일이 얼마나 진척되었는지 아는 것은 여전히 매우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지난 세기 무대 뒤 노동의 폭발적 중가, 특히 지난 50년간의 가속도가 가짜 노동의 완벽한 양육 환경을 조성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된 원인의 일부는, 무대 앞 노동올 먼 곳에서 들여온 값싼 인력과 자동화 기계에 위탁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입니다.
파킨슨의 법칙은 영국의 해양사학자 시릴 노스코트 파킨슨이 발견하고 발전시켰습니다. 그는 1955년 이코노미스트에 자기 생각을 요약해 발표했습니다. 그 논문에 실린 일련의 발상과 가설에는 후대에 길이 남을,그의 이름이 붙여진 개념이 포함돼 있습니다. “일은 그것의 완수에 허용된 시간을 채우도록 늘어 난다.”
파킨슨은 관료제의 무한한 확장 능력에 대해 말한 것입니다. 해양사학자이자 군대 장교로 복무했던 그는 당시 한 가지 희한한사실에 주목했습니다. 대형 군함은 62척에서 20척으로, 장교 수는 31%까지 감소하는 둥 함대는 줄어드는데,기지에서 일하는 인력은 40%가 증가했고, 특히 행정팀은 78%까지 급증했습니다. 파킨슨은 관리 조직의 규모가 줄어들어야 하는 때에,오히려 관리직의 수가 점점 더 많아진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꽤 유명해진 법칙을 생각해냈습니다.만일 사람들에게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10시간이 주어진다면 그들은 10시간을 사용할 것입니다. 하지만 똑같은 일에 25시 간이 주어진다면 놀랍게도 그 일은 결국 25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사람들이 게으르거나 기만적이거나 의도적으로 속이려 해서가 아니라 그저 "우리가 달성해야 하는 업무는. 써야 하는 시간에 비례해 중요성이 중가하고 복잡해지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관리자들의 상위층인 최고위 중역들은 서로의 터무니없는 봉급을 합리화하고 자기들 모두가 얼마나 유용한지 세상을 설득하는 데
고도로 능숙합니다. 자기 일이 얼마나 가치 있고 중요하고 어렵고 꼭 필요한지 서로 맞장구치는, 아주 소수가 뿜어내는 특정 합리
성 덕분이기도 합니다. 관리자들은 또한 경쟁적으로 자기 팀의 인원을 늘리고자 합니다. 인원은 그의 힘을 상징 하니깐요.
특히 인사팀과 홍보팀은 회사 내 제일 큰 조직이 되려고 경쟁하죠.
회사는 IT, 인사,홍보, 재정, 법무, 경리, 감사, 품질관리 같은 온갖 훌륭한 의도를 가진, 진짜 문제와 상상 속 문제를 플기 위해 존재하는 ‘지원팀’으로 꽉 차 있습니다. 그리고 이 팀들이 매일의 핵심 업무를 방해합니다. 그중 어떤 팀 은 쓸데없는 곳에 시간이 낭비되지 않도록, 분별 있고 적절한 규칙을 시스템화하여 직원들이 서로의 일을 이해하도록 돕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게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좋은 방법이라는 신화를 믿도록 회사가 우리를 어르고 달랬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는 그들이 전반적으로 이익에 도움 되지 않는 규칙을 발명할 정도로 멍청하다고 믿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물론 문제가 생기면 해결해야겠지만,이때 제안된 해결책이 오히려 해가 되는 결과를 낳올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는 있습니다.
이런식으로 만들어진 해결책은 민간에서 공공기관으로, 경쟁기업에서 다른 경쟁기업으로, 상위 기관에서 하위기관으로 산불처럼 퍼져갑니다. 관리자들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하여 이러한 해결책들을 따라하게 되죠. 점점 더 많은 규정이 생기고, 그러한 규정 때문에 가짜 노동이 발생합니다.
