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산중에 버려진 듯 서 있는 가련한 불상과 불탑들. 나는 그 초라한 불상과 불탑들을 사랑한다. 민중이 염원하는 용화세상이 오는 날, 그들은 가슴 깊이 감추어온 미소를 지으며 세상을 향해 천천히 웃음을 터뜨리리라.
- ▲ 공사바위에서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운주사 전경
‘천불천탑의 신비’라 불리는 운주사야말로 최고의 신비경이라 할 만 하다. 보잘 것 없는 존재는 거리가 멀어질수록 작아 보이지만, 정신적으로 위대한 문화유산은 거리가 멀어질수록 커 보인다. 이것이 운주사가 위대한 까닭이다. 운주사의 매력은 불가해함이다. 절은 있으되 세월의 흐름을 담고 있는 육중한 법당의 위용은 없다. 언제, 누가, 무슨 이유로 창건했는지도 모른다. 다만 천불산 다탑봉 아래 골짜기에 널브러진 불탑과 불상의 따뜻함과 넉넉함으로 가득할 뿐이다.
나는 운주사가 참 좋다. 절 입구에서부터 기분이 좋아진다. 아마도 여느 절과는 다른 편안한 분위기 때문일 터. 그렇다고 다른 절이 편하지 않다는 건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편안하기는 한데 어딘지 모르게 진중한 분위기가 강하게 풍긴다. 아마도 절이 탈속의 이미지를 갖고 있어서 일게다.
운주사는 다르다. 천불산 골짜기에 자리를 틀고 앉았지만 탁 트인 공간이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S자로 휘어진 길을 따라 커다란 불탑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섰다. 양쪽 산등성이에도 군데군데 보초를 서듯 자리하고 있다. 불탑보다 작은 불상은 마치 숨바꼭질이라도 하듯 골짜기 구석구석에 서거나 앉아서 술래가 찾아오기를 기다린다.
재미있는 건 불탑과 불상이 많다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그 생김새가 매우 이채롭다는 점이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구층석탑은 삐쩍 마른데다 멀대 같이 키만 크다. 탑신에는 X, V, ◇ 형의 기하적 도형이 새겨졌다. 탑이라면 경주의 감은사지 삼층석탑이나 양양의 전전사지탑처럼 훤칠하면서도 무게감이 느껴져야 하는데, 그들의 잘생김에 비하면 모양새는 별로다.
구층석탑 뒤에는 제기를 쌓아놓은 모양의 원형다층석탑이 있다. 이상하게 생기기는 마찬가지다. 생긴 모양 때문에 ‘떡탑’이라는 별명을 얻은 재미난 불탑이다. 이제껏 보아온 것들과는 전연 새로운 형식이다. ‘돌을 쌓아 올리면 무조건 탑이 되는 건가?’ 파격적인 모양새의 탑들은 왠지 낯설고 이상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정형화된 탑의 모습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서다. 하지만 한두번 보다보면 호기심이 일면서 편안하고 친근한 느낌을 준다.
- ▲ (좌) S자로 휘어진 운주사 들어가는 길목 (우) 운주사 입구 중간중간 작은 불상들이 숨어 있다
도대체 누가, 무슨 연유로 이렇게 많은 불탑과 불상을 세운 것일까? 궁금증은 머리속에서 떠나질 않지만 그 어디서도 명쾌한 답을 얻을 수는 없다. 학자들은 고려시대인 12~13세기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 시기에 운주사의 것과 유사한 양식의 불상이 나타나고, 석탑에서도 원형이나 다각다층탑 등 새로운 형식이 출현하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 역사에 대해서는 상상만 무성한 채 무수한 설화만 전해온다. 그 중 널리 알려진 것이 도선국사와 관련한 설화다. 신라 말 당나라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도선국사가 이곳 지세를 살펴보니 행주형국이라. 배의 중간쯤 되는 호남 땅에 평야가 많아 산이 많은 영남으로 배가 기울어질 것을 염려해서 도력으로 하룻밤 사이에 천불천탑을 조성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맨 마지막으로 와불을 조성하고 일으켜 세우려는데, 공사에 실증난 동자승이 새벽닭이 울었다고 거짓말을 해서 중단했다고 한다.
