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궁통1
13년 전이었습니다.
TV 뉴스가 온통
‘법정 스님 위독설’로
시끌시끌했습니다.
법정 스님은
대중적 인지도가
워낙 크다 보니
뉴스의 파급력도
상당했습니다.
법정 스님은 생전에 길상사에서 봄과 가을로 법문을 했다. 그때마다 길상사 법당 앞 뜰을 대중이 가득 채웠다. 법정 스님은 쉬운 요즘말로 불교의 메시지를 전했다. 중앙포토
이리저리
수소문해 보니
삼성서울병원에
입원해 있다고 했습니다.
어떡할까,
고민하다가
무작정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제가 확인한 것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법정 스님께서
삼성서울병원 특실에
입원하고 계시다.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법정 스님을
병원 특실에 모신 것은
불자인 홍라희 여사의
배려였습니다.
제가 확인한 또 하나는
삼성서울병원 특실은
아무나 들어갈 수가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특실이 있는 층에 내려도
안에서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바깥에서 들어갈 방법이
아예 없었습니다.
#궁궁통2
병원에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잠시 고민했습니다.
특실 문 앞까지 가더라도
어차피 안으로 들어가기는
힘들 텐데.
굳이 갈 필요가 있을까.
잠시 후에
생각을 다시 바꿔 먹었습니다.
그래도,
문 앞까지는 가보자.
갈 수 있는
마지막 선까지는 가보자.
종교 담당 기자니까.
법정 스님이 서울 성북동 길상사에서 봄을 맞아 법문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그렇게 마음먹고
삼성서울병원 특실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앞에 섰습니다.
다시
걱정이 올라왔습니다.
막상
올라갔는데,
문 안으로 못 들어가면
어떡하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저는 마음속으로
걱정거리를 포맷시켰습니다.
들어가든,
못 들어가든
그냥 하늘에 모두 맡기자.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으니까.
그러자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저는 엘리베이터를 탔고,
특실이 있는
꽤 높은 층에서
저 혼자
내렸습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나와
오른쪽을 보니까
출입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출입문 너머에서
스님들 서너 분이
보초를 서고 있는 게
보였습니다.
‘법정 스님 위독설’로
시끌시끌하자
제자들이 보안을 지키기로
한 것입니다.
출입문 쪽으로
걸어가면서
잠깐 생각했습니다.
제자 스님들이
문을 열어주지는 않겠구나.
#궁궁통3
뚜벅뚜벅,
출입문을 향해서
혼자 걸어가는데
뒤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저를 앞질러 갔습니다.
법정 스님이 신던 고무신을 댓돌에 벗어놓았다. 왼편에 보이는 고무신의 뒤꿈치가 찢어져 기운 흔적이 보인다. 중앙포토
돌아보니
특실 층에 엘리베이터가
두 개였습니다.
옆 칸에서 내린
사람들 대여섯 명이
저를 앞질러 출입문 쪽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분들은
스님이었습니다.
재가자도
한두 명 끼어있었습니다.
제가 앞서서
가고 있었지만,
그분들 걸음이
저보다 빨랐습니다.
출입문 앞에
다다르자
저와 그분들의
발걸음이 비슷했습니다.
얼떨결에
제가 그분들과
일행처럼 돼버렸습니다.
출입문 너머에서
보초를 서던 스님들은
법정 스님이 아는
스님들이 오자
안에서 출입문을 열었습니다.
저는
법정 스님 병실이
어디냐고
물어볼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분들을 따라서
걸어가니까
법정 스님이 입원한
병실 안까지
그냥 들어갔습니다.
#궁궁통4
물어보는 사람도 없고,
제가 누구인지
의심하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아마도
법정 스님의 지인이겠거니
생각했지 싶습니다.
특실에는 병실이 하나 있고,
바깥에는 의자가 있는 공간이
또 하나 있었습니다.
법정 스님이 18년 동안 머물렀던 전남 순천 송광사 뒤편의 조계산 불일암 앞에 있는 대나무 숲길. 중앙포토
병실 문은 열려 있었습니다.
