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은 삼남에 물산이 서울로 이동하는 교통 요충지로 발전하고 대구와 더불어 3대 시장으로
전국서 도시계획에 의한 4번째 읍으로 발전 하였으나
빨개벗고 30리를 달린다는 안성사람.안성 구 공원에 가면 수 많은 송덕비가 있는데 사도가 안성에 부임하여 도착하기 전에
미리 송덕비을 만들어 주어 주민 민폐을 하지 못하도록 하였다는 이야기
보수적인 기질로 철도 부설을 반대하는 일본은 평택으로 경부선을 놓아버리고 안성 발전은 뒤로
처지는데 안성 맟춤 유기와 포도 와 더불어서 안성 남사당 바우덕이 축제가 있지요
안성에 바우덕이라는 여성 남사당이 있다.
사내 마음을 사로잡는 뛰어난 미모와 옹골찬 소리가락, 산들산들 바람에 휘날리는 줄타기 재주가 당내 최고의 경지에 달했다고 한다.
그녀의 자태가 너무 고와 시름 시름 가슴 앓은 남정네가 양반, 상민 할 것 없이 허다했다고한다.
조선 말세계는 식민지 쟁탈과 한창 개국을 하던시기
대원군은 쇄국으로 나라을 지키고자 일본 임진란으로 불타서 폐허가된 경복궁을 중 건하는데
국력을 쏫아 부으며 당백전을 발행하며 국민에 지탄을 받아가며 부역 시키고 일을 독려 했다는데
신심에 지친 부역자들을 바우덕이 안성 남사당을 동원하여 이용 했다던 명물 이었다지요
지금으로 따지자면 당대 최고의 인기를 한몸에 받았던 최고 스타였던것.
남사당 최고인 꼭두쇠 바우덕이(성은 김(金)이고,
이름은 암덕(岩德)이 기 때문에 岩을 바위로 풀어 바우덕이라고 불리웠다고 한다)는
남사당패의 역사상 유일무이한 여자 꼭두쇠. 안성 서운면 청룡리 불당골에서 염불, 소고춤, 풍물, 줄타기 등
온갖 남사당 기예를 익혔으며, 뛰어난 기량으로 세상에 나가 판놀음을 걸판지게 펼쳐 그 이름을 모르는 이가 없었을 정도였다.
타고난 천부적 재능과 미색을 겸비한 총기로 남사당패의 꼭두쇠로 추앙받았고 꼭두쇠로 활동하며 놀라운 재능을 발휘하여
남사당패의 전성기를 이루어냈다.
남사당패는 맨위에 꼭두쇠가 있고 그 밑에 곰뱅이쇠, 뜬쇠, 가열, 삐리, 저승패, 동짐꾼 등으로 구성되어
풍물, 버나, 살판, 어름, 덧뵈기, 덜미 등의 놀이를 행하였다. 안성 남사당의 맥은 조선조 말기의 바우덕이로부터 시작해
김복만 - 원육덕 - 이원보 - 김기복으로 이어졌고 해체와 결성을 거듭하면서 끈질긴 맥을 잇고 있는 것이다.
본래 남사당패의 풍물놀이란 옷다리가락을 주축으로 하여 진풀이, 무동, 벅구놀이, 채상놀이,
선서리 등의 몸재주와 묘기에 소리(산타령, 새타령, 모찌는 소리, 논매는 소리등)까지 곁들이니 훌륭한 구경거리가 아닐 수 없다.
따라서 풍물이란 우리나라 특유의 민중 음악이며, 남사당패에 의하여 떠돌이 판굿모임에 맞게 놀이성이 풍부하게 짜여진 것이다.
안성의 남사당 풍물놀이는 남도 농악에 비해 무동의 수가 많고 5무동을 비롯한 3무동, 4무동, 단무동에 이르기까지
다채롭게 펼쳐지며 최고의 기량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보유하고 있는 7무동 무예이다.
한많은 인생을 살다가 꽃다운 나이에 저세상으로 떠난
.바우덕이 (1848-1870)
바우덕이는 5세의 나이에 안성남사당패에 맡겨졌는데
뛰어난 기량과 스타 성을 인정받아 15세의 나이에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꼭두쇠가 되었다.
고종2년 (1865년)에는 흥선 대원군으로부터 당상관
정3품의 관직에 상당하는 옥관자를 하사 받았다고 한다.
바우덕이는 비천한 남사당 문화를 대중문화로 발전시키고
백성들의 억눌린 한을 대변하는 힘든 유랑생활을 하다가
폐병에 걸려 23세의 나이에 숨을 거두었다.
바우덕이는 비천한 남사당의 신분을 뛰어넘은
조선을 빛낸 여성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연예인 원조가 아닐까요
**** 바우덕이 공연장이 왜 연고도 전혀 없는 보개면으로 자리잡은건 뭐가 한참 잘못 된거 같은데
이리로 잡은 안성시나.의회 관계자 ..아니 안성시민 모두가 ~~이 잉 .아닌데
서운면에 사는 우리들은 왜 몰랐을까...
한번 잘못된 판단이..
당시 보개면 에서 힘있는 사람이 아니면 정치시장이 나눠먹기 표을 의식해서...
맞춤랜드
천문대 같이 보이네
잔디 광장
첫댓글 저 곳... 안성맞춤랜드....
올 여름 저곳을 두번이나 가 내 기억속에 가둔곳...ㅋ
아무 연고도 없는 저곳에 세워진 저 남사당 바우덕이 공연장처럼
아무 연고도 없는 저곳에 올 여름.... 내마음도 연꽃과 마름이 가득하던
연못에 빠뜨려 두고 왔다.. ^^
얼마전 현식씨 아들 장가들던 날에도 다녀온 곳...
먼 훗날에는 어찌 기억될까..??
현식이네 서는 시간이 안되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