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2009년 12월호 이제훈이 만난 사람
“최소한의 믿음마저 무너진...
최저보장선이 없는 사회”
정혜신 마인드프리즘(주) 대표이사
글 이제훈 <한겨레>통일외교팀장
사진 김영광
자존감의 최저보장선 없는 한국사회
“아무도 믿지 마라.”
아버지는 어린 아들을 앞에 앉혀놓고 이 말을 무겁게 반복했다. ‘아무도 믿지 마라…’,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직접 경험했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들어본 적이 있는 얘기다. 요컨대 현대 한국인의 핵심 행동강령의 하나다.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정혜신 마인드프리즘 대표의 분석은 이렇다.
“우선 그런 얘기를 하는 아버지를 비난할 게 아니라, 그런 말을 할 수밖에 없는 아버지들의 경험을 살펴봐야 한다. ‘아무도 믿을 수 없다, 아무도 믿으면 안 된다’는 생각은 한국 사람들의 디엔에이(DNA)에 한국 근현대사를 통해 지속적 반복적으로 각인된 것이다. 내가 가지지 않으면, 내가 집단에 속하지 않으면, 어느 순간 내가 내팽개쳐지고 모멸을 당할 수 있다는 생각, (한국사회엔) 인간의 기본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이다. 한국사회는 사람들이 최소한의 존재감과 자존감을 가지고 살아가야하는, 최저보장선이 없는 사회다. 그러니 각개 약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굉장히 재미있는 현상이 있다. 일본 사람들은 강박적으로 꼼꼼하다고 한다. 개개인의 섬세함의 영향으로 사회도 골목도 깨끗하고 감정통제도 엄청나다. 개인의 특성이 집단의 특성으로, 집단의 특성이 사회와 국가의 특성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정신과 의사로서 경험에 비춰보면 우리나라에도 완벽주의적이고 꼼꼼한 사람들이 엄청 많다. 우리 주변 사람들 가운데 그런 비중이 높다. 그런데 공적인 영역에서 그런 꼼꼼하고 섬세한 결벽증적 요소가 나오거나 하지는 않는다. 일본과 달리 한국에선 개인의 특성과 사회가 연결되지 않는다. ‘나’라고 생각하는 울타리 안에서는 꼼꼼함과 섬세함이 작동하지만, 그 울타리를 벗어난 공공 또는 사회의 개념이 한국인의 집단 무의식에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왜 그럴까? 그걸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인들은 마치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고아로 자란 아이의 심성을 지닌 것 같다. 자기 존재감과 심리적 안정감을 갖고 살아가는 존재가 아닌 것 같다. 지금껏 국가는 개인들을 자기 목적에 따라 휘둘러왔을 뿐이다. 사람들이 국가에 당연히 요구할 수 있는 게 뭔지, 국가가 당연히 해줘야 할 게 뭔지, 그런 게 부재한다.
미국에선 9·11테러가 났을 때 아이들이 받은 트라우마와 관련해 학교와 지역사회에서 치유매뉴얼을 만들고 조직적으로 접근해 치유했다.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배우자를 잃은 사람과, 배우자의 자살로 홀로 남은 사람 가운데 누가 더 트라우마가 심각할까? 누가 나중에 사회에 적응하는 데 더 어려움을 겪을까? 배우자의 자살로 혼자 남은 사람들이 트라우마가 심각하리라는 게 상식적인 생각일 것이다. 그러나 미국에서의 연구 조사 결과에 따르면, 실제론 교통사고로 배우자를 잃은 사람의 트라우마가 더 컸다. 왜 그런가? 미국에선 배우자의 자살로 홀로 남겨진 사람한테는 국가기관에서 편지를 보낸다. 도움을 줄 수 있는 기관이 어디에 뭐가 있으니 도움을 받으라는 내용이다. 국가가 트라우마 치유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다. 자식이 친구와 싸우고 집에 온 것 같으면 부모가 도와주려고 한다. 이런 게 보호를 할 책임이 있는 사람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고,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다. 그래야 적절한 관계가 형성된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실체를 경험해본 적이 없다. 개개인이 알아서 꾀 많게 피해나가고 알아서 내 것을 챙겨야지, 그 외의 것은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역사적으로 반복적으로 경험하며 사는 것 같다.
