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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oss사랑방 - 居天下之廣居 行天下之大道 원문보기 글쓴이: oss113,
경남 전통사찰 다녀왔습니다
경남 남해군 법흥사 법흥사(法興寺)는 1900여 년도 초에 남해 용문사와 화방사가 합동으로 지금의 남해읍 사무소 자리에 중건하여 남해지역 포교의 메카로 자리 잡고 있다.
당시 포교당의 보광전과 남해 군수의 객사 건물이 같이 있었는데, 1917년 현재의 위치로 보광전과 객사건물을 그대로 옮겨 세웠다. 현재 보광전은 다시 대웅전으로, 객사건물은 설법전으로 새로 중건되어 있다.
남해 불교의 산실이며, 지역 불교 활성화를 위한 일임을 담당하고 있는 법흥사는 남해의 중심에 있어 어린이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남녀노소를 막나하는 전방위 포교를 펼치고 있다.
특히, 법흥사에서 운영하는 연꽃 어린이집은 어린이들에게 일찍이 불교와 친해질 기회를 줄 뿐 아니라 유아교육의 마당으로서도 큰 보탬이 된다.
1996년 6월 해문스님이 남해포교당의 현황을 파악하고 가장 먼저 한 것이 바로 어린이들이 부처님과 친해질 수 있게 자비심과 불심을 심어주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남해군으로부터 보육단체로 선정 받아 1998년 보육시설을 갖추고 어린이들에게 좋은 인성을 가르쳐 앞으로 나라의 기둥을 만드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이는 사회봉사를 통해 복지 분야에 힘을 쏟아야 하겠다는 해문스님의 일념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해남 어린이 교육의 중심이 되고 있다.
법흥사가 위치한 곳은 남해읍 북변동으로 남해군의 상권이 집약해있고 310여 세대에 1,10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군청, 우체국 등 주요관공서가 모여 있어 남해 행정의 1번지라고 할 수 있다.
또 인근에 1450년 당시 남해현령을 지낸 하신이 설립한 남해향교가 있다. 학이 내려앉은 봉강산 아래 법흥사와 남해향교가 인근하고 있어 남해 도심의 큰 휴식공간으로도 손색이 없는 곳이다.
승용차 이용 - 남해 고속도로 하동 I.C를 빠져나와 19번 국도를 타고 남해 방향으로 가다보면 하동과 남해군을 연결하는 남해대교가 나온다. 남해대교를 지나 계속하여 19번 국도를 타고 남해읍까지 가면된다. 남해읍 입구에 있는 남해 병원을 지나면 법흥사라는 이정표가 있는데 이정표에서 좌회전하면 법흥사를 찾을 수 있다.
대중교통 이용 - 남해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남해군청이 남해초등학교 방향으로 가다보면 이정표를 만날 수 있다. 걸어서 10여 분 정도면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다.
경남 남해군 운대암 대방산(臺芳山) 기슭의 산세가 수려한 팔선지(八仙地) 명당자리에 터를 잡고 있는 운대암은 고려 초기에 창건을 하였다고 전해지나, 누가 창건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창건 당시에는 지금의 위치가 아닌 대방산 중턱에 세워졌으며 당시 망경암(望景庵)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명당자리에 창건을 하고 제일 기도도량으로 날로 번창하였으나, 임진왜란 등 나라의 크고 작은 전란으로 절이 소실되면서 임진왜란 후에 세월스님이 지금의 자리로 옮겨 운대암(雲坮庵)으로 이름을 바꿔 재창건하였다고 한다.
이어 조선후기에 다시 창건이 이루어졌으며, 1900년대 초에 자연재해로 중요 사료와 함께 매몰되었는데, 정삼스님이 절을 일으켜 근근이 인법당을 지어 유지하였다.
오랜 풍상으로 유지보수가 힘들게 된 것을 안타깝게 여긴 법정(法靜)스님이 1970년대 원력을 세워 1990년에 무량수전과 산신각을 중건하는 등 중창 불사를 이루었으며, 2006년 현재 서광 주지스님이 전통목조건물로 요사채를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1)위치 남해도에서도 두 번째로 큰 섬인 창선도에 자리하고 있다. 창선도는 남해 본섬과 창선교로 이어져 있으며, 사천 삼천포와는 창선·삼천포대교와 이어져 있어 '섬 아닌 섬'으로 두 다리를 연결하는 섬 중간쯤에 운대암이 있다.
