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광복절이면 대통령 특별사면으로 많은 모범수들이 풀려난다. 광복절이 지난지 오래되었지만, 또 다시 광복절 특사가 진행된다니 이상한 일이다. 올해 끔찍했던 수해 때문이다. 비바람이 셋트를 덮쳐 촬영이 연기되었고 당초 광복절 맞추어서 개봉하려고 했던 [광복절 특사]는 겨울이 다가오면서야 개봉하게 되었다.
광복절 특사를 보기 전에 먼저 알아야 할 상식이 있다. 이 영화는 박정우 작가/김상진 감독 콤비의 작품이라는 것. 이들 콤비는 이미 [주유소 습격사건][신라의 달밤]을 함께 찍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박정우 작가의 전작품인 [라이터를 켜라]까지 기억하고 있다면 더욱 좋다. 또 하나 기억할 것은, 차승원과 설경구라는 배우들의 이전 출연 작품 목록들이다.
우리가 이렇게 사전지식이 필요한 이유는, [광복절 특사]는 박정우 작가/김상진 콤비가 지금까지 자신들이 만든 작품을 자기복제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연기자들인 차승원 설경구 역시 지금까지 자신들이 출연한 영화의 캐릭터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동어번복적 연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기 위해서이다.
숟가락 하나로 6년동안 땅굴을 파서 탈옥하는 무석(차승원 분)과, 애인의 변심에 화가나 무작정 탈옥에 동행한 재필(설경구 분)이, 광복절 특사 명단에 자신들의 이름이 끼어있는 것을 알고 다시 감옥으로 들어가는 이야기 [광복절 특사]는, 그 흔한 감옥 영화이며 버디 무비이다.
감옥으로 되돌아가는 소재도 새로운 것은 아니다. 할리우드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캐릭터 구축에 뛰어남을 자랑해 온 박정우 작가는 그러나 [광복절 특사]에서 지금까지 자신의 영화에서 만들어온 캐릭터를 동어반복하고 있다. 빵 하나를 훔치다가 붙잡혀 감옥에 들어온 후 거듭된 탈옥의 실패로 8년형을 선고 받은 무석. 단순 무식하다. 그가 탈옥하려는 것은 이유가 없다. 이런 캐릭터는 [주유소 습격사건]의 무대뽀 이후 [신라의 달밤]의 체육교사를 거쳐 [라이터를 켜라] 등에서 이미 우리가 낯익게 만난 인물들이다.
재필도 마찬가지다. 교도관들에게 온갖 아첨을 떨며 모범수로 인정받아서 가석방되거나 특사로 풀려나려는 그는 탈옥에 성공하 후 변심한 애인 경순(송윤아 분)의 마음을 되돌리기 위해 광복절 특사 명단에 들어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교도소로 복귀하지 않으려고 저항한다. 강애리자의 [분홍 립스틱]을 부르는 남자 앞에서는 맥을 못추며 [어쩜 좋아]를 연발하는 경순의 캐릭터는 그래도 이 영화에서 가장 볼만한 인물이다.
내러티브 구축도 마찬가지다. 감옥 내에서 폭동이 일어나는 후반부의 상황이 특히 그러한데, 용문신 일당이 교도관들의 총을 빼앗아 교도소를 점거하는 과정이 억지스럽게 구성되어 있고 또 국회의원들을 비롯해서 권력자를 조롱하는 방식이 치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것 역시 [주유소 습격사건][라이터를 켜라]에서 비슷하게 변주된 플롯이다. 이런 자기복제는 박정우 작가의 가장 큰 약점이다.
김상진식 코미디는 경쾌하게 물의 표면을 스치고 지나가는 물수제비처럼, 관객들의 성감대를 건드려준다. 그는 결코 무겁거나 진지해지고 싶어하지 않는다. 생의 외형으로 드러난 단면들만을 보여주면서 관객들의 재미를 얻고 싶어한다. 웃을 때 신나게 웃더라도 끝나고 나면 깊은 페이소스가 찾아오거나 오랜 여운이 남는 웃음을 그의 영화에서 발견할 수는 없다.
차승원은 [리베라메]의 성공적인 악역으로 연기 변신을 꾀한 이후, 김상진 감독 박정우 작가와 만나서 [신라의 달밤][라이터를 켜라]에서 연이어 망가지면서 코믹한 캐릭터를 비슷하게 연기했다. [광복절 특사]는 그의 코믹연기의 집대성이다. 그러나 너무 오버한 집대성이다. 능글맞아지고 한 박자 늦추는 여유까지 생겼지만, 동어반복은 관객들에게 신선함을 안겨주지 못한다.
설경구 역시 [박하사탕]과 [오아시스] 등 이창동 감독과 함께 한 작품의 강렬한 캐릭터를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그가 이창동 감독이 아닌 다른 감독들과 함께 작업하면 이상하게 왜소해진다. [단적비연수]가 그랬고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가 그랬다. 잠재적 역량은 무한한 배우인데 그것을 조련하는 감독의 용병술에 따라 연기의 폭이 달라지는 배우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광복절 특사]는 김상진 감독 자신의 표현대로 쌈마이 영화의 결정판이며 종합선물셋트같은 영화다. 관객들은 극장으로 몰려가 신나게 웃겠지만 결코 그 웃음의 깊이는 깊지 않을 것이고 여운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2시간동안의 극장 안에서의 쾌락만을 쫒기 위하 것이라면 [광복절 특사]는 크게 모자라지 않다. 그러나 그 이상을 기대하기는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