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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년전 청담 스님의 상좌와 손상좌로 스승과 제자가 된 현성 스님(좌)과 마가 스님. 서울 현성정사에서 새 아침 법담을 나누며 불자들이 '새해에 다짐한 진심'이 흔들리지 않기를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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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계십니까?”
마가(摩迦, 자비명상이사장) 스님이 은사 현성(玄惺, 75) 스님의 방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은사께서는 외출 중이시다. 종무소에서 “안양교도소에 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추운 날씨에….’ 생각해 보니, 은사께서 안양교도소를 다니신 세월이 35년이다. 출가하여 스승과 제자의 인연을 맺기 전부터의 일이 아닌가? 새삼 가슴이 뭉클했다. 포교와 교화를 향한 은사의 행보를 반이나마 닮을 수 있을까? 매주 토요일 서울 남산에서 열고 있는 걷기명상을 35년 이상 지속할 수 있을까? 염주를 굴리듯 이런저런 생각을 굴리는데 은사께서 오셨다는 기별이 왔다.
“추운데 뭣 하러 왔나? 설에나 다녀가면 되지.”
삼배를 드리는 제자를 바라보는 은사의 눈길을 그윽했다.
“자주 찾아뵙지 못해 죄송합니다.” “…”
그렇게 마주 앉은 스승과 제자는 잠시 묵언으로 존경과 자애의 마음을 교감 하는 듯 했다. 제자가 여쭈었다.
-임진년 새해에는 많은 사람들이 좀 더 많이 웃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네가 일을 많이 하면, 그만큼 웃는 사람이 늘어나는 거 아니가? (하하하) 행복을 바라는 사람은 반드시 행복의 씨를 뿌려야 하는 법. 행복도 노력 없이 얻어지는 게 아니거든. 새해는 흑룡의 해라고 많은 기대를 하고 있는데, 그 기대만큼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고 봐. 용은 선행과 공덕을 옹호하는 역할을 하니 개인이나 국가적으로 길운이 깃드는 해가 되길 바라. 모두 선인선과(善因善果)의 도리를 잊지 말고 복 짓고 공덕 쌓는 한 해가 되시길….”
-네, 불교계도 더욱 안정되고 더 많은 일로 사회를 선도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이지. 은사 스님[청담 대종사]께서는 늘 ‘동국대 발전이 불교 발전’이란 말씀을 하셨는데, 종도들이 화합하고 총무원이든 종립대학이든 모든 관련 기관이 안정적으로 업무를 수행해 나가면 그게 곧 불교발전이고 세상을 발전시키는 힘이야.”
-(기자) 마가 스님께서도 불자들에게 새해 인사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
“큰스님께서 말씀 하신 것처럼, 새로운 희망을 심는 마음이 행복을 가져옵니다. 지금 이 순간 하고 있는 이 행동이 행복을 가져오는가? 불행을 초래하는가? 늘 깨어 있으면서 매순간 자문(自問)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지금 이순간의 행동, 말, 생각이 자신의 미래입니다. 인생은 자신만이 주인공이니까요.”
-올해는 총선과 대선이 있는 해입니다.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가 많이 떨어져 있고, 국민과 위정자들의 생각이 따로 겉돈다는 느낌도 듭니다. 국가와 국민은 둘이 아닐 텐데, 원융화합을 위한 길은 무엇이겠습니까?
“당나라 때의 도림 선사는 고을 태수로 부임한 백락천에게 ‘세살 먹은 아이도 아는 것을 여든 살 먹은 어른이 행하기는 어렵다’고 일갈했지. 오늘날 정치인들에게 나는 늘 한 가지를 주문해. 싸우지 말라고. 정치란 대립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야. 그러나 대립과 싸움은 달라.
대립에서 화합과 상생의 묘를 찾아내는 것이 정치인의 역할이지. 그래야 국민을 위한 정치도 가능하고. 그런데 대립에서 묘수를 찾는 게 아니라, 대결로 몰고 가 싸움판을 만들어 국론과 민심을 분열시키는 일이 허다해. 그러니 정치인 좋아하는 국민도 줄어드는 거야. 스스로 빠져 나오지도 못할 대결구도를 만들어 놓고 싸움질을 해대면서 그게 국민을 위한 거라고 떠들면 누가 믿겠어?
