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삼국지 역사는 내가 다시 쓴다
소설 속 전투를 지휘한다는 로망의 구현
최근작 ‘삼국지 13’부터 돋보인 현실성
2% 부족한 게임, 탄탄한 원작이 뒷받침
기사사진과 설명
‘삼국지’의 유비와
조조. |
대한민국에서 가장 크게 인기를 끌었던 전략 게임이라면 역시 ‘스타
크래프트’겠지만, 가장 폭넓은 세대가 플레이 경험을 가진 전략 게임이라면 ‘스타크래프트’ 외에 또 다른 경쟁작이 하나 있다. 일본 고에이-테크모
사의 전략 게임 시리즈 ‘삼국지’가 그 주인공이다.
살아 있는 캐릭터와 지금까지도 관용어구로 사용되는 이야깃거리들, 100만
대군을 세 치 혀로 날리는 지략과 만인지적(萬人之敵)의 용맹이 살아 숨 쉬는 실제 역사를 바탕으로 한 군담(軍談)소설인 동아시아 최대 히트작
‘삼국지연의’를 베이스로 했다.
1985년 처음 출시돼 최근작 ‘삼국지 13’이 발매된 2016년까지 무려 30년이 넘는
프랜차이즈의 역사를 가진 ‘삼국지’ 시리즈는 소설 ‘삼국지연의’를 베이스로 한 숱한 게임 중에서도 독보적인 인지도를 자랑하는 게임이다. 워낙
오랜 세월 삼국지 게임의 대명사로 군림한 것도 중요한 이유겠지만, 그보다도 역시 소설 속의 화려했던 전투에 직접 뛰어들 수 있다는 전략 게임만의
로망이 구현된 게임이라는 데 더 큰 이유가 있다.
중국 후한 무렵의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전략 지도에서 플레이어는
유비·조조·손권·원소 등 당대의 주요 군주들 중 하나를 골라 천하통일을 위한 군략을 펼치며 접전이 발생하게 되면 적벽·관도·형주 등 소설 속에서
익숙한 지명을 배경으로 한 전장에서 전투를 지휘하게 된다. 관우와 장비를 앞세워 적진을 돌파해 내는 것도, 제갈량의 신묘한 계략으로 적군을
궁지에 모는 것도 직접 가능한 게임이다 보니 원작 소설에 익숙한 팬들에게는 말 그대로 꿈의 전장이 구현되는 느낌을 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매력에도 불구하고 정작 게임이 가진 전략성 자체는 사실 그렇게 두드러지는 편은 아니다. 13편에 이르는 매
시리즈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대체로 ‘삼국지’ 시리즈의 컴퓨터 인공지능은 사람에 비해 크게 뒤떨어지는 편이기 때문이다. 전투 현장을 그려내는
전술지도에서도 소설 속 100만 대군의 위용은 화려한 그래픽이 아닌 ‘10000’과 같은 숫자로만 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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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비와
관우. |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 13편에 이르는 ‘삼국지’ 시리즈는 언제나 새로운 시리즈가 나올
때마다 게임 커뮤니티의 화제를 불러일으키곤 했다. 이번 편에서 관우와 여포의 무력이 몇으로 나왔는지, 제갈량과 사마의 중 누가 더 설전에
강한지, 아니 아예 세력적 측면에서 조조와 유비 중 누가 더 강하게 설정됐는지를 놓고 논쟁이 벌어지곤 했다. 이는 ‘삼국지’ 시리즈의 재미가
전투의 세밀한 구현 등에서 오기보다는 배경이 되는 원작의 탄탄함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단서다.
역사적 사실에 기반해 각색을
거친 원작 소설 ‘삼국지연의’는 수많은 영웅호걸이 등장해 천하를 놓고 자웅을 겨루는 대하드라마의 확고한 프로토타입이다. 수백 명에 이르는
등장인물들의 캐릭터가 확실한 편이고 강한 개성의 인물들이 얽혀 만드는 전쟁의 시나리오는 소수가 다수를 물리치는 언더독의 신화로, 당연한 승패를
뒤집는 전략의 기발함으로 박진감을 더했다. 게임의 부족한 설계와 구현이 가진 한계는 탄탄한 배경 원작과 원작을 사랑하는 플레이어들의 상상력으로
메꿔졌고, 30년을 넘게 시리즈를 이어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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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13’의 하북 지도.
병력과 생산력이 타 지역에 비해 월등해 하북의 패자가 천하통일을 이루기 쉽다. 실제 후한시대 중국 경제력을 현실적으로 반영했다. 필자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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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출시된 ‘삼국지 1’.
국내에는 영문판이 들어와 liu bei(유비), cao cao(조조) 등으로 표기됐다. 필자
제공 |
2016년에 출시된 ‘삼국지 13’은 여전히 게임성
자체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지만, 과거 시리즈보다 좀 더 현실성 있는 삼국시대의 묘사를 통해 나름의 호평을 받고 있다.
관우·장비·조운 등 맹장 몇 명만 보유하면 100만 대군도 막아내던 전작들과 달리 13편에서는 특정 장수의 능력치보다 실질적인 병력과 물자가
전투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됐다.
더불어 고대 중국의 실질적인 경제력도 현실적으로 반영됐다. 남중국이 개발되기 전인 서기
200년대의 중국 상황을 반영해, 영토의 생산력이 확실하게 당대의 중심이었던 하북·중원에서 두드러지고, 촉과 오의 근거지는 낮은 생산성과 인구로
그려졌다. 연의와 정사 사이에서 정사에 대한 연구가 두드러지는 최근 추세에 발맞춰 게임 시리즈에서도 좀 더 현실성 있는 삼국시대를 그리고자 한
노력이 반영돼 13편에서는 하북의 맹주였던 원소의 활약이 무척 두드러진다.
시리즈 중 최고 명작으로 아직까지 회자되는 3편을
플레이했던 추억을 가진 올드 게이머들, 영원한 고전으로서 ‘삼국지연의’의 팬인 젊은 게이머들 모두에게 ‘삼국지 13’은 세대의 벽을 넘어 함께
나눌 수 있는 즐거운 화젯거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모든 삼국지 관련 콘텐츠가 그렇듯이, 오랫동안 이야기하다 보면 결국 누가 최강이냐를
두고 다툼이 벌어지기도 할 것이다. 소설이나 게임이나 원래 ‘삼국지’는 그렇게 즐기는 것이다.
<이경혁
게임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