예전에 삼천포로 오는 길이 3번 국도 밖에 없을 때, 이쪽 방향으로 오다보면 이유막론하고 삼천포로 들어올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옛말에 '잘 가다가 삼천포로 빠진다'는 말이 생기기도 하였다. 하지만 지금은 삼천포와 창선도를 연결하는 다리가 생기고 3번 국도가 연장되어 하동으로 가는 19번 국도와 연결되었으니 이 말이 조금은 어색해졌다. 삼천포 방향으로는 창선·삼천포대교가 아름다움을 뽐내고, 남해 방향으로는 창선교와 죽방렴이 볼거리를 제공하는 운대암은 대방산이 멋을 더해준다.
남해에서도 가장 큰 면인 창선면 중에서도 운대암은 옥천마을에 있는데, 이 곳은 섬이면서도 바다 한 뼘 갖지 못한 마을이다. 사시사철 옥구슬처럼 푸른 물이 흐른다 하여 ‘옥천’이라고 불리는 이 마을은 버스가 하루에 3번밖에 들어오지 않는데, 이 버스를 타려면 1시간 걸어서 큰길로 나가야 할 정도로 오지기에 그야말로 청정하기가 그지없다.
2)찾아가기 승용차 이용 - 남해의 창선도에 있는 운대암으로 가기 위해서는 남해대교를 지나 남해 본섬으로 가는 방법과 사천 삼천포를 지나 창선·삼천포대교를 지나서 가는 방법이 있다. 남해군을 가로지르는 주도로는 19번 국도와 3번 국도이다. 남해대교를 지나 19번 국도를 타고 창선도 방향으로 오다보면 창선면이 나오는데, 창선면으로 들어가 창선파출소를 지나 조금만 가면 운대암 이정표를 만나는데, 이정표를 따라 옥천마을을 지나 산길을 4km정도 가면 운대암이 있다.
경남 고성군 문수사 경남 고성 문수암은 여수 향일암, 남해 보리암과 함께 남해안의 3대 절경중의 하나로 꼽히는 암자다. 문수암은 경남 고성 청량산 꼭대기에 위치해 있는 암자로 신라 688년 의상조사가 구도행각 중 청량산 노승으로부터 현몽을 얻어 걸인으로 화현한 문수. 보현 두 보살님의 인도로 지은 암자라 전해진다. 문수암은 수도 도량으로서 많은 고승들을 배출했고 산세가 수려해 삼국시대부터 해동의 명승지로 유명했다
문수암의 유래에는 재미있는 설화가 있다. 의상조사가 남해 보광산(남해 금산)으로 기도하러 가던 길에 상리면 무선리 어느 촌락에서 유숙하게 되었는데 비몽사몽간에 한 노승이 나타나서 '내일 아침에 걸인을 따라서 보광산보다 무이산을 먼저 가보라'하고 홀연히 사라져 잠을 깨니 꿈이었다 한다.
날이 밝았는데 과연 한 걸인이 나타나, 급히 밥상을 갖다주며 청랑산(무이산)의 주소를 물었더니 '청량산(무이산)에 간다' 하기에 함께 동행하게 됐다. 의상조사가 걸인을 따라 청량산 중턱에 오르니 눈앞에 수많은 섬들이 떠있고, 동.서.남.북 그리고 중앙에 웅장한 다섯 개의 바위가 오대를 형성하고 있어 마치 오대산의 중대를 연상케 했다.
이때 그 걸인이 중대를 가리키며 '저곳이 내 침소다'라고 말하자 한 걸인이 또 나타났으며 두 걸인은 서로 손을 잡고는 바위 틈새로 사라져버렸다는 것이다.
의상조사가 석벽사이를 보니, 석벽 사이에는 천연적인 문수보살상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보고 홀연히 꿈속의 노승이 관세음보살이고 두 걸인이 문수와 보현 보살임을 깨달았다.
