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 이사야 7,10-24
그 무렵 10 주님께서 아하즈에게 이르셨다. 11 “너는 주 너의 하느님께 너를 위하여 표징을 청하여라. 저 저승 깊은 곳에 있는 것이든, 저 위 높은 곳에 있는 것이든 아무것이나 청하여라.” 12 아하즈가 대답하였다. “저는 청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시험하지 않으렵니다.” 13 그러자 이사야가 말하였다. “다윗 왕실은 잘 들으십시오! 여러분은 사람들을 성가시게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여 나의 하느님까지 성가시게 하려 합니까? 14 그러므로 주님께서 몸소 여러분에게 표징을 주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
복음 루카 1,26-38
26 여섯째 달에 하느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를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고을로 보내시어, 27 다윗 집안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를 찾아가게 하셨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 28 천사가 마리아의 집으로 들어가 말하였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29 이 말에 마리아는 몹시 놀랐다. 그리고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였다. 30 천사가 다시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31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32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 주 하느님께서 그분의 조상 다윗의 왕좌를 그분께 주시어, 33 그분께서 야곱 집안을 영원히 다스리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 34 마리아가 천사에게,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자, 35 천사가 마리아에게 대답하였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 36 네 친척 엘리사벳을 보아라. 그 늙은 나이에도 아들을 잉태하였다. 아이를 못 낳는 여자라고 불리던 그가 임신한 지 여섯 달이 되었다. 37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38 마리아가 말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
한 남자가 밤에 산책을 하다가 가로등 아래에서 무릎을 꿇고 뭔가를 찾고 있는 사람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무엇을 찾고 있는 지를 물었지요. 그러자 자동차 열쇠를 찾고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산책을 하던 남자는 이 사람이 자동차 열쇠를 잃어버려서 얼마나 속이 상할까 싶어서 함께 찾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열쇠는 쉽게 발견되지 않는 것입니다. 산책하던 남자는 몇 분 후에 물었습니다.
“열쇠를 여기서 떨어뜨린 게 확실합니까?”
열쇠를 잃어버린 사람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사실은 이곳이 아니라 한 블록 뒤에서 떨어뜨렸습니다.”
같이 열쇠를 찾아주던 남자는 황당했지요. 이곳에서 떨어뜨린 것이 아니라면 열쇠를 찾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까요. 그래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아니, 그런데 왜 여기서 찾고 있는 거죠?”
그러자 이 사람은 대답합니다.
“불빛이 비치는 데가 여기니까요.”
불빛이 비치는 곳이라고 해서 잃어버리지 않은 곳에서 열쇠를 찾는 어리석은 이 남자의 모습에 웃음만 나옵니다. 그런데 우리들 역시 이러한 모습을 간직하며 살아갈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것에 결코 행복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이것에 자유롭지 못합니다. 또한 성인 성녀들이 주님 안에서만 행복이 분명히 있다고 말씀하셨으며 당신들의 삶을 통해 증명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주님 안에 머무르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런 우리들의 모습이 앞서 이야기했던 잃어버리지 않은 곳에서 열쇠를 찾는 어리석은 남자와 무엇이 다를까요? 우리 역시 어리석음을 간직하면서 힘들게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 안에만 머무르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때로는 주님 안에 머무르는 것이 손해인 것처럼 또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닌 불행을 가져다주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유한하고 부족한 인간의 머리로 이해하기에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성모님 역시 예수님 잉태 소식을 들을 때 그러했지요. 인간의 이해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예수님 잉태 소식. 그러나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모두 가능하며 하느님 뜻에 철저히 따라야 한다는 원칙에 충실하셨기에, 주님의 어머니 그리고 우리들의 어머니가 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과연 어디에서 행복을 찾고 있나요? 주님 안에서 행복을 찾는 지혜로운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믿는 대로 보지 말고 보이는 것을 믿어라(아인슈타인).
완벽한 배우자
이스라엘의 성모영보성당
어떤 형제님께서 완벽한 아내감을 찾아 오랜 세월을 헤맸다고 합니다. 외모도 또한 마음도 아름다운 아내, 능력 많고 성격도 좋은 아내, 사랑으로 가득한 아내.... 딱 한 번 결혼할 배우자는 완벽한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드디어 완벽한 여자를 만났습니다. 그렇다면 이 둘은 결혼에 골인했을까요?
아니었습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하네요. 왜냐하면 이 완벽한 여자 역시 완벽한 남편감을 찾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우리들은 완벽한 사람을 원합니다. 그러나 완벽한 사람을 원한다면 스스로 먼저 완벽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넉넉한 마음으로 상대의 욕구를 내 욕구처럼 배려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때 상대방도 나를 배려하고 마음의 문을 활짝 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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