우리 사회는 긍정성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사회에서 환영받지 못합니다. 하지만 긍정성이 좋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긍정성의 첫 번째 인과응보는 더 많은 노동입니다. 일의 속도를 을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죽 나열된 업무 목록의 다옴 지점으로 활 기차게 뛰어갑니다. 두 번째 귀결은 긍정이 우둔함을 낳는다는 것입니다. 독일 철학자 헤겔이 썼듯, 영혼은 부정을 정면으로 들여다보고 거기 거주할 때만 성립합니다. 긍정적 합리성의 핵심 원칙은 모두를 포함시키는 것입니다. 누구도 '아니요’ 할 수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모두에게 귀를 기울이는 것이 합리적으로 보입니다. 이 습관은 널리 퍼져 있습다.
이러한 포괄성을 ‘합법화 활동'이 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직원들과 상황을 의논함으로써 동료를 포함시켰다고 인정받으려는 거죠. 그러면 나중에 반대하거나문제를 제기할 수 없게 돼요. 나도 가끔 이미 내려진 결정에 직원을 참여시키려고 시간을 투자해요. 순수한 가짜 참여죠. 직원들이 뭐라든 상관없어요. 아무 영향력도 없고,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거예요. 그저 직장 내 정치일 뿐이죠.”
근무시간 길이와 생산력의 상관관계에 관한 연구는 긴 근무시간과 막대한 야근을 뽐내는 사람들에게 시사점을 줍니다. 스탠퍼드 대 학 연구에 따르면 생산성과 근무시 간 사이 엔 딱히 강한 상관관계가 없다. 적어도 근무시간이 주50시간에 가까워질 때는 말입니다.
실제는 차라리 시간을 무위로 버리는 데 창피함을 느껴야 합니다. 다시 말해. 고용주는 15시간의 허위 활동에 임금을 지급한 것이며 직원은 가깝고 소중한 사람들에게 썼어야 할 15시간을 회사에 빼앗긴 것입니다. 다들 현대사회와 노동의 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고 생각하는 듯하지만 사실은 고릿적 노동시장을 지배하던 형틀에 새로운 업무를 맞추어 살 뿐입니다. 긴 시간이 곧 많은 생산을 의미 한다고 자신을 속이면서 말입니다.
역사적으로 노동을 시간 단위로 계량하는 관습은 산업혁명에서 비롯됐습니다. 그 전에 노동은 주로 가족이 함께하는 생활의 일부였습니다. 사람들은 효율성으로 인해 소요된 노동시간이 줄어들면 그 생산물의 가치가 낮아진다고 생각합니다. 왜 그럴까? 생산물의 가치는 거기에 투입된 시간에 의해 정의된다고 애덤 스미스가 우리에게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직장에 출근해서 막상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시간이 심각하게 길게 느껴집니다. 결국 지루함은 실존적 고통에서 수치감으로 전환됩니다. 왜냐하면 유용한 어떤 일도 하지 않으며 일을 통해 세상과 상호작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쓸모없어진다는 것, 그러면서도 대가를 받는다는 것은 자기혐오와 수치감으로 이어지며 주변 사람들에 게 뭔가 빚진 기분올 느끼게 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고통스럽게 지켜낸 규정과 노동은 성과가 좋았을가요? 2015 년 옥스퍼드 대 학교 출판부가 펴 낸 결론은 허망했습니다. 모든 규제와 감사가 결국 공공 부문을 더욱 높은 비용이 들고 더 무능력하고 더 불만스러워하는 최종 수혜자가 늘어난 곳으로 만들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더 많은 규제와 인증, 성과 검토와 성과 기반 계약이 공공이든 민간이든 개선됐다는 증거는 매우 찾기 어렵습니다. 그 대신 지난 몇십 년간 감시,관료제, 감사, 계량화, 회의 그리고 보고서 작성에 종사하는 직종이 화려하게 축적됐습니다. 서로에 대한 불신에는 대가가 따릅니다. 가짜 노동의 쳇바퀴에서 무한한 시간을 보내는 형벌 말입니다.
