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eiled Landscape 두 번째 풍경전 2018. 1. 23 - 3. 25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프로젝트갤러리 (T.02-2124-5248, 중계동)
글 : 이문자 편집장(전시가이드)
김기수, 김상균, 노충현, 뮌, 안창홍, 이창원, 장종완, 홍순명, 황세준 등 총 9명의 작가 작품을 통해 겉으로 보이는 대한민국의 풍경 이면의 진짜 풍경, 두 번째 풍경을 들여다보는 전시회로 준비했다.
김상균, Winter Comes, Oil on canvas, 130.2x194cm, 2017
김상균(1980)은 인터넷을 비롯하여 영화, 드라마, 광고, 입간판, 회화 등 다양한 미디어에서 이미지들을 수집하고 재조합하여 새로운 이미지를 생산한 뒤, 이를 비현실적인 생생함으로 화폭에 옮긴다. 그에게 대중매체 이미지는 비판의 대상이자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이다. 이는 소비사회에서 절대적으로 대중매체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대중들에게 다가가는 가장 강력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오로지 이익만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실재와 상관없는, 소비의 미덕만을 내세우는 미디어 이미지는 생각할 겨를 없이 끝없이 생산되고 소비된다.
노충현, 원숭이, Oil on canvas, 115x115cm, 2017
노충현(1970)의 그림에는 군데군데 칠이 벗겨진 낡은 벽, 녹슨 문과 쇠창살, 또는 인공바위 등이 있는 을씨년스런 우리에는 다만 동물들이 갖고 놀던 공, 폐타이어, 나무 조각, 밧줄 등만이 자리한다. 당연한 풍경 이면의 풍경이다. 이는 그가 직접 동물원에 가서 찍은 사진을 참조하여 그곳의 사물들을 자의적으로 구성, 일종의 무대 장치로 기능한다. 무대 위 사물 또는 사람은 공중에 떠 있거나 매달려 있는데 이는 우리 사회의 불안과 위기, 때로는 세월호 사건처럼 너무나 비상식적이고 비인간적인 상황, 이에 따른 개인의 심리적 상태 등을 간접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황세준, 세계배IV Worldcup IV, Oil on canvas, 각 193×130㎝, 2011
황세준(1963)은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풍경, 본래의 모습에서 살짝 기름기를 걷어낸 듯 낮은 채도로 얇게 칠해진 화면은 쓸쓸하면서 담백하여 본질에 가까운 느낌이다. 그의 그림은 삶의 지표에는 무감각하고 그저 잘살고자 하는 시대에 대한 우화로, 그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결핍과 우울이라는 내면 풍경을 슬쩍 보여주고 있다.
김기수, 대단지 입구, Oil on canvas, 112x145cm,2014
김기수(1968)의 도시 경기도 ‘성남’은 작가의 고향이자 1971년 8. 10 광주대단지 사태의 배경이 되는 곳이다. 광주대단지사태는 서울시의 인구분산 정책에 따라 광주군 중부면 일대에 도시 빈민을 이주시키려는 이주정책 시행에서 비롯되었다. ‘선 입주 후 건설’이라는 개발의 구조적 모순으로 치솟은 분양가를 감당할 능력이 없는 빈민들의 분노는 결국 시위로 폭발하였다. 그 결과 정부에서 기본대책을 마련, 일정부분 목적을 달성하였다고 볼 수 있다.
홍순명, 팽목.2014년4월25일, Oil on canvas, 218x291cm, 2016
홍순명(1959)은 긴 시간 동안 세계 각국의 정치, 사회적 상황을 그려오면서 그는 점차 안으로 시선을 돌려 반성적인 태도로 2014년부터 우리 삶에 밀착된 사건을 다루는 연작 <메모리스케이프>를 시작했다. 이는 밀양시, 여수 봉두 마을 거주민의 송전탑 건설 반대, 세월호 사건, 8개 군부대 사격장이 있는 경기도 포천 사격장 폭발 등의 사건과 사고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으며, <팽목. 2014년 4월 25일>은 304명이 어이없이 희생된 바다를 바라보며 느꼈던 막막함, 부끄러움, 자괴감, 분노의 감정을 꾹꾹 눌러가며 만든 <메모리스케이프–팽목>은 사회적 시스템 부재에 따른 참혹한 결과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고 발언하는, 기념비적 풍경이다.
