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31일(주)
* 시작 기도
주님...
이사야 선지자 당시 앗수르의 침략 야욕으로 인하여 남유다는 좌불안석입니다.
그들은 틈만 나면 그들을 도울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판단되는 애굽을 바라보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 것을 천명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애굽은 신이 아니라 연약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소유한 말의 수효도 의지하지 말 것은 주께서 손을 펴시면 돕는 자나 도움을 받는 자가 다 엎드러져 멸망할 것이기 때문입니다(사 31:1-3).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은 그 엄한 명령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습니다.
오늘 나의 모습이 그러합니다.
주를 믿는다고 말은 청산유수처럼 잘도 하지만 옛 사람은 끊임없이 애굽으로 달려가는 것을 봅니다.
마치 애굽이 내가 바라보고 달려가야 할 목표지점처럼 여기는 것 같습니다.
애굽은 세상인 것을 알면서도 이를 버리지 못하는 나를 주님의 공의로 심판하소서.
애굽으로 향하는 나의 마음을 다스려주옵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니오니 나를 불쌍히 여기사 긍휼을 베푸소서.
오늘은 공동체로 예배하는 주의 날입니다.
이 하루도 주님과 연합하여 동행하기 원합니다.
나를 장악하여 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고전 10:23-33
제목 :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23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24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25 무릇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26 이는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주의 것임이라.
27 불신자 중 누가 너희를 청할 때에 너희가 가고자 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 놓은 것은 무엇이든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28 누가 너희에게 이것이 제물이라 말하거든 알게 한 자와 그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
29 내가 말한 양심은 너희의 것이 아니요 남의 것이니 어찌하여 내 자유가 남의 양심으로 말미암아 판단을 받으리요.
30 만일 내가 감사함으로 참여하면 어찌하여 내가 감사하는 것에 대하여 비방을 받으리요.
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32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33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위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 나의 묵상
여러분은 ‘모든 것이 허용되었다’고 말하지만, 모든 것이 다 유익한 것은 아닙니다.
또한 ‘모든 것이 허용되었다’고들 그러지만 모든 것이 다 덕을 세우는 것도 아닙니다.
누구나 자기 유익을 구해서는 안 되고,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야 합니다.
시장에서 파는 고기는 어떤 것이든 양심을 위하여 꼬치꼬치 캐묻지 말고 그냥 사서 먹으십시오.
땅과 그 안에 가득한 모든 존재물이 다 주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믿지 않는 사람이 여러분을 식사에 초대하여 여러분이 그 집에 가거든, 차려 놓은 음식은 양심을 위하여 꼬치꼬치 캐묻지 말고 무엇이나 먹으세요.
하지만 누군가가 ‘이 음식은 제물로 바쳤던 것이오’라고 말을 하면 말을 한 그 사람과 그의 양심을 위하여 그 음식을 먹지 마십시오
내가 여기서 말하는 양심은 여러분 자신의 양심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양심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어찌하여 나의 자유가 다른 사람의 양심에 의해서 판단을 받겠습니까?
내가 감사하고 음식을 먹는데 내가 음식을 먹은 것 때문에 비난받아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따라서 여러분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십시오.
유대인에게나 이방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 걸림돌 같은 존재가 되지 마십시오.
그리고 나처럼 하십시오.
나는 나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많은 사람들의 유익을 구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도록 모든 면에서 모든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자유인이요 믿음이 강한 자로써 만물 안에 있는 어떠한 음식도 거리낌 없이 먹을 수 있는 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기가 먹는 음식으로 인하여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그는 평생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하였다.
(고전 8:13)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
따라서 무엇이든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는 강한 믿음의 소유자요 자유인이라 할지라도 그가 하는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나 덕을 세우는 일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런 차원에서 바울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 명한다.
예를 들어 시장에서 파는 고기가 어디서 나왔는지 자기의 양심을 위해서 그 출처를 묻지 말고 먹을 것이다.
그 이유는 땅과 만물 안에 있는 모든 존재물이 주의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믿지 않는 자들 중에 누가 너희를 초청했을 때 그곳에 가기를 원한다면 그곳에서 제공하는 고기 역시 자신의 양심을 위하여 그냥 먹을 것이다.
그러나 그중에 있는 자들 중에서 누구든지 이것이 우상의 신전에 드린 고기라고 말한다면 그 사람의 양심을 위해서 먹지 말 것이다.
지금 말하는 양심은 자기의 양심이 아니라 남의 양심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강한 믿음의 소유자가 아무리 먹는 것으로 자유하다 할지라도 불신자들의 양심에 의해서 나의 양심이 판단 받을 필요가 있겠는가?
비록 내가 감사함으로 그 음식을 먹는다 할지라도 그것이 불신자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면 굳이 그들의 양심에 의해서 나의 감사가 비판 받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자들의 행동 근거는 하나님의 영광에 있다.