법정 스님은
산소마스크를 쓴 채로
숨을 쉬고 있었습니다.
들숨과 날숨에,
삐쩍 마른 몸이
들썩들썩할 정도로
위독해 보였습니다.
한눈에 알겠더군요.
아주 많이
위독하시다는 걸
말입니다.
‘위독설’로만 떠돌던 소문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병실과 연결된 방에는
법정 스님의 상좌 스님들이
여럿 앉아 있었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법정 스님, 건강은 어떠십니까?”
“폐 기능이 떨어져서
숨을 쉬기가 힘드십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습니다.
방에는
법정 스님의 쾌유를 바라는
사람들이 쪽지글들이
곳곳에 보였습니다.
가수 노영심씨가 쓴
손글씨도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러다가
법정 스님의 제자 중 한 명이
제게 물었습니다.
“그런데,
혹시 어디에서 오셨는지요?”
저는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중앙일보 종교 담당 기자입니다.”
방 안에 있던
스님들은 깜짝 놀라더군요.
‘위독설’등 언론 보도 때문에
철통 보안을 유지했는데,
기자가 병실에 들어와 있으니
깜짝 놀란 겁니다.
#궁궁통5
법정 스님의 맏상좌인
덕조 스님이
제게 왔습니다.
“지금은 법정 스님께서
위독하신 상태다.
언론에 보도가 되면
더 시끄러워질 것 같다.
저희 문중에서
정리가 될 때까지
보도를 안 했으면 좋겠다.”
그런
요청이었습니다.
법정 스님의 맏상좌 덕조 스님이 스승의 주기를 맞아 서울 성북동 길상사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다가 눈시울을 적시고 있다. 중앙포토
저는 잠시
망설였습니다.
왜냐고요?
이건 일종의 특종이니까요.
지금까지 언론보도는
하나같이 ‘위독설’뿐이었습니다.
사실에 대한
확인 뉴스는 나간 적이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법정 스님의 제자들은
문중과 송광사 차원의
또 다른 입장이 있었습니다.
눈으로 확인한
법정 스님의 건강은
무척 위독한 상태였습니다.
한눈에 봐도
입적이 얼마 남지 않음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 선종에 이어
종교계에
큰 어른이 또 떠나실
참이었습니다.
잠시 망설였지만
덕조 스님의 요청에
저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법정 스님께서
입적하시기 전까지는
법정 스님 병실을 확인한 기사를
쓰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왜냐고요?
저는 그게,
그냥 순리에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날로부터
엿새 후에
법정 스님은 입적하셨습니다.
저는
약속을 지켰습니다.
병실 이야기는
법정 스님이 열반하시고,
송광사 뒤 조계산에서
스님의 다비식이 끝난 다음에야
글로 녹였습니다.
#궁궁통6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참 묘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삼성서울병원 특실 안으로
들어갈 가능성은
사실상 0%였거든요.
안에서 보초를 서던
스님들이 문을 열어줄 리가
없으니까요.
더구나 기자에게 말입니다.
어떻게
그게 가능했을까.
법정 스님의 다비식에는 1만5000명이 넘는 추모객이 왔다. 나무 사이로 고개를 쭉 빼서 스님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보는 얼굴마다 슬픔이 어려 있다. 중앙포토
저는 그때
특실이 있는 병동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순간을
되짚어 봅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그건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는
순간이었습니다.
특실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못 들어가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을 모두 내려놓고
하늘에 맡기자며
마음을 냈으니까요.
그다음에는
제 의지와 상관없이
물결처럼,
자연처럼
흘러가더군요.
저에게는
그게
아주 큰 경험이었습니다.
『금강경』에는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이란
대목이 있습니다.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라.
그날은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낼 때,
세상과 우주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몸소
느끼고 배우는
귀중한 하루였습니다.
첫댓글 법정스님!
아~ 법정스님!
어제 이 글 읽다가 울었어요.
@正道行(꽃향기) 우리나라와
불교계의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실상당 향산 그러게요.
그리운 법정스님....
감사합니다,감사합니다,감사합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