이 다음은 이 책에서 제시하는 해결책 들입니다.
책 목록과 해결책이 거의 일치하더군요
- 변화를 위한 우리의 전략
눈치보지 않고 퇴근하기 │ 이젠 정말 의미 있는 일을 하자 │ 회의는 무조건 짧을수록 좋다 │ 불완전함을 감수한다 │ 먼저 믿음을 줘야 신뢰가 쌓인다 │ 가짜 노동 명확하게 구분하기 │ 타인에 대한 모방을 경계한다 │ 시간으로 계량하지 말 것 │ 자기 개발의 다른 방식 │ 진짜 일에 헌신하자 │ 복종하지 않을 의무 │ 도덕적 책임감을 희석하지 말자 │ 당신도 가짜 노동에 빠져 있을 수 있다 │ 미투 : 가짜 노동에 해시태그 달기
- 관리자를 위한 의미 있는 조언들
가짜 노동에 맞설 용기 │ 관리직은 왜 가짜 노동을 지속하게 되었나 │ 역할과 권위를 받아들이자 │ 직접 결정을 내리자 │ 관계 지향적 리더와 전문가의 균형 │ 관리직의 수는 적을수록 좋다 │ 비판적 질문에 대한 보상의 필요성 │ 과정이나 시간보다 중요한 결과 평가 │ 때론 믿고 맡기는 것도 필요하다 │ 원한다면 그냥 놀게 하자 │ 의미 없는 일에서 벗어나기 │ 현실적인 일에 집중하기
- 가짜 노동 없는 사회
합리화와 능률 개선에 실패한 이유 │ 가짜 노동으로부터 우리의 시간을 해방해야 할 때 │ 노동을 잠시 쉬어갈 이유 │ 가짜 노동자가 되는 교육 │ 세상엔 수많은 직업이 있다 │ 보편적 기본 소득 │ 더 많은 위험 요소 감수하기 │ 일과 삶의 의미 되찾기
요약
1. 우리의 선조들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짧은 노동을 할거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그 예측은 틀렸다.
2. 폭발적으로 증가한 생산성에도 우리는 선배 학자들의 예상과 다르게 왜 이렇게 길게 일하고 있을까?
3-1. 그 이유 중 하나는 산업화 시대와 함께 기독교가 퍼뜨린 노동의 신성화
3-2. 애덤 스미스가 제안한 시간과 임금의 교환성이 아직도 유효
3-3. 무대 앞 노동 (실무자) 이 아닌 무대 뒤 노동 (관리직)의 폭증
4.전혀 힘들지는 않더라도 잔뜩 스트레스 주는 업무, 누구에게도 설명할 수 없는 업무, 누가설명해도 이해할 수 없는 업무를
포괄할 ‘텅 빈 노동’이라는 개념의 대안이 필요했고 이를 ‘가짜 노동’ 칭함
5. 현대 사회의 많은 직렬이 가짜 노동으로 차있음.
6. 노동을 하지 않으면 뭘 해야할지 몰라서 / 관리직들에게 인원은 권력을 상징하므로 일단 인원을 늘리나 그들에게 줄 일이 없어 일을 만들어냄 / 책임을 회피 하기 위해서 등의 이유로 가짜노동은 줄어들고 있지 않음
7. 해결책은 책의 목차 혹은 위의 요약 긴버전에서 확인 가능
(전반적으로 제가 책을 읽고 좋았던 문구들을 인용하거나 혹은 제 생각을 보태서 글을 적었습니다.)
(참고로 알쓸별잡에서 김상욱 교수님이 소개를 한 적이 있더라구요)
제가 회사를 다니며 어렴풋이 느꼈던 감정을 책으로 써낸 것만 같았습니다. 김상욱 교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제 마음을 깨뜨리는 도끼' 와 같은 느낌의 책이었죠.
