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애니 "절원의 템페스트(Zetsuen no Tempest)" 중 베토벤 템페스트 관현악 편곡 OST
베토벤의 <템페스트>를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는 셰익스피어의 원전을 읽어보았으리라 생각됩니다. 베토벤이 이 곡의 해석을 묻는 제자에게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를 읽으면 자신의 작품을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한 데서, 이 피아노 소나타 17번은 <템페스트-폭풍우>라는 부제를 갖게 되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 줄거리
밀라노 공작이었던 프로스페로는 동생 안토니오에게 지위를 찬탈당합니다. 그가 마법에 빠져 정사를 소홀히 하는 사이에 안토니오가 정권을 장악한 거지요. 그 배후에는 나폴리 왕 알론조가 후원을 해줍니다. 그러나 나폴리 왕국의 노신 곤잘로는 프로스페로에게 배와 마법의 책을 준비해서 도망칠 수 있도록 해줍니다. 그 덕에 프로스페로는 세 살 난 딸 미란다만을 데리고 절해고도에 표류하게 됩니다. 프로스페로가 상륙한 섬에는 괴물 캘리번과, 정령 에리얼이 살고 있습니다. 그는 둘을 하인으로 거느리면서 오랜 세월 섬에서 은둔합니다.
12년이 지난 어느 날, 튀니스에서 거행된 결혼식에서 배를 타고 돌아오던 일행들이 섬 근처를 지나갑니다. 그 배에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원수들, 동생 안토니오와 나폴리 왕 알론조가 함께 타고 있습니다. 프로스페로는 에리얼을 시켜 바다에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폭풍우, 템페스트가 몰아치도록 합니다. 뿌리 깊은 자신의 원한을 일거에 갚을 기회가 온 것입니다. 알론조의 아들인 나폴리 왕자 퍼디난드는 마법의 힘을 이용해 따로 상륙시킵니다. 다른 사람들이 위기를 겪는 사이에 퍼디난드와 미란다는 첫 눈에 반해 사랑에 빠집니다.
프로스페로는 불구대천의 원수들을 어떻게 했을까요. 처벌을 가했을까요. 아닙니다. <템페스트>의 매력은 낭만적으로 끝나는 해피엔딩에 있습니다. 프로스페로는 관용을 보여줍니다. 그는 동생을 용서하고, 마법의 능력을 다 던져버립니다. 그리고 밀라노로 돌아가기로 결정을 내립니다.
드라마는 무서운 폭풍우로 시작됩니다. 그러나 1막 2장에서 이미 해피엔딩은 암시됩니다. 그것은 미란다의 사랑스러운 마음씨 때문입니다. 프로스페로는 딸에게 말합니다.
“나의 마술이여, 거기에 누워 있어라. 눈물을 닦아라.
진정하여라, 난파의 참혹한 광경이 너의 진정한 동정심을 자극했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이지 않는 인간의 욕심과 음모가 긴장을 늦추지 않게 만듭니다. <템페스트>는 폭풍우가 몰아치는 어느 날 섬에서 하루 동안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극적이면서도 간결하고 명쾌합니다. 난파한 상황에서도 자기 욕심만을 드러내는 인물들의 심리 묘사가 이루어지면서 때로는 긴박감을 자아냅니다. 그러나 프로스페로는 모든 것을 용서함으로써, 주인공으로 지혜로운 인간으로 남습니다.
셰익스피어는 고전의 의미가 무언가를 느끼게 합니다. 다시 읽으면 또 곰씹는 맛이 우러납니다. 처음 읽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의미들이 느껴집니다. 낭만적인 희곡 <템페스트>에는 인간의 감정과 욕심, 정서와 희로애락이 잘 녹아들어 있습니다. 셰익스피어는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은퇴합니다. 프로스페로가 자신의 애정을 쏟고 평생 몰두했던 마법 책을 버리는 것은 은퇴를 결심한 셰익스피어의 결심과도 일치하나 봅니다. 그는 정령 에리얼을 해방시켜주고, 사랑하는 딸 미란다를 시집보냅니다. 모든 결말을 행복하게 바라보는 프로스페로는 말합니다.
