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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금 늦은 감은 있지만 2003년 세계 청소년 대회에 참가한 이야기를 해보자. 본선을 앞둔 최종 선발 단계에 대표팀에 합류했고, 기존의 주전들을 밀어내며 최종 엔트리에 포함됐다.
2002년에 소집된 뒤 꽤 오랫동안 U-20 대표팀과 인연을 못 맺다가 10월 서귀포에서 열린 한일전을 앞두고 호출이 왔다. 사실 합류할 때는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청소년 대표팀에서 마지막으로 뛰었을 때 안좋은 일(부상)이 있었고, 그 포지션이 워낙 쟁쟁했으니까.
(권)집이 형, (김)수형이 형은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고, (김)근철이 형도 오랜만에 합류한 상황이었다. 몸무게도 불어나 있었고. 그냥 열심히 해서 내가 이 곳에서 얻어갈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얻어가자는 생각 정도였다. 그래서 무리하지 않고 운동량을 서서히 늘려가며 페이스를 천천히 끌어올렸다.
그러다 수원컵 슬로바키아 전에 선발 출장했는데 경기가 잘 풀렸다. 집이 형과 오랜만에 뛰는 경기였는데 호흡도 잘 맞았고. 경기 후에 박성화 감독님이 그날 나의 플레이에 대해 칭찬해 주셨다는데, 결과적으로 그 경기의 활약이 세계대회에 가게 된 계기가 된 것이 아닌가 싶다.
- 본선에 가서는 파라과이전 후반 교체 이후 미국, 일본전에 선발 출장했었다. 유감스럽게도 독일전 승리 이후 3경기 다 비기거나 패한 경기인데.(웃음)
파라과이와 미국은 상당히 어려운 상대였다. 특히 미국은 콘베이나 존슨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선수였다. 마크하면서도 상당히 애를 먹었다. 콘베이는 미국 대표팀에 발탁되었다고 들었는데, 다음에 다시 붙어보고 싶다. 일본전의 아쉬움이야 말할 필요가 없다. 사카타에게 역전골을 내줄 때까지 진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으니까. 아마 아쉬움 때문에라도 오래오래 기억될 것 같다.
- 미국전은 다소 논란이 있었다. 결과를 위해 스포츠맨 정신을 버렸다는 식으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분명 어떤 목표를 위해 구성된 팀이었다. 선수들의 입장에서는 그 목표의 달성 여부가 전부다. 우리가 그렇게 볼을 돌리며 경기를 운영해 간 것이 스포츠맨 정신에 위배된다는 것은 지나친 비약인 듯하다. 브라질에서는 선수들이 경기 중에 손등으로 상대 선수의 얼굴을 세게 치고 가버린다. 심판이 보지 않으면 당연히 별 문제 되지 않는다. 감독에게 하소연하면 왜 바보같이 당하고 있느냐고 면박을 받는다.
유럽 선수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연습을 하고 있으면 저 선수가 왜 잘한다고 하는지 느끼지 못한다. 훈련도 편하게 하고 다들 즐거운 분위기다. 하지만 경기장에 들어서면 180도 변한다. 훈련할 때만 해도 같이 웃던 선수들이 발목이 꺾일 정도의 깊은 태클을 구사한다. 프로 선수나 대표팀 선수라면 경기장에서는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사용해서 이기고,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비록 16강에서 멈추긴 했지만 많은 생각을 하는 기회가 됐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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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20 세계선수권 일본전에서 ⓒ축구협회 홍석균
| 우선 세계라는 큰 틀을 경험했고, 내 자신을 냉철하게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지난 U-20 대표팀이 정말 좋은 멤버로 구성된 팀이었다고 생각하는데, 생활하고 훈련하면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 브라질 유학 세대로서 본격적인 신호탄을 쏜 경우인데, 최근에는 국내 청소년들이 예전만큼 브라질 유학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아무래도 어린 나이에 외국에 나간다는 것은 부담감이 크다. 브라질의 경우 도심지 외곽으로는 치안이 불안해서 해가 지면 숙소 밖으로 나갈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는 것이 오히려 안 좋게 작용할 수도 있고. 또 최근에는 국내에 용인 FC같은 좋은 시설과 체계적인 교육 환경을 갖춘 곳이 등장하니까 브라질 유학의 메리트가 사라진 것 같다.
- 포루투갈어 구사 능력이 상당한 수준이라고 알고 있는데?