나의 강한 믿음으로 인하여 무엇이든 먹을 수 있고 행할 수 있다 할지라도 그것이 과연 하나님의 영광에 합당한가, 하는 것이 그 근거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먹든지 마시든지 또는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할 것을 천명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유대인이나 헬라인 그리고 주님의 교회에서도 걸림돌이 되지 말 것이며 나의 유익을 구하는 자가 아니라 남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하여금 구원을 얻도록 최선을 다 해야 할 것이다.
바울은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일임을 알고 그렇게 하고 있다.
오늘 본문은 8장으로부터 시작된 우상 제물을 먹는 문제에 대한 최종적인 결론부이다.
믿음이 강한 그리스도인은 자유인이기에 모든 것을 주님 안에서 자유롭게 행할 수 있다.
물론 그것이 진리에 저촉되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런데 사실 먹고 마시는 문제는 진리의 문제는 아니다.
따라서 먹고 마시는 것이 무엇이든 자신의 양심에 거리끼지만 않는다면 가능하다.
그런데 문제는 아직 믿음이 약한 그리스도인들이나 아니면 불신자일지라도 그들의 양심을 위해서는 먹지 말 것을 권한다.
이는 자신은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 받은 자로써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유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 믿음이 연약한 자나 혹은 불신자들이 믿음이 강한 자의 행동을 보고 시험에 들거나 실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만약 실족해서 구원에서 멀어진다면 주님께서 그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그 희생이 헛되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만큼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일은 없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을 헛되게 하는 일은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이 되고 말 것이다.
나는 모태로부터 택함을 받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며 목사가 되어 성도들을 섬기는 목사요 선교사이다.
그런 나는 나 스스로 믿음이 강한 자라고 자부하여 왔다.
그래서 내게 주어진 일은 무엇이든 열심히 하려고 애썼고 최선을 다하였다.
신대원을 다니면서 모 교회의 전도사로 사역하던 어느 날 담임목사께서 우리 부부를 목양실로 부르셨다.
우리 부부는 함께 목양실에 들어갔다.
목사님은 오늘 본문 중에 한 구절을 먼저 읽으셨다.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김전도사님 부부가 열심히 하는 것은 정말 잘 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자기의 열심이 너무 많으면 탈이 날 수 있습니다.”
그때는 사실, 나는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전도사로서 처음 주일학교를 맡아서 뒤를 돌아보지 않고 죽자사자 앞만 보고 직진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열심히 하는 사역자를 칭찬과 격려는 해주지 못할망정 왜 그 열심을 이렇게 막는 거지? 하면서 오히려 목사님을 오해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보면 목사님의 의도는 나만 앞서 가지 말고 옆에 있는 동료들을 돌아보면서 함께 갈 것을 권면하셨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담임목사들은 혼자라도 열심히 하는 사역자는 잘 한다고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당시 목사님은 교회의 외적인 부흥보다도 사역자들의 연합을 더 중요하게 여기신 것이다.
앞서 가는 자가 뒤에 있는 자들을 돌아볼 수 있는 그 마음을 가질 것을 원하신 것이다.
이렇게 말씀해 주신 목사님도 어느새 연세가 드셔서 천국에 가셨다.
그의 모습이 그립다.
이것이 바로 나의 자유를 나 자신이 쓸 수 있지만 남을 위하여 그 자유를 제한할 수도 있고 또한 포기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자유가 아니겠는가?
이런 진정한 자유야 말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일인 것이다.
물론 나 혼자 열심히 해서 교회를 부흥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좀 천천히 갈지라도 동역자들이 연합하여 하나 되는 것을 더 원하시는 것이다.
열심히 하는 전도사로써 그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목사님을 원망하기도 했던 어리석고 우매한 나를 다시 한 번 발견하며 당시 담임목사님께 감사를 드린다.
나는 매사에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열심을 내는 자였다.
그러나 복음을 알고 난 이후로 나의 열심으로 일하지 않는다.
조금 더딜지라도, 조금 부족할지라도 사역자들이나 성도들이 함께 가기를 원하며 성과 위주의 사역이 아니라 한 사람이라도 영생의 삶을 살 수 있도록 그들의 보조에 맞춰서 천천히 가기를 원한다.
이것이 진정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길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그런 주님의 은혜 안에서 진정한 자유를 누린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오해하였던 자였습니다.
내가 열심히 해서 무엇인가 성과를 내는 것,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나의 유익이 아니라 남의 유익을 구하기를 원하셨고 그것이 진정한 하나님의 영광임을 오늘 다시 한 번 깨닫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복음 안에서 나는 자유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쓸 수 있는 자유를 남을 위하여 제한하며 심지어 포기하는 것 또한 진정한 자유라는 것을 깨닫게 하셨사오니 주님을 위하여 먹는 것 마시는 것 그리고 무엇을 하든지 진정한 자유와 함께 아버지의 영광을 나타내는 자 되게 하옵소서.
아담으로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처럼 되고자 자기 의 곧 자기주장의지를 내세우는 자들이 끊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자신의 신 됨을 싫어하시기에 이런 연합을 요구하십니다.
내 안에 있는 이런 신 됨을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는 자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