용산에서 (참사가 있은 지) 300일이 넘었는데, (정부는) 그냥 놔두고 있다. 이유 불문하고 국가에는 응당한 책임과 의무가 있는데, 저럴 수는 없는 거다. 용산을 겪은 사람들은 이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 정신적 생존의 기반이자 근간인 셀프(자아의 핵심)에 깊은 상처를 받아 이전의 세상에 대한 기본적 신뢰, 사람에 대한 믿음을 되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피해망상에 사로잡히지 않고 살려면 최소한의 조건이 있다. 이런 게 사회적으로 공개적으로 훼손되는 일이 너무 많다. 한국사회엔 최후저지선이 없다. 이럴 때 사람들은 분노한다. ‘저 사람들이 당했으니, 나도 언제든 저렇게 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사람들한테 마음이 있다는 것은 전혀 고려하지 못하고 정치공학적으로 따질 뿐이다. 그런 게 바로 파괴적 존재다.”
2009년 『참여사회』의 마지막 호에는 많은 팬을 거느린 대중 저술가이자 칼럼니스트인 정신과 의사 정혜신 마인드프리즘 대표를 모셨다. 『참여사회』 편집위원회의 주문이자 지침은 이랬다.
‘정혜신 대표한테 2009년 한국사회를 두루 짚어보는 이야기를 들었으면 좋겠다.’ 고민 끝에 용산참사, 쌍용차 사태, 두 전직 대통령의 서거, 기륭전자 등 비정규 노동자 문제, 미노드 목탄 추방 등 이주노동자 문제, 4대강 사업, 세종시 문제 등 올 한해 뜨거웠던 쟁점들의 의미를 짚어보는 방식으로 인터뷰를 하면 어떨까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 인터뷰는 다른 방식으로 진행됐다. 정혜신 대표는 현안과 쟁점을 둘러싼 논쟁적 논리적 부딪침보다는, 다른 각도, 다른 방식의, 좀더 근본적인 대응을 염두에 두고 있는 듯 했다. ‘누구에게나 마음이 있고 진실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배려하기’, 옛말로 하자면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실천적 대응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정 대표의 이야기를 계속 들어보자.
섬세한 자기성찰이 멈춘, 파괴적 존재의 자아들
이태 전쯤부터 각종 매체에 칼럼 쓰기를 중단하셨던데, 이유는?
“우선 해야 할 일이 많다. (칼럼)연재가 8~9년 정도 끊긴 적이 없었는데 일과 겹쳐 많이 힘들었다. 기자도 아닌데 사회현안에 집중해야 하고 자료도 늘 봐야 했다. 인식의 지평이 넓어지기도 했지만 오래도록 힘들었다. 또 하나는 현안에 대해 좀 다른 각도에서 봐야 사회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게 아닌가, 논쟁적으로 논리적으로 부딪치지 말고 실천적으로 뭔가 하는 게 좀더 가치가 있는 게 아닐까,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다.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갔다. 글보다는 행동으로. 글에 대한 생각이 전 같지 않았다.”
‘2009년 한국사회’를 하나의 인격체로 상정하자. ‘2009년 한국사회’가 상담을 받으러 찾아왔다면 어떤 권고를 하고 싶은가?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치유가 필요하다. 상처받고 억압받은 사람도 치유가 필요하지만, 상처를 주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치유가 필요하다. 사람들에게는 마음이라는 게 있다. 사람은 굉장히 다면적 존재다. 우리가 별로 고려하지 않는 마음이 계속 움직이고 있다. 그 마음이 움직이는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면 사람에 대해 알기가 어렵다. 내 마음도 알기 어렵고, 세상일도 이해하기 어렵다. 섬세하게 들여다보면 좋겠는데, 우리들은 마음이 없는 것으로 착각하고 살아가는 것 같다. 사람에 대한 시각이 분화돼 있지 않다. 매사를 매우 단순하게 규정하고 그렇게 살아가니 상처를 받는 것이다. 다들 피해자라고 생각할 뿐 가해자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이런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양산되고 있다. 현안에 대해 좀 다른 트랙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치유의 관점에서 매사를 새롭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정 대표는 기업에서 심리 상담을 하며 느낀 점을 이야기했다.