언젠가 대통령 후보들이 다 참석한 법회에서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나는 그들에게 ‘부처님이 당선시켜 주느냐? 하나님이 당선시켜 주느냐?’ 하고 물었어. 그리고 말했지. ‘당신들을 당선 시키는 것은 국민이다. 국민을 위해 봉사하고 덕을 베풀어야 한다. 요즘 국민들은 여러분들 보다 훨씬 앞선 생각을 한다’라고. 후보들도 고개를 끄덕였고 박수도 한참이나 이어졌어. 정치인은 국민 무서운 줄 알고 국민은 투표라는 주권행사를 분명하게 해야 해.
노무현 前 대통령이 임기가 얼마 안 남았을 때, 어느 자리에서 이런 말을 하더군. ‘스님, 임기가 얼마 안 남았는데 별로 한 일이 없는 것 같습니다. 누가 한 일이 뭐냐고 물으면 대답할 게 없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몇 백층짜리 빌딩 많이 지으면 잘 한 겁니까? 국민을 화합시키고 원융 사회를 만들려는 노력과 그에 따른 성과들이 적지 않으니 잘 하신 것’이라고 대답했어. 국민을 통합하고 국력을 키우는 것이 정치인의 사명이야. 국민이 분열되면 나라도 사라지는 것임을 명심해야 해.”
화합과 상생의 묘 찾는 것이 정치 국민들 주권행사 제대로 행사해야
이기려는 마음에는 탐욕 들어차 지려는 사람은 ‘텅 빈 충만’ 누려
청담 스님 뜻 따라 군포교 시작 어린이 청소년 노년층 포교에 일생
-오늘도 안양교도소에 다녀오셨는데….
“소장이 영전해서 다른 곳에 가게 되어 송별공양을 하고 왔지. 오랜 시간 교도소를 드나들면서 이런저런 일을 했는데, 아직 할 일이 많아. 무엇보다 교도소 교화사업에 대해 편견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데 승단에도 마찬가지야. 안양교도소의 경우 재소자와 직원을 합하면 2500명이 넘어. 그들을 위해 뭔가 할 일이 있다면 그 자체가 불사(佛事)야. 그들을 위해 한 달에 한 번씩 법문하고 명절[부처님오신날 설날 추석날 등]에 대중공양 하는 것이 나에게는 큰 수행이 아닐 수 없지. 나는 대중공양에서 종교를 차별하지 않아. 차별하면 불교가 아니잖아. 전국의 모든 교도소에 일생을 두고 드나들면서 불사하는 스님이 있었으면 좋겠어. 사족 같지만, 다른 종교는 우리와 많이 달라. 현장에서 일 해 보면 알아.”
-군포교 분야에서도 ‘대부’라는 호칭을 들으시는데 어떤 인연으로 시작하셨습니까?
“은사스님을 따라 전방 철책선을 간 적이 있었지. 그때 은사스님께서 ‘통일도 좋지만 그보다 부처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집이라도 있어야 하겠다’라고 말씀하셨어. 나는 단박에 알아들었지. 통일을 위해서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장병들에게 널리 전해져야 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부대마다 법당도 있고 법사도 있어야 한다는 뜻임을. 그리고 그것이 나에게 주어지는 중요한 사명이라는 것도 알았어. 도선사 주지 소임을 맡게 되면서부터 군법당 건립과 후원에 나서게 된 거야.”
-(기자) 스님께서 주관하여 지으신 군법당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압니다.
“뭐, 자랑할 것은 아니지만 도선사 불자들과 힘을 모아 지은 군법당이 13개입니다.”
-(기자) 도선사 주지를 12년 하셨으니 한 해에 군법당을 하나씩은 세우신 셈입니다. 군포교를 하시면서 겪은 에피소드가 듣고 싶습니다.
“그런 계산은 안 해봤고요. 국방부에서 협조를 잘 해 주었고 불자들이 호응이 컸던 겁니다. 군포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속적인 지원입니다. 법당만 지어놓았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가끔 찾아가서 위문품을 전해준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지금은 종단에 군종교구가 있어서 체계적으로 관리를 잘 하고 있다지만, 여전히 단위 사찰의 지속적인 후원과 원력 있는 스님과 불자들의 손길이 절실합니다. 에피소드야 많습니다만,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지휘관의 종교적 성향에 따라 군포교의 기복도 심하다는 것입니다.