아니다. 사실과 다른 얘기다. (웃음) 그냥 벤치에서 보내는 지시를 같은 팀의 브라질 선수들에게 알려주는 수준이다. 간단한 생활용어나 축구와 관련된 용어를 말할 수 있다. 그 이상의 수준은 무리다.
- 울산 현대 입단 당시의 과정은 그렇게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크루제이로나 키에보 베로나 입단 얘기도 있었는데 급작스럽게 진로를 선회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나?
크루제이로에는 입단할 생각이 없었다. 브라질은 유소년 팀에서 성인 팀으로 올라가면서 계약하면 계약 기간을 길게 잡는다. 브라질이 그리 나쁜 곳은 아니지만 그곳에서 나이들 때까지 머물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웃음)
사실은 유럽에 도전하고 싶어서였는데, 에이전트의 소개로 이탈리아 키에보에서 입단 테스트를 봤고 구단 관계자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들었다. 그렇게 훈련을 하고 시즌이 끝난 뒤 국내에 들어왔는데 월드컵 이후에 세리에A에서 비유럽권(Non-EU) 선수 보유 제한규정을 논의하게 됐고, 구단과 이런 저런 타협점을 찾다가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다.
이후에 모교인 중동고에서 훈련을 하고 있었는데 울산에서 연락이 왔다. 브라질에서 같이 생활한 (송)한복이와 (이)진호는 이미 울산에 입단해 있던 상태였다. 다 함께 울산에서 있는게 어떻겠냐며 제의해 와서 내가 마지막으로 입단하게 되었다.
- 크루제이로 삼총사 중 현재로선 본인이 가장 앞서가는 상황인데?
내가 운이 좋아서 기회가 먼저 왔을 뿐이다. 한복이와 진호는 같이 브라질에서 고생하며 형제같이 자란 친구들이라 누구보다도 잘 안다. 둘 다 좋은 선수들이고, 열심히 하는 선수들이기 때문에 얼마 안있으면 치고 올라올 것이다. 진호는 요즘 몸 상태가 좋아 1군 경기에 자주 출장하고 있다.
-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프로에 바로 왔는데 대학에 대한 미련은 없는지?
아마 다시 그때 상황으로 돌아가 선택한다 해도 프로로 바로 올 것이다. 형들이 이런 장점이 있고 저런 단점이 있다고 얘기를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대학을 경험하지 못했으니 그렇게 와 닿지 않는다. 하지만 프로에 바로 온 것에 대해 후회하거나 미련을 갖진 않는다. 내 축구인생에서 옳은 선택을 했다고 믿는다.
- 어린 나이답지 않게 자신의 목표를 확고히 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흔들리지 않고 그 목표를 차근차근 밟아 가는 것 같은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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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 포항전에서/울산 구단 제공
| 하지만 선수가 원한다고 해서 모두 그렇게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내 의지 외의 구단 상황이나 여러 환경들도 중요하다.
권집 형과도 가끔씩 통화하는데 최근 계속 자기가 원치 않는 방향으로 일이 진행되면서 많이 힘들어하는 것 같더라. 그런 점에서는 내가 울산에 입단한 것은 행운이라고 생각된다.
우리 팀 분위기가 선수의 자율성을 보장해 준다. 예를 들어 (최)성국이 형이 다른 팀에 갔으면 플레이 스타일이 바뀌었을 수도 있겠지만, 감독님이 플레이를 질책하기보단 더 잘할 수 있는 분위기로 이끌어 주니까 성국이 형의 장점이 더 극대화 될 수 있다.
- 코칭스태프들이 하나같이 이호를 칭찬하는 덕목 중 하나가 성실함이다. 실제로 경기 중에도 쉴 새 없이 뛰는 모습이 인상적이고.
실제 생활은 그렇게 부지런하지 못한 편이다.(웃음) 하지만 운동은 다른 거니까.
- 스케일이 큰 플레이를 한다는 평가가 많다. 자신의 플레이 스타일에 대해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오래 전부터 수비형 미드필더라는 포지션에 애착을 가졌고 이 포지션에서 어떤 플레이를 해야 할지 고민해왔다. 세계적인 선수들의 플레이를 보면서 저 선수들의 장점을 모두 가져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고.
글쎄, 자신을 스스로 평가하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이 포지션에서 당연히 해야 할 기본적인 것에 치중하는 편이다. 세밀한 부분은 아직 모자란 편이고.
