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쉽게도 그는 이번 월드컵에서 월드컵 통산 최다골이란 새로운 기록의 주인공이 되지 못하게 되었다.>
지난 독일과 스페인의 경기에서 승자가 누가 될 것이냐도 중요했지만 이 선수가 월드컵 통산 최다골이란 진기록에 세울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에도 많은 관심이 모여졌다. 경기 결과는 다들 알다시피 스페인이 1:0으로 승리를 거두었고 독일은 무득점, 따라서 이 선수의 기록을 향한 득점은 침묵하였다. 우루과이와 3·4위전이 있기에 아직 기회가 남아있는 것으로 보였으나 등부상으로 인해 출전 명단에서 제외되었다고 한다. 만약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 출전을 하게 된다면 클로제가 새로운 기록을 세울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무려 4년 후의 일을 예측할 수 없기에 결국 사실상의 월드컵 통산 최다골은 브라질의 호나우도가 세운 15골이 계속 기록으로 남겨지게 될 셈이다. 개인적으로 그가 이번 월드컵에서 호나우도가 가진 기록을 깰 것으로 예상했는데 그 예상은 빗나가게 되었다. 클로제 선수도 호나우도만큼이나 축구에 대한 열정으로 독일에서 인정받는 선수인데 아쉬울 따름이다. 이런 아쉬움을 달래고자 그에 대해 간략한 소개와 에피소드를 이야기해보려 한다.
<어렸을 적 모습은 똘망똘망한게 축구선수로 자랄 것으로 보이지가 않는다. @,.@>
<오른쪽의 잘생긴 미소년이 클로제이다.>
클로제는 1978년 6월 9일 폴란드의 오폴레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폴란드와 프랑스에서 축구 선수 생활을 하며 폴란드 대표팀으로 저명한 선수 출신이었고 어머니 또한 폴란드 대표팀의 핸드볼 선수 출신으로, 두 번이나 올해의 선수로 뽑혔던 스타 플레이어 출신이었다. 따라서 그의 운동신경은 모두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불행하게도 그가 태어날 당시 폴란드는 심각한 경제난에 빠져 있던 상태였고 공산주의 정권의 아래에서 펼쳐지던 민주화 운동이 탄압을 받던 시대였기에 그의 부모님은 클로제가 9살이 되던 해인 1981년 프랑스로의 이주를 선택하게 되었다. 이후 1987년 카이저스라우턴 교외에 위치한 쿠젤에서 독일인으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다. 어렸을때 이주 후 친구들을 사귀기 위해서 축구를 시작하게 되었고 또래보다 특출난 실력으로 독일 7부 리그(아마추어)에 속해 있는 작은 클럽인 블라우바흐-디델코프에서 본격적으로 축구를 시작하지만 내성적인 성격과 소극적인 플레이로 소속된 팀에서 별다른 활약도 없거니와 별다른 존재감을 주지 못했다. 그것을 지켜보던 어머니께서는 축구선수가 되는 것보다는 남들과 같이 평범하게 직장에 취직해서 일하길 바랬었고 클로제는 어머니의 바램대로 목수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공부를 하였다.
<어렸을적부터 축구를 했지만 잠시 딴 길을 가다가 20살쯤에 다시 축구로 돌아왔기에 어쩌면 남들보다 늦은 시작이었다.>
98년 5부리그의 홈부르크로에서 다시 한번 축구선수의 꿈을 시작한 그는 남들처럼 꾸준히 축구를 해오지 못했기에 남들보다 덜 쉬고 더 노력하는 자세를 꾸준히 유지했고 결국 99년 그 지방의 가장 큰 팀이자 독일 분데스리가를 대표하는 명문 구단 카이저스라우턴에 입단하게 된다.
