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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대구 공방전] 02
S#1. 공원
메리 ; 당신 이 동네 살아?
대구 ; 이사 온지 열흘쯤 되요.
메리 ; 직업 없이 노나?
대구 ; 놉니다. 하지만 저도 그래요. 지금 당장 보이는 건 없지만 내 안에서 뭔가 이만큼 키가 크고 있을 꺼라구요.
와.... 그 말, 찡했어!
메리 ; 댁은 어쩜 사람에 대한 예의가 그렇게 없나?
대구 ; 그러는 당신은? 그날 밤 화장실에서 다 들었잖아요, 나 차이는 거.
메리 ; 더 이상 마주치지 않았음 좋겠네요. (일어서는데)
대구 ; 운동화 좀 사 신어요. 사람들이 보면 진짜 미친 여자로 알겠네.
메리 ; 댁의 추리닝도 위협적이예요.
대구 ; 밤엔 돌아다니지 마세요. 무서워요.
메리 ; (뒤돌아 다가간다)
대구 ; (긴장)
메리, 대구를 지나쳐 옆의 벤치로 간다.
남자가 주고 간 티셔츠를 집어 든다. 공원 한 쪽에 서 있는 재활용품 수거함 앞으로 가 던져 넣는다.
메리 ; . . . .(말 없이 대구 앞을 지나쳐 사라진다)
대구 ; (메리를 보고 있다가) 사랑을 잃은 여자의 눈빛이 저렇구나....
아... 저 여잔 정말 나한테 너무나 많은 영감을 줘.... (여기저기 뒤지며) 펜! 볼펜 어딨어.
S#2. 동네 / 낮
메리, 걸어간다. 우울하게 한참동안 흐느적 흐느적 걸어가다 우뚝 멈춰선다.
메리 ; . . . . 괜찮아. . .나한테는 꿈이 있잖아. (핸드폰 꺼내 버튼 꾹꾹 누른다)
동파(F) ; 어, 내 친구 황메리.
메리 ; (씩씩하게) 응, 내 친구 허동파! 지난 번 오디션 발표 언제 나니?
동파 ; 벌써 났지. 넌 1차에서 떨어졌더라.
메리, 축 쳐져 울적하게 걷고 있다.
메리 ; . . . .재능도 없고... 남자도 없고. . . 직업도 없고, 돈도 없고....
(멈춰 선다. 하늘을 보고 웃는다) 하하하하하..... 살기 싫어!
S#3. 메리 방 / 낮
해 넘어가기 직전의 농익은 햇살, 창으로 스며든다.
메리, 책상 앞에 우두커니 앉아있다. 노트에 뭔가를 쓴다.
‘유서’ 라 쓰는 메리. 눈물이 핑글.
S#4. 공 원 / 낮
깨끗이 비어있는 짜장면 그릇.
포만감 가득한 표정으로 배 쓰다듬으며 앉아있는 대구.
대구 ; 아... 잘 먹었다. 나눠먹었음 모자랄 뻔 했네.
대구, 1회용 그릇을 포개 공원 한켠에 세워진 쓰레기통으로 간다.
플라스틱 수거함에 그릇을 넣고 손을 탁탁 털고 돌아서 가다가 문득 발걸음 멈춘다.
재활용품통으로 시선......
잠시 후 공원 앞거리.
기분 좋게 걷는 가벼운 대구의 가벼운 발걸음. 알록달록 하와이 티셔츠를 입었다.
휘파람. 티셔츠가 맘에 드는 듯 자꾸 내려다보며 싱글싱글
대구 ; 이게 행운을 가져다준다 이거지.... 보기보다 잘 맞네.
S#5. 메리 방 / 어스름
어둑해졌다. 창으로 들어오는 비껴들어오는 노을이 묘한 분위기를 만든 방.
때가 살짝 묻은 메리의 발바닥, 움직임 없이 널브러져 있다.
메리, 옆으로 축 쳐져 죽은 듯 누워있다. 책상 위엔 유서라 쓴 노트.
‘유서.........오늘 문득 내가 쓸모없는 존재란 걸 느꼈습니다’ 로 시작하는 글.
메리(E) ; 그 무엇도 가진 게 없고, 그 무엇도 나눠줄 게 없고.... 재능없이 열정만 뜨거워 고통에 몸부림치던
한 여자가 떠납니다. (혼자 감정에 겨워 울먹) 내가 떠난다고 진심으로 울어줄 사람이 있기나 할까요. . .
모두들 안녕....
성자(E) ; (부엌에서) 메리야. 황메리....
메리, 움직임 없다.
성자(E) ; 얘가 귓구멍이 막혔나.... 너 죽었니?
메리 ; . . . . . .
성자(E) ; 어여 나와 밥 먹어.
메리 ; (발딱 일어나 앉는다)
S#6. 메리네 부엌 / 밤
성자, 도철, 메리 식탁에 앉아있다. 소박한 식탁.
메리, 식탐가득. 복스럽게 퍼먹고 있는.
메리 ; (코를 실룩실룩) 흠흠.... 반경 2미터 내에 돼지갈비가 있는 것 같은데....
성자 ; 내일 대한이 면회 간다. <황대한:추운 겨울 대한에 태어난 메리 남동생>
메리 ; 요즘 군대 밥 잘 나와요. 그냥 지금 쫌만 풀어.
성자 ; 지금 풀었다간 내일 가져갈 꺼 하나도 안 남게.
메리 ; 딸 아들 이렇게 차별할래?
성자 ; 얘, 대한이는 서울대 장학생이지, 벌써부터 오라는 회사들 많지,
사위삼고 싶단 집도 한두 군데가 아니고, 한 번도 우리 속을 썩여 본 적이 없는데 너랑 같니.
메리 ; 아빠, 말 좀 해주세요.
도철 ; 거 먹는 걸루 치사하게 굴지 말고 애 좀 멕여요.
성자 ; (쫙 째려보면)
도철 ; (메리에게) 넌 나중에 소갈비 사먹어.
메리 ; 사 먹을 돈 주세요.
성자 ; 돈 달란 소리가 나오니? 미국 여학생은 왜 덮쳐, 젖가슴은 왜 주물럭거려서 민박이 똑 떨어지게 만들어.
수입이 팍 줄었어, 니가 사고치는 바람에.
메리 ; 알았어, 드럽고 치사해서 돼지갈비 안 먹는다. 맨밥만 먹고도 인간이 살 수 있다는 걸 내가 보여주겠어.
(밥 퍼먹는)
도철 ; 메리야.... 너 좋다고 따라다니는 남자는 없냐?
메리 ; 뛰어난 미모에 왜 없겠어요. 자아실현이 먼저라 다 거절하고 있는거지.
도철 ; . . . .혹시 엄마 아빠한테 말로 터놓기 힘든 게 있다면 메일이나 문자로 알려다오.
메리 ; . . . .아빠 지금 무슨 말씀 하시는거예요?
도철 ; . . . . 나도 말로 하긴 힘들다.
메리 ; 아빠 혹시......