오래전의 일인데, 어느 부대에서 법당 불사 기공식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담당 군법사가 도선사로 찾아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울어요. 왜 그러느냐고 물으니, ‘스님께서 오셔서 기공식 한 것이 넉 달 전의 일인데 아직 공사를 못하고 있습니다. 일 할 인부들이 부대 밖에 잠자리를 구해 두고 일하려고 하는데 사단장님이 보안상 문제가 있다면서 출입을 안 시킵니다’라는 겁니다. 얼마나 기가 막히던지. 그 사단장님이 다른 종교 신자였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에 군단급에서 주최하는 종교행사가 있어서 갔는데, 그 군단장님이 저와 잘 아는 분이었어요. 마침 아까 말한 그 사단의 사단장님이 들어오시면서 나를 보고 인사를 하더군요. 그래서 내가 ‘아, 마침 잘 만났습니다. 제가 그 사단 법당 준공식 날짜를 받아 왔거든요’라 했더니 그는 얼굴이 하얗게 변하더군요. 공사도 못하게 하는 사람에게 준공식 날짜를 받아 왔다고 하니 얼마나 황당했겠어요? 내 말투가 좀 퉁명스러웠던지 옆에 있던 군단장님이 무슨 일이냐고 묻기에 ‘여기 사단장님에게 들어 보시라’고 하고 자리를 떠나 버렸습니다. 물론 그 뒤로 법당공사는 일사천리로 진행 되었어요.
또 한 번은 어느 부대 사단장님이 찾아와서 자신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라고 소개한 뒤에 ‘부대에 법당을 좀 큼직하게 지어야겠는데 도와 주실 수 있으십니까’ 하고 묻더군요. 내심 얼마나 반갑고 고마운지. 까닭을 물었더니 ‘사실 최근 부대 안에 커다란 교회가 신축되었는데 그 옆의 법당이 작고 초라해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런데 외부에서 온 신도들이 화장실인줄 알고 들어가는 일까지 있다는 소리를 듣고 도저히 맘이 편하지 않아 스님을 찾아 왔습니다’라는 겁니다. 두 말 않고 법당 건립을 약속했고 ‘커다란 교회’가 잘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법당을 지었습니다. 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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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9년 현성 스님의 환갑때 논총 발행을 기념해 찍은 사진. 가운데가 현성 스님. 맨 왼쪽이 마가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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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든 지속적이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군포교는 군인들에게, 어린이포교는 어린이에게, 노년층 포교는 어르신들에게 어필되는 지속적이고 일관성 있는 프로그램과 지원체계가 있어야 합니다. 템플스테이를 해 봐도 마찬가지고 강단에서 강의를 해도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눈높이 교육, 눈높이 포교가 아니면 효과를 볼 수 없는 거야. 부처님의 대기설법이라는 것이 바로 눈높이 교육이듯이. 너의 강의가 어렵고 싫증나는데 누가 들으려고 하겠어? 많이 듣게 하려면 듣는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야지.”
선인선과의 가르침 잊지 말고
복 짓고 공덕 쌓는 한 해가 되길
지금 이 순간의 생각 말 행동이
자신의 미래를 결정합니다
새해 맞아 세운 계획과 발원
진심 흔들리지 않으면 이뤄져
-(기자) 마가 스님 강의는 인기가 대단합니다.
“눈높이가 맞았다는 얘기겠지.”
-이야기가 나 온 김에 어린이, 청소년, 노년층 포교를 하시면서 겪으신 일들도 간단히 소개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도 아직 듣지 못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을 것 같습니다.
“막상 말하려면 할 것이 없어. 도선사가 운영하는 어린이 집(당시 유아원)이 도봉동에 있잖아? 주지할 때 매월 생일잔치를 열어주고 그날은 나도 꼭 가서 아이들을 만났어. 이 유아원이 인기가 있어서 정원이 120명인데 170명이 입원신청을 하곤 했지.
그 동네가 그다지 부유한 곳이 아니라서 저소득 부모들에게는 원비를 내지 말라고 했는데, 그 대상자들이 먼저 교육비를 들고 와서 낸다는 거야. 아이들 기죽지 않게 하려고. 그리고 절에서 운영하는 것이라고 시주하는 마음으로. 저소득층의 어머니들이 출산을 하면 쌀을 한 부대씩 주었는데 진심으로 고마워했어. 그런 마음들이 모아져서 도선사 유아원이 일류유아원으로 자리를 잡았던 거야.
청소년교화연합회의 경우 파라미타가 생기기 전에는 전국적으로 160개가 넘는 청소년 단체 가운데 유일한 불교청소년 단체였어. 긴 얘기는 할 수 없지만, 여러 분야에서 일을 하면서 나는 모든 일에는 진심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철저하게 깨달았지. 일을 하다보면 오해도 생기고 화도 나지만 진심을 믿고 인욕 하는 가운데 다 풀어지는 법이야.”