장종완, 바르게 살자 Walk with God, Oil Painting on lamb skin, 53x72cm, 2016
장종완(1983)은 미디어에 떠도는 풍경, 광고, 홍보 엽서, B급 조형물 등에서 다양한 이미지들을 차용, 분해하고 재조합하여 원하는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세상에 없는 유토피아적 풍경이다. 이는 어린 시절 외국인의 왕래가 많은 울산에 살면서 종교단체 사람들에게 받은, 알프스를 배경으로 초식동물과 육식동물이 평화롭게 공존하고 곡식과 과일을 풍성하게 수확한 사람들이 행복하게 웃고 있는 풍경의 전단지 그림에서 받은 강렬한 느낌에서 비롯되었다.
안창홍, 가을과 겨울사이 A Cockscomb Flower Bed, Acrylic,oil,pigment ink on canvas,136x346cm, 2014
안창홍(1953)이 그린 맨드라미 꽃밭은 선바위 마을 작업장의 뜰 안에 있다. 언젠가 자연을 그리겠다는 생각을 실제로 옮기면서 작업실 앞마당을 가꾸기 시작했다. 이는 생각보다 쉽지 않아서 2,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고, 그동안 꽃 한 송이가 나고 자라 소멸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생명들과 요소들이 뒤엉켜 치열하게 터를 잡아가는지를 깨달았다고 한다. 어렵게 이루어진 꽃밭을 바라보며 그가 가장 그리고 싶었던 대상이 맨드라미꽃이었다. 맨드라미는 식물보다 동물에 가까운 느낌으로, 원초적이고 강렬한 붉은 빛, 좌우비대칭의 형태, 강한 생명력이 느껴지는 억센 줄기, 다양한 색의 잎들 그리고 시들어갈 때 온몸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듯 처연하기까지 하다.
이창원, 4개도시 바그다드,평양,서울,후쿠시마, Show cases, pedestals, LED lighting, 각 113x45x45cm, 2014
이창원(1972)은 정치사회적인 보도사진, 반사광, 플라스틱 등을 이용한 다양한 형식의 작품을 통해 예술과 일상의 현실적 문제들 사이의 관계를 다뤄왔다. <네 개의 도시>는 바그다드, 평양, 서울, 후쿠시마를 원경으로 보여주는 풍경이다. 이 도시들은 간접적으로는 대중매체를 통해 언제든지 바라볼 수 있고 정보도 얻을 수 있지만 실제로 방문하기는 매우 어려운 장소들이다.
뮌(1972)의 <캐릭터>는 전구와 아크릴 판, 철제 선들이 복잡하게 연결된 오브제로, 한국사회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권력의 관계망을 의미한다. 마치 서사극의 등장인물 관계도 같은 형태에서 빛을 발하는 전구가 연극 속의 주요 등장인물을 뜻하는 ‘캐릭터’인데, 정계·재계·언론계의 주요 인물을 의미한다. 이는 상류사회의 번지르르 한 겉모습처럼 아름답지만, 실은 자본과 권력의 결속으로 자신들의 세력을 공고히 하는, 우리 사회의 특수한 단면을 비판하는 추상적 풍경이다.
<공공극장>은 가운데서 벌어지는 하나의 사건을 바라보는 다섯 가지 시선에 관한 이야기다. 일반적으로 공적영역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들이 같은 장소에 있던 각 개인들에게 똑같이 보이거나 받아들여지지 않는데, 이는 각 개인의 위치, 입장, 판단 능력 등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들은 각기 개인 극장에서 이를 바라보고 개인의 경험치로 판단하곤 한다. 미디어에서 생산되는 동일한 이미지, 뉴스를 보는 방식 역시 다르지 않다. 그래서 뮌은 ‘국가나 사회의 구성원에게 두루 관계되는 것’이란 의미의 ‘공공’ 이미지를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지 정해지지 않은, 시대와 집단의 속성에 따라 변화하는 의미를 지닌 것’으로 상정한다. 따라서 작품은 하나의 객관적 풍경에 대한 주관적 판단 너머 진정한 공공성 실현에 관한 고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