도철 ; 인간은 다양하니까 말이다. 너도 몰랐던 네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고 말이야.
메리 ; 아빠까지 왜 이래? 나 여자 싫어해. 남자가 좋아요.
성자 ; 너 이 참에 선 볼래? 서른 넷인데 대기업 다니구, 학벌 좋고, 차남에, 키 크고, 인물도 좋대.
메리 ; 그런 남자가 왜 날 만나겠어. 혹시 요실금 땜에 기저귀 차는 거 아냐?
성자 ; 당신이 벌써 얘기했어요?
도철 ; 아니.
메리 ; (발끈) 날 뭘로 보고.
S#7. 허름한 사무실 / 낮
농협 모자를 쓴 아저씨, 큐 싸인을 준다.
메리, 낡은 오디오에 꽂힌 마이크를 잡고 혼신의 힘을 다해 녹음중이다.
메리 ; 자아.... 계란! 아싸.... 달걀! 타조알 인지 공룡알 인지 분간이 안가는 계란. 왕따시만한 계란이 왔어요.
아저씨 ; (감정을 더 복받치게 올려달란 표정으로 싸인)
메리 ; (더 힘을 줘) 어젯밤 부부싸움으로 눈두덩 시퍼렇게 되신 분, 부끄러워 말고 오세요. 계란이요 계란.
열심히 돌아가는 녹음테이프.
S#8. 오피스텔 앞 / 낮
호박빵을 실은 트럭 와 있다.
메리(F) ; 호박(폭탄이 터지듯)빵! 호박 빵이 왔어요, 호박(폭탄)빵! 영양 많고 맛좋은 호박(폭탄)빵!
대구, 잠 덜 깨 부스스한 얼굴로 창문 열고 소리친다.
대구 ; 아저씨이..... 잠 좀 잡시다, 예? 저 좀 살려주세요.... 예?
트럭 떠난다.
잠시 후, 다른 트럭에 와서 선다.
이번엔 계란 트럭.
메리(F) ; 이 세상에 계란 없으면 무슨 재미로...하! 달이 떠도 계란, 해가 떠도 계란 계란이 최고야....
맞아 맞아 계란이 최고야....
대구 ; 아저씨, 그거 누가 녹음 한 거예요? 목소리 진짜 불쾌하네.
S#9. 오피스텔 / 아침
흑백화면의 낡은 구형 노트북, 앉은뱅이 책상에 놓여있다.
옆엔 수북한 메모지와 인물 관계도<광녀 - 배신남 - 배신의 상처가 그녀를 미치게 함- 복수>등등
적어놓은 고민의 흔적들.
허리에 수건만 두르고 욕실에서 젖은 머리로 나오는 대구.
대구 ; 아으.... 피곤해. 이 동네에 이사 온 후론 잠을 제대로 잔 적이 없어.
대구,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걸려있는 추리닝을 잡으려다 멈춤.
뒷걸음질로 가 방 앞에 선다. 방문에 귀를 댔다가
대구 ; 형! 안에 없지? 출근했죠?
대구, 문을 열면 놀라울 정도로 엄청 큰 방이 펼쳐져 있다.
따로 독립된 하나의 대형 원룸 같은 분위기.
깨끗한 수트 여러 벌 걸려 있고, 깨끗한 구두도 여러 켤레 가지런히 정돈돼 있다.
한 쪽엔 넥타이와 향수, 스킨 콜렉션.
대구 ; 남자 방이 이게 뭐야.... 나 옷 좀 빌려 입는다, 형.
대구, 거울 앞에 선다.
양복, 멋지게 어울리는데 바지 기장이 짧다. 복사뼈가 달름하니 나온다.
대구 ; 키 좀 안 크고 뭐했니.... (or 키는 나보다 크면서 다리길이가 이게 뭐니)
S#10. 옥탑방 사무실 / 낮
옥탑방 문 옆에 붙은 옹색한 간판 <도서출판 천고마비>.
대구, 작은 화분 하나 들고 옥탑방 앞에 서 있다. 기장이 짤룩한 바지.
옥탑방을 보고 서글픈 한숨......
화분, 햇빛 받으며 놓여있다.
옥탑 마당의 평상에 앉아있는 대구와 사장.
대구 ; 사무실 옮겼다는 게 여기야?
사장 ; 재택 근무라고도 할 수 있지. 뭐 지낼만 하다.
어린 두 딸과 초등학생 아들, 할아버지, 할머니, 임신한 부인...
모두 함께 목욕탕에 다녀온 듯 목욕바구니를 들고 젖은 머리로 우르르 올라온다.
사장과 마주 앉아있는 대구를 보자 시선이 곱질 않다.
대구도 어색한 목례만.
식구들, 옥탑방으로 우르르 들어간다.
문 안에서 들려오는 아들 목소리.
아들(E) ; 저 형이 아빠 회사 말아먹은 멍청한 작가새끼야?
대구 ; . . . . .
사장 ; (무안해 허허 크게 웃으며) 나 말이다... 6개월 안에 저기 보이는 새 건물로 들어갈 자신 있다.
대구, 보면 멀찍이에 햇빛 받아 반짝거리는 황금빛 삼룡빌딩이 보인다.
대구 ; 이 동네에 저런 빌딩이 다 있었어요? 임대료 장난 아니겠는데.
사장 ; (대구의 손을 덥썩 잡으며) 강작가! 우리도 한번 강호를 평정해보세.
대구 ; 이를 말씀입니까. 한번 싸움에 패했다고 자신의 목을 벤다면
무림의 사내들은 목이 열 개라도 모자랄 것입니다.
사장 ; 이제야 얘기가 통하는군.
사장, 옛날 고서처럼 생긴 책을 내민다.
대구, 후루룩 넘겨보면 갖가지 체위들이 그려진 요상한 그림이 보인다.
대구 ; 이게 뭡니까?
사장 ; 에로와 버무린 무협, 이거 장사된다. 6대 문파의 사모님들을 건들고 다니는
정력 고수의 얘기를 니가 써주면 돼.
대구 ; 형! 나한테 좋은 얘기꺼리 있다니까.
사랑을 잃고 복수를 준비하는 무림의 광녀 얘기를 내가 구상중이라니깐요.
사장 ; 그건 다른 출판사에 가서 내구.
대구 ; (벌떡 일어나) 나를 한번 믿어 봐요!
사장 ; (위아래로 훑는다) 너도 제대로 된 양복 한번 입어보고 싶지 않니?
대구 ; (한 쪽 무릎 꿇으며) 형! 나한테 독자들의 혈을 제대로 한번 눌러 볼 기회를 허락해 주십시오.
사장 ; (책 던져주며) 이걸 쓰거나, 신용불량자가 되거나.
대구 ; . . . . .
S#11. 대형 서점 / 낮
대구, 울적한 발걸음. 책 사이를 걷는다.
베스트셀러 10위 까지 꽂혀있는 진열대를 부러운 듯 쳐다보고.
무협소설 코너.
