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집에 철봉을 설치했다. 철봉이라고 하니 뭐 대단한 운동기구처럼 생각되지만 사실 봉 하나를 문틀에 끼워 놓는 것이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그 봉에 그네를 매달았었는데 얼마나 조였졌는지 나중에 이사하면서 아무리 빼려 해도 요지부동이었다.
그 때는 아이 때문에 샀지만 지금은 나 때문에 샀다.
신문인가 티비에서 철봉에 매달리는 것이 오십견 예방에 좋다고 했는데 들을 당시에야 남의 일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전철에서 책을 읽으면 목 주위가 뻐근하거나 통증이 와서 고개를 들거나 돌리는 게 불편해졌다.
게다가 왼 어깨에는 팔을 들면 근육에 통증이 느껴져 이러다 팔을 못 드는 것은 아닐까 염려도 되었다.
하루 출퇴근 시간이 무려 네시간 그 시간에 주로 책과 신문을 읽는데 무거운 책을 읽을 때는 팔이 아파 두손을 축 늘여뜨려 책을 잡으니 자연 고개가 심하게 숙여진다. 그런 자세로 책을 읽어서 그런지 목 주변의 근육이 뭉쳐 아픈데, 이러다가 목 디스크 생기는 것이 아닌가도 걱정이 됐다. 나이 들어 열심히 공부하든 친구가 목디스크 수술을 받는 것을 지켜봤기에 더더욱 그렇게 생각하게 했다.
실제로 목이 아파 며칠 고개도 못돌리다 간신히 스트래칭과 통증을 무릅쓴 목돌리기로 간신히 근육을 풀어 놓은 후에 옛생각이 나서 목 주위 근육을 강화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운동기구가 그렇듯 살 때는 열심히 낮 밤 가리지 않고 할 것 같더니 방문에 매달아 놓았는데도 그렇게 자주 매달리지는 않는다. 그래도 워낙 가까이 지나다니는 길에 있으니 이틀에 한번 정도는 매달린다. 처음에는 매달려 몸을 끌어 올리려면 왼 어깨가 아파 윽 소리가 절로 났다. 물론 팔 근육의 힘보다는 몸의 중력이 커서 팔의 반절도 굽혀 올리지 못하니 몸 몇번 흔들대거나 일센티미터 정도 올리다 내리기를 한 열 번 꿈틀대다가 내려서는 게 다였다.
그런 하찮은 몸짓에도 근육에 힘이 붙는지 어느날엔가 턱걸이 한번이 되더니 지금은 세번까지 된다. 물론 세번째는 바둥바둥 무릎까지 굽히고 윽윽 소리를 내가면서 온갖 힘을 다 써야 올라 가지만.
그런데 아빠가 하니 아이들도 한번씩 따라 하는데 턱걸이 한번도 못하는 것을 보니 한심한 생각이 든다. 원래 그 근육을 쓰지 않았으니 힘이 있다 없다를 말하는 것도 그렇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한번을 못하는 아이들이 이해가 안된다. 특히 큰 놈은 줄넘기 대회에 나가서 이단뛰기를 400번 가까이 한 적도 있으니 더더욱 이해가 안간다. 농구에 축구 운동을 좋아해서 따로 동아리까지 가입해서 활동도 했는데 턱걸이 한번을 못하니 어떻게 이해가 가겠는가?
당연히 그런 것도 못하냐는 말끝에 아빠는 너 나이에 스무개씩 했다는 자랑 아닌 자랑을 늘어놓으니 요즘 애들은 다섯개만 해도 아주 잘하는 것이라 한다. 턱걸이 스무개란 말에 학교 다닐 때가 생각났다. 그 때는 고등학교 입학 시험에 체육 과목이 있었다. 물론 필기가 아니고 실기인데 체력장이란 이름으로 200점 만점에 20점을 차지하는 아주 중요한 과목중에 하나다. 이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중 3 일년 내내 학과가 끝나면 운동장에 모여 체력장을 구성하는 과목별로 구성된 코스를 돌았다. 체력장 과목은 온 몸을 구석구석 다 이용하게끔 짜여져 있었으니 그야말로 전인교육이 아닌 전체교육이었다.