<그의 덤블링 세레모니는 카이저스라우턴 때도 유명하였다.>
00/01 시즌 29경기에서 9골을 성공시키며 카이저스라우턴의 주전 스트라이커로 자리잡기 시작했고, 당시 대형 스트라이커에 대해 목말라 있던 독일 대표팀의 부름을 받기 시작하였다. 독일 대표팀의 부름을 받기 전 2001년 폴란드 대표팀의 예지 엥겔 감독이 찾아와 그에게 폴란드 대표팀 승선을 제의했지만, 그가 축구를 시작한 곳은 바로 독일이었고 독일 대표팀 선수를 목표로 했기에 제의를 거절하였다. 결국 2001년 루디 펠러 감독의 부름을 받아 독일 국가대표팀 선수가 되었고 그해 3월, 데뷔전에서 결승골을 성공시키며 독일의 새로운 스트라이커로 성공적인 데뷔를 한다. 분데스리가에서도 01/02 시즌에는 31경기 16골을 기록하며 명성을 높이기 시작했고, 세계 2차대전 당시 독일 공군의 전투기로 활약했던 '매셔슈미트(Messerschmitt)'란 별명도 생기게 된다. 이후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헤딩으로만 5골을 성공시키며 월드컵이란 무대에서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된다. 월드컵에서 활약을 바탕으로 많은 클럽의 러브콜을 받았지만 그는 카이저스라우턴에 남기로 했지만 결국 구단이 재정으로 어려워지자 2004년 베르더 브레멘으로 이적을 하게 된다.
<그의 손가락 세레머니는 그의 아내와 두 쌍둥이를 표현하는 것이다. (O.K. 사인이 아니다. -_-;;;)>
이적 전 그의 활약은 기대만큼 못미쳤기에 많은 쓴소리가 있었기만, 05/06 시즌에서 26경기에서 무려 25골(득점왕)을 터트렸고 16개의 어시스트를 기록을 통해 그는 완벽히 되살아났다는 평가를 받게 된다. 그의 활약은 자연스레 2006년 독일 월드컵으로 이어졌고 다들 알다시피 5골로 골든슈의 주인공이 되었고 그해 독일 올해의 선수상까지 받았다. 2007년 리그 우승이라는 목표를 위해서 그는 베르더 브레멘에서 독일 최고의 명문인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하게 된다.
<베르더 브레멘에서도 바이에른 뮌헨에서도 그의 가족사랑은 한결같다.>
2007년 9월 1일 그는 드디어 역사적인 리그 통산 100호골을 기록하고 07/08 시즌, 09/10 시즌, 이적 후 2회 리그 우승이란 타이틀을 거머쥐게 되고 역시 자연스레 2010 남아공 월드컵이란 무대에 서게 된다. 클로제란 선수에 대해 간략하고 짧게 이야기를 할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길어졌다. 그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축구에 대한 열정이 강하고 훌륭한 길을 걸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월드컵 통산 최다골이란 타이틀의 주인공에 모자람이 없어보이며 충분히 그 주인공이 됨직한 인물이다. 아쉽게도 기약할 수 없는 다음 월드컵에서 그 주인공이 되도록 노력하게 되었지만 말이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도 그를 필드 위에서 볼 수 있기를 바라면서 줄인다.
P.S : 그에 대한 짧은 평가를 담아와본다.
클로제는 그라운드 위에서의 뛰어난 기량은 물론 사생활과 생활 태도면에서도 팬들의 극찬을 받기에 충분한 자격을 갖추고 있다. 클로제는 04/05 시즌 빌레펠트전에서 페널티 킥을 선언한 주심에게 다가가 자신은 상대 선수에게 걸려 넘어지지 않았음을 주장하며 결승골을 넣을 수 있는 찬스를 스스로 취소, '페어 플레이' 정신을 몸소 선보이며 훈훈한 감동을 불러 일으켰다. 또한 언론과 팬들의 집중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스타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이 내성적인 청년은 조용한 삶을 추구하며 그라운드 밖에서도 모범적인 행동으로 그를 모델로 삼는 많은 '풋볼 키드'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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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헨리공작의 Schloss Neuschwanstein 원문보기 글쓴이: 헨리공작
첫댓글 호돈신이 대단한거지...
근데 진짜 등부상이 맞나
대단
으잉 아 안타깝다 ㅠㅠ34위전 나왔으면...
ㅠㅠㅠㅠㅠㅠㅠ클로제 제발 나온나!!!
연막이어야 하는데;;; 꼭 동률이라도 만들길.. 호나우두도 좋아하지만 클로제 여태 이룬게 얼만데 등부상으로 고지 바로앞에서 실패하는건 너무 안타깝잖아;
아 완전 개아쉽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진짜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뉴스자막에서보고 아니겠지..했는데 진짜네ㅠㅠ ㅠㅠㅠㅠ,,ㅠㅠㅠ
아 .....제발 ... 몸아 돌아와라 ~~~ 2골 넣고 싶당말야 ㅠㅠㅠ
이게바로 클로제 당신의 전기아닙니까. 글쓰신분 감사드립니다 *^^* 일대기를...
이글을 오늘다시보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