구석진 곳, 가장 아래 칸에 꽂혀있는 ‘풍운도사의 백팔번뇌’ 1,2권 보인다.
꺼낸다. 먼지를 후 불고 툭툭 털어 중간 부분 잘 보이는 곳에 꽂아둔다.
대구 ; 어떻게 2년 8개월 동안을 묵묵히 꽂혀있냐.....
대구, 간다.
잠시 후 최비단 걸어온다. 이것저것 뒤지다가 옆에서 책 수레 끌고가는 점원에게
비단 ; 언니! 풍운도사의 백팔번뇌 3권은 아직 안 나왔어요?
점원 ; 네. 더 이상 안 나올 것 같던데요.
비단 ; 천고마비에서 나온 다른 무협책은 없어요?
점원 ; 그 작품이 다예요. (간다)
비단 ; . . . .작가가 죽었나...
비단, 책을 뽑아 겉장을 넘겨본다.
책 표지 안쪽에 작가의 사진 나와있다. 팔짱끼고 하늘을 보는 어색한 사진이다.
비단 ; 명은 길어 보이는데..... 멍청하게 생겨갖곤 글빨이 딸리나부네.
S#12. 삼룡 빌딩 앞 / 낮
햇빛 받아 황금빛으로 번쩍이는 건물. 반짝거리는 대형 승용차 와서 선다.
운전석에서 수행비서 꽁치, 내린다. 뒷좌석 문을 열면 이 세도와 김부길 내린다.
두 사람, 건물을 보고 서 있다.
세도 ; . . . .음.... (만족한 미소) 좋아. 아주 흡족해.
부길 ; 얼마나 나간거야?
꽁치 ; 현재 2, 3, 4층은 임대계약이 모두 만료된 상태입니다. 그 층은 다 병원이 들어올 겁니다.
부길 ; 원장들 프로필도 다 체크한거지? 명문대 출신의 전문의 이상이어야 해요.
꽁치 ; 여부가 있겠습니까. 치과, 피부과, 성형외과, 안과 그리고 정신과
모두 상위 5퍼센트 안에 드는 원장들입니다.
부길 ; 아니, 꽁실장! 찝찝하게 정신과는 왜 들어와요?
꽁치 ; 모르시는 말씀입니다. 요즘 정신과 상담은 흉이 아니죠. 오히려 우리 삼룡빌딩의 위상을 높혀 줄 겁니다.
우리 현대인들에게 반드시 있어야하는....
세도 ; (말 끊어) 꽁치야.
꽁치 ; 예, 회장님.
세도 ; 열 마디로 물었으면 열 마디 내로 대답해라. 넌 사족이 너무 길다.
꽁치 ; 저는 회장님과 사모님이 쉽고 편하게 이해하시도록....
세도 ; (정강이를 걷어찬다)
꽁치 ; 윽!
세도 ; 주차하고 와라.
꽁치 ; 예, 회장님.
꽁치, 절룩거리며 차를 탄다.
세도, 모든 걸 다 가진 왕 같은 미소로 건물을 올려다보며 부길과 함께 안으로 들어간다.
S#13. 메리 방 / 낮
메리, 수건에 손 닦으며 들어온다. 샘플병을 탁탁 하는데 안 나온다.
서랍을 연다. 자잘한 샘플병들 수십 개 들어있다. 다 비어있다.
메리 ; 쇼핑을 갈 때가 됐군.
S#14. 백화점 / 낮
백화점 DM에 끼어오는 사은품 증정 쿠폰, 잡지에서 오린 것, 인터넷으로 다운받은 것등등.....
쿠폰을 한 다발 들고 화장품 코너를 도는 메리.
립글로스도 발라보고 향수도 뿌려보고... 여러 군데를 돌아다니며 하나씩 샘플을 챙긴다.
스킨 샘플, 아이크림 샘플, 미니 향수, 조그만 색조연필.... 손에 자잘한 샘플들이 점점 늘어간다.
럭셔리한 매장 한 곳에서 비굴한 미소 지으며
메리 ; 죄송하지만 하나만 더 주실래요? 친구가 여기 껄 너무 좋아하는데 하나 갖다주려구요.
화려한 메이컵의 매장 직원, 못마땅한 얼굴로 마지못해 하나 더 내준다.
메리, 가볍게 잡아채며
메리 ; 감사합니다. 친구가 무지 좋아할 꺼예요.
메리, 마지막 하나 남은 쿠폰을 들고 또 한 매장으로 가 내민다.
점원 ; 죄송합니다 고객님, 오늘 분량은 다 나갔는데요.
메리 ; 벌써요?
점원 ; 하루에 100개 한정이라 좀 일찍 오셔야해요.
메리 ; (결연히 주먹 쥐는) 알겠습니다.
다음날 아침.
문 닫힌 백화점 앞에 서 있는 메리. 하품하며 서 있다.
백화점 오픈과 동시에 입장하는 메리. 늘어선 점원들의 인사를 받으며 들어선다.
화장품 매장, 큼지막한 샘플을 받아들고 기쁨의 미소 짓는 메리.
메리 ; 감사합니다.
S#15. 동네 골목 / 낮
메리, 뿌듯한 표정으로 살퐁살퐁 날듯이 걸어온다.
앞에 3열 횡대로 길을 다 차지하고 서서 어기적 어기적 불량스럽게 걷고 있는 교복차림의 비단과 열라 1, 2.
세 여학생, 아이스크림(맥도날드의 300원짜리 아이스크림콘)을 빨면서 걸어간다.
메리, 옆으로 피해가려 하나 길이 좁다. 세 사람 사이를 뚫고 지나가면서 툭 친다.
열라1, 메리가 치는 바람에 들고 있던 아이스크림을 놓친다. 땅바닥에 퍽 떨어지는 아이스크림.
열라1 ; 아.... 열라 짱나.
열라2 ; 아줌마!
메리는 알지 못한 채 걸음 빨리해 가는데
열라1 ; 거기 아줌마! 변상하고 가야죠.
메리 ; (못 듣고 걸어가는데)........
비단 ; (바락) 야! 거기 헤진 청바지!
메리 ; (그제서야 돌아보는)
세 소녀, 메리를 째려보고 있다.
메리, 어이없다.
메리 ; 니들이 지금..... 날 불렀니?
비단 ; (고개 까딱)
메리 ; (기 막혀) 허! 니들 몇 살이니?
비단 ; 아줌마보단 덜 상했죠, 아무래두.
메리 ; 이것들이.....
열라1 ; 내 아이스크림 물어내요.
메리 ; 뭐가 어째?
열라2 ; 아줌마가 방금 지나가면서 얠 쳤잖아.
메리 ; (떨어진 아이스크림을 본다). . . . .거의 다 먹구 남은 것도 얼마 없구만. 먹을 만큼 먹었잖아.
비단 ; 나달나달한 그 청바지, 입을 만큼 입었으니까 벗으라면 아줌마 벗을 수 있어요?
메리 ; . . . . .