-노스님[청담 대종사]께서 ‘인욕보살’로 통하셨잖습니까?
“그렇지. 가까이서 모셔 본 사람은 그 별호가 헛말이 아님을 알지. 나도 젊어서부터 늘 ‘지고 살아라’하는 가르침을 받았어. 내가 성격이 좀 불같은 데가 있어서 그런 말씀을 많이 들었는데 돌이켜 보면 ‘지고 산 것’이 ‘이기고 산 것’임을 절감해. 이기려는 마음에 쌓이는 탐욕과 분노와 거짓과 기만의 무게는 태산보다 더하겠지. 하지만 지려는 사람의 마음에는 쌓일 것이 없어. 늘 비어 있어. 그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텅 빈 충만’의 열락이겠지. 그러니 결국에는 이기는 삶이 되는 거야.”
-큰 스님께서는 새해 꼭 하시고 싶은 일이 있으십니까?
“지금 하는 일 계속 잘 할 수 있으면 그게 큰 복이지. 새로운 일 만들 생각은 없고,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는 것으로 족해. 네게도 많은 계획이 있을 텐데 진심이 흔들리지 않으면 다 이룰 수 있을 거야.”
-저 역시 그간 해 온 일이 좀 더 발전적으로 이뤄지길 바랄 뿐입니다. 스님들을 위한 자비명상 지도자 과정을 운영하고, ‘마음 치유사’ 강좌를 열고자 합니다. 또 ‘53선지식을 찾아 떠나는 명상순례 여행’ 제안도 받아 둔 상태입니다.
찻잔의 차가 다 식는 줄도 모르고 이어지던 스승과 제자의 정담(情談)은 해질 무렵이 되어서야 끝났다. 현성 스님이 길까지 나와 일행을 배웅하고 들어 간 뒤, 마가 스님은 “오늘따라 큰스님 흰 눈썹이 더 빛나 보인다”고 말했다. 기자는 그 의미를 알아채지 못했다.
글=임연태 논설위원 사진=박재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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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성 스님은
경남 고성에서 태어나 1964년 청담 스님을 은사로 득도. 이듬해 부산 선암사에서 동산 스님을 계사로 보살계와 비구계를 수지했다. 부산 선암사에서 10하안거를 성만했고, 대율사 석암 스님의 법맥을 전수했다. 1980년부터 12년 동안 도선사 주지를 맡아 중창불사를 진행, 천년고찰의 면모를 일신시켰다. 동국대학교 행정대학원과 불교대학원에서 행정학과 사회복지학과 석사과정을 각각 수료했다. 스리랑카 국립 프리베나대에서 명예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조계종 총무원 감찰국장, 교육국장을 지내고 중앙종회의원(4선)과 청담학원 이사장, 동국학원 이사, 중앙승가대 총장 등을 역임했다. 조계종 종정 표창을 4회 받았으며, 교정교화사업과 사회봉사, 교육사업 등에 기여한 공로로 국민훈장 목련장, 동백장, 모란장 등 3종의 훈장을 받았다. 現 도선사 부조실, 현성정사 주지, 청소년교화연합회 총재, 혜명불교양로원 원장, 안양교도소불교위원회장, 민주평통 서대문구협의회 회장 등.
마가 스님은
1985년 현성 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여 중앙승가대 복지학과 졸업. 1990년 복천암 선원을 시작으로 5안거 성만. 미얀마 마하시 국제선원, 프랑스 플럼빌리지 등에서 수행, 2002~2006년 마곡사 템플스테이 진행. 현재 중앙대 겸임교수, 매주 토요일 오후 2시 서울 남산에서 걷기명상 진행. 마음치유사 과정 개설 운영. 사단법인 자비명상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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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일에 전심전력 하시는 현성 큰스님과 마가스님 같은 분들이 많으셨으면 합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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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성스님 , 마가스님 들 불교의 오존 입니다._()()()_ 카페의 발전이 향불교와 법우님들 발전이며 선거철 이당도 퍼주고 저당도 퍼주고 ,, 사시 사철 당당하게 퍼주고 있 습니다. 인줄 몰라 "텅빈 충만 "의 깊은 뜻이 있군요.
여의도분들 남산 걸으면 절대 안되요 . 공기 오염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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