- K리그가 격렬하다는 평가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상대적이지 않나 싶다. 물론 K리그의 전반적인 경기 스타일 자체가 그렇긴 하지만 브라질이나 유럽의 격렬함은 상상을 초월한다. 브라질 리그 선수들은 손을 너무 잘 써서 상대 공격수를 막기 위해선 그 공격수가 손으로 방해하는 것부터 견뎌내야 한다. 유럽 선수들의 체격 조건과 힘은 말할 필요도 없고.
- 얼마 전에 시즌 첫 골을 넣었다.
민망하다.(웃음) 상대 골키퍼(대전 최은성)의 미스가 아니었으면 어림도 없는 슛이었다.
- 많은 장점을 갖췄지만 수비형 미드필더들에게도 높은 공격 가담을 요구하는 것이 최근의 경향인데 그런 점에서 아쉬움이 있다.
어제 경기(광주 상무전)에서도 후반에 성국이 형이 좋은 찬스를 만들어줬는데 그걸 살리지 못하는 바람에 팀이 승리하지 못했다. 더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공격할 때 좀 더 집중해서 침착하게 연결하고 세트 플레이 상황때 공격 가담이나 중거리 슈팅 능력을 키워야 할 것 같다.
- 군 문제는 어떤가? 다른 선수들에게도 마찬가지지만 선수 생활을 보다 수월하게 하기 위해서는 빨리 해결해야 할 문제이고, 해외진출을 꿈꾼다면 적잖은 장벽으로 작용할 텐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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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친한 친구이자 팀 동료인 정병민(왼쪽)과 함께 ⓒ스포츠인터렉티브
| 사실 올초까지만 해도 군 문제로 심각히 고민했다. 상무에 지원을 할까도 고민했는데 (김)진규를 비롯한 비슷한 고민을 갖고 있는 친구들과 얘기를 하면서 좀 더 미뤄보는 쪽으로 마음이 기운 상태다.
군 문제를 해결한 팀 선배들에게도 많은 조언을 구한다. 답은 각각인데 어떤 선배는 일찍 다녀오는 것이 좋다고 하고, 어떤 선배는 어느 정도 인상을 남겨 자신의 위치를 확보해 놓고 다녀오는 것이 좋다고 한다.
대표팀에 뽑혀 월드컵이나 아시안게임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군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라고 생각하는데 쉬운 일은 아니고.
대한민국 축구선수들에게 군대는 정말 어려운 과제다. 지금 같은 팀에서 뛰고 있는 (정)병민이 같은 경우도 군 문제 때문에 힘들게 1부리그에 들어간 포르투갈 생활을 포기하고 돌아와 있는 상황이다. 잘 해결해서 선수 생활을 효율적으로 하고 싶다.
- 언젠가 이호 선수가 좋아한다는 문구를 본 적이 있는데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지금의 고난은 머지않아 큰 기쁨을 주겠다는 삶의 눈물겨운 약속이다'는 문구다. 전에 (최)원권이 형이 책에서 보여준 글인데 너무 좋아서 받아 적어온 뒤로는 가슴 속에 담아두고 있다.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그 글을 생각하면 힘을 얻는다.
- 올 시즌 K리그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은 선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앞으로의 구체적인 목표와 계획을 밝혀준다면?
시즌 전 스스로에게 다짐했던 목표는 이미 넘어섰다고 생각한다. 최근 몇 년간 팀이 계속 2위에 머물렀는데 우승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잡았으니 팀 우승에 보탬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 그리고 모자란 부분들을 어서 채워서 어릴 적부터 꿈이었던 태극마크를 달고 쟁쟁한 선배들과 함께 팀의 일원으로 뛰고 싶다.
기회가 되면 해외에도 진출하고 싶다. J리그는 아직 큰 매력을 못 느끼고 나이가 들어도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유럽에 다시 진출해서 예전에 남기고 온 아쉬움을 해소하고 싶다.
- 인터뷰에 응해줘서 감사드린다. 앞으로도 계속 발전하는 모습 기대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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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정병민 선수가 한국으로 돌아왔었군요..아쉽네요..
이호선수..현재는 울산의 희망....그리고 훗날 대한민국 대표팀의 허리를 책임질 희망^^ㅋ 볼수록 정이 가는 선수입니다^^
음...근데 본인에 플레이보다 한참은 낮게 예기하네요. 겸손이 깊숙히 배여있어 보기 좋아요.^^ 브라질에 그 많은 신동들과 이탈리아에 많은 신동들이 원하는 클럽팀에 유스와 2군을 거쳤다는게 아무래도 기대를 하게 됩니다. 대성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