비단 ; 지금 여기서 청바지 홀랑 벗으면 우리도 아이스크림 포기하지.
메리, 아이들을 본다.
까실까실한 눈빛으로 자신을 빤히보는 비단. 무식하게 힘만 쎄보이는 열라 1, 2. 무섭다.
메리 ; . . . . 니들 이러는 거 엄마 아빠도 아시니?
비단 ; (엄마 아빠 소리에 미간이 꿈틀) !
메리 ; 내가 불쌍해서 준다. (주머니 뒤져 동전 3개 내민다) 자!
비단 ; . . . .(동전을 빤히 보는) 어쩌라구.
메리 ; 아이스크림 값 3백 원 아냐. 떨어진 건 백 원 어치도 안 돼 보이는 구만.
비단 ; 이거 살려면 저 아래 사거리 패스트푸드점까지 가야 하거든요. 그런데 달랑 3백원?
메리 ; 그럼?
비단 ; 2천원 내놔요!
메리 ; . . . . . 니들.... 신고한다!
비단 ; (지지 않는 눈싸움)
열라1 ; 꼴을 보니 백수 같은데 천 원에 깎아주자.
메리 ; (부글부글....)
비단 ; 2천원!
메리 ; 이것들이..... 야, (비단 손바닥에 동전을 탁 놓으며) 3백원 받을려면 받구 아님 말어.
니들 엄마 아빠가 누군지 진짜 슬프시겠다.
비단 ; (동전을 바닥에 내팽개치며) 그냥 줬으면 줬지 어따 대고...
메리 ; 이것들이 진짜 겁대가리를 상실했나. (때릴 듯 주먹 올리며 호통) 니들 한번 맞아볼래?
동네 막다른 골목. 메리, 미친 듯이 뛰고 있다.
뒤로 따라오는 세 여학생과 양아치로 보이는 남학생들 10여명.
남학생이 든 각목, 벽을 그으며 달려온다.
메리, 사색이 돼 이를 악물고 달린다. 이마 가득 땀이 번들.
메리, 뛰다 펄썩 넘어져 화장품 샘플이 가방에서 빠져나간다.
뒤를 본다. 가까워지고 있는 소녀와 양아치 일당.
메리, 얼른 일어나 악착같이 샘플을 챙기고 다시 뛴다. 사생결단.
S#16. 부띠끄 / 낮
한가한 매장.
은자, 노트북 앞에서 뭔가 진지한 표정으로 열심이다.
메리, 지친 표정으로 들어와 털썩 앉는다.
은자 ; 여기 올 땐 의상에 신경 좀 쓰고 오라니까.
메리 ; 나 물 한 잔만 줘.
은자 ; 나 지금 괜찮은 남자들이 올만한 동호회를 찾아보고 있는 중인데 너 혹시 아는 데 없니?
메리 ; 물. . . .
은자 ; 남자들 많은 동호회 찾아오면 니가 꿔간 돈 중에 만원 빼줄게.
메리 ; (버럭) 물 좀 달라니까 물!
은자 ; .....??
물 한잔을 벌컥벌컥 원샷하는 메리.
메리 ; 사는 게 무섭다. 야, 나 지금 무슨 일을 당하고 왔는지 알어? 내가 동네에서.....
이때 탈의실에서 화려하고 드레시한 옷을 입은 동창, 나온다.
은자 ; (메리 무시하고) 벌써 다 입었어? 어머 너무 예쁘다아....
메리 ; . . . .(본다)
은자 ; 수선 필요 없겠어. 맞춘 것 처럼 잘 맞는다. 느낌도 좋구....
동창 ; . . . .(메리보며) ?? 쟤 혹시......
메리 ; . . . . 너. . .혹시 영미 아니니? 김영미.
동창 ; 어머, 너 황메리구나.... 와.... 너도 여기 옷 사러 오니?
메리 ; 나 여기 옷 싫어해.
동창 ; 어쩜 은자랑 연락하면서 동창모임에도 한번 안 나왔어...
은자 ; 영미는 다음 달에 결혼한대. 오늘 신랑이 옷 사주기로 했대.
동창 ; 메리 넌 결혼했니?
메리 ; 아니.
동창 ; 사귀는 사람은?
메리 ; 아직.
동창 ; 직장 다녀?
메리 ; . . . 아직....
동창 ; 으응. . . . .
멋진 남자, 들어온다.
동창 ; 자기야! 나 어때? 이쁘지? 내가 소개할게. 여긴 내 고등학교 동창 장은자.
은자 ; (곱게 인사) 처음 뵙겠습니다.
동창 ; 의상 디자인 전공하고 일본으로 잠깐 연수 갔다와서
디자이너로 잠깐 일하다가 또 모델수업도 잠깐 받다가 지금은 이 샵의 매니저야.
은자 ; 아직 매니저까진 아니구.....
동창 ; 어쨌든 대단한 친구야. 연봉도 장난 아니 게 쎌껄.
은자 ; (으쓱으쓱)
동창 ; 얘 아직 남자가 없대네. 친구 중에 괜찮은 사람 좀 찾아봐, 자기야.
은자 ; (머리를 귀 뒤로 넘기며 수줍게 웃는) 취미는 요리랑 십자수예요.
메리 ; . . . .(아니꼽고 소외감 느껴지고). . . .
동창 ; 여긴 오늘 만난 동창 황메리.
메리 ; 처음 뵙겠습니다. (어떻게 소개할까 궁금한데).....
동창 ; 자기야, 나 저 옷도 한번 입어볼까?
동창, 남자의 손을 잡아끌고 은자도 그들을 따라가며 ‘그것도 잘 어울릴꺼야. 칼라는 두 가지가 있거든....’
메리 ; . . . . . (혼자 우두커니). . . . .
은자, 옷 골라주다가 메리 쪽을 돌아보면 빈 물잔만 덩그라니 놓여있다.
S#17. 공 원 / 낮
울적하게 벤치에 앉아있는 메리. 바람에 머리 날리며 한참을 쓸쓸히 앉다.
매우 고뇌에 찬 표정으로 나지막히 진지하게 한마디 읊조린다.
메리 ; . . . . . 이런 와중에도 배가 고프다니.... 난 짐승인가....
S#18. 오피스텔 / 낮
방중술 고서를 방바닥에 던져두고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는 대구.
(E) ; 초인종 소리.
대구 ; (부시시 눈 떠) 누구세요?
거실로 우르르 들어오는 사장과 어린 두 딸, 아들, 임신한 아내, 링겔병 꽂은 할아버지, 몸빼 바지 입은 할머니.
대구 앞에 주르륵 늘어선다.
대구, 놀라서
대구 ; 왜들 이러세요.
가족일동 ; (손가락으로 대구를 찍어 가리키며) 넌 독자들의 심금을 울린다더니, 우리 가족을 울렸다.
사장 ; 니 책을 내주느라 전세가 날아가고 사무실 월세도 밀렸다. 넌 자본에 대한 예의가 없는 놈이야.
대구 ; 잘못했어요.