의상조사는 이 산을 두루 살펴보고는 '이곳은 족히 사자를 길들일 만한 곳이며 이곳이야말로 산수 수도장이다'라고 예찬하고 문수단을 모아서 문수암을 세우게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는 데 지금도 석벽 사이에는 천연의 문수상이 뚜렸이 나타나 보인다.
문수보살은 석각이고, 관세음보살상은 두자 일곱치 크기의 목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문수보살님 보입니다
[찾아가기]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문수암이 있는 고성군 상리면으로 가려면 남해 고속도로를 이용해야 한다. 남해고속도로 사천 나들목으로 빠져나와 바로 3번 국도를 만나는 삼거리가 나오는데, 여기서 사천 방향으로 직진하여 3번 국도를 탄다. 이 도로를 달려 사천 시내로 들어가기 직전에 33번 국도가 갈라지는 사거리가 나온다.
이 사거리에서 좌회전하여 33번 국도를 타고 가면 고성읍 못미처 상족암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가 나오고, 이 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조금만 가면 문수암 이정표가 있다. 이 이정표를 따라 우회전해 산을 올라가면 문수암이 있다. 주차장에서 약 10분 정도를 더 걸어 올라가야 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사천공항에서 버스편으로 30분 가량 소요되나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는 힘든 곳이다.
경남 고성군 약사전
경남 고성군 보현암
경남 고성군 계승사 계승사는 신라시대 문무왕 15년(675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계승사의 옛 이름은 금태산과 같이 금태사라 전해지고 있으나, 이 또한 계승사의 창건연대와 산 이름이 붙여진 년대 등을 볼 때 최초 창건할 때의 이름인지는 알 수 없다.
계승사는 1593년(선조25년) 임진왜란 때 불에 타서 소실되어 오랫동안 폐허로 남아 있었다.
일본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전국의 고적을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현 계승사 위치에 고려시대로 추정되는 사찰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문화재관리국의 문화유적 자료에도 고려시대의 사찰 터에 기와 도자기 파편이 출토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사찰 터에서 발굴된 문화재로는 금동불상입상(신7714호), 금동불상좌상(신7715호), 원추형토제품(신7716호)), 백자접시(신7717호)가 있었으나 현재 도난 되어 소재를 알 수 없다.
폐허가 된 이곳에서 2006년 현 주지인 법진스님과 인촌스님이 1963년 재창건 불사를 이루어 다시 중창하여 계승사라 이름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1)위치 계승사는 천연자연림을 형성하고 있는 호젓하게 닦여진 산행로가 더할 나위 없이 시원스럽게 느껴지는 금태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를 사이에 두고 연화산 도립공원과 금태산이 위치하고 있는데, 옥천사 I.C에서 영현면 방향으로 오면 금태산이 있다. 계승사 아래에는 대법리와 침점리가 있는데, 두 마을에 다 계승사로 올라가는 길이 나 있다. 침점리에서 산길을 따라 올라가다 고개를 넘으면 바로 계승사로 들어가는 입구가 나온다. 입구로 들어서면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기암괴석들이 눈앞 가득 들어오는 곳에 절이 들어서 있다.
2)찾아가기 승용차 이용 -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를 이용하여 옥천사 I.C로 빠져 나와서 1009번 지방도로로 갈아타고 점촌리에 도착하면 사찰 이정표를 만날 수 있다. 마을을 지나 산길을 따라 올라가면 계승사가 있다.
대중교통 이용 - 고성읍에서 대범리로 가는 마을버스를 타고 대범리에서 내려 30분정도 걸어가면 된다. 버스는 하루에 4번 정도 운행되면 30분 정도 소요된다.
경남 진주시 성전암 성전암은 879년(헌강왕 5) 도선국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그에 대한 확실한 문헌 자료는 없지만, 이 지역의 몇몇 사찰이 모두 도선 국사를 창건주로 모시고 있음은 이러한 구전이 어느 정도 믿을 만한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 있다.
