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동안 정신 없이 지냈네요.
그동안 타고 다니던 차도 한 대 고철로 만들었고, 오늘은 드디어 새 차가 제 앞으로 인도되는 날이군요.
조금 무리가 되기는 하지만 어쩝니까? 가족들의 원성 앞에 꿋꿋하게 버텨낼 자신 있는 가장 있으면 나와 보세요. ㅜ.ㅜ
프로젝트 두 개를 동시에 진행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더군요.
두 개 프로젝트의 구매, 자재 투입, 해상/항공 운송을 직원들 서너명 데리고 모두 도맡아 해야 하니 장난이 아닙니다.
일단 기본적으로 한 프로젝트 당 일주일에 고정적인 내부 회의가 너댓개 씩 되니 이도 두 배가 되어 일주일에 기본 내부 회의만 9개에서 10개, 거기다가 수시로 납품 회사와 씨름을 하느라 회의가 잡히니 지난주에는 회의만 25회였습니다.
거기다가 하루에 쏟아져 들어오는 이메일만 200개에서 300개 사이, 이 중 하나라도 놓치면 계약적으로 불리한 상황이 될 수도 있으니 일일이 확인해야 하고...
결국 제가 진짜로 해야 할 업무는 퇴근 시간이 지나서 저녁 식사 후에 하던가 아니면 주말에 몰아서 해야 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호황을 누리는 업종은 정보 통신 기기와 플랜트 건설분야가 거의 유일하다시피 합니다.
호황...
이거 저같이 구매를 하는 입장에서는 결코 환영할 만한 일이 아닙니다.
불황이라 공급 업체들이 줄줄이 부도가 나는 상황만 아니라면 적절한 경기를 꾸준히 타고 가야 하는데 몇 년 째 호황을 이어가다 보니 기자재 공급 업체들의 공장 포화도가 적정 수준 대비 140~150% 정도입니다.
즉, 한 달에 100개를 만들 수 있는 업체가 어쩔 수 없이 받아놓은 오더가 150개 정도라는 것이지요.
그러니 당연히 납기가 늦어질 수 밖에 없고, 일시적으로 이렇게 오더를 받고 정상 수준으로 오더율이 떨어지면 금방 납기 준수율이 정상으로 돌아오겠지만 수 년간 이런 상황이 지속되다 보니 과포화상태를 넘어 공장이 터져나갈 정도가 되는 것이지요.
게다가 플랜트 산업이 호황이라 하니 그동안은 이 업종에 발을 들이지 못하던 중국을 포함한 BRICS 지역의 건설업체들마저 이 시장에 뛰어들어 저가 수주를 일삼으니 공사 수익률은 떨어지고, 이것이 결국 납품가를 어떻게든 떨어뜨려야 하는 결과를 만들어 과포화 상태의 공급사를 상대로 저가 경쟁을 유도해야 하는 안팎 곱사등이 현상을 낳고 있습니다.
이러니 공장들로서도 수익률은 갈수록 떨어지는데 공장은 과포화 상태이니 인건비라도 줄여보려고 야간 작업을 잘 안하게 되고, 결국 제품의 납기가 오뉴월 엿가락 늘어지듯 줄 줄 늘어지기 일수입니다.
전 세계 둥, 대형 공장들이 이런 상황입니다.
글로벌 진상...
결국 요즈음 제 별명이 '글로벌 진상'이 되었습니다.
저런 상황에서 제 날짜에 원하는 물건을 현장으로 넣어주려면 갖은 무리수를 다 두면서 회유, 협박, 억지를 써야 합니다.
지난 번 현장으로 불러서 납기 회의를 가진 영국 회사의 영업사원은 기술 미팅 때 제가 보여준 태도만을 보다가 납기 회의 때 돌변한 저의 태도를 보고는 그만 질겁을 하더군요.
결국 몇 마디 대꾸도 못하고 저의 페이스에 말려들어왔지요.
이번주에도 하루에 서너개 회사씩을 사무실에서 만나고 있는데, 지난 월요일 영업 담당 과장과 함께 들어왔던 이쁘장한 여직원은 그만 사무실 밖에 나가서 울음을 터뜨렸다는 후문입니다..... ㅡ,.ㅡ;;
물론 큰 소리를 지르거나 험한 말을 하는 것은 아니지요.
계약 조건을 조목조목 따지고, 상대방이 당하게 될 불이익에 대해 너무나도 태연하게 공지해 주면서 협박을 하는 것이지요.
웃는 얼굴로 나긋나긋하게...
이번 주까지 한국 내 공급선들과 주욱 한번 이런 회의를 가진 다음 다음 주 수요일부터는 중동, 유럽을 돌며 약 3주간 이런 회의를 해야 합니다.
혈혈단신으로 작은 캐리어 하나와 노트북 하나 들고요.
결국 제 주변에서 저를 이렇게 부르더군요. '글로벌 진상'...쩝
저라고 우리 회사에 자신의 상사와 영업을 하러 들어온 막내 조카 뻘 되는 꿈많은 신입사원을 울리고 싶겠습니까?
찰라도 한 잔 대접하고 이쪽업계에 대해 하나라도 가르쳐주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이지만, 전쟁터에서 적군과 한가하게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눌 수야 없는 일 아닙니까?
현재까지 결정된 코스는 바레인 --> 두바이 --> 이태리 --> 프랑스 --> 영국인데 아마도 핀란드, 독일, 싱가포르가 추가될 듯 합니다.
그러면 약 4주간의 출장이 되겠지요.
잠깐씩이라도 짬을 내어 현지 풍경을 전해 드리겠습니다.
휑하니 다녀오렵니다.
며칠 동안 밤새워 준비하고요. ㅎㅎㅎ
첫댓글 오랜만입니다. 능력이 출중합니다.4주간씩 출장다니고.... 지는 한달에 두번만 출장가도 시간관념이 없어지던데...
잘하면 이번달은 3번째 출장이 ....
건강 잘 챙기며 다녀오세요. 틈틈이 현지 소식 기다리겠습니다.
민이님! 글을 잘 읽고 있는 1인입니다.
글을 읽고 있으면 힘이나고 그러는데, 이번 출장에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잘 다녀 오세요. 그리고 오시면 술 먹자고 호출 좀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