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만남, 상견례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 한 석 철
작은아들의 처가댁 어른들과 상견례를 하는 날이다. 상견례라 하면 결혼하기 전에 양가 부모가 서로 공식적으로 처음 만나는 자리다. 장남을 결혼시켜서 처음 해보는 것도 아닌데 긴장이 되었다. 장소는 어디로 정하고, 식사는 어떻게 하고, 옷은 어떻게 입고,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제 저녁엔 잠이 오지 않았다. 약속시간을 맞추기 위해 고속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고속도로는 버스전용차선이 있어 약속시간을 어느 정도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전주에서 아침 9시 출발했다. 날씨가 차갑고, 눈이 내렸다. 창밖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모두가 웅크린 모습이지만 내 마음은 설렜다.
어떤 일을 하려면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상견례도 마찬가지다. 아들이 두 집 사이를 조율하며 준비했다. 상견례 준비과정을 생각하다보니, 내가 근무했던 생각이 떠올랐다. 공항은 철저하다. 모든 행사가 항공기 이착륙에 맞추어져 있다. 만약 대통령항공기가 제 시간에 이륙하지 못했다면 어떻게 될까? 외교상 큰 결례를 범한다.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다. 사전에 와서 답사도 하고 리허설도 한다. 한 치의 오차도 허락하지 않는다. 모든 업무가 생방송과 같다. 공항은 여행객들에겐 즐거움으로 설레는 곳이다.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항공기를 안전하게 이착륙시켜야 한다. 시간에 맞춰 보내주고 내려 주어야 한다. 어떤 상황이 올지 모른다. 항상 대비해야된다. 잠시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사고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정말 철저히 준비했었다. 지나고 보니 그 시절이 그립다.
휴식하기 위해 차는 정안휴게소에 들어섰다.15분간 휴식이 끝나고 차가 출발하려고 하는데, 두 사람이 오지 않았다.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승객들의 불만이 쏟아진다. 눈이 내리는데, 기사가 어쩔 줄 모른다. 시간은 1분, 2분... 5분이 지나고 6분이 지나도 오지 않는다. 기다리는 시간은 참으로 길다. 7분이 지나자 두 사람이 나타났다. 기사가 반가워 손짓을 한다. 두 사람은 서둘지 않고, 천천히 걸어서 왔다. 무슨 저런 사람이 있을까?
두 사람이 탑승하는데, 모두가 화가 났다. 그런데 기사가 공손하게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하며, 아주 정겨운 목소리로 “어르신, 점심 맛있게 드시고 천천히 오시는군요?” 했다. 왜, 이럴까? 나는 첫 좌석에 앉아 있어서 기사가 하는 말을 똑똑히 들었다. 이런 상황이면 대부분의 기사는 화를 내며, 짜증스런 반응을 보이는데, 이 기사는 달랐다. 진정으로 손님을 배려하는 모습에 감동하여 차내는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모두가 박수를 보내는 것 같았다. 생각해보니 전주에서 출발할 때도 기사가 직접 앞자리에 서서 잘 모시겠다고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승객들은 박수를 쳤었다. 훌륭한 기사다. 여기저기에서 칭찬이 자자했다. 차내는 웃음꽃이 피었다. 상견례가 잘 될 것 같았다. 정상대로 2시간 40분 만에 서울고속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아들이 고속버스터미널로 마중을 나온다고 했다. 많이 정체되는 구간이라, 내가 안국역까지 지하철로 가기로 했다. 안국역에 내리니 12시 반이다. 만남장소는 여기에서 5분 거리인 삼청동 한식집이다. 아들집에서 안국역까지는 20분 거리다. 미리 12시에 출발했는데, 1.7 km를 남겨놓고 차가 움직이지 않는단다. 시간은 12시 40분이 흐르고 있었다. 최소한 20분 전에는 도착해야 하는데, 마음이 초조했다. 나는 시간 약속을 잘 지킨다. 그런데 오늘처럼 중대사에 시간을 어기다니 말이 안 된다. 화가 났다. 내 성격을 잘 아는 아들은 더 불안할 것이다. 고속버스 기사 생각이 났다. 화는 났지만 이미 업질러진 물이었다. 나도 고속버스 기사처럼 해야겠다고 생각하니 조금 진정되었다. 이때 예비 며느리한테 전화가 왔다.
“아버님! 오빠 전화 받았는데요. 아버지께서 걱정하지 마시고 천천히 오시라고 하네요.”
