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포 이야기 II] 태풍과 함께 쓰러진 나무들, 더 그리워지겠지요.
[2010. 9. 6]
정말……, 있을 때는 잘 모릅니다. 나무의 존재감 말입니다. 살림살이에 쫓기는 때문만은 아닐 겁니다. 천리포수목원의 그 많은 식물들을 하루가 멀다 하고 마치 가까운 벗처럼 생각하고 찾아보곤 하지만, 나무가 있을 때는 그의 존재감을 제대로 느끼지 못합니다. 나무들이 그저 아무 말 없이 제 자리를 지키고, 직수굿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일만 열심히 하는 탓일 겁니다. 나무가 좋은 것도 그처럼 부담스럽지 않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그런 우리 곁의 나무, 사라지고 나서야 그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게 아쉬울 뿐입니다.
지난 주 우리네 살림살이를 사납게 할퀴고 지나간 태풍 잘 견뎌내셨나요? 우리 천리포수목원에는 적잖은 피해가 있었습니다. 쓰러지거나 비스듬하게 기울어진 나무는 물론이고, 아예 뿌리째 뽑혀 다시 살리는 게 불가능해진 나무도 여러 그루 있었습니다. 위 사진은 그렇게 참담한 모습으로 쓰러진 우리 수목원의 여러 나무 가운데 하나인 금송(Sciadopitys verticillata)입니다. 완전히 누워서 길을 막아버린 저 금송은 다시 일으켜세울 수 없습니다. 이승에서의 삶을 마무리한 그를 고이 보내주는 수밖에요.
태풍이 서해안을 따라 북으로 오르면서, 특히 천리포수목원이 있는 태안 지역에 강풍 피해가 집중됐기 때문입니다. 태풍 피해는 주로 키가 큰 나무에 집중됐습니다. 늠름한 모습으로 오랫동안 크게 자란 나무들이 쓰러졌습니다. 가래나무(Juglans mandshurica)도 그 날 아침에 쓰러졌습니다. 이 가래나무와 지나치게 친했던 탓일까요? 왜 그가 살아있을 때에는 사진 한 장 제대로 담아두지 않았는지 아쉬울 따름입니다. 아마도 다른 을긋불긋 피어난 다른 꽃들에 눈이 팔려 소박한 자태로 묵묵히 서있는 가래나무에 눈길을 제대로 주지 않았을 겁니다.
지나칠 때마다 다음에 더 근사한 모습으로 사진에 담아둬야지 하고 하루 이틀 미뤘던 게지요. 부리나케 사진첩을 샅샅이 뒤졌습니다만, 아무리 뒤져봐야 지난 7월에 담아둔 몇 장의 사진이 전부일 뿐, 그 동안 가래나무를 정성껏 담아둔 사진은 없습니다. 12년 동안 수목원을 들락이며 이 나무와 수인사를 나눈 것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작은 연못 돌아 소사나무집으로 오르는 길에서 마주치고 싶지 않아도 저절로 마주치게 되는 나무이니 오죽하겠습니까. 그 나무가 뿌리째 뽑혀 마침내 다시는 어떤 인사도 나눌 수 없게 됐습니다. 청설모도 그의 편안함이 좋아했던 모양입니다. 이 가래나무 가지 위를 통통 거리며 뛰어다니는 청설모를 유난히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그나마 그가 이렇게 생을 마치기 바로 며칠 전에 찍어둔 사진 몇 장 가진 걸 다행으로 생각하는 수밖에요. 하지만 앞으로 시간 많이 지날수록 그가 정말 그리워질 겁니다.
가래나무 옆에 비슷하게 큰 키로 자란 두 그루의 개오동나무도 쓰러졌습니다. 이 두 그루의 개오동나무는 지난 2000년에 닥쳤던 태풍 프라피룬 때에 바람을 못 이기고 기울었던 나무입니다. 그때 이 나무들의 뿌리 부분에 많이 상하지 않아, 다시 세우고 보살펴서 이제는 옛 상처를 잊은 듯 잘 살아나던 중이었지요. 이번에는 뿌리 째 뽑히면서 완전히 쓰러져서 다시 세워줄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 개오동나무 두 그루 사이에 우뚝 서있는 가래나무는 프라피룬 때에도 큰 비와 사나운 바람을 모두 잘 버텨낸 나무이지요. 하지만 이번 바람은 이겨내지 못하고, 뿌리를 드러냈습니다. 지난 7월 초 들어서면서 가래나무 열매가 맺힌 게 눈에 들어와서, 올에는 가래나무 열매 익어가는 과정을 좀더 꼼꼼히 바라보아야지 하고 마음 먹고 높은 가지 위에 걸린 열매 사진을 찍어둔 게 위 사진입니다. 살아있으면 이제 막 탐스럽게 익어야 할 열매이건만 이제는 다시 보기 힘들어졌습니다.