사장 ; 얼른 야한 얘기 하나만 써. 매일 니가 생각하는 걸 글로 옮기면 되는거야.
대구 ; 좋아, 쓴다 써! 대신, 선수금 5백 만원 내놔.
초등학교 3학년으로 보이는 어린 아들, 다가와 대구의 머리통을 갈긴다.
아들 ; 내가 영어학원을 못가고 있는 판에...
대구 ; (벙 쪄있는)......
가족일동 ; (발 구르며) 얼른 써! 얼른 써! 얼른 써!
대구 ;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운) 으아아아....
대구, 버둥거리다 깨어난다. 정신없는 듯 숨을 고르는 데
(E) ; 핸드폰 벨
대구 ; (놀라는) 헉! (발신자 본다, 안도) 아후... 가슴이 다 철렁하네....
S#19. 학교 연극부실/ 낮
아담한 크기의 교실.
미국에서 가져온 듯한 뮤지컬과 연극 포스터와 사진들 벽에 걸려있고
술잔, 왕관, 60년대 스탠드 마이크 같은 연극소품들 중세시대의 멋진 의상들 나무인체모형에 입히거나 걸려있다.
기묘한 분위기의 공간, 그러나 질서정연하게 정돈돼 있다.
선도진, 자로 잰 듯 정리가 말끔하게 된 책상 앞에 앉아 베니스풍 가면을 쓰고 전화 중.
도진 ; 난 이제야 짐 정리가 끝났구, 정식발령은 다음 주 부터야. 영어 연극반 방도 하나 얻었어....
너 설거지는 했니?
대구(F) ; 그거 물어볼라구 전화했냐?
도진 ; 그럴 리가! 재활용 쓰레기 좀 지하에 내려놔. 꼭 오늘 해야 해. 공공의 약속이다. 어서 즐겁게 이행해.
끝내 가면을 벗지 않은 채 전화를 끊는 도진.
S#20. 오피스텔 지하 쓰레기수거장
집에서 들고 온 우유팩과 쥬스병 재활 용지 등등 각각의 수거함에 버리고 있는 대구.
피자 배달 광고전단이 수 십장 나온다.
먹음직한 피자 사진들보며 군침 다시는
대구 ; 이걸 보니까 또 피자가 땡기....(가격표를 본다) 드럽게 비싸네.
대구, 짜증나는 듯 전단지를 퍽 던져 넣고 돌아서는데 한 쪽에 피자 박스 쌓인 게 눈에 띈다.
박스에 인쇄된 쿠폰이 붙은 것도 있고 떼어낸 것도 있고.
대구 ; (손가락을 딱치는) 아하!
대구, 피자 박스를 뒤지기 시작한다.
쿠폰 붙은 박스 보면 껴안고 좋아하고, 쿠폰 떼어진 것 보면 화내고.
쿠폰을 계속 뜯어낸다.
대구 ; 일곱 개. . . .아.... 딱 세 개만 있으면 치즈 두 번 돌린 놈 큰 거 한 판인데. . . .세 개가 없네, 세 개가.....
(하다가 손가락 딱) !
S#21. 공 원 / 낮
재활용 수거함으로 오는 대구. 재활용 수거함을 뒤진다.
쿠폰 붙은 상자 하나를 발견한다.
대구 ; 예스! 이제 두 개만 더. . . .두 개..... (하다가 옆을 본다) 깜짝이야.
메리, 피자 박스 몇 개를 깔고 벤치에 누워있다.
메리도 대구를 보고 벌떡 일어나 앉는다.
대구, 하와이 티셔츠를 입고 있다.
대구 ; 여기서 뭐하는 거예요.
메리 ; . . . .어? 그거 뭐야. 당신, 내가 버린 원주민 티셔츠 왜 가져갔어?
대구 ; 버린 거니까 가져가지. 말 그대로 재활용품 수거함 아닙니까.
메리 ; (잡아 땡기며) 빨리 벗어요. 이리 내!
대구 ; 이 여자가 어디서 옷을 벗으래.
메리 ; 내 놔요 당장.
대구 ; 여자들은 이래서 문제야. 그렇게 냉정하게 댁을 찬 남자한테 무슨 미련이 남는 겁니까.
메리 ; 미련땜에 이러나? 우리집에 걸레가 부족해서 그러지.
대구 ; 지금 입고 있는 거 벗어서 하면 되겠구만.
메리 ; 이 사람이 진짜..... (아래 있는 박스를 빼, 한 대 치려고 하는데)
대구 ; (눈이 번쩍) 어! 잠깐.... 지금 뭘 깔고 누워 있는 거예요?
벤치에 늘어놓고 있는 피자 쿠폰. 딱 10개다.
대구 ; 빙고! 아... 또 이래서 피자를 먹어보나.
메리 ; 누구 맘대로. 쿠폰 2개는 내 꺼니까 내놔요.
대구 ; 그러지말고 우리 대짜 한판 시켜서 8대 2로 나눕시다.
메리 ; 5대 5!
대구 ; 그런 게 어딨어요. 내가 여덟 개를 가져왔는데.
메리 ; 내가 가진 두 장이 없으면 대짜 한판이 가능할까?
대구 ; . . . . (고민). . . .
메리 ; . . . . . . .
S#22. 동네 일각 / 낮
달리고 있는 피자 배달 오토바이.
S#23. 공 원 / 낮
각각 벤치에 떨어져 앉아 시계를 보며, 공원입구로 목을 빼며 앉아있는 대구와 메리.
대구는 무료함 달래려 푸쉬업 하고 메리는 허리를 비틀고 꼬고....
(E) ; 핸드폰벨
대구 ; 어, 형!
도진(F) ; 대구야, 관리비가 오늘까지다. 내 책상 서랍 두 번 째 칸에 있으니까 얼른 은행에 갔다 내.
전자 납부하는 통장도 그 옆에 같이 있어.
대구 ; 내일 낼게, 나 지금 바빠.
도진(F) ; 연체료 붙는 거, 나 용납 못해. 얼른 갖다내. 은행 문 닫기전에.
대구 ; (전화를 끓는다. 괴롭다)
메리 ; 올 때가 됐는데....
대구 ; 저기요! 나 잠깐 은행 좀 갔다 올께요. 피자오면 먹지말고 그대로 있어요.
메리 ; 나 배고픈데....
대구 ; 금방 올테니까 꼼짝말고 여기 있어요. (뛰어간다. 가다가 다시 돌아와 메리 가방을 챈다)
이건 내가 담보로 가져갈래요.
메리 ; (가방을 잡으며) 미친 거 아냐?
대구 ; (가방 놓지 않은 채) 댁이 피자들고 날라버리면 어떡해.
메리 ; (가방을 뺏으며 화를 버럭) 신종 아리랑 치기가 나왔다더만 당신이 범인이었어. 피자 퍽치기!
대구 ; 소오강호에 보면 화산파가 금하는 7대 계율이 있습니다.
그 중 제 5계, 이익을 위해 의리를 잊고 재물을 훔치는 일.
