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건국세력 수장급 묘, 경주 시내서 첫 발굴
서기 1세기경 무덤 추정 수준 높은 유물 다량 출토… 삼국사기 건국기록 뒷받침
경상북도 경주 시내에서 신라 건국 세력인 육촌(六村)의 수장급으로 추정되는 2000년 전 널무덤(목관묘·木棺墓)이 발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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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라의 건국세력인 육촌 수장급의 것으로 추정되는 널무덤이 경주 시내에서 처음으로 발굴됐다. 위 사진은 널무덤 전경. 아래 사진은 출토 유물 중 청동 칼자루 일부(왼쪽)와 청동팔찌. /한국문화재보호재단 제공
한국문화재보호재단 문화재조사연구단은 18일 경북 경주시 탑동 21의 3·4번지 단독주택 신축부지 발굴 조사에서 목관의 흔적과 함께 내부에서 옻칠을 입힌 나무 칼집에 동이나 철로 만든 칼을 끼운 칠초동검(漆鎖銅劍)과 칠초철검(漆鎖鐵劍), 칼자루 끝 장식인 검파두식(劍把頭飾), 호랑이 모양 허리띠 장식, 청동팔찌, 개구리 모양 청동단추, 시신 얼굴 가리개용 옻칠 부채 등의 유물이 출토됐다고 밝혔다. 목관을 묻은 묘광(墓壙·무덤구덩이)의 평면 형태는 네 모서리 각을 죽인 말각(抹角) 장방형이며 크기는 길이 296㎝, 너비 144㎝, 잔존깊이 49㎝이다. 목관은 흔적으로 파악할 때 묘광에서 약간 남쪽으로 치우쳐 있으며 길이 196㎝, 너비 84㎝였다. 묘광을 채운 흙에서는 쇠뿔 모양의 손잡이가 달린 항아리 등의 토기와 철복(쇠솥), 철모, 다수의 칠기 흔적 등이 확인됐다. 조사단은 "토기 출토 양상이 경주 사라리 130호분과 유사해 서기 1세기쯤 만들어진 무덤으로 추정된다"며 "목관과 그 주변에서 수준 높은 유물들이 대량으로 발견된 것으로 보아 상당한 세력을 지녔던 인물의 무덤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조사단은 "지금까지 사라리 130호분이나 조양동 38호분 등 경주 외곽 지역에서만 확인되던 수장급 묘가 신라의 시조인 박혁거세 부부 등이 묻혔다고 전해지는 경주 시내 신라오릉(사적 제172호) 인근에서 처음으로 발견됐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박혁거세가 기원전 57년에 경주 일대 육촌(六村)의 촌장이 합의 추대하는 형식으로 왕위에 오름으로써 신라를 건국했고, 그때 터전을 닦은 곳이 경주 남산 자락인 도당산과 오릉(五陵), 나정(蘿井), 창림사(昌林寺) 터 일대라고 나온다. 하지만 그동안 경주 시내에서는 이와 관련된 고고학적 발굴 성과가 나오지 않아 신라 태동지가 대형 목관묘가 발견된 경주 외곽 지역이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됐었다.
조선일보 2010.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