이 외에도 평민과 노비들이 신분해방을 꿈꾸고 미륵이 도래하는 세계를 염원하며 조성했다거나 고려를 침략한 몽고군이 신라 이래로 호국의 상징이었던 황룡사9층목탑을 불태우자 그것을 대신할 상징물이 필요해서 급하게 만들었다는 설도 전한다.
폐허 속에 잊혀졌던 운주사를 세상에 데뷔시켜 유명하게 만든 이는 소설가 황석영이다. 그는 조선 숙종대의 의적을 다룬 소설 <장길산>에서 천불산 골짜기의 운주사에 천불천탑을 세우고 마지막으로 와불을 일으켜 세우면 민중해방의 세계가 열린다는 것으로 대미를 장식했다. 이로 인해 운주사는 미륵신앙의 혁명적인 성지로 부상하게 되었다. 현대에 들어서는 광주민주화운동으로 희생당한 민중들의 저항의식과 좌절된 심정을 상징하는 의미를 더하기도 했다.
- ▲ (좌) 칠성바위로 가는 길에 있는 불탑 (우) 생긴 모양 때문에 ‘떡탑’이라 불리는 재미난 불탑
기기묘묘한 탑과 불상의 환영을 받으며 법당 앞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대웅전 뒷편 산마루턱에 있는 공사바위에 오른다. 특별한 무언가를 기대해서는 아니다. 그저 운주사 경내를 바라보고 싶기 때문이다. 공사바위는 천불천탑을 조성할 때 공사를 담당했던 감독관이 지휘를 했던 곳이라고 한다. 여기에서는 계곡에 흩어져 있는 불탑과 불상은 물론 운주사 일대 경관이 한눈에 들어온다. 밑에서는 산만하게 보였던 불탑과 불상들이 의외로 잘 정리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입구에서부터 S자로 휘어진 진입로는 밖에서 잘 보이지 않도록 되어 있어 더욱 신비로움을 자극한다. 아마도 절의 신비를 쉽게 드러내지 않으리라는 의지가 숨겨져 있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운주사에 대해서 명확히 알려진 것은 절 이름뿐이다. 그것도 운주사(雲住寺)와 운주사(雲舟寺)로 뒤섞여 불리다가, 1984년에야 비로소 정확한 이름이 밝혀진 것이다. 당시 전남대 박물관의 발굴 과정에서 ‘운주사 환은천조(雲住寺 丸恩天造)’라는 명문이 새겨진 암막새기와가 출토됨으로써, ‘구름이 머무는 절’이라는 뜻의 운주사임이 밝혀졌다. ‘배를 움직인다’는 의미의 운주사는 후대에 설화가 만들어지면서 붙여진 이름일 것이다.
- ▲ 운주사 최고의 명물인 와불
미완성이 주는 신비로움
공사바위에서 내려오면 절 마당에 널브러진 탑과 불상을 구경한다. 마당에서 유독 눈길을 끄는 것은 돌집 모양의 석조불감이다. 육중한 모양새도 그렇지만, 다른 절에서는 쉽게 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닌 탓이다. 석조불감으로 불리는 석불감쌍배불좌상은 구층석탑과 원형다층석탑 사이에 있다. 여러 장의 판돌로 전각을 만들고, 그 안에 등을 맞대고 있는 2구의 석불좌상을 안치했다. 그 자체로 법당인 셈이다. 이러한 예는 우리나라 조각사상 유례가 없는 것이다.
마당에서 산길을 따라 오르면 운주사 최고의 명물인 와불이 있다. 거대한 암반에 새긴 13m가 넘는 미완성의 돌부처다. 일어서면 민중해방의 세상이 열린다는 바로 그 주인공.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는 와불이라고 할 수 없다. 불교에서 말하는 와불이란 부처의 열반상을 의미한다. 부처가 옆으로 누운 상태에서 열반했기 때문에 와불은 측와상으로 나타난다. 운주사 와불의 경우 반가부좌의 본존불과 입상의 협시불이 누워있는 것이다. 암반에 조각하고 미처 일으켜 세우지 못한 미완성의 부처라 해야 옳을 것이다.
