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푸코를 위한 일본 여행이었다.
30년 전, 고향 강릉의 순진한 아가씨를 꼬드겨 신혼생활을 하고 첫 아이를 낳았던 그곳 일본 동경의 아련한 추억을 보고 싶어하던 아내를 위해, 오래전에 읽었던 푸코의 책 한권과 함께 부산항을 출발하였다.
오사카를 거쳐 교또와 시즈오카를 들러 드디어 동경에 도착하였다.
우리가 살았던 학교 앞 4조 반의 다다미 일본식 집은 이미 헐어버리고 없었다.
대신 학교 안의 우람한 은행나무와 우에노 공원과 우에노 아메요꼬 시장을 둘러보면서 과거를 찾을 수 있었다.
일본은 무너지고 있었다.
30년전의 흥청거림은 간 곳이 없었다. 빠찡코의 시끄러웠던 소리와 공중전화 박스에 붙어있던 성매매 전단지는 내가 다녔던 학교 안의 가을의 은행나무 잎 만큼 많이도 거리에 떨어져 있었다. 이제, 그것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패전 후, 미국에 매달려 살아오던 일본이 마지막으로 잡아야 할 지푸라기는 역시 미국 뿐이었다.
센카쿠 열도에 대한 중국과의 분쟁은 무너지는 제국의 보수 정치인들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다행한 일이었다.
TPP, 아시아 태평양의 다자간 무역 협정을, 미국과 일본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 일본으로서는 중국의 위협에 대해 미국의 애정을 다시 한번 확인 할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역시, 미국은 일본의 러브콜에 응해주었다. 일본 여행 중에 뉴스에서 미국과 일본은 다시 한번 군사 동맹을 결의하고 있었다. 아마, 끝나지 않은 동아시아의 625전쟁은 센카쿠 열도에서 재발 될 가능성이 높았다.
박근혜는 망서리고 있다.
중국의 위협에 자유무역 협정을 동의할 수 밖에 없었고, 그런 한국에 대해 미국은 TPP로 협박을 하고 있다.
박근혜는 어디를 선택할 것인가? 19세기 말의 조선의 갈팡지팡이 재연되는 기분이었다.
일본의 자본주의는 한계점에 도달했다.
후쿠시마의 핵이 아니었다고 해도 그 한계점은 불과 몇 년이 빨라졌을 뿐이었다.
미국의 재정압박은 공공기관의 셧다운으로 해결하고자 했다.
이미 자본주의적 국가경영은 불가능함이었다고 세계 대전에서 예견했으나, 제국주의 국가들은 그 돌파구를 사회주의와 파시즘과 수정자본주의로 겨우 이겨낼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자본주의는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맑스와 아담 스미스와 히틀러와 레닌과 그람시와 또 그를 따랐던 추종자들, 모택동과 스탈린 김일성 그리고 박정희 또 누구였던가. 19세기 이후 무수히 많은 영웅들과 천재들은 모두 한 뿌리에서 출발했다는 것이 파국의 제국들에서 증명이 되고 있다.
미국의 디트로이트는 아마 10년 후가 되면 울산에서 재연될 것이다.
러시아의 체르노빌이 미국에서 일본의 후쿠시마에서 재연되고 있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로 나누는 좌/우파의 어리석음에 대해서 이미 푸코가 비웃고 있었음을 오히려 좌파들이 몰랐다.
유럽 중세 이후의 절대왕조 국가가 중상주의 국가였고, 그 틈새를 비집고 프랑스에서 부루조아가 탄생했다.
중앙집권 왕권의 확립을 위해 프랑스의 왕들은 상인과 수공업자들을 이용해 귀족들을 견제하기 시작한 것이 근대 국가의 행정조직이었다.
이미 그때부터 프랑스의 부루조아들은 행정조직을 장악할 수 있었다. 무식한 귀족들은 절대 왕조의 힘이 자신들을 꼼짝 할수 없게 만든 뒤에야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무식한 귀족들의 돌파구는 계몽주의 였다. 행정조직을 장악했던 부루조아들과 국왕의 공세에 대항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것 밖에 없었다.
교회와 국왕과 부르조아들의 절묘한 합작품의 유럽의 중상주의 국가권력이, 자본주의 제국주의 국가로 이동할 수 있는 힘이었다.
계몽주의는 교회에 대항하여 합리성과 이성을 요구했지만 오히려 그것을 이용한 것은 부루조아였다.
국왕의 도우미였던 부르조아는 그들의 행정조직을 자신들의 국가권력으로 이용했고, 그것을 유럽과 신대륙의 혁명으로 발전시켰다.
