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 뜻 애매모호 내용 파악 어려워, 한자 병용해 우리말 가독성 높여야
한 통계에 의하면 인터넷에 가입한 한국인이 1 백 50 만 명을 돌파하여, 인구가 3 배나 많은 일본보다 10 만 명이나 더 많다고 한다. 21 세기를 맞는 한국인의 기민성을 엿볼 수 있는 흐뭇한 소식이다. 제대로 교육을 받고 좀 부지런한 사람이라면 인터넷을 통해 세계 각 신문을 현지인보다 먼저 받아볼 수 있고 관심분야는 어디서나 최신정보를 찾아 내어 이용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인터넷에 뜨는 여러나라의 문자를 놓고 비교해 보면, 우리나라 정보의 발신기호인 우리말 표기문장의 가독성 (readability) 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이 발견된다.
우리나라 인터넷 문장은 한글전용인데, 늘 써서 귀에 익은 말도 아닌 생소한 말까지도 한글로만 표기해 놓고 있다. 이런 경우 앞뒤 문맥을 살펴봐도 그 뜻을 짐작하기 어려운 때가 많다. 이해를 못해도 좋다 (沒理解 몰이해) 는 식의 표기는 정보가치와 정보교환력의 근본을 훼손시키는 불합리한 생각이고 나쁜 관행이다.
일본신문은 우리 한글에 해당하는 가타카나와 히라가나를 안 읽어도 마치 아이콘 같이 시각성이 뛰어난 한자를 잘 혼용하므로 한자의 字義 (자의) 만 갖고도 전체 내용을 웬만큼 파악할 수 있으나, 한글을 전용한 우리나라 신문은 그렇지가 않다. 오히려 중요한 핵심어 자체의 뜻이 애매모호할 때가 비일비재하여 다른 글자를 다 읽어보아도 내용의 파악이 잘 안 되고 또 읽기도 피곤하다. 한글 문장에 약간의 한자를 요령있게 혼용하면 피할 수 있을 이러한 현상은 인쇄매체에서보다 동적인 인터넷에서 더욱 크다. 이것은 문서 작성자가 한자의 장점인 시각성과 표의성을 살리지 않은 탓이다.
영문은 우리와 전혀 다른 문화권의 문자이지만 단어나 관용구를 한 단위로 읽고 알파벳을 하나씩 읽지 않는다.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영한사전에서 찾아보면 된다. 여기에 비해 한글 전용의 우리글은 한글을 하나씩 다 읽어야 하고, 문장 속의 핵심어가 대부분 한자이다. 이를 한글로 표기해 놓아 이해하기가 어렵다. 또 우리 한자에는 동음이의어가 많아서 한자를 모르면 사전에서 뜻을 찾기도 어렵다. 이것은 분명 21 세기 지식정보화 시대에 바로잡지 않으면 안 될 文難 (문난) 현상이다.
그럼에도 별 대안도 없는 상황에서 한자는 어려운 글자이고 남의 글자라고 타박하고, 어린이 한자 교습을 죄악시하는 주장이 있다. 이것은 한글 맹목주의에 빠져있는 사람들이 불완전한 한글전용론을 정당화하려는 것에 불과하다.
한자는 다른 글자와는 달리 한 글자를 알면 많은 한자어 (신조어 포함) 의 뜻까지 터득하고 응용력도 생긴다. 여기에 비하면 한글은 소리 나는 대로 소리를 기록할 수 있는 뛰어난 장점은 있으나 그것은 기호에 가깝다.
일본의 경우는 한자가 정보 발신의 핵이며 지능계발에도 좋다 하여 유치원에서부터 한자교육을 강화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선 한글만 알면 된다는 세력들이 초등학교에서의 한자교육만은 절대 안 된다며 한자교육을 막고 있다. 그들은 한문 과목은 중.고교 과정에 있으니 중.고교에서 하면 되므로, 초등학교에서 기초한자 교육은 어린이에게 불필요한 부담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초등학교에서 국어의 기초한자 (우리말의 어원 한자) 교육이 全無 (전무) 한 터에, 중.고교에서 갑자기 복잡한 漢文 (한문) 교육을 하면 교육의 실효성이 있을 것인가.
언어는 감성표현과 지식정보를 전달하는 도구요 수단일 뿐이다. 따라서 국어교육에서 한글전용이 애국이라는 등의 愛國論 (애국론) 은 부당하며 어디까지나 도구의 실리 여부를 따져 판단할 문제인 것이다.
식자는 국민의 한자문맹화로 인하여 우리의 문화 위상이 IMF 경제 위기보다 더 심각한 위기상황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물밀 듯 들어오는 외국의 저질문화 그 자체도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이지만 더 위험한 것은 이들을 선별하고 자정할 수 있는 우리의 전통문화가 단절된 상황과 전통적 가치에 대한 자긍심이 실종된 우리들의 정신자세이다. 인터넷은 우리 민족문화와 不可紛 (불가분) 의 관계인 한자의 장점을 잘 활용하여 우리말 표기의 가독성을 제고하고, 올바른 인터넷 문자생활을 통한 국민의 건전한 문화의식 회복에도 큰 역할을 해야 한다.
- 2000 년 3 월 20 일자 「뉴스파일」-
(강헌 선집 4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