우리 수목원의 가래나무는 꽤 크게 잘 자란 나무였습니다. 지금의 기억만으로 약 12미터 쯤 되는 키의 큰 나무이지요. 게다가 더 큰 아쉬움은 우리 수목원에 적당히 자란 가래나무가 이 나무 한 그루 뿐이었다는 겁니다. 물론 주변을 잘 찾아보면 이 큰 나무의 씨앗에서부터 실생으로 자라난 작은 나무들이 있긴 할 겁니다. 하는 수 없이 그 실생의 나무들을 찾아서 키워야 하겠지만, 아쉬움은 크기만 합니다.
가래나무 쓰러진 걸 아쉬워 하는 저를 위로하려는 듯, 수목원 지킴이 한 분은 그걸 더 아쉬워 하는 건 청설모들이더라고 이야기합니다. 쓰러진 나무를 치우기 쉽게 잘라내서 하나 둘 치우자 늘 이 가래나무 위에서 뛰놀던 청설모들이 허망한 표정을 짓고, 주변을 배회하더라는 이야기입니다. 갑자기 뻥 뚫려 텅빈 하늘이 청설모에게도 무척 낯설었을 겁니다. 집도 놀이터도 한꺼번에 잃었을 뿐 아니라, 열매가 잘 익기만 기다렸을 청설모에게 역시 큰 아픔이었을 겁니다.
가래나무는 같은 가래나무과의 호두나무(Juglans regia)와 무척 비슷합니다. 나무의 생김새도 비슷하고, 열매까지 비슷해서 자주 혼동하게 되는 나무이지요. 가래나무의 열매인 가래의 씨앗도 호두처럼 딱딱한 껍데기에 싸여있지만, 호두의 씨앗이 조금 작은 탁구공처럼 동그란 것과 달리 가래는 길쭉해서 구별하기는 쉽습니다. 또 호두 열매가 하나씩 달리는 것과 달리 가래는 여러 개가 한데 붙어서 달리는 것도 다른 점이지요. 위쪽의 열매 사진처럼 촘촘히 붙어서 난다는 것입니다.
그게 차츰 익어가기를 기다리던 날들이 한 순간에 허무하게 스러졌습니다. 언제나 그 자리에 그대로 잘 있으리라고만 생각했던 나무이건만, 나무 역시 사람이 그런 것처럼 휘몰아치는 생로병사의 흐름에서 예외일 수 없었던 겁니다. 그건 제가 늘 입에 달고 사는 이야기입니다만, 워낙 뜸직한 모습으로 서있는 나무를 보면서는 까먹는 생각이지요. 있을 때는 특별히 바라보지도 않았고, 고작해야 나뭇가지 위를 오가는 청설모를 바라보느라 가지 위를 쳐다보기만 했던 가래나무의 뒤늦은 존재감이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정말 많이 그리워질 겁니다.
다시 또 ‘구슬’이라는 마카오에서 제출한 이름을 가진 태풍이 올라온답니다. 현재의 예보만으로는 지난 번 ‘곤파스’만큼 큰 피해를 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그러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기 때문에 그렇게 각인시키고 싶은 건지도 모르지요. ‘말로(구슬)’도 조심해야 하겠지요. 또 말로 이후에도 가을 태풍이 몇 번 더 올라올 수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여름 내내 비 피해와 바람 피해 복구하느라 아무 일도 못했다는 우리 수목원 지킴이의 한숨이 안타깝게 떠오르네요.
그래도 이제 잠시 기분을 전환할 겸, 지난 주에 이야기를 꺼냈던 겹해바라기(Helianthus annuus 'Teddy Bear')의 예쁜 꽃을 함께 바라보기로 하지요. 우리나라에서도 몇몇 식물원에서 이 겹해바라기를 심어 키울 뿐 아니라, 여러 경로를 통해 이 식물의 씨앗은 많이 보급된 모양입니다. 경상북도의 어느 도시에서는 도로변에서도 이 겹해바라기 꽃을 볼 수 있다고 하고, 또 평범한 식물애호가들께서도 집 근처에 심어 키우는 듯합니다. 또 꽃꽂이와 같은 꽃장식에서도 탐스럽게 피어난 겹해바라기 꽃은 적잖이 환영받는 꽃이라고 합니다. 그런저런 연유로, 최근 겹해바라기는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는 식물이 됐습니다.