‘미완성이기에 의미를 부여한 게 일어서는 것일까?’ 참으로 기발한 발상이다. 일어서는 것으로 완성의 의미를 부여한 것은, 더욱이 그럼으로써 용화세상이 온다고 믿었다. 권력 앞에, 재물 앞에 짓눌리고 억압당하던 민초들의 바람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와불. 불현듯 말없이 누워있는 와불을 보면서 절대 실현될 리 만무한 일에 희망을 품었을 그들의 현실이 딱하다는 생각이 든다.
- ▲ 절벽 아래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불상들.
와불에서 산길을 따라 절 입구 쪽으로 내려오면 칠성바위와 맞닥뜨린다. 듬성듬성한 소나무 숲에 연자매처럼 커다란 원형의 바윗돌 7개. 돌이 놓인 모양새가 마치 북두칠성의 별자리와 동일하다. 하늘의 별자리가 산허리에 반사되어 있는 형태로 원반 지름의 크기와 배치각도가 북두칠성의 방위각이나 밝기와 매우 흡사하다고 하는데, 도통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칠성바위 역시 내력을 알 길이 없는 유물로 운주사의 신비에 한 몫 한다.
절은 천불천탑의 신비로 세상에 널리 알려졌지만, 현재는 18기의 불탑과 70여 구의 불상만이 쓸쓸하게 남아 있다. ‘과연 천불천탑이 실재했던 것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불탑과 불상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리 많다는 생각이 안 든다. 마음을 사로잡을 만한 인상적인 작품이 없어서 그럴게다. 고만고만하고 편안하기 때문에 가벼운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어서다.
마을 노인들의 말에 의하면 일제시대까지만 해도 지금의 2배 가량 있었다고 한다. 16세기 기록인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운주사는 천불산 속에 있는데, 절의 좌우쪽 허리에 석불석탑이 각각 1천 개씩 있으며 또 석실이 있어 두 석불이 서로 등을 마주 대하고 앉아 있다”고 적혀있다. 운주사 천불천탑의 신비가 허언은 아니었음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이다.
천불산 골짜기를 불국토로 만들었을 불상과 불탑들. 지금은 대부분 사라지고 없지만, 말없는 대화를 통해 그들과 마음을 같이하면 정과 망치를 들었던 석공의 간절한 마음과 통할 수 있다. 깊은 산 속에 버려진 아이 마냥 흩어져 있지만, 그들이 소원하는 세상이 온다면 말없이 미소 짓다 천천히 웃음을 터뜨릴 것이다.
info
주변 여행지 >> 고인돌공원
화순군 춘양면에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인 고인돌 400여 기가 모여 있는 공원이 있다. 10km 골짜기에 눈에 보이는 커다란 바위는 모두 고인돌이라고 할 정도다. 세계에서 제일 큰 고인돌인 핑매바위 고인돌도 있고, 100톤 이상 되는 거대한 고인돌이 수십 기나 된다. 고인돌은 전 세계에 5만여 기가 있는데 그중 4만 기가 우리나라에 집중되어 있다. 화순, 고창, 강화에 밀집되어 있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맛집>> 양지식당
30여 년 동안 자연산 미꾸라지를 사용해 숙회와 추어탕을 만드는 집. 미꾸라지를 삶은 후 호박, 버섯, 미나리, 부추, 배추 등 야채와 함께 보쌈으로 먹는 숙회는 맛이 뛰어나 전국의 미식가들에게 인정받고 있다. 특유의 향과 토속적인 맛으로 누구나 맛있게 먹을 수 있다. 문의 062-372-1602
찾아가기
호남고속도로를 이용해 광주까지 간 다음, 광주 시내를 거쳐 화순으로 간다. 화순읍 중앙병원 앞에서 우회전해 29번 국도로 능주사거리까지 간 다음 우회전해서 822번 지방도로를 따라 남평쪽으로 간다. 남평에서 좌회전해 도암을 지나 다도 방면으로 가다보면 운주사 입구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