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원선우 기자
김지하·이문열, 이번엔 김훈
원선우
“저 새는 해로운 새다.” 소설가 김훈(75)씨를 향해 인신공격을 쏟아내는 야권 지지층을 바라보자니 중국 마오쩌둥의 참새 박멸 지시가 떠올랐다. 좌표가 한 번 찍히는 순간, 민주당 대통령 세 명이 극찬한 노(老)작가조차 양념 폭탄을 피할 수 없다. “노망이 들었다” “절필하라” “책을 다 갖다 버리겠다” 따위는 익명 악플 수준. 소위 ‘진보 지식인’들의 실명 비판은 차라리 저주였다. “측은지심이 없다니 사람이 아니야” “조국 가족에 대한 난데없는 칼부림” “야비하고 비열한 살쾡이”. 북한 통일전선부에서 집단 제작한다는 ‘삶은 소대가리’ ‘특등 머저리’ 같은 표현과 비슷하다.
생명안전 시민넷 공동대표인 김훈 작가가 지난 1월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4.16연대 강당에서 열린 중대재해처벌법 무력화 반대를 위한 산재·재난 유가족·피해자 및 종교·인권·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뉴스1
김씨는 2015년 1월 1일 세월호 참사 추모 글을 한 일간지에 기고했다. 김씨는 유족의 슬픔과 분노를 ‘특별히 재수 없어서 재난을 당한 소수자의 것, 우는 자들만의 것, 루저들만의 것’으로 밀어내는 ‘돈 많고 권세 많은 자’들을 지목했다. 2019년 5월 다른 일간지 칼럼에선 공사 현장에서 추락사하는 노동자가 일년에 270~300명이라는 통계를 언급했다. 그는 “돈 많고 권세 높은 집 도련님들이 그 고공에서 일을 하다가 지속적으로 떨어져 죽었다면, 한국 사회는 이 사태를 진작에 해결할 수 있었다”고 했다. 조국 일가의 입시 비리를 거론한 이번 기고문에서 김씨는 “‘내 새끼 지상주의’는 이 나라 수많은 권귀(權貴)들에 의해 완성됐다”고 썼다.
세월호 참사와 김용균의 죽음을 초래한 권력층의 탐욕을 김씨가 지적할 때 좌파들은 갈채를 보냈다. 당시 김씨의 펜이 대통령과 재벌을 겨눴으므로 김씨는 ‘우리 편’이었다. “김훈이 진보로 개종(改宗)했다”는 말도 나왔다. 김씨가 이 사회 기득권 목록에 강남의 50억원대 자산가이자 전직 법무부 장관, 청와대 민정수석, 서울대 교수인 조국을 추가한 것은 논리적 귀결에 불과한데도 그는 ‘해로운 작가’로 낙인찍혔다. 우리 편 아니면 적(敵). 이 이분법으로 1991년 시인 김지하씨에게 변절자라고 손가락질하고, 2001년 소설가 이문열씨에게 곡학아세한다며 책을 불태웠다.
874명. 고용노동부가 밝힌 지난해 산업재해 사고 사망자 숫자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고 한 문재인 정부 5년이 지나고도 하루에 2~3명 노동자가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김씨는 지난 정부 내내 생명안전시민넷 공동대표 자격으로 청와대와 국회를 오갔다. “참사가 왜 벌어지는지 모두가 다 안다. 갈 길이 뻔하지만 그 길로 가지 않는다”고 했다.
김씨에게 손가락질하는 ‘진보 지식인’들에게 묻고 싶다. 지금도 사람들이 현장에서 끼이고 깔리고 떨어지는데, 문서 위조 잡범 한 명 수호한답시고 온 나라를 내 편 네 편으로 갈라 동강 낸 것 말고 뭘 했느냐고. 김씨는 ‘남한산성’(2007) 서문에서 이렇게 썼다. “나는 아무 편도 아니다. 나는 다만 고통받는 자들의 편이다.”
ㅡ2023.08.17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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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훈(75)씨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자녀 입시 비리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개딸’ 등 야권(野圈) 강성 지지층의 표적이 됐다. 일부 과격 지지층은 “김씨의 책을 다 갖다 버리겠다”고 하고 있다. 정치권과 문학계에선 20여 년 전 소설가 이문열(75)씨의 ‘홍위병 논란’을 다시 보는 것 같다는 말도 나온다. 김씨는 11일 이런 논란에 대해 “할 말 없다”고 했다.