쓸데 없는 회의, 관리자들은 잘 보지도 않는 보고 자료, 왜 나를 참조했는지 모르겠는 메일까지.
우리의 노동이 좀 줄어야 할 것 같습니다.
특히나 노동 시간이 길기로 유명한 한국에서 말이죠
첫댓글 댓글 중---
무야호-
개인적으로는 3-3 + 6의 환장콜라보가 사무직/연구직군에서는 많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일에 대한 보고를 받는 사람이 여러명에 양식도 여러개라 본질과 떨어진 업무를 하는 시간이 늘어나죠.
하지만 보고받는 관리자는 정작 결정권이 없는 경우가 허다하여 대표결정만 기다리고... 세상은 21세기인데 업무방향 결정은 전보치던 시절이랑 다를바가 없는 듯.
일단 피피티는 없애야겠고요...
갑갑순
@무야호-님 제가 상위 관리직에선 일을 안해봐서 그런지, 이해가 안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상위 관리직은 자신의 선택에 책임이 따르기 때문에 높은 임금을 받는 다고 하던데, 보면 볼수록 자신이 책임지지 않기 위한 일들을 시키는 관리자들이 있더라구요
그들은 일은 별로 하지도 않고, 오히려 필요하지 않은 일들을 만들어내면서, 높은 임금을 받아가는 게 과연 합리적인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베테랑
1. 일 자체를 많이 하게되는 이유 = 경쟁에서 살아남으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이유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메커니즘은 기본적으로 '경쟁'
인터넷의 발달로 경쟁자의 근황을 쉽게 파악하게 되었고, 그럴 수록 경쟁이 더욱 가속화 되고..
나: "어? 쟤가 벌써 저만큼? 그럼 나도 이만큼 해야지."
경쟁자: "어? 쟤도? 그럼 나는 더 해야지."
나: "어라? 그럼 나는 더 해야지."
2. 쓸데없는 일이 많아지는 이유 = 보고 시스템, 결재 시스템, 온갖 서류들, 보고서 등
과거에 꿀빨던 시절에 양심없는 놈이 사고를 쳤음 --> 동일한 문제 발생을 방지하고자 규정이 도입됨 --> 시스템의 헛점을 찾아서 또 다른 놈이 사고를 침 --> 규정이 늘어남 --> 또 다른 놈이 사고 침 --> 규정이 늘어남 --> ... (무한 반복) --> 현 상태 그리고 계속 늘어나는 중..
병아리장수
저도 최근에 재밌게 본 책입니다.
내가 하는 일이 쓸모 없는 일인 이유를 살펴보니
시스템이 굴러가는데 필요할 뿐 아무것도 생산하지 못하는 것들이더군요. 이걸 부수려면 시스템을 개혁해야하는데 제 권한 한참 밖입니다. ㅎㅎ 그러니 닥치고 할 수밖에요.
마훈네
와. 가뭄에 단비같은 깨끗한 글이네요.
현대 한국어는 폰팔이의 계산기 두드리기 같은
잡스러운 기교가 많이 들어가서 읽기가 짜증이 나는데
이런 단정하고 품위있는 글 보니 반가워요.
노래의 가사는 안듣고 음의 높낮이를 즐기듯
중간 중간 되풀이하며 읽었네요.
감사합니다
Moderate
개미가 열심히 일하는 것 같아도 그중 1/3 만 일하고 나머지는 뻥일 하고 있다고 하죠. 원래 정상 아닐까요
조맥삼
짓기위해 부순다, 부수기위헤 짓는다 이런 창조경제같은 일들을 회사에서 많이하면서 골때리긴 하는데.. 놀수는 없으니 뭔가를 해야하는건 이해를 하겠는데.. 어느순간 윗선에서 너무 심취하고 결국엔 그 뻘짓들에 진심이 되가니까 미쳐버리겠더라구요
~!@_@!~
머스크도 젊을 때 죽어라 일한거 보면 죽어라 쥐어쫘야 뭔가 되지 않을까요? 빌게이츠도 일 엄청 많이 하던 사람으로 나오고요.