국화과에 속하는 해바라기 종류의 식물에는 70~80 종류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 우리나라에 자리잡은 해바라기로는 해바라기(Helianthus annuus)와 애기해바라기(Helianthus debilis)가 있습니다. 그밖에 해바라기와 같은 친척이어서, Helianthus 라는 학명을 가진 식물로, 그야말로 뚱딴지같은 우리 말 이름을 가진 뚱딴지(Helianthus tuberosus)가 있습니다. 그러나 겹해바라기는 아직 공식적으로 우리 식물학계에서 인정한 이름은 없는 상태입니다.
겹해바라기가 우리 식물도감(이창복, 원색대한식물도감, 향문사, 2003)에 올라와 있지 않아, 영문으로 된 식물도감(The Royal Horticultural Society A-Z Encyclopedia of Garden Plants, Dorling Kindersley Publishing, 1996)을 들추어 보니, 같은 식물에 대해서 크기를 비롯한 몇 가지 정보에 있어서 차이가 있었습니다. 해바라기는 우리 식물도감에 2미터로 자란다고 돼 있는데, 영문 식물도감에는 5미터까지 자란다고 돼있습니다. 꽃의 크기도 다르네요. 영문 식물도감에는 꽃 한 송이가 지름 30센티미터 정도로 피어난다고 했는데, 우리 도감에는 8~60센티미터로 돼있습니다. 꽤 큰 차이입니다. 생육 환경의 차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 도감에 나오지 않는 겹해바라기는 영문 식물도감의 정보를 따를 수밖에요. 겹해바라기는 90센티미터까지 큰다고 돼 있는데, 우리 수목원의 겹해바라기는 그보다는 조금 크게 약 1.3미터 정도까지 자랐습니다. 꽃의 크기도 해바라기에 비해 작습니다. 겹해바라기의 꽃은 기껏해야 13센티미터 크기로 피어난다고 도감에는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수목원의 겹해바라기 꽃은 그보다 조금 큰 15센티미터 쯤으로 피었습니다.
겹해바라기의 꽃은 자그마하지만, 그의 이름인 테디베어 인형처럼 복슬거리는 꽃잎 때문에 꽃송이만으로는 해바라기와는 전혀 다른 느낌입니다. 하지만 한눈에 해바라기인 줄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해바라기와 똑같거든요. 곧게 선 줄기 하나가 넓적한 여러 잎사귀를 넉넉하게 달고 비쭉 올라오고, 그 줄기 끝에 소담한 꽃을 피운 모습이 영락없는 해바라기입니다. 안쪽에 까만 씨앗이 드러나 보이지 않는 것만 다를 뿐입니다. 해바라기와는 다르게 만져보고 싶을 만큼 포근합니다. 어쩌면 손에 닿지 않을 만큼 높은 줄기 끝에서 피어나는 해바라기 꽃과 달리, 꼭 우리 손에 닿을 듯한 자리에서 피어난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기분을 전환하자고 예쁜 꽃을 피운 겹해바라기 이야기를 꺼내긴 했지만, 마음은 하릴없이 태풍으로 쓰러진 나무들이 지싯거립니다. 수목원에서는 떠나보냈지만, 마음 속에서는 아마 오랫동안 떠나보낼 수 없을 겁니다. 자연과 더불어 살면서 자연의 흐름을 피할 수야 없지만, 제발 살아있는 모든 생명에게 갑작스런 일만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날이 가고 해가 갈수록 점점 더 사나워지는 비와 눈, 바람 이 모든 것들 앞에서 누구 탓을 할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허망하게 창졸간에 생명을 앗아가는 일만큼은 다시 벌어지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태퐁 ‘말로(구슬)’, 약해졌다고 마음 놓지 마시고, 완전히 지날 때까지, 그리고 새로 또 올라올지도 모르는 또 다른 가을 태풍 모두 넘길 때까지 내내 조심하세요. 그게 아마 더 풍요로운 가을을 맞이하기 위해 이 즈음 우리가 반드시 단도리해야 할 마음가짐이지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고규홍(gohkh@solsup.com)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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