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나해 연중 제29주간 월요일
루카12,13-21
저주 받은 돈도 축복이 되게 하시는 분
복권이 당첨되었으면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들어봅시다.
우리나라 돈으로 3억 원 상당의 복권에 당첨된 사나이의 가족이 벌이던 자축 파티가 살인극으로
돌변하여 일가족이 패가망신하는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93년 9월 25일 스페인에서 있었습니다.
스페인 바로셀로나 경찰은 이날 현지의 한 청년이 복권이 당첨돼 4천 9백만 페세타(약 3억 원)를
타게 되자 지난 23일 가족과 함께 잔치를 벌이고 즐기던 중 가족에게 나눠 줄 액수를 놓고 17세의 여동생과 심하게 말다툼하다가 그만 칼로 동생을 살해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자기 형에게 자신에게도 유산을 나누어 달라고 말해달라고 청합니다.
유산이라면 형제에게 모두 주었을 테지만 형이 모두 가로채려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시선은 전혀 돈에 있지 않습니다.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관이나 중재인으로 세웠단 말이냐?”
예수님은 돈이 공평하게 분배되게 하시기 위해 존재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돈보다는 사랑에 신경 쓰도록 존재하시는 분이십니다.
모든 불행은 돈 때문에 깨지는 관계 때문입니다.
월간잡지 'MONEY'의 통계조사에 의하면, 미국인의 82%가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이
돈이라고 합니다.
동시에 미국인의 53%가 최고로 걱정하는 것도 돈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돈보다 관계에 집중하라고 하십니다.
안식일에 유태인 세 명이 예루살렘에 왔습니다. 당시에는 은행이 없었기 때문에 세 사람은 가지고 있던 돈을 함께 파묻었었습니다.
그런데 세 사람 중의 한 사람이 몰래 그곳에
되돌아와서 돈을 꺼내 가지고 가 버렸습니다.
다음날 세 사람은 현자로 알려져 있던 솔로몬왕에게 가서, 세 사람 중에서 누가 돈을 가져갔는가를 알아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왕은 “당신들 세 분은 매우 현명한 분들이니까 우선 내가 지금 곤란을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도록 도와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당신들 세 분의 문제는 내가 해결해 주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어떤 젊은 아가씨가 한 남자와 결혼하기 약속했습니다.
얼마 후 아가씨는 다른 남자와 사랑하게 되어, 처음의 남자를 만나 헤어지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위자료도 내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남자는 위자료는 필요 없다고 하면서, 그녀에게 파혼을 허락해 주었습니다.
그녀는 많은 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어떤 노인에게 유괴되었습니다.
그녀는 ‘나는 결혼할 것을 약속했었던 남자에게 파혼하자고 요구했는데도 위자료도 내지 않고
허락받았습니다.
당신도 그렇게 해주셔야 합니다.’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러자 노인은 돈을 빼앗지 않고 그녀를 그냥 놓아주었습니다.”
솔로몬 왕은 이 사람들 중에서 가장 칭찬받을 사람인가 하고 물었습니다.
첫째 번 남자는 “그녀와의 파혼을 허락해 주면서도 위자료를 받지 않았던 남자가 가장
훌륭한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두 번째도 첫 번째 남자의 말에 동의했습니다.
그러나 세 번째 남자는 “이 이야기는 앞뒤가 맞지 않고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습니다.
첫째, 유괴라고 하는 것은 돈을 얻으려고 하는 짓인데, 돈도 받지 않고 놓아주었다는 것은
조리가 없는 이야기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솔로몬은 큰소리로, “그대가 돈을 훔친 범인이렷다! 다른 두 사람은 사랑이나 처녀와 약혼자 사이의 인간관계, 혹은 그사이의 긴장에 주목하는데, 그대는 오로지 돈만을 생각하고 있다.
그대가 범인임이 틀림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솔로몬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계시면 돈보다 관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복권 당첨금 때문에 형제끼리 싸울 때 부모가 마음 아파함을 느꼈다면 그러한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두 남매에게 부모는 어떤 역할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부모가 있다면 형제는 싸우지 못합니다.
그러면 돈이 관계를 깨지 못합니다.
돈 때문에 관계가 깨진다면 이는 예수님의 현존이
그 사람들에게는 어떤 힘도 발휘하지 못함을 의미합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나온 ‘마이다스의 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손만 대면 다 금으로 변한다는 뜻입니다.
사실 이 신화는 좋은 의미의 손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미다스라는 왕이 신으로부터 자신이 만지는 모든 것이 금으로 변하는 축복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는 만지는 모든 것을 금으로 만들어버렸고 음식도 그래서 먹을 수 없었으며 나중에는 외동딸도 금으로 만들어버립니다.
신이 인간이 황금을 제어할 능력을 갖지 못하게 한다면 신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역할을 하려고 하십니다.
돈을 나누는 게 문제가 아니라 돈 때문에 관계가 깨지는 일이 없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부모가 죽으며 형제간에 우애 있게 지내라고 하는 마지막 말을 하듯, 예수님은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분을 믿으면 그래서 돈이 아무리 많아도 돈 때문에 안 좋은 일이 발생하는 일은 없습니다.
신학자 팀 켈러(Tim Keller)는 “진정한 자유는 ‘구속의 부재가 아니라 오히려 올바른 구속을
찾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예수님께서 우리를 당신 멍에를 메라고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그 멍에는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입니다. 그리스도와 동행하십시오.
그러면 돈과 관계의 행복을 다 얻을 수 있습니다.
돈을 제어할 능력과 그릇이 된다면 하느님은 얼마든지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