메리 ; 난 화산파도 아니고, 댁하고 의리지킬 사이도 아니고, 피자가 재물이란 말은 내 생애 금시초문이오.
대구 ; 그럼 날로 먹겠다구?
메리 ; 은행 문 닫겠어요. 빨리 갔다와요.
대구 ; 으쒸......(달려간다)
대구가 사라지고 잠시 후, 대구가 달려간 반대 방향에서 피자 배달 오토바이 달려온다.
메리, 구조선이라도 발견한 듯 반갑게 손을 흔든다.
메리 ; 여기요!
S#24. 은행 / 낮
셔터 문 내려간다. 대구, 슬라이딩으로 엎어져 들어간다.
전자납부기 앞에 늘어선 줄 길다. 대구, 애가 탄다. 발 동동.....
계속 목을 빼고 앞을 보고 궁시렁 궁시렁 화를 버럭 버럭.
대구 ; 아니 한 사람이 몇 번을 연속으로 하는 거야. 뒷사람 생각은 안하나.
. . . .설마.... 혼자 먹고 있긴 않겠지.
S#25. 공 원 / 낮
커다란 피자 한 판의 반이 비었다.
피클 손으로 집어먹으며, 콜라를 병 나발불며 신나게 먹고 있는 메리.
손가락 쪽쪽 빨며 한 조각을 더 집는데 피자 판을 보니 반을 다 먹고 선을 넘어 침범해 들어가고 있다.
메리 ; (잠시 멈춤). . . 왜 안 오지.... 그 새 피자가 먹기 싫어졌나. . . 이거 식으면 맛없어지는데.....
(한 입 왕창 베어 물려다 멈춘다). . . .
메리, 오랜 고뇌 끝에 내려놓는다. 반을 딱 맞춰 남겨놓는다.
S#26. 은 행 / 낮
대구 앞에 선 아줌마, 공과금 용지를 넣는다.
대구 ; (뒤에 서서) 빨리 빨리.... 빨리 빨리.....
아줌마 ; 어? (안내 직원을 부르는) 아저씨, 기계가 갑자기 먹통이예요. 이것 좀 봐주세요.
대구 ; 아으. .. .(기계를 걷어차며) 정말 .... 아으. . . . .
S#27. 공 원 / 낮
햇살이 뉘엿 기울어가는 공원. 오후 5시쯤.
이마에 땀이 번드르르한 대구, 달려온다.
벤치, 메리 보이지 않는다. 피자 박스는 그대로 놓여있다.
대구 ; (안심과 환희의 웃음) 아. . . .
대구, 벤치로 뛰어간다. 설레인다.
기대로 가득 차 손바닥을 싹싹 비빈다.
대구 ; 흠흠. . . 아.... 이 냄새. . . 얼마 만에 먹어보는 피자냐....
대구, 기대감으로 피자 박스를 들어 확 연다.
S#28. 메리 집 앞 / 어스름
멋진 신사 한 명, 메리네 집 앞에 서 있다.
‘외국인 민박 환영’ 나무 팻말을 보고 있는.
메리, 포만감의 느린 걸음으로 다가온다.
메리 ; . . .민박 하시게요? ... 홈스테이 오케이?
풍운, 엷은 미소 띄우며 얼른 걸음을 옮긴다.
메리, 대문을 밀고 들어가려다 뒤돌아보면 어느새 사라져 버리고 없는 신사.
S#29. 공 원 / 어스름
열린 피자 박스를 들고 굳어있는 대구의 표정.
텅 빈 피자박스 안에는 본체에서 뜯어낸 쿠폰이 하나 달랑 들어있다.
대구 ; 으아아아아.....
늑대처럼 포효하는 대구의 울부짖음과 함께 점점 어둠이 내리고 공원 가로등에 불이 켜진다.
S#30. 성형외과 입원실 / 낮
붕대 미이라 소란, 침상에 머리에 다리 한 쪽 올린 채 널브러져 잠들어 있다.
바닥엔 빨대 꽂은 맥주 캔들, 여러 개 굴러다닌다.
간호사, 놀라
간호사 ; 이소란씨!
소란 ; (벌떡 일어나 앉으며) 네! 풀러주세요.
간호사 ; 술을 드시면 어떡해요. 그러니까 계속 퇴원을 못하시죠.
소란 ;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풀러주세요.
간호사 ; 수술 한 두 번 해요? 풀 때가 돼야 풀죠.
소란 ; 풀러주세요.
S#31. 성형외과 원장실 / 낮
전신거울 앞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이소란의 뒷모습. 민소매티에 반바지를 입었다. 늘씬하다.
이소란, 전신거울 앞에 서 본다.
거울에 비치는 모습, 아름답다. 자신감과 오만함이 밀려든다.
간호사 ; 어때요? 맘에 드시죠?
소란 ; (거울 앞에서 자신의 얼굴부터 발끝까지를 쫙 훑으며) 좋은데요! 이젠 나도 멋진 남자를 만날 수 있겠죠?
의사 ; 당연하죠.
소란 ; (변덕으로 샐쭉) 그동안은 그럼 왜 못 만난건데요? 수술전에도 그렇게 못난 편은 아니었잖아요.
의사 ; (잠시 말문이 막힌다) ....아,예. . . .그럼요... 그동안은 남자 만날 시간도 없었잖아요.
맨날 수술실 아니면 입원실에 누워 있는데 남자를 어디서 만납니까.
소란 ; 그러니까요.
의사 ; 이젠 완벽합니다. 더 이상 깎을 데도 없어요.
거울 보며 웃는 소란. 예쁘게 표정지으며 쎙긋 쌩긋 웃어본다.
의사(E) ; 회복기에 술을 드셔서 부작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럼 바로 병원으로 오세요.
S#32. 이세도 거실 / 낮
목을 꼿꼿이 세우고 들어서는 소란.
세도, 부길, 아문 모두 입이 벌어져 바라보고 있다.
소란 ; 나.... 어때? 죽이지 않아?
아문 ; 웬일이야.... 병원갈 때만해도 아빠랑 쌍둥이였잖아....
부길 ; (감격) 너 정말 내 딸 맞아?
소란 ; 응, 이젠 하나도 안 닮았지만 엄마 아빠 딸 맞아.
세도 ; 그래, 인생은 그렇게 사는 거야. 잘했다. 넌 이제 어떤 남자라도 만날 수 있어.
그러니까 이젠 좀 격에 맞는 남자랑 교제해.
소란 ; 내일부터 바빠 질 것 같아요. 올라가서 좀 쉴께요.
부길 ; 그래. 가서 푹 자라. 실리콘 들뜨지 않게.
소란 ; (2층으로)
아문 ; (따라가며) 언니 가슴 얼만큼 커졌나 좀 보여줘...
소란 ; 넌 왜 학교 안가니?
아문 ; 내가 가고 싶을 때 갈꺼야. (가슴골 보며) 어디 좀 봐봐. (올라가고)
세도 ; 이 세상에서 내 딸들이 최고로 예쁘다.