도선 국사는 우리나라의 국토를 풍수지리학의 입장에서 살펴본 결과, 백두산의 정기가 태백산맥을 끼고 내려오다가 한 지맥은 한강 이북인 서울 삼각산에 머물렀고, 한 지맥은 남강 물을 먹고 있는 이곳 여항산에 와서 맺혔음을 관찰하고 이 자리에 암자를 창건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후대에 이곳이 성인이 살고 있는 곳이라고 하여 성전암이라 하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성전암이라는 이름은 인조(仁祖)와 관련 있다고 볼 수 있다. 인조가 임금이 되기 전 능양군(綾陽君)으로 있을 때 이곳에서 100일기도를 올리고 왕위에 올랐다고 전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임금이 성전암에 머물렀으므로 절 아랫마을을 장안리(長安里)라고 하였다고도 한다.
그 밖에 다른 기록이 전하지 않아 자세한 역사는 알 수 없다. 다만 지금 나한전에 봉안된 1644년(인조 22)에 조성하였으므로 이를 통해 당시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다. 시대로 볼 때 인조가 성전암에서 기도를 드렸다는 전설과도 어느 정도 연관된다고 볼 수 있다.
성전암은 경상남도 진주시 이반성면 장안리 산31번지 여항산에 자리하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 해인사의 말사다.
찾아오는 길
대중교통편 1. 기차
2. 고속버스
3. 현지교통
승용차편 1. 서울,대전 방면
2. 부산,대구 방면
3. 광주 방면
경남 진주시 두방암 두방사는 신라 49대 헌강왕 4년(878년)에 도선국사가 창건한 아주 오래된 절이다. 도선국사는 월아산이 절을 감싸고 있으며 정면으로 산 아래가 다 보이는 명당이라 할 수 있는 곳에 두방사를 세웠다.
선조 36년(1603) 계형대사가 중건하고 불법을 계승하여 오다가 1946년 청담대종사가 수도장의 조건을 구비하고 시설을 개수했다.
청곡사 암자로 두방암이라고 불렸으나, 1962년 해인사 말사로 등록하면서 두방사로 승격되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두방암으로 많이 알고 있다.
이 후 1963년 철웅 스님이 무량수전을, 1970년 법령스님이 요사채 보수, 사람들의 접근을 용이하게 하기위해 1973년 성범 스님이 진입로 1.5km를 포장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주지 스님은 암자의 무량수전에 아미타불상을 모시고 있는 것은 드문 일이라며 남쪽지역에 영천의 부귀암에서 승격한 부귀사를 비롯해 3군데가 있다고 한다.
1.위치 달이 떠오르는 모양을 한 산이라는 월아산(月牙山)은 일명 달음산이라고도 한다. 1986년 3월 6일 도시자연공원으로 지정(건설교통부 고시 제93호)되었으며, 시내에서 10여 분 만에 도착할 수 있는 가까운 곳이다.
두방사는 월아산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고 동쪽에는 천룡사, 서쪽에는 청곡사가 있다. 절 주위에는 울창한 숲과 차나무가 자생하고 있으며, 절부터 아래 마을까지 산림욕장이 조성되어 있다.
삼림욕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길 양쪽으로 거대한 느티나무 두 그루가 터널을 만들어 장승처럼 방문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넓은 주차장 바로 위에는 그림 같은 인공호수가 펼쳐져 있어 감탄사를 절로 토해내게 한다. 호수 안에는 두 그루의 나무가 있는데 물을 허리춤까지 두르고 서 있고, 주변에는 수 십년 된 벚나무와 각종 꽃나무들이 가지를 길게 수면까지 늘어뜨리고 있어 동양화 한 폭을 보는 듯 하다. 만약 봄에 이곳을 찾는다면 벚꽃이 수면위로 날리는 장관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2.찾아가기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남해 고속도로를 이용 문산 나들목으로 빠져 나와야 한다. 문산 나들목에서 문산읍 방향으로 우회전 한다. 문산 삼거리에서 국제대학쪽으로 진주-진성간 국도를 타고 들어가다 보면 남해고속도로 밑을 통과하는 굴다리 앞에 이정표가 있다. 이 굴다리를 지나 들어가다 보면 옹기종기 50여 호가 모여 있는 작은 마을이 나오고 마을길을 지나 산으로 10분 정도 오르면 두방사에 도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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