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사진 이야기를 할께요. 카페앨범을 먼저 들르셨다면 다 아시겠지요?
이분은 노사키다다오라는 일본무교회 신자입니다. 1919년 2월생으로 젊었을 적에는 철도공무원이었고, 은퇴해서는 서예가로 살아오신 분입니다. 1919년생이니 우리 이진구 샘과 동갑이시네요. 이분이 1994년 여름 우리 나라를 방문하셨습니다. 한국국민에게 사죄하고 싶었고, 송두용 선생님의 묘소에 가고자 하는 염원을 품고 말입니다.
오류동집회에 참석하시고, 김포공원묘지로 고고씽 하기 전에 기념촬영을 한 사진이 저기 아래 있습니다. 송선생님 묘소에서 예배를 드린 다음 다시 오류동으로 돌아왔대요. 이때 운전수가 손편집 선생이었고, 어린 문일군이 동행했죠. 그러자 크게 감동하신 노사키 선생이 자신의 소장품 중 얇고 작은 최신 전자계산기(샤프)를 선물로 주었습니다. 그 계산기 지금도 가지고 있답니다. 그런데 2006년 대훈군과 함께 일본에 가게 된 문일군이 야마모토 선생의 제안으로 노사키선생댁을 방문했답니다. 벽에는 서예가답게 글씨를 비롯한 그림들이 걸려있고, 그때의 초딩이 대딩으로 성장했다는 것에 크게 감동했었다고 합니다.
이 노사키씨가 지난 1월 4일 돌아가셨고, 영결식에서 세키네요시오 선생이 고별사를 하셨는데 그글을 浦和그리스도집회월보(251호)에 실었기에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비루한 일본어 실력이라서 부분부분 발췌하여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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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와 부활의 신앙에 살다
-노사키 다다오(野崎忠雄)씨를 하늘에 보내다_
세키네 요시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우라와기독집회의 세키네 요시오라고 합니다. 노사키다다오와 세이씨 부부와는 40년 이상 주 안에서 교류하고 지내왔습니다. 여러분은 영결식장 입구에서 많은 서예전시작품을 보았을 것입니다. 노사키씨는 글씨를 잘 써서 해마다 가와구치역 릴리아홀에서 열리는 성구(聖句)서예전에 참가하였습니다. 성경말씀을 써서 슬픔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보내주기도 하셨지요. 그것을 받고 마음 깊이 위로를 받았다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노사키씨가 쓰고 또 쓰고 한 성경말씀이 바로 요한복음 11장 25-26절입니다.(위의 두 번째 사진 '부활'도 요11:25)
노사키씨가 돌아가신 다음날, 댁을 방문하였더니 놀랍게도 선생은 영결식에서 읽을 성경구절, 찬송가, 사회자 등등을 전부 작년 7월에 이미 편지로 남겨두셨더군요. 그대로 지금 진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리라.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결코 죽지 않으리라. 이것을 믿느냐?'
이 말씀이 선생의 영혼에 가장 깊이 새겨졌던가 봅니다. 선생은 도대체 왜 이 부활의 부름을 특별하게 생각했는지 궁금했습니다. 거기에는 두 가지의 동기가 있었습니다.
첫째 이유는 '거라사인에의 은혜'라 이름붙인 선생의 글에 나와 있었습니다.(거라사의 광인, 벌거벗은 채 무덤이나 산에서 울부짖으며 지내던 그가 그리스도를 만나 새사람이 된 이야기)
" 그것은 1945년 7월 10일밤이었습니다. 남인도양 안다만섬의 야전병원 한 침대에서 중환자로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기적같은 영혼변화를 체험하였습니다. 그 밤 이후 기독교는 나에게 전부가 되었고, 성경말씀은 피가 되어 내 영혼을 지켜주었습니다. 그러나 신앙을 가르쳐줄 선배도 없었고, 오직 한 권의 신약성경과 한 전우가 준 힐티의 '행복론'이 스승이며 친구였습니다. 병상에서 이 책을 읽으며, 내 마음에 꺼지지않는 신앙의 등을 혼자서 지켜갔지요.
그런데 죽음을 각오하였던 병은 점점 나아졌고, 8월 15일 종전을 맞았습니다."
노사키씨는 그때 자신의 병상을 1시간마다 돌며 죽었는지 살펴보던 위생병마저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그후 돌아와 평생의 스승으로서 존경하게 된 提 道雄(미찌오) 선생을 만난 것입니다.
