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스타일 [6]
"꼭 한국 사람처럼 먹네!" 엄마가 말했다. 피터가 잠깐 화장실에 갔을 때 부모님은 몸을 숙이고 소곤 거렸다. "녀석이 목욕탕 앞에서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도망갈 거라고 장담해." 아빠가 말했다 "안 그럴 거라는 데 100달러 걸게." 엄마가 대꾸했다. 다음날 목요탕 로비에서 각자 남녀 탈의실로 흩어질 때가 됐을 때 피터는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남자 탈의실로 들어갔다. 엄마는 아빠를 행해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어 보이면서 얼른 내깃돈 달라고 손가락을 비볐다.
목욕탕은 우리가 서울에서 가던 데보다 작았다. 온도가 각각 다른 탕 ― 냉탕, 온탕, 열탕,― 세개가 있었고, 그 뒤에는 샤워기 열두개가 좌르륵 달려 있어 사람들이드 앞에서 작은 플라스틱 스툴에 쭈그리고 앉아 몸을 행궜다. 저쪽 구석에는 사우나와 한증막이 하나씩 있었다.엄마와 나는 샤워를 하고 따끈따끈한 열탕에 천천히 몸을 담갔다. 우리는 미끌미끌한 파란색 타일이 깔린 탕 안에서 나란히 앉았다. 한쪽 구석칸막이 안에서는 속옷차림의 아주머니 세 사람이 성심껏 손님들의 때를 밀고 있었다. 목욕탕 안은 따뜻하고 조용했다.
유일하게 들려오는 소리라고는 냉탕 위 천장에서 시종일관 콸콸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 소리와 이따금씩 세신사가 때를 밀면서 모르는 여자의 매등을 찰싹 치는 소리 뿐이었다. "너 보지 털 깎았니?" 엄마가 물었다. 나는 창피해서 다리를 꽉 오므려 꼬았다. "좀 다든었어."나는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그렇게 하지마,"엄마가 지시하듯 말했다. "난잡한 여자처럼 보여." "알았어." 나는 슬그머니 몸을 물속 깊숙히 밀어넣으며 대답했다. 그렇게 하지 말라고 단단히 이르는데도 자꾸 늘어만 가는 문신을 엄마가 못마땅한 얼굴로 빤히 쳐다보고 있는 게 느껴졌다. "피터는 맘에 들어." 엄마가 말했다. "걘 완전 뉴욕 스타일이던데?"
실제로 뉴욕에 살아본 사람이라면 피터를 '뉴욕 스타일'이라고 하진 않을 것이다.피터가 뉴욕대학에 다니긴 했지만 서부 사람들이 흔히 동부 사람 성격이라고 여기는 까칠하고 조급한 성격은 절대 아니였다.피터는 인내심이 많고 온화한 사람이었다.그는 우리 엄마가 아빠에게 그랬듯이 내 성격을 보완해주었다. 아빠는 나처럼 매사에 급하고, 뭔가 잘 안 될 기미가 보인다 싶으면 바로 포기하고 그걸 다른 사람에게 떠넘겨버리는 사람이었다. 엄마가 그렇게 말한 것은 피터가 믿음직한 사람이라는 걸 일찌감치 보여줘서 마음에 쏙 든다는 뜻이었다.
"내가 그리로 갈께." 피터가 휴대전화 너머에서 말했다. "퇴근하자마자 바로 갈거야." 그날은 금요일 밤이었고 피터는 바에서 야간 교대 근무를 했다. 해가 뉘엇뉘엇 지면서 하늘이 시나브로 핑크빛으로 물들어갔다. 나는 지하철 쪽으로 걸어가면서 굳이 그럴 것 없다고 말했다. 피터는 아무리 빨라도 두시는 돼야 퇴근할 것이고 나는 아침에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탈 계획이라 한밤중에 그렇게 올 필요가 없었다.
나는 부시윅으로 가는 M트레인을 탔다. 친구 그레그의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질 생각이었다. 그레그는 레블업이라는 밴드에서 드럼을 연주했고 데이비드 블레인 [온갖 극한의 묘기를 보여주기로 유명할 길거리 마술사.] 의 더 스테이크하우스라고 부르는 창고에서 살았다. 이따금씩 DIY 쇼 [언더그라운드 음악가들이 창고나 지하실에서 하는 공연] 가 열리기도 하는 그곳에서, 그레그는 룸메이트 다섯명과 함께 석고보드를 세워 직접만든 좁아터진 다락방에서 잤다.
그 방을 보니 [피터팬]에서 '잃어버린 아이들'이 자는 나무 요새가 떠올랐다. 나는 무감각한 상태로 거실 소파에 누웠다. 그러고 있자니, 이친구들의 어머니들이 와서 이런 모습을 본다면,음악가들이 싸구려 방에서 먹고 자며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열정을 자유롭게 추구하는 모습을 본다면 과연 뭐라고 생각할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그리고 기억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때를 다 밀고 나서 엄마는 나와 함께 집에 가는 길에 H마트에 들러서 장을 보고 가자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