“기업에서 상담하다가 치유적 존재, 파괴적 존재 이야기를 하면 거의 대부분 비슷하게 나오는 말이 있다. 쉽게 말하면 치유적 존재란 관계성을 고려할 줄 아는 사람이다. 관계성을 고려하지 못하는 사람이 파괴적 존재다. 대다수 사람들의 반응이 뭐냐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내 주변에 파괴적 존재가 있다’는 것이다. 주변에 치유적 존재가 있다고 말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사람들이 서로 그렇게 굉장히 상처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한국사회가 한때 서로에 대해 섬세해지려고 하다가, 다시 서로를 극단적으로 단순하게 대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스트레스가 많다. 저는 주로 기업에 있는 사람들과 얘기하는데, 예외적으로 스트레스가 낮은 사람들이 있다. 드물긴 하지만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있는데, 당사자는 스트레스가 없다지만, 주위 사람들은 죽어나는 경우가 있다. 사회생활을 하자면 여러 국면을 고려해야 하고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야 한다. 그런데 모두가 자기 안에서는 진실을 말한다. 그러니 다 진실이다. 그런 것을 다 감지하고 고려하다보면 피할 수 없는 일정한 스트레스가 있다. 그런데 그런 게 없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이 상대방에게 어떤 파급력과 영향이 있는지 잘 고려하면 치유적 존재가 되는데, 그걸 고려하지 못하면 본의 아니게 남한테 파괴적 존재가 될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과 이 정권의 사람들은 정말 진정성 있게 사회와 국가를 위해 일을 한다고 스스로 굳게 믿고 있을 거다. 대통령이 얼마 전에 그러지 않았나. ‘나는 욕 먹는 일만 한다. 내 길을 가겠다’고. 그 말의 전제는 ‘내가 굉장히 훌륭한 일을 하고 있다’는 확신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얼마전 청계천 얘기를 했다. 그 얘기가 나올까봐 굉장히 조마조마했는데, 그 얘기가 나오더라(이 대통령이 ‘청계천 사업도 처음엔 반대가 많았지만, 해놓으니 다 좋아하더라’고 한 말을 이르는 것이다).
그렇게 자신이 하는 모든 일에 청계천의 성공경험을 준거로 들이대면 많은 판단오류가 있을 수밖에 없다. 섬세한 자기성찰 기능, 다면적 부분을 고려할 수 있는 심리적 능력에 대해 굉장히 절망하게 만드는 얘기다. 성찰적 기능이 작동하지 않으면, 스트레스 받지 않고 추동력이 강하다. 예전에 황우석 박사가 그런 경우다. 병적인 에너지와 정상적 에너지가 경쟁하면, 정상적 에너지가 병적인 에너지의 집요함을 이길 수가 없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심리 구조가 분화돼 있어 뭔가를 추진하다가 중간에 ‘꼭 이렇게 해야 하나’ 생각하게 되고, 옆에 쓰러진 사람들을 보고 주춤하게 된다. 그렇게 균형과 조화가 작동하는데, 그게 사람의 정상적 의식, 무의식이다. 멈칫하지 않는 것은 확신하기 때문이고, 단순하기 때문이다. 자기 성찰이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파괴적 존재다. 분단과 전쟁부터 시작해 많은 사회적 경험들이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분화시키지 못한 것 같다. 정말 가슴 아프다.”
스스로 굳건히 서고 세상을 보듬게 되는, 치유의 힘
정 대표는 ‘치유의 힘’이 어떤 것인지 잘 보여주는 경험을 들려줬다.