김씨는 지난 4일자 중앙일보 1면에 ‘내 새끼 지상주의의 파탄…공교육과 그가 죽었다’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 기고문에서 그는 최근 서이초 교사의 자살을 초래한 학부모 악성 민원의 실체를 ‘내 새끼 지상주의’로 지목했다. 그러면서 조 전 장관 일가의 입시 비리를 거론하자 야권 지지층이 격분한 것이다.
김씨는 “‘내 새끼 지상주의’를 가장 권력적으로 완성해서 영세불망(永世不忘)의 지위에 오른 인물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그의 부인”이라며 “그는 아직도 자신의 소행이 사람들에게 안겨준 절망과 슬픔을 모르는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그는 조 전 장관을 비롯한 고위 공직자 등 기득권층의 ‘내 새끼 지상주의’를 지적하며 “이렇게 해서 공동체의 가치는 파괴됐고, 공적 제도와 질서는 빈 껍데기가 됐다”고 했다.
200자 원고지 22장가량 기고문에서 조 전 장관을 언급한 대목은 두 문장뿐이었다. 기고문 대부분은 ‘내 새끼 지상주의’가 공교육 현장과 교사들의 마음을 무너뜨리고 있음을 지적하며 한국 사회 전체의 각성을 촉구하는 데 쓰였다. 그럼에도 야권 지지층은 SNS에 김씨에 대해 “노망이 났다” “절필하라” “더위 먹었냐” “책을 다 갖다 버리겠다” 같은 인신공격과 폭언을 쏟아냈다. ‘토지+자유연구소' 이태경 부소장은 “멸문지화를 당하고 있는 가족에게 저런 소리를 한다는 건 측은지심이 없다는 뜻”이라며 “맹자는 측은지심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고 했다.
동명대 김동규 교수는 인터넷 칼럼에서 김씨를 향해 “정치적 공격의 본질을 무시하고 있다”며 과거 김씨가 전두환 정권에 부역하고 재벌을 찬양했다고 주장했다. 시인 김주대씨는 김씨를 ‘사자에게 물려 죽어가는 토끼에게 용감한 표정으로 달려드는 야비하고 비열한 살쾡이’에 비유했다. 친야 인터넷 매체 ‘민들레’의 한 기자는 “조국 가족을 향한 난데없는 칼부림이 드러낸 김훈의 민낯”이라고 했다.
김씨는 최근 수년간 고 김용균씨 사건 등 산업 재해 문제에 대해 꾸준히 발언해왔다. 또 안중근 의사의 의거를 그린 장편소설 ‘하얼빈’(2022)은 문재인 전 대통령 추천 도서이기도 했다. “입맛에 맞을 땐 김씨를 찬양하던 사람들이 조 전 장관이 무슨 성역(聖域)이라도 되는 양 벌 떼처럼 달려들어 집단 린치를 가하는 모습이 꼴사납다”는 목소리가 진보 진영 내에서도 나온다.
이문열씨는 2001년 한 일간지 칼럼에서 당시 김대중 정부를 추종하던 시민 단체들을 홍위병에 빗댔다가 분서(焚書)를 당한 적이 있다. 시민 단체 관계자들은 이씨 집필실 앞으로 몰려와 북과 꽹과리 시위를 하며 책 장례식까지 열었다. 당시 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이씨에게 곡학아세(曲學阿世)를 한다며 비난하기도 했다. 정치권과 문학계에선 이번 김씨 논란이 당시와 겹친다는 말도 나왔다. 김씨는 11일 본지 통화에서 “정확한 상황을 나는 잘 모른다. 할 말도 없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전날 조민씨 기소를 계기로 조 전 장관 일가를 옹호하기 시작했다. 정청래 최고위원은 이날 최고위에서 “조 전 장관 가족이 조선 시대 무슨 사화(士禍)라도 일으켰느냐”며 “멸문지화를 시키니 윤석열 정권, 시원한가. 하늘의 노여움이 국가 폭력을 심판할 것”이라고 했다. 서영교 최고위원은 이날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 “검찰이 해도 해도 너무한다”며 “검찰이 브레이크 없이 질주한다”고 했다. 민주당에선 “당이 또 조국의 강에 빠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ㅡ2023.08.12 조선일보 원선우 기자
첫댓글 에구....참..... 세월아 세월아 ......!
정말 할 말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