산업혁명, 프랑스 혁명,러시아 중국의 사회주의 혁명 그리고 19세기 20세기 일어났던 수 많은 혁명은 모조리 부루조아의 혁명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한반도의 작은 나라 대한민국에서도 역시 같은 것이었다. 친일파였던 박정희 군사 쿠테타, 610항쟁 역시 그랬다. 그 이후 벌어졌던 노동자 대투쟁 역시 프로레타리아의 혁명은 아니었다.
이미, 프로레타리아는 영국의 산업 혁명 이후 챠티스트 운동과 러다이트 운동이 결과물로 사라지고 없었다.
미련한 한국의 좌파들은 지구 상에 잠시 등장했다 사라진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집착을 하고 있다.
자본주의가 탄생한 배경에는, 부루조아를 이용해 귀족들을 제압하거나 그들의 눈을 밖으로 돌리기 위해 마치 전쟁을 스포츠 처럼 생각했던 유럽왕들의 전쟁비용에도 있었다.
유럽의 국가들은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민족이 달랐다. 언어도 달랐다.
유럽왕들이 이용했던 부르조아들에게 교회의 언어였던 라틴어를 강요했고, 어려운 라틴어는 무식한 귀족들을 속이기에 충분했다.
유럽의 절대왕조 국가들은 그 왕족들의 뿌리가 같았기에 그들의 전쟁 또한 로마시대의 전쟁 처럼 원한에 사무친 치열함이 없었다.
같은 종교에 같은 친척끼리의 전쟁이었기에 그토록 사무칠 정도가 아니였기 때문이었다.
다만, 돈이 문제였다. 그 돈을 스페인 국왕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해결 할 수 있었다. 금이 생활도구 였을 정도로 풍부했던 아메리카 대륙에 절대왕조 유럽의 왕들은 몰두할 수 밖에 없었다.
교회 또한 그러했다.
스페인이 아메리카 대륙으로부터 도둑질 한 금은, 가까운 프랑스의 상업과 제조업을 발달시켰고, 그것이 영국의 산업혁명을 이어졌고, 국왕을 도왔던 부루조아들의 세상으로 변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마침내, 부루조아들은 모든 것을 장악할 수 있었다.
국왕의 심부름 뿐에 불과했던 부루조아들이 그들의 행정조직을 이용해 국왕 마저 몰아내고, 미련한 절대왕조의 국가 보다 더욱 강력한 제국주의 국가를 탄생시킨 것이다.
그것이 근대 국가이고 유럽의 사민주의 국가였고 사회주의 국가였고 파시즘의 국가였다.
최초의 사민주의 국가 바이마르 공화국의 헌법을 살짝 바꾼 것이 파시즘의 히틀러였다는 것이 그것의 증거였다.
일본의 우익 정치인이 망언은 절대로 망언이 아니었다.
파시즘과 사회주의와 복지국가는 부모가 같았던 카인과 아벨에 불과했던 것이다.
동해로 건너오기 위해 사카이 미나또 항에서 기다리던 하루, 마쯔에성을 방문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손자가 건축한 마쯔에 성은 아름다웠다.
물의 나라 일본, 그 물의 치수에 성공해서 지구상의 어느 나라보다 풍요를 누렸던 일본이 자본주의 제국주의 나라로 변모했던 원인 또한 부루조아에 있었다.
일본의 변방 사쯔마 지역의 하급 무사들은, 이미 그곳에서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을 모방하여 상업과 수공업을 장악한 터였다. 그들이 일으킨 혁명이 메이지 유신이었다.
지방자치의 나라, 농업의 공동체가 완벽히 살아있던 일본은 제국주의 국가로 탈바뀜하면서 급격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자본주의의 마무리는 아마 전쟁일 것이다. 그 징조가 동 아시아에서 보이고 있다.
센카쿠 열도, 중국와 일본의 대결, 그리고 미국 한반도 러시아....2차 대전이후의 힘의 균형이 좌/우의 대결이 아닌, 자본주의 였다는 것이 이곳 동아시아에서 증명이 될 것이다.
한국 전쟁은 진행형이다.
그리고 그것이 자본주의의 파국으로 이어질 것이다.
박근혜는 과연 TPP에 참가할 것인가?
차라리 무식한 주사파 이석기가 귀엽기 까지 하다.
부르주아의 국가 권력 장악이 근대사이고 그것이 20세기 민족국가이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도구가, 우리가 하늘 처럼 믿고 있는 민주주의라는 것을 좌파들은 알고 있는지.
자본주의는 국가 권력의 제국주의화의 또 다른 이름에 불과하다는 것은 알고나 있는지. 그래서 모든 자본주의 국가들은 제국주의가 될 수 밖에 없고, 제국주의의 종말은 전쟁 뿐이라는 것.
오히려 사민주의는, 더러운 자본주의의 생명을 조금 더 연장할 뿐이라는 것을 아는지.
어쩌면, 인류가 이 미련한 시스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지점은, 전쟁으로 파국을 맞은 그 이후가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