부길 ; 대한민국 최고 일등 신랑감들로 내일부터 당장 알아볼께요.
세도 ; 그래야지! 누구 딸인데.
S#33. 스튜디오 / 낮
녹음 중.
‘짱가’ 를 트로트로 꺾어 부르고 있는 현찰.
메리와 코러스도 열심이다.
현찰 ;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코러스 ; (같이) 짜짜짜짜짜짱가
현찰 ; 엄청난 기운이.....
코러스 ; 얍!
현찰 ; 틀림없이 틀림없이 생겨난다. 지구는 작은 세계, 우주를 누벼어라.
코러스 ; 짜라짜라짜라짜라
현찰 ; 씩씩하게
코러스 ; 후아후아후아후아
현찰 ; 잘도 싸운다.
코러스 ; 짱가 짱가 우리들의 짜앙가.... 헤이!
스튜디오 밖. 악보 보며 휴식중인 코러스,
메리 자판기 커피잔 들고 와 여자에게 건네며
메리 ; 언니, 저번에 아르바이트 소개해 주신댔죠?
여자 ; 생각 있어?
메리에게 눈썹 붙여주고 있는 코러스 언니들.
메리 ; 아... 따거 따거.... 눈에 본드 들어간 것 같아요. 아으, 셔......
여자 ; 좀 참아요. 분장 실습이라고 생각해.
메리 ; 근데 이거 괜찮은거죠? 안 위험한거죠?
여자 ; 위험하긴 뭐가 위험해. 얘는 365일 붙이고 사는데.
메리 ; 아니 눈썹말고 오늘 하는거요.
여자 ; 마술쇼에서 허리 다리 잘랐다 붙였다하는 사람도 있는데...이게 뭐가 위험해?
S#34. 삼류 나이트클럽 / 밤
반짝이 미러가 돌아가며 광선을 쏘는 밤무대.
밤무대 MC, 오바한 목소리로
MC ; 오늘밤을 뜨겁게 달굴 스테이지!
섹시한 여가수 로라 킴과 흥분된 목소리의 주인공..... 알타리~ 시스터즈! 예!
‘몰래한 사랑’ 전주 신나게 터져나오고. 반짝이 드레스를 입고 여가수 등장.
뒤에 역시 반짝이 드레스에 요란한 헤어스타일과 화장을 한 코러스의 일원으로 무대에 나가는 메리.
무대 아래는 춤추는 중년 남녀들. 테이블에 놓인 술병들.. 적응 못해 어리버리하다.
가수는 앞에 서고 코러스 세 사람 뒤에 선다. 나오는 전주에 맞춰 율동한다.
여자 ; 왜 이렇게 굳었어? 녹음할 때랑 똑같이 하면 돼.
메리 ; . . . (울상). .
여자 ; 무대는 다 똑같아! 모든 무대는 다 거룩한거야.
메리 ; (깨달음). . .!!
가수 ; (노래 시작) 그대여!
코러스 ; 그대여!
가수 ; 이렇게 바람이 서글피 부는 날에는.... 그대여..
코러스 ; 그대여
가수 ; 이렇게 무화과는 익어가는 날에도
코러스 ; 짜라짜라짜라~
가수 ; 너랑 나랑 둘이서 무화과 그늘에 숨어 앉아
코러스 ; 아싸아싸아싸
홀의 한 쪽, 백구두 신고 열심히 음악에 빠져 혼자 스텝을 밟고 있는 최황재도 보인다.
무아지경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춤추고 있는 황재.
.... 나이트클럽 입구에선 교복입은 최비단, 기도들과 실랑이 중.
비단 ; 우리 아빠 찾으러 왔어요. 내가 이런 늙다리 후진 물에서 놀려고 온 것 같아요?
진짜 아빠 찾으러 왔다니까요. 들여보내줘요.
나이트 클럽 안은 여전히 뜨겁다.
가수 ; 지난 날을
코러스 ; 허벌나게
가수 ; 생각하며
코러스 ; 허벌나게
가수 ; 이야기 하고 싶구나... 몰래 사랑했던 그 여자
코러스 ; 그리고
가수 ; 또 몰래 사랑했던 그 남자
코러스 ; 지금은
가수 ; 지금은 어느 하늘 아래서
코러스 ; 그 누굴
가수 ; 그 누굴 사랑하고 있을까....
노래 마치고 내려오는 가수와 코러스. 한 남자가 메리의 팔을 잡는다.
남자 ; 아가씨, 나랑 술 한 잔 하지.
메리 ; 왜 이러세요.
남자 ; 자기는 부킹도 몰라? 여기선 될 때까지 부킹이야.
메리 ; 놔요! 날 뭘로 보고 이래.
남자 ; 너? 너 오늘 내꺼. 이리와. (잡아 끄는데)
메리 ; (잡아끄는 남자의 팔뚝을 문다)
남자 ; 으아악! (소리 지르고 메리를 한 대 쳐 넘어뜨린다)
메리, 홀에 훌러덩 넘어진다.
S#35. 나이트클럽 앞 / 밤
화장이 번진 채 쭈그려 앉아 눈물 닦는 메리.
코러스 여자, 다가온다.
여자 ; 뭐 그런 걸 갖고 울고 그래?
메리 ; 저 이거 안할래요.
여자 ; 자, 오늘 일당. (2만원을 준다)
메리 ; 왜 이것밖에 안돼요?
여자 ; 깽판 쳤쟎아. 일주일동안 이 업소 못나오게 됐단말야.
메리 ; . . . .죄송한데요, 어쨌든 이딴 거 안할래요.
여자 ; 이딴 거라니. 먹고 사는 일은 다 숭고한거야.
메리 ; . . . . .
여자 ; 오늘 자기가 무대에서 보여준 모습은 정말 실망스러웠어.
아무리 초라한 무대라도 내가 선 이상은 최선을 다해야지. 그래야 더 높은 세계로 올라갈 수 있는거야.
메리 ; . . . . .
여자 ; 다음 녹음 때나 보자. (간다)
S#36. 거리 / 밤
메리, 터벅터벅 걸어온다.
화장이 덜 지워져 번들거리는 얼굴, 그러나 숙연해진 표정으로 천천히 걷는다.
S#37. 공 원 / 밤
메리, 벤치위에 얼큰해져서 서 있다. 한 손엔 맥주 캔.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주연상을 받은 여배우의 표정으로 수상소감 연습.
메리 ; 아름다운 밤이예요! 이 상을 제가 받게 되다니...(더 흥분한척) 아... 믿어지지 않네요.
수상자 명단을 한번만 더 확인해 주시겠어요? 아, 제가 맞나요. 감사합니다!
이런 날이 오기까지 저는 제 자신을 믿고 사랑하면서. . .
이 때 사이렌 소리가 나더니 경찰차가 달려와 선다.
경찰 두 사람, 뛰어와 메리에게
경찰 ; 실례합니다. 신분증 좀 제시해 주시겠습니까?
메리 ; . . . 신분증을요? 왜요?