즉 사회의 발전에는 소수의 미친 노력이 있었다 봅니다.
물론 사회를 나가보니 망해가는 사업에 목매달는 사람도 있고. 저가치의 일에 만족 하는 사람도 있고. 엄청난 시간의 업무가 필요로 되는 일이지만 힘들어서 안하고 쉬고 싶어서 안하게 되는 일도 있고 그저 먹여살려 달라고 때쓰는 사람도 있고 너무 다양한 경우가 혼재된 세상이더라고요.
때문에 자본주의속 무한 경쟁과 나만 편하면 좋겠다는 이기심이 합쳐져서 모두 과도한 일중독 상태가 된게 아닐까 싶네요.
이걸 책까지 읽으면서 깨달아야할 필요가 있나요? 그냥 생각만 해도 답이 나오는거 같은데 말입니다?
아논고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저는 요새 하루 12시간 이상 일하고 있긴한데.. 업무 시간의 대부분이 전임자가 작성해둔 코드를 읽고 이해하는 부분이거든요.. 이게 가짜 노동일까를 상상하면서 글을 읽었는데.. 잘 모르겠습니다. 코드가 너무 뒤죽박죽이고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많아서 이걸 더 짧은 시간에 해낼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
양념토끼
노동시간 축소를 논의할 때 반드시 전제가 되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노동시간을 줄이는 대신 노동강도를 높여 생산성을 유지하는 이른바 '압축노동'은 노동시간 축소 논의에서 제외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주5일제 시행하면서 우리나라의 많은 강성노조들도 노동시간 축소 투쟁에서 노동강도를 높여 생산성을 유지하는 '압축노동'으로 자본과 '야합'했습니다.
현실적으로 '압축노동'이 아닌 이상 주5일제 도입이 힘들었겠지만, 그래도 그 결과로 노동자들은 더 높은 노동강도를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주4일제 혹은 주 4.5일제를 논의하면서 '압축노동'으로 귀결되면 산술적으로 노동강도는 단번에 10~20%를 올려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노동자들의 몸이 버텨낼까요?
그러므로 앞으로 논의될 노동시간 축소의 전제조건으로 반드시 '압축노동'은 제외되어야 합니다
Pazz
저도 사무직으로 회사생활을 오래했지만, 항상 일하면서 나의 일의 진짜 output 은 무엇일까 항상 고민이 되더군요. 매일 하루종일 보고서를 쓰고 회의를 하고... 쳇바퀴 돌아가는 회사생활을 했지만 제가 한일로 인해 세상이 바뀌는건 거의 없었습니다. 가짜 노동, 정말 공감이 됩니다.
노말피플
매번 가지게 되었던 노동과 시간에 대한 의문이 풀리는 느낌입니다.
30대에는 일이 즐겁다 느끼기도 한적이 있고, 그래도 열심히 무언가 결과에 만족을 하면서 딱 주어진 8시간에 재미를 조금은 느끼면서 했던거 같습니다.
그러나 40대가 되고 업계에서 흔히 말하는 고인물이되었으며, 관련 산업의 경기는 좋지 않으며, 수 많은 경쟁 업체와 오직 가격 경쟁만해야 하는 상황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회사는 저에게 가짜 노동을 강요하고 있구나 생각됩니다.
다양한 이유로 최근 몇 년 동안 실제 제가 출근, 외근, 출장에서 업무로 사용되는 시간의 비중은 30% 정도인 것 같습니다. 70%는 시간을 때우기 일수입니다. 처음에는 이 상황이 너무 답답하여 견딜 수 없었습니다. 시간이 너무 아까웠습니다. 차라리 바쁜 직장으로 이직해야 하나 싶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제 생각의 결론은 일이라는 것은 나의 소중한 시간과 돈을 트레이딩하는 행위로 결론 지었습니다.
추천해 주신 책은 꼭 읽어 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