" 저는 죄인의 괴수입니다. 종전이후 20여년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살아갔습니다. 그러나 악령에 사로잡혀있는 거라사의 광인을 치유하신 주께서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용서해 주시며, 3일만에 살아나시어 영원히 살아계신 그리스도예수 우리 주를 사랑하며 우러릅니다.
이제 저는 안다만섬의 빈사상태에서 주셨던 체험을 비롯하여 긴 세월, 어떤 때는 내 마음에 부어주시고, 어떤 때는 좋은 동료와 스승을 통해 구원의 피안(彼岸)으로 인도해주신 전능의 하나님이 계시다는 한 가지 사실을 알 뿐입니다."
둘째 이유는 '영혼이란'이라는 글에 있습니다. 이는 노사키선생 부부에게 큰 고통이 되었던 장남의 죽음입니다. 1973년 6월 8일 아들은 2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최후의 숨을 거두는 순간 지극히 평안하여 '하나님 계신 곳에 먼저 가서 기다려다오.' 하니 몇번이나 머리를 끄덕이며 하늘로 돌아갔다. 이만큼 살기위해 힘들게 버텨웠던 아이, 어린아이처럼 솔직하던 아이, 마지막까지 작은 호의에도 감사하며 식사를 할 수 없어도, 물 한모금에 감사하며 맛있게 마시던 아이, 큰 소리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던 아이, 그 아이가 이제 잠든 것처럼 최후의 숨을 거두고, 차가운 주검이 되어 눈앞에 길게 누워있다. 나는 사람의 영혼이 육체와 함께 소멸된다고 믿지 않는다.
그의 육체는 죽었다. 그러나 그의 영혼은 죽지않고 하나님 앞에 갔다. 한 번은 자신의 죄때문에 하나님 앞에 서겠지만, 죽음앞에서 부르고 또 부르던 하나님은 예수님의 죽음 때문에 그를 용서하시고, 눈물을 씻어주시리라 믿어졌다. 그래서 나는 슬픔을 넘어 평안이 밀려옴을 느꼈다.
모든 사람에게 죽음은 온다. 그리고 영혼은 육체를 떠나 내세에 이른다. 거기서 우리는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으리라. 그러나 우리에게는 구원의 반석이 있다. 우리의 모든 죄를 십자가 위에서 구속해주신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곁에 계시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한 나는 이 세상과, 앞으로 다가올 세상을 지배하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며, 인생의 발검음을 용감하게 걸으려 한다. 그곳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고, 먼저 불려간 사랑하는 아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 노사키씨가 요한복음 11장의 부활에 관해 반복 또 반복하여 썼는지, 비탄 속에 있는 사람에게 그것을 보냈는지 이유가 확실해집니다. 노사키씨야말로 우찌무라 간조가 '우리들이 후세에 남겨줄 만한 것이 하나도 없다하더라도 저 사람은 이세상에서 사는 동안 성실한 생애를 보냈다 하고 말해주기를 바란다.'고 말한 한 사람이 틀림없습니다. 노사키씨가 이런 발자취를 남기게 해 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을 마음깊이 찬양하고 싶습니다.
(노사키씨의 약력 : 1919년 2월 태어남. 철도학교를 졸업, 철도청에 근무하다가 21세에 징병, 27세에 복귀. 1973년 54세에 장남(시게루) 병으로 죽음. 이듬해 55세 퇴직. 이후 다른 일을 하다가 65세에 완전 은퇴하여 독서와 기도의 생활에 전념. 2011년 7월부터 건강이 악화되어 2012년 1월 4일 신부전으로 돌아가심.
15세에 기독교에 들어와 쓰카모토 성서집회에서 공부(1945-1952). 그 후 마사이케진 선생의 성서집회 출석. 이곳에서 미찌오 선생을 재회하였음. 1991년 4월부터 2007년까지 우라와집회 예배에 참석하였음.)
* 이글을 쓰신 세키네 요시오 선생은 2012년 1월말로 퇴직을 하셨다고 합니다.
나같은 죄인 살리신-1.wma
첫댓글 그렇습니다. 우리의본향은 저 천국임을 잊지 말자 그러나 이 세상의 삶을 소홀히 하지 않으면서 늘 우리는 영원한 집을 사모하며 죄인을 살려 주신 주 예수그리스도를 이 생명 다하는 날까지 증거하여야 하리라. 신앙의 사람들이 하나 둘 하늘의 부르심을 받고 승전가를 부르며 가시는 모습이 부럽기도 하고 한편 가슴이 뭉클하기도 합니다. 선한 싸움 다 싸우고 승리의 개가를 부르는 날이 속히 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