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룬달레 궁전
성 페테르부르크의 겨울궁전을 건축한 이태리 바로크의 거장 바르톨로메오 라스트렐리가
구제메의 공작이었던 바론 에른스트 요한 폰 뷔렌을 위해 지은 바로크식 궁전. “라트비아의 베르사유”라고 불린다.
138개의 방과 온통 금으로 장식된 ‘황금의 방’, 무도회장인 ‘하얀 방’, 가구, 화려한 벽장식 등을 볼 수 있다.

룬달레 궁전은 리투아니아와라트비아 국경에서 얼마
멀지않은 곳에 있다

비론은 쿠를란드 공국의 7번째 군주로써 (20년 후 다시 11번째 대공작으로 즉위한다)
바로 자신의 여름궁전으로 삼기 위해 룬달레 궁전을 건설한 장본인이다. 약 2백년의 짧은 역사 동안 모두 12명의 군주가
이곳을 다스렸고, 비론 가문은 쿠를란드 공국의 번성과 쇠락을 동시에 가져다 주었다.

이 룬달레 궁전은 그 비론의 힘이 최고에 올랐던 1736년 건설이 시작되었다.
건설에는 상트 페테르스부르그의 겨울궁전을 설계인 이태리계 건축가인 바톨로메오 라스트렐리(Rastrelli)가 참여했고,
그 외 미하일 그라프, 주키니 등 유럽의 유명 건축가와 예술가들이 거들었다

유럽 최고의 천재 건축가 중 하나인 라스트렐리는 건축이 시작된 지 4년만에
룬달레 궁전을 거의 완공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으나, 1740년 비론의 일가족이 시베리아로 유형을 떠나면서
궁전 건축은 중단되고 거의 버려진 상태에 이르렀다

그 후 약 20년 후 비론이 유형에서 돌아온 후 11대 대공작이 되어 다시 재건을 시작했을 당시에는
궁전의 상태가 심각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미 궁전 내부의 양식이 당시로서는 ‘한물간’ 바로크 양식이었던 것.
비론은 다시 엄청난 돈을 퍼투어 궁전 내부를 거의 모두 로코코 양식으로 개조하였고,
그 당시 개조된 모습이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1795년 쿠를란드와 리투아니아-폴란드 연합국이 제정 러시아에 편입되자
룬달레 궁전은 예카테리나 대제의 소유로 전환되었고, 예카테리나 대제는 그 궁전을 자기의 정부였던 주보프(Zubov)에
선물로 바쳤다. 주보프란 사람은 안타깝게도 일찍 생을 달리했는데, 공교롭게도 그의 동생 역시 예카테리나 대제의 총애를 받게 되었으니 두 형제를 동시에 사랑했던 예카테리나는 주보프 형제들을 위해서 궁전의 일부를 친히 개조했다

일찍 세상을 떠난 주보프는 아내도 있었는데, 그 궁전의 공식 소유자였던 남편이 죽자
룬달레 성은 바로 그 아내의 소유권이 되었고, 그는 곧바로 러시아 왕가인 슈발로프(Shuvalov) 가문의 남자와 결혼했다.
그 결과 슈발로프 가문은 1차 대전 발발전까지 룬달레 궁전의 실질적인 주인노릇을 할 수 있었다.

룬달레 궁전 후원

1차 대전이 발발하기 전 룬달레의 주인은 부엌에 있는 숟가락까지 모두 바리바리 싸들고 성을 떠났다.
그래서 남아있는 것이 거의 없는 상태로 소련 시대를 맞았다. 그 기간 동안 주인 없는 궁전은 학교, 관공서, 창고 등으로
다양하게 사용되었고, 심지어 응접실은 농구연습을 하는 체육관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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룬달레 궁전 내부로 들어간다.
장식은 Rococo Style, 그림은 이태리 화가 프란체스코 마르티니(Francesco Martini)가 그렸고
벽의 각종 대리석 데코레이션은 베르린의 거장 요한 미카엘 그레프에 의헤 만들어졌다. 룬달레 궁전은 138개의 방이 있으며 실내에는 장기간에 걸쳐 완공하였다. 메인 홀, 무도 회장의 화려한 장식의 벽과 이태리 화가가 그린 천사 그림의 천장을 볼 수 있다





황금으로 장삭된 "황금의 방"

대관식을 위해서 만든 홀이다.



대관식을 위해서 설계된 방.
사실 이곳에서 대관식이 열린 것은 몇회 되지 않는다

이태리 화가가 천장에 그린 천사의 그림.



무도회장인 하얀 방



첫댓글 웅장하고 거대한 궁궐이군요 감상 잘햇슴니다 수고하셧슴니다 감사햇슴니다 .........
웅장한 궁전 감사히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