복근을 이용하는 윗몸일으키기에 턱걸이, 던지기, 지구력을 측정하기 위한 오래달리기, 유연성을 측정하기 위한 윗몸 굽히기, 순발력 측정을 위한 왕복달리기에, 100미터 달리기 등등 건전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든다는 그리스의 명언까지 동원해가며 운동을 하였다. 체육선생님들은 학생들의 체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새로운 기법의 훈련을 연구하기도 하고 도입하기도 하였다. 국가대표들이 훈련 받는 모습에 종종 등장하는 로프에 매달린 모습도 이미 당시에 도입되어 열심히 줄에 매달려 오르 내린 나에게는 추억 속의 한 장면이다.
고등학교 때도 대학 예비고사 과목에 이 체력장이 그대로 있어 중학교 때 만큼 열심히 하진 않았지만 입시공부 사이사이 운동장에 모여 체력을 다지곤 했다. 그러나 중학교 때와 달리 멀리던지기가 공에서 수류탄으로 바뀌어 체육의 목표가 단순히 '건전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을'이라는 순진한 구호에 있지 않고 훌륭한 전사를 키워 내는 데 있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 옥에 티라면 옥에 티였다. 하긴 교련이라는 과목이 있어 실제 흙을 넣은 마대자루를 들고 뛰는 것으로 경연대회를 할 정도였으니, 수류탄던지기야 애교로 봐줘도 될 만한 일이긴 하다.
가끔 신문과 방송에서 국민소득 증가로 아이들이 섭취하는 영양상태가 좋아 신장도 커지고 몸무게도 늘었지만 체력은 전보다 떨어졌다는 기사가 나온다. 나보다 더 큰 신체에 더 잘 먹고 큰 아이가 턱걸이 한개를 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분명 맞는 말이다. 그러나 아무리 군사문화의 잔재라고 하더라도 하루에 한시간 또는 그 이상의 시간을 운동장에서 보낸 나와 또는 우리 세대와 하루종일 책상에 앉아 생활하고 그것도 모자라 방과후에는 학원으로 과외로 내몰리는 아이들을 비교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표본을 잘못 선택한 것이다. 비교할 것을 비교하란 말이 이럴 때 쓰기 위한 말이 아닐까?
몇 년을 훈육되고 단련된 몸에 남은 기억들이 쉽게 없어지지 않고 며칠만에 턱걸이 세개로 복원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요, 즐겁게 놀면서 필요한 근육만 발달한 아이들에게 턱걸이 근육이 하루아침에 생겨나지 않는 것도 당연한 것처럼,. 하루 한시간 이상 운동장에서 생활한 아이들과 하루종일 책상에 앉아서 생활한 아이들을 비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유아기나 아동기때 비만이 평생 비만으로 갈 수 있는 것처럼 청소년기에 기른 체력이 평생의 체력이 될 수있다. 체력이 단지 먹는 것에 의해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면 운동을 해야하고 운동을 하는 것은 남과 같이 하는 것이다. 따라서 체력을 키우는 것은 생활습관을 바꾸는 것이고 궁극적으론 인간과 인간이 만나는 것이다.
턱걸이 한 개 두 개 더 하는 것도 좋지만, 두 기둥을 연결하는 철봉처럼 아이들도 그렇게 연결되며 서 있으면 좋겠다.
20094.5
첫댓글 우리 한결이는 이번 달부터 탁구를 배웁니다. 좋은 선생님을 만났지요. 학교에 안 가니, '여유'라는 걸 누리네요. 한 1년 제대로 배우면 아주 잘 할 듯...
승현이가 탁구 배웠는데, 탁구장이 수강료만 받아 먹고 문닫고 도망가는 바람에 중도에 그만 뒀지요......좋은 선생 만났다니 배움의 반은 이룬 것이네요
저도 목 근육이 자주 뭉쳐 고통스러운데 철봉을 해야겠군요.
녜 해보세요 정말 좋아요
일전에 펑키를 만났는데 나의 어깨가 떠억 자리를 잡아서 옷을 걸어도 안 흘러 내릴것이란 말을 했는데... 이는 젊어 소시적에 암벽을 조금한다고 용을 쓴 여파가 아니가 싶다.철봉은 여성용이 아닌듯...
그냥 슬슬 매달리는 것도 재밌어요.. 얼마나 버티나 시간도 재어보고 나름 자신과의 싸움이라니깐요...
청한님 말씀을 들으니 우리 집 마당에도 철봉을 달면 좋을듯 합니다. 빨래줄로도 쓸수 있을것 같고요.^^ 근데 어디서 파는건지 어떻게 다는 건가요? 우리집 마당에 시멘트로된 사각기둥이 있습니다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