“그곳(나폴리)에서 저는 이 사랑스러운 아들딸의 결혼식이 거행되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그다음에 저는 밀라노로 물러가서 내 무덤 생각이나 종종 하겠습니다.”(p127)

미란다 Miranda (1878)
by 프랭크 딕시 Sir Frank Dicksee (1853-1928)
요정과 괴물이 등장하고 행복하게 끝나는 이 희극은 마치 한편의 동화같습니다. 하지만 이 희극은 어른을 위한 동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복수와 복권을 위한 프로스페로의 계획은 무서울 정도로 교묘합니다. 퍼디난드를 외따로 섬에 닿게 해, 나폴리 왕에게 아들을 잃는 고통을 주어 복수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딸이 퍼디난드와 만나 나폴리의 왕자비가 되도록 합니다. 또 안토니오와 그의 신하가 나폴리 왕에게 반역을 꾀하는 장면을 포착해, 그들의 약점을 효과적으로 이용합니다.
이 희극에서 제대로 뉘우친 사람은 나폴리 왕 뿐입니다. 안토니오는 프로스페로에게 약점을 잡혀 굴복한 것 뿐이고, 프로스페로도 그들을 여전히 증오하지만 살려둡니다. 어른 세계-현실 세계에서의 화해와 타협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인간을 처음 본 미란다가 안토니오와 나폴리 왕 일행을 보고 순진무구하게 외치는 "인간은 참 아름다운 것이구나! 이런 사람들이 있다니, 아! 멋진 새로운 세계야!"라는 말은 씁쓸한 여운을 남깁니다.
이때 프로스페로는 서글픈 미소를 지으며 "네겐 새로울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이제 나폴리로 간 미란다는 세상이 멋지지만은 않다는 것을 깨닫겠죠.
이처럼 이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희극은 어두운 그림자도 함께 품고 있습니다.(참조 : Moon의 미술관 속 비밀도서관)
이 <템페스트>는 셰익스피어가 배우와 극작가로의 삶을 내려놓고 낙향하기 직전에 쓴 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프로스페로가 그의 마법지팡이를 꺽어버리고, 마법의 책을 버리는 장면에서, 학자들은 셰익스피어가 극예술을 버리는 것으로 풀이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셰익스피어의 모든 비극의 마지막 답이 이 작품에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복수에서 시작해 용서로 끝나는 이 작품의 의미입니다. 결국 이 작품은 고통이 있지만, 결국 용서와 사랑으로 구원받는 인간을 보여주는 내용이 핵심입니다.
어느 조용하고 지혜로운 늙은이의 고별을 의미하는 작품이라기 보다는, 용서를 배워가는 인간의 고통을 그린 작품이라는 뜻입니다.
영화 <프로스페로의 책>, <금지된 행성>등이 이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를 원전으로 만들어진 영화이고. 프랑스 영화 <책 읽어주는 여자>, 우리나라 영화 <하녀>등에 베토벤의 이 곡이 들어가 있습니다.
이 곡을 완성할 당시의 베토벤은 귓병이 악화되어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전지 요양을 하고 있을 때였고, 자살을 생각하면서 그 유명한 '유서'를 쓸 무렵이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를 생각하면서 베토벤도 자신을 엄청나게 짓누르는 인생을 용서하고, 희망의 힘을 키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Daniel Barenboim live in Berlin
도종환의 이 시의 제목이 왜 <희망>이 되었는지 잘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따로 해설을 해 놓은 글도 없고 해서, 부족한 생각으로는 어렵군요.
다음편에 조금 더 이야기를 붙여 나가겠습니다.
그대 때문에 사는데
그대를 떠나라 한다
. . . . . . . . .
매일 만난다 해도 다 못 만나는 그대를
생애 오직 한 번만 만나도 다 만나는 그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