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사랑 안에 머물다
오늘 부활 제5주일은 ‘주님 안에 머묾’, ‘주님 사랑 안에 머묾’이 주제입니다.
독서와 복음이 모두 주님 안에 머무는 것을 언급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같은 ‘주님 안에 머묾’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독서와 복음은
이를 세분화하여 각각 ‘실천적인 머묾’과 ‘관상적인 머묾’을 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독서는 사랑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그분 안에 머문다고 하고, 복음은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것처럼 그분 안에 머무는 것을 얘기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각각 ‘마르타’적인 사랑의 머묾과
‘마리아’적인 사랑의 머묾이라고 얘기해도 좋을 것입니다.
먼저 마리아처럼 관상적으로 주님 사랑 안에 머무는 것을 보겠습니다.
주님은 당신 사랑 안에 머무는 것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를 사용하십니다. 붙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떨어져 있으면 사랑이
고갈되거나 죽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지이고 우리 사랑은 가지의 사랑입니다.
이것은 또한 배터리의 사랑과 같습니다.
배터리가 충전기에 연결되어 있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금세 고갈되는 것과 같습니다.
사실 우리의 기도는 사랑 충전과 다를 바 없습니다.
아무리 오랜 시간 기도해도, 기도하고 난 뒤에 주님 사랑으로 우리 사랑이 충전되고
충만해지지 않는다면 그 기도는 헛된 기도이거나 엉터리 기도일 것입니다.
다음으로 마르타처럼 실천적으로 주님 사랑 안에 머무는 것을 보겠습니다.
이웃 사랑을 실천할 때 주님 사랑 안에 머물게 된다는 말인데, 그렇다고
모든 이웃 사랑 실천이 우리를 주님 사랑 안에 머물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의 계명을 실천할 때
이웃 사랑 실천이 우리로 하여금 주님 사랑 안에 머물게 하는 것입니다.
그저 인간적으로 이웃을 사랑하면, 그때는 그 인간의 사랑 안에 내가 머물고
그 인간의 사랑이 내 안에 머무는 것으로 그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주님을 믿지 않고, 그래서 주님의 계명으로 이웃을 사랑하지 않고,
일시적일 수밖에 없는 연인 간의 사랑 또는 휴머니즘적인 사랑을 한다면,
그 사랑 안에 주님의 사랑이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서로 사랑하라는 주님의 계명으로 이웃을 사랑할 때
주님의 사랑이 우리의 사랑 안에 있고, 사랑하고 난 뒤에도 주님의 사랑이 남아있어
또 사랑하고 또 사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열렬했던 사랑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식는다거나 사랑이 어떤 이유로 미움으로 바뀐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주님 사랑 안에 관상적으로 머묾이 없이 사랑한 것이고,
주님의 사랑으로 사랑하지 않았다는 신호임을 우리는 즉시 알아채야 할 것입니다.
글 : 金燦善 Leonard 神父 –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 수도회)
혼자서도 괜찮아요
코로나 팬데믹 이후 본당 신자들과의 면담이 늘었습니다.
전입자, 예비신자, 첫영성체 아이의 부모 등, 다양한 사람들과 면담을 하다 보면,
의외로 혼인장애(조당) 신자들이 많음을 알게 됩니다.
코로나시기에 성당에서 혼인하는 것을 미루며 잊은 채 살다가
본당 사제와 면담을 통해 뒤늦게 깨달은 분도 있고 본인이 조당인지 전혀 모른 채
아무 문제의식 없이 신앙생활 하는 신자도 만나게 됩니다.
면담 중 어느 자매에게 “교적을 보니 성당에서 혼인 성사를 한 기록이 없는데,
그동안 성사 생활은 어떻게 하셨나요?”라고 묻자. “그동안 별문제 없이
고해성사와 영성체하며 잘 다닙니다.”라고 자신 있게 대답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천주교 신자가 성당이 아닌 예식장에서만 혼인을 했다면
교회 관점에서 그 혼인은 무효이며, 형식 결여에 의한 혼인 장애가 되어
신자로서의 권리를 박탈당해 성사생활에 큰 제약이 뒤따릅니다.
그렇다 보니 본당 사목자 입장에서 면담을 할 때는
신자들의 혼인 상태를 더욱 꼼꼼히 확인하게 됩니다.
그리고 혼인장애가 있는 당사자에게 그 사실을 알려 주었을 때,
성사 생활을 하기 위해 서둘러 ‘조당’을 풀고자 노력하는 신자가 있는가 하면,
한없이 미루는 신자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혼인장애를 해소하려면,
당사자 두 사람이 함께 성당에서 혼인 합의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함께 나올 수 없는 난감한 상황도 있습니다.
이럴 때 신자들은 보통 ‘성당 혼인을 미루거나 아예 조당을 풀 수 없다.’라고
단정하여 스스로 냉담의 길을 걷기도 합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상황으로, 이는 대부분 ‘혼인장애 해소를 위해서는
두 사람이 무조건 성당에 나와야 된다.’라고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혼자서도 풀 수 있는 해결책이 교회에 마련되어 있습니다.
배우자가 성당에 나오지 않아 어쩔 수 없이 혼자서 성당 주변만 맴돌며
죄의식 속에서 더 이상 지낼 필요는 없습니다. 비록 자신의 무지와 잘못으로
교회의 혼인 형식을 지키지 않아 조당 상태에 놓이거나, 자신의 배우자가
조당을 푸는 것에 비협조적일지라도 ‘혼자서도’ 괜찮습니다. 이럴 때는 배우자를
굳이 성당에 데려오지 않아도 혼자 오셔서 조당을 풀 수 있습니다.
그동안 교회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혼인을 건강한 혼인으로 유효화할 수 있는
이른바 혼인의 ‘근본유효화’(Sanatio in Radice; 교회법 제1161조)가 있습니다.
혼인장애(조당) 상태의 신자가 신앙생활을 다시 시작하려 하는데
배우자가 협조하지 않을 경우의 해결 방법입니다.
일단은 배우자를 설득해 보고 그래도 설득이 되지 않을 때는
본당 사목자를 찾아가십시오. 간단히 해결해 드릴 것입니다.
글 : 朴錫千 Andrew 神父 – 수원교구 제1심 법원 재판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