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 - 서해랑 길을 시작하다(강화도 구간)
최근 대한민국을 한 바퀴 돌 수 있는 걷기 코스가 완성되었다. 가장 먼저 만들어진 길은 부산에서 출발하여 강원도 고성까지 동쪽으로 이어진 ‘해파랑길’이다. 이어서 고성에서 경기 파주까지 한반도의 중심을 가로로 연결한 DMZ길과 부산에서 해남까지 남쪽 해안지역을 따라걷는 ‘남파랑길’이 만들어졌다. 연이어 해남에서 서쪽으로 걸어 강화도 ‘평화전망대’에 도착하는 ‘서해랑길’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렇게 종주 코스가 연결되었다. ‘해파랑길’은 몇 년 전에 거의 모든 코스를 걸었다. DMZ길도 ‘평화누리길’과 연결되어 있는 서쪽 구간은 대부분 걸었다. 이제 남은 구간은 DMZ 동쪽 구간과 남파랑길, 그리고 서해랑길이다. 남파랑길은 이동 기간이 길어 올해에는 조금 부담이 가는 지역이다. 그런 점에서 서해랑길의 완성은 대단히 기쁜 소식이었다. 가깝지만 새롭게 도전할 수 있는 해안길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오늘은 너무도 좋은 태양과 바람 그리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걸을 수 있는 날이었다. 본격적인 서해랑길 출발일의 환경적 조건이 좋았고 자연스럽게 기분도 고무되었다. 서해랑길의 마지막 종점에서 거꾸로 출발한다. 길은 시작과 끝이 없다. 시작하는 곳이 출발점이다. 출발전 강화도 평화전망대에서 바로앞에 펼쳐진 북한 땅을 바라보았다. 고성이나 파주의 통일 전망대보다도 훨씬 생생한 장면이었다. 특히 강같은 서해를 마주보고 나뉘어있는 국경의 모습은 분명 불행한 역사의 현장이지만 어쩌면 낭만적인 슬픔(?)을 주는 듯하기도 하였다.
1. 서해랑 103코스(강화도 평화전망대 - 창후항)
평화전망대에서 북한의 모습을 바라본 후, 길을 출발했다. 전망대를 나오면 곧이어 낮은 산으로 연결된다. 산에서 바라본 북한의 모습은 전망대보다 더욱 생생하고 넓은 시야로 다가온다. 남과 북을 나누는 물길은 임진강과 한강 그리고 예성강이 바다와 합쳐지는 매우 특별한 지역이다. 날씨가 추워질 때 얼음덩어리들이 바닷가에 밀려오다 다시 강쪽으로 올라가는 모습은 이 곳에서만 볼 수 특별한 장면이라고 한다.
한동안 산 쪽을 걷다 내려와 강화도의 도로를 걷는다. 차가 적어 매우 적막한 도로이다. 그것은 이곳이 민통선 안 쪽으로 출입이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참을 걸어 교통대교를 바라보며 해안선 철책을 따라 걷는다. 차로 이동만 하여 전체적인 모습을 바라볼 수 없었던 교동도와 교동대교의 모습이 괘청한 하늘 아래에서 매력적인 모습으로 서있었다.
103코스의 또 다른 종점인 ‘창후항’에 도착했다. 창후항에 서서 바다를 바라보며 매섭게 불어대는 바람을 온몸으로 느껴본다. 주변에 쉬고 있는 갈매기들만이 같이 하는 풍경 속에서 남북의 대척점이면서도 자연의 싱싱함을 한껏 품은 이 지역의 강인한 아름다움을 확인한다. 펼쳐진 시선과 차가운 바람이 여전히 실존적 불안에 시달리고 있는 나를 깨워주는 듯하였다.
2. 서해랑길 102코스(창후항 - 외포리항)
해안길을 따라 창후항을 출발한다. 이 코스는 정확하게 강화 나들길 16코스(서해 황금 들녘길)과 겹쳐있다. 오른쪽으로는 바다와 섬들이 펼쳐있고, 왼쪽에는 넓은 강화의 들판이 널려있다. 두 개의 서로 다른 개성이 각자의 매력을 경쟁한다. 시선이 어느 쪽을 향해도 풍요로움이 넘쳐난다. 길은 걷기에 좋도록 잘 만들어져 있다. 이 코스는 거리도 약 14km 정도로 그다지 멀지 않아 ‘다시 걸을 수 있는 길’로 등록한다. 70이 넘어도 어느 정도 체력이 된다면 걸을 수 있는 길이자 아름다운 길이다.
특히 오른쪽에서 연이어 등장하는 바다의 다양한 얼굴은 동해의 해파랑길에서도 찾지 못했던 특별한 모습이었다. 서해안 코스에서도 백미로 꼽을 수 있는 길이다. 강화도 주변에는 많은 섬들이 있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섬이 교동도와 석모도이다. 나는 각자 이 섬들을 방문했다. 하지만 이렇게 섬들을 전체적으로 바로본 적은 없었다. 섬들의 자연스런 어울림을 통해 강화도가 ‘왜 아름다운 섬’인가를 알 것 같았다. 강화도 길 중에서도 최상의 코스라 할 수 있다.(각자의 취향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말이다)
바닷가를 걷다 마지막 3-4km는 숲속길로 접어든다. 편안한 숲을 따라 걷다보면 외포리 항구에 도착한다. 여기에서 차를 타고 강화읍에 도착한 후 출발지로 향하는 버스를 타면 된다. 강화읍 터미널에 가면 강화도 모든 지역을 가는 버스를 탈 수 있다는 점에서 시간 체크를 잘하면 여행할 때 큰 부담이 적은 곳이 강화도이다. 다만 석모도와 교동도에서는 원점 회귀코스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강화읍에서 식사를 하는데 휴대폰이 울린다. 주차한 ‘평화전망대’가 문을 닫는다는 것이다. 별 생각없이 돌아가기만 하면 된다고 여유를 부렸는데 민통선 지역인 관계로 6시 폐관 이후 군부대에게 인계한다는 것이다. 부랴부랴 버스를 타고 다시 평화전망대로 돌아갔다. 다행히 버스가 있어 6시 30분 정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직원들에게 미안했지만 쿨하게 상황을 받아들여주었다. 그 덕분에 관광객이 사라진 민통선 안 쪽 마을에서 짙은 저녁의 강화도 풍경을 바라볼 수 있었다. 특별한 기억으로 남을 하루였다.
첫댓글 길은 이어지고 사람은 찾아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