“1970~80년대 조작간첩으로 몰려 온갖 고초를 겪은 분들과 치유 모임을 1년 정도 해왔다. 이 분들은 전라도의 아주 작은 섬이나 벽촌에서 농사를 짓거나 고기를 잡으며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온 가족이 간첩으로 몰려 삶이 풍비박산난 분들이다. 치명적인 심리적 내상을 입은,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의 전형이다. 가족 친구 직장 다 잃고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 패대기쳐져 수십년을 살아왔는데, 산 속으로 숨어든 이들도 있는데, 1년간 치유과정을 거치며 좋아졌다. 사람들과 소통하기 시작하고, 가족과 친구들도 찾고, 정상적으로 살아보겠다고 다짐하고…. 지난 1년간 했던 일 가운데 가장 보람있고 가슴 뻐근한 일이다. 치유모임 참여자 가운데 5명 정도가 재심에서 무죄를 받아 보상금을 받았다. 10억 원 안팎의 보상금을 받은 분도 있는데, 그중에서 많은 부분을 떼어내 ‘진실의 힘’이라는 재단을 만들기로 했다. 그동안 사회의 바닥에서 폐인처럼 어렵게 살던 분들이다. (강남)봉은사에서 하는 치유모임에 참여할 차비가 없어, 민가협의 지원을 받은 분도 있었다. 그분들이 자신들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 제3세계 여러 나라의 고문 피해자 등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을 돕는 재단을 만들라고 큰 돈을 기꺼이 내놓은 것이다. 정말 감동스럽다.”
1963년생으로 연세대 의대를 나와 정신과 의사로 일해왔다. ‘종합 정신건강 증진 솔루션’ 제공을 통해 새로운 정신건강문화 형성에 일조하려는 ‘정신건강 컨설팅 기업’ 마인드프리즘(주)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기업을 상대로 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등 노동자에서 CEO까지 고객의 폭이 넓다. 정신과 의사로서 남성 심리 분석에 특징이 있다는 평가가 많다. 수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는 대중 저술가이자 유명 칼럼니스트다. 『남자 vs 남자』 『사람 vs 사람』 『삼색공감』 등을 다수의 저서가 있고, 한겨레 등 여러 매체에 오래도록 칼럼을 써왔다. 요즘은 매주 수요일 ‘정혜신의 그림 에세이’와 ‘추천의 글’이 담긴 메일을 ‘고객들’한테 서비스하고 있다. 이 글들은 그의 블로그(http://blog.naver.com/mindprism)에서 볼 수 있다. ‘흙을 밟고 살고 싶다’는 오랜 소망에 따라 서울을 떠나 9년째 양평 전원주택에서 살고 있다. 서울에 사는 동안 한 번도 집을 소유한 적이 없다. 부동산 정보에 관심을 끊고 살았고, 주식투자를 해본 적도 없다. 덕분에 그에 소모될 에너지를 아낄 수 있었고, 불필요한 손해나 심리적 상처도 받지 않았다.
아이 셋은 대안학교를 나왔거나 다니고 있다. 큰 아들은 대안학교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영화에 관심이 많아 영화 연출부 막내로 일하다 군에 입대했다. 큰 아들은 아직 대학에 관심이 없단다. ‘아이들은 행복하게 살아야 하고, 자기를 느끼며 살아야 하며, 바로 거기서 모든 힘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이들 일에 관여하지 않으려 애쓴다.
시인 함민복, 저술가 강준만, 극작가 노희경 씨 등의 글을 여러 이유로 좋아하는데, 사실 만나본 적은 지금껏 한 번도 없다. “굉장히 폐쇄적이고 낯가림이 심한 성격”이란다. 마인드프리즘의 공동대표이기도 한 남편은 하루 24시간을 거의 함께 지내는 그의 ‘영감자’다.
첫댓글 아침에 참여연대 월간지 <참여사회>12월호를 읽다가 좋은 글이라 여겨져, 함께 나눕니다~
참 좋은글 감사합니다. 며칠전, 우리기억에서 점점 잊혀져가는 태안기름유출사건으로 피해를 본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때, 문득 떠오른것이, 트라우마, 재난을 당하고 겪는 정신적인 고통, 외상후스트레스였습니다. 여기까지 돌볼 마음이 없는 거죠! 타인의 정신적인 고통을 헤아리는 마음의 가장 기본이 생명존중인데 그 기본을 말살하는 무리들이 쉽게 볼 수 없는것은 당연한 이치! 많은 사람들이 읽고 생각해보았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