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반에 도달하기 위하여 열심히 노력하는 아랏다위빳사까
출처 : “열반으로 인도하는 팔정도(수밧다 경에 대한 법문)”, 마하시 사야도 법문, 우 틴 팟 영역, 향원 옮김
http://cafe.daum.net/satisamadhi/4vdS/1731
8. 번뇌로부터의 해방
부처님의 가르침 안에서만 번뇌의 굴레로부터 해방되는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계속해서 수밧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수밧다여, 내가 정해 놓은 법(교리)과 계율 아래에서만 여덟 가지 요소를 가진 거룩한 도(팔정도)가 있다. 이 교단에서만 첫 번째 성자인 수다원을 만날 수 있고, 두 번째 성자인 사다함을, 세 번째 성자인 아나함을, 그리고 네 번째 성자인 아라한을 만날 수 있다. 내 가르침이 없는 곳에는 안다고 장담하는 것을 실제로 알고, 잠재되어 있는 번뇌를 근절할 수 있는 사문(沙門. samaṇa. 수행자. 비구)이 있을 수 없다.”
지금까지의 설명을 요약합니다. 부처님께서 깨달으시고 나서 팔정도를 설명하시기 전에는, 알라라나 우다까나 범부인 범천들도 도의 지혜를 얻지 못했습니다. 법의 바퀴가 처음으로 굴러가기 시작했을 때, 일억 팔천만 명의 범천(brahmā)들과 수많은 천신(deva)들이 지혜를 얻어서 번뇌를 근절하였습니다. 인간 가운데는 꼰단냐만이 맨 처음으로 수다원이라는 영적으로 계발된 상태를 획득했지만, 다섯 명 가운데 나머지 네 명은 나중에 번뇌를 없앤 사문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부처님 이전에는 아무도 팔정도를 가르쳐 주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번뇌를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불교가 번성하고 있는 요즈음에도 팔정도를 모르거나 회의적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들 중에는 수다원이 있을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불교의 교단이 아닌 곳에는 사문이 있을 수 없다는 점을 수밧다에게 강조하셨습니다.
주석서는 그러한 사문을 12가지로 제시하고 이를 세 가지 부문으로 나누었습니다. 첫 번째 부문에는 위빳사나 수행을 이미 충분히 해서 성자의 도를 얻기 위하여 열심히 노력하는 아랏다위빳사까라고 불리는 네 종류의 위빳사나 수행자(네 가지 종류의 아랏다위빳사까(āraddha-vipassaka): 수다원도, 사다함도, 아나함도, 아라한도를 얻기 위하여 열심히 노력하는 수행자. 생멸의 지혜를 얻으면 진정한 아랏다위빳사까임)가 있습니다. 두 번째 부문에는 도의 지혜(magga-ñāṇa)를 얻은 성자 네 종류가 있습니다. 세 번째 부문은 과의 지혜(phala-ñāṇa)를 얻은 성자 네 종류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열심히 수행을 하는 아랏다위빳사까를 주목해서 봐야 합니다. 그에게는 언젠가 생멸의 지혜(udayabbaya-ñāṇa)가 생길 것입니다. 이 사실로부터 판단해 볼 때, 도의 성취를 열망하는 수행자는, 첫 번째인 수다원도를 획득하기 위하여 위빳사나 수행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수다원도를 체험하려는 수행자는 무상, 고, 무아라는 삼법인(三法印)을 관찰해야합니다. 관찰해 감에 따라, 그는 지금 일어나고 있고, 지금 사라지고 있는 모든 현상들의 흐름에 자신의 주의를 계속 보낼 것입니다. 마음이 그렇게 변화하는 현상에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번뇌가 그의 마음을 괴롭힐 기회가 없을 것입니다. 사실상 번뇌는 모두 제거될 것입니다.
이런 사람을 사문라고 합니다. 불교의 영역을 벗어나면, 위빳사나 수행을 모르기 때문에 사문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불교도라고 하면서 불교란 정신과 물질에 관한 것이며, 무상과 불만족과 실체가 없다는 것에 관한 것이지 위빳사나 수행을 할 필요가 없다는 종파에 속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여덟 가지 거룩한 성자는 말할 것도 없고, 사문의 계보도 끊어지게 되는 결과가 됩니다.
9. 가르침이 오래 지속되게 하는 방법
번뇌를 근절시킨 진정한 사문은 불교 안에서만 존재하며, 불교가 쇠퇴하게 된 이면에는 사문의 계보가 단절되어 있음을 보이신 다음, 부처님께서는 수밧다를 깨우쳐 주시기 위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계속 존속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을 말씀하십니다.
“수밧다여, 이 교단의 법과 그것을 보완하는 팔정도 그리고 그것을 실천하는 사문들이 오랫동안 유지되게 하는 방법을 알려주겠다. 내가 열거한 12가지 종류의 비구들이 잘 살아간다면, 아라한을 포함한 진정한 사문의 계보가 단절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나는 주석서의 주해에 따라서 12가지의 사문에 속한다는 의미로 비구라는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12가지는 네 가지 위빳사나 수행자와 여덟 가지 거룩한 성자들을 말합니다.