참 미안하기 그지없었다. 아들을 만나 경복궁 돌담길을 따라가니 삼청동파출소가 나왔다. 금방 도착했다. 커피 빈(coffee bean)에 주차하고, 아담한 한식집 소선재에 들어섰다. 10분정도 늦었다. 미안하여 어쩔 줄 모르는 우리를 예비사돈어른들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음식점은 상견례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분위기가 고풍스러웠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아 소개를 하는 사이 음식이 들어왔다. 아주 깔끔했다. 음식을 먹으며, 가벼운 이야기로 이어갔다. 예비며느리가 수육을 묵은 지에 곁들여 주는 손길이 섬세하고 여성스러워서 참 좋았다. 딸이 없는 나에게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근방 친밀감이 들었다. 오래 사귀어온 사람 같았다. 사돈 내외분이 젊고 인상이 편안해 보여서 참 좋았다. 결혼준비는 간소하게 하고 자식들이 살아가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하자고 했다. 찬성하시며, 의견일치가 잘 이루어졌다. 웨딩홀은 나는 예비며느리 모교인 건대동문회관에서 했으면 했다. 아무래도 지방에서 올라가려면 고속버스터미널과 서울역에서 가까운 곳이 좋을 것 같아서다. 예비 사돈은 우리 아들모교인 연대동문회관에서 했으면 했다. 나중에 절충하기로 했다. 결혼날짜는 정해달라고 했다.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비슷한 면이 많았다. 아이들 키운 이야기, 우리 부모가 해야 할 일들에 관해서도 대화를 나누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살아갈 각오를 아들과 예비 며느리한테 들으며 상견례를 마무리했다. 분위기가 화기애애하다보니 2시간이 금방 지나가 버렸다. 커피 빈에서 차 한 잔을 마시고, 헤어졌다. 이제 첫 관문을 통과한 것 같다.
갈 때는 보이지 않았는데, 내려오면서 보니 삼청동이 참 이색적이었다. 유럽풍이 많았다. 조그마한 가계들이 아주 아담스럽고 골목들이 온통 그림으로 멋지게 장식되어 있었다. 서울에서도 부자들이 많이 사는 곳인가 보다. 청와대 부근이라 경찰들이 골목마다 경비를 하고 있었다. 이 추위에 얼마나 수고가 많을까. 따뜻한 차라도 한 잔 사주고 싶었다. 차는 창경궁 앞을 지나고 있었다. 5년 전 큰며느리와 오붓하게 시간을 보냈던 생각이 떠오른다. 아름다운 비원을 다시 한 번 보고 싶었지만 다음으로 미루었다. 서울 시내가 너무나 아름답게 보였다. 난 건대동문회관 웨딩홀을 가보자고 아들에게 말했다. 가서보니 깔끔해서 마음에 들었다.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지하철로 14분 거리, 서울역에서 지하철로 19분 거리라고 안내원이 소개해주었다. 웨딩홀은 롯데백화점과 나란히 있었다. 주차장도 넓고 주변 환경도 좋았다. 웨딩홀과 연회장과 여러 곳을 친절하게 안내 받았다. 몇 군데 더 가보고 결정하자고 했다. 이제 결혼이 이루어지는 기분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결혼을 서둘지 않는다. 아들도 35살이 되어간다. 부모들은 바쁜데, 자식들은 왜, 서둘지 않은지 모르겠다. 확실히 세대차이가 난다. 준비가 덜 된 사람은 준비를 해놓고 간다고 하고, 준비된 사람은 더 즐기고 가려고 한다. 결혼을 필수로 생각하지 않고 선택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다행히 예비며느리 집에서 우리 의견에 따라 주어 고맙다.
서울의 밤은 깊어만 간다. 한강은 아름답게 흐른다. 차장 너머로 추억이 날 부른다.1973년에 김포공항에서 근무할 때, 생각이 올랐다. 주말이면 놀러 다니던 생각이 꼬리를 문다. 어린이 공원, 종로거리, 인사동골목, 명동, 남산, 여의도, 서울역, 인왕산, 북한산, 모두가 어제 같은데, 벌써 40년이 넘었다. 참으로 시간은 빠르다. 작은아들이 벌써 커서 상견례를 했다. 아버지가 왔던 길을 아들이 멀리서 따라 오고 있다.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 하나하나 이루며 성취감을 맛보고, 상대방을 배려하며, 남을 도우며, 둘이 하나 되어 사회에 진정한 보탬이 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2014.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