그런데 ‘잘 산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비구들이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법에 푹 빠져서 산다는 의미일까요? 천만에 말씀입니다! 그들이 편안한 생활을 한다면 아라한의 계보는 이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팔정도가 보급될 때에만 성자들이 계속 출현하고 아라한의 계보가 끊어지지 않게 됩니다. 이에 대해서 주석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사문이 ‘잘 산다’는 말은, 성자의 첫 번째 도를 획득한 수다원이 자신이 획득한 지혜를 다른 사람들에게 보급시켜서 그들도 자신과 같은 수다원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 해설은 명쾌합니다. 수다원은 자신이 얻은 법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하고 그들에게 팔정도를 잘 실천하는 방법을 가르칠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는 위빳사나 수행을 실천하도록 다른 사람들을 납득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노력의 결과로, 어떤 수행자가 성자의 도를 획득하여 수다원이 된 다음에, 계속해서 같은 방식으로 열심히 수행하여 더 높은 수준인 사다함과 아나함과 아라한의 지위에 도달한다면, 후대에까지 아라한이 계승될 것입니다.
‘잘 산다’는 말의 이런 취지가 사다함 등에도 적용된다는 것을 되풀이하여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요. 새로운 아라한들이 계속해서 출현하는 한, 그들의 계보는 결코 단절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주석서에 처음 네 가지 성자의 도를 기반으로 해서 어떻게 점점 더 많은 수다원이 생겨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10. 수다원을 성취하기 위한 위빳사나 수행
계속해서 주석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또한 수다원의 지위를 얻기 위하여 힘써 노력해서 생멸의 지혜를 획득한 위빳사나 수행자는, 자신이 탁월하게 수행하는 모습을 실제로 보여주면서 설명하여,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수다원의 도를 얻기 위해 따라하게 할 수 있다. 그렇게 한다면 그는 ‘잘 산다’는 말을 들을 것이다.”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도를 얻기 위해 힘써 노력하여 생멸의 지혜를 얻은 위빳사나 수행자가 진정한 아랏다위빳사까입니다.
정신과 물질의 현상들을 계속해서 지켜봐서 정신과 물질을 구별하는 지혜, 조건을 파악하는 지혜나, 명상의 지혜를 얻은 수행자는, 생멸의 지혜를 얻을 때까지는 진정한 아랏다위빳사까라고 할 수 없습니다.
수행자가 이 지혜를 얻은 다음에만, 경험이 풍부해져서 다른 사람들이 도를 계발하도록 하는 촉진제 역할을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방법을 알기만 하면 충분하지 수행을 꼭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엉뚱한 주장에 대하여, 이 아랏다위빳사까가 각별한 관심을 갖고 대응하기를 바랍니다. 그 견해는 전적으로 틀립니다. 성자의 네 가지 범주는 팔정도에 대해서 수행을 한 다음에만 성자의 도 안에서 확립됩니다. 만약 수행자가 지속적인 수행에 의해서, 대상인 물질과 그 대상을 아는 마음인 정신이, 소멸되는 것을 아는 단계인 소멸의 지혜(bhaṅga-ñāṇā)에 도달한다면, 꼭 필요한 것을 성취했기에 더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위빳사나 수행자가 생멸의 지혜에 도달하면 수행에 능숙하게 된 것이고, 형성평온의 지혜에 도달한다면 수행에 완전히 숙달된 것입니다. 그런 단계에 도달한 수행자들이 위빳사나 수행 방법을 자기와 친한 사람들에게 알려 줄 것을 강력히 권합니다.
권유에 의해서 그의 친구와 이웃 사람들이 생멸의 지혜에 도달한다면, 성자의 도를 얻으려고 열심히 노력하는 아랏다위빳사까가 된 것입니다. 영감을 얻게 되면, 아라한을 체험할 때까지 계속해서 노력할 것입니다. 그러면 새로운 세대의 아라한이 출현하게 됩니다.
우리 비구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그 보완물인 아라한과 함께 유지하려는 관점에서, 수행이라는 과업을 떠맡고 있습니다. 나는 진정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이 오래 지속되기를 기원하는 사람들이, 우리의 벤처 사업을 도와줄 것을 강력히 호소합니다.
그러나 아직도 어떤 사람들은 우리들이 없는 자리에서 비우호적으로 비난하며 우리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는 실로 유감스런 일입니다.
과거의 부처님들 시대에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오랫동안 유지하려는 비슷한 노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법이 더 이상 설명되지 않고 보급되지 않아서, 결과적으로 실천될 수 없었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 하에서 세상 사람들은 팔정도를 완전히 잊어버렸으며, 성자의 도와 그것을 얻는 방법을 알게 되는 것은 새로운 부처님이 출현하였을 때입니다. 수행자가 성자의 도의 부흥을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는 한, 진정한 사문은 계속해서 활약하게 될 것입니다.
첫댓글 사두사두사두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