경찰 ;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메리 ; . . . . .
경찰 ; 죄송하지만 신분증 좀....
메리 ; 남자죠? 약간 멍청한 목소리의 남자가 신고한 거 맞죠?
경찰 ; 그건 밝혀드릴 수 없습니다.
메리 ; 쪼잔한 놈.... 피자 한판에 무고한 사람을 해꼬지 해? (팔 걷어부치며) 어딨어요. 그 쪼잔 보이!
경찰 ; . . . . (물끄러미 보다가) 유치원 원장님이 하셨는데요.. 아이들 정서에 안 좋다구요.
메리 ; . . . .(갑자기 다소곳).......
S#38. 오피스텔 거실 / 밤
벽을 노려보며 강냉이를 먹으며 강냉이를 던지고 있는 대구. 무예를 연마하는 자의 눈빛처럼 빛난다.
벽에는 스카치 테잎에 매달려 붙어있는 피자 쿠폰 하나. 강냉이에 맞아 흔들흔들 거린다.
명중.... 또 명중.... 또 명중....
대구 ; 또 한번 마주치기만 해봐.... 그 땐 가만두지 않겠어.
F.O
S#39. 메리네 마당 / 낮
메리, 고무다라이에 빨래를 넣고 종아리 걷고 들어가 열심히 밟고 있다.
마루 쪽을 보며 엄마가 오나 안 오나 살핀다.
성자, 방에서 나오자 메리 더 열심히 밟는 척한다.
메리 ; 영치기 영차....영치기 영차.....
성자 ; 넌 또 무슨 꿍꿍이야.
메리 ; 엄마, 레슨비 조금만 투자해주세요. 재즈댄스랑 탭댄스 학원비, 지금 연체 3개월이야.
성자 ; 내가 줄 것 같니?
메리 ; 엄마가 비상금 어디 모으고 있는지 나 다 아는데....
성자 ; 이 년이.....
메리 ; 더 이상 손 버릇 나빠지고 싶지 않아요 엄마. 나 좀 도와줘, 레슨비.
성자 ; . . . .(한심하게 보다가) 하면 될 것 같니?
메리 ; . . . .하니까 좋아서 하는거야.
성자 ; 한옥 마을 내려가서 민박 좀 잡아와. 한 껀당 5만원에 쳐줄게.
메리 ; 아싸!
S#40. 남산 한옥마을 / 낮
낡은 운동화 신은 메리 열심히 돌아다닌다.
사진찍는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다가가 사진도 찍어주고, V자 그리며 같이 찍기도 하고
붙임성 좋은 태도로 맴돈다.
메리 ; 헬로우! 웰컴 투 코리아.... 코리아 홈스테이, 두 유 원트?
관광객중 한 사람, 여행책자 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낸다.
웹 사이트에서 ‘a Crazy girl in the house'를 복사한 종이.
사진과 메리를 번갈아 쳐다본다.
메리 ; . . . . .
관광객 ; Sorry, We're not interested.
S#41. 동네 / 낮
식식대며 걸어오는 메리.
메리 ; 금발의 제니, 이 나쁜년... 다시 만나기만 해봐, 넌 그때 죽었어.
메리, 걸어가다 멈춰선다.
간판에 ‘o' 받침 떨어질락 말락한 황제수퍼 앞에 붙은 구인광고.
‘아르바이트 공개大모집!’
메리, 얼른 뛰어 들어가는데 나오던 대구와 부딪힌다.
대구 ; 당신!
메리 ; . . . .
대구 ; 내 피자 내 놔요.
메리 ; 언제적 피자를 지금 와서 찾아요.
대구 ;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어떻게 여자가 피자 한판을 다 먹어? 그것도 남의 쿠폰으로 시킨 피자를.
메리 ; 하와이 티셔츠랑 바꾼 걸로 칩시다. 대신 그거 집에서만 입어요. 재수 없으니까.
대구 ; 셔츠 돌려 줄 테니까 피자 뱉어요.
메리 ; . . . .(되새김질 하는 표정)....
대구 ; . . . (왜 저러나 싶은데). . . . .
메리 ; (토해내려고 하는) 으웨.....으웩. . . .으웨. . .
대구 ; (비위상해 같이 토하고 싶은) 어으.... 내가 상종을 말아야지. (간다)
S#42. 황제수퍼 안 / 낮
백구두 신은 최황재, 열심히 스텝을 밟고 있다.
황재 ; 사이다 찍고 돌고, 쥐포 때리고 터닝....
메리, 들어와 꾸벅 인사한다. 손에는 광고지 뗀 것 들고 있다.
메리 ; 사장님 안녕하세요. 이웃에 사는 황메리라고 합니다. (광고지 쫙쫙 찢으며) 이건 이제 떼시죠.
바로 근무 가능합니다.
황재 ; 공명정대한 경쟁을 통해 가려야지, 그럼 씁니까.
메리 ; 경쟁이요?
황재 ; 1차 서류 전형, 2차 필기시험, 3차 실기테스트를 통해 최종 합격자를 선발합니다.
메리 ; 왜 시간 낭비를 하고 그러세요. 저 말고 또 누가 지원을 한다구.
황재 ; 벌써 원서 접수 했습니다.
황재, 종이 한 장을 내민다.
손으로 V자 그리며 셀카로 찍은 어색한 대구의 사진,
‘건강한 청년 강대구!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010 - 000- 0000’
메리 ; .........!!! (콧김 확 뿜으며 사진을 구기는)
S#43. 레스토랑 / 밤
메리, 마늘빵과 스파게티 열심히 먹고 있다.
은자는 건성으로 먹으며 메리만 바라본다.
메리, 접시를 싹 비운다.
은자 ; 다 먹었지? 이제 내 얘기에 집중할 수 있지?
메리 ; 디저트는 치즈 케잌과 커피.
은자 ; 언니! 여기 치즈케익하고 커피 좀 주세요.
메리 ; 말해 봐. 상의하고 싶은 일이 뭔지.
은자 ; 너 그날 영미 신랑 될 사람 봤지?
메리 ; 뭐... 대충.
은자 ; 키 크고 잘생기고 엄청 멋지잖아. 그 사람 지금 한국에서 제일 잘나가는 펀드매니저래.
그 날, 영미한테 옷도 세 벌을 사줬어. 큰 거 한장을 쓰더라니까.
메리 ; (놀라) 헉! 백만원을?
은자 ; 얘는.... 천만 원을!
메리 ; 미친놈 아냐.
은자 ; 메리야..... (천기누설이라도 하듯) 그런데 그 사람이..... 나한테 관심 있는 것 같아.
메리 ; (벌떡 일어나며) 나 간다.
은자 ; (잡으며) 앉아 봐. 앉아봐.
메리 ; 언니! 치즈케익이랑 커피는 싸주세요!
은자 ; (잡아 앉히며) 앉아봐 글쎄. 이번엔 진짜야.
메리 ; 장은자! 넌 병들어 있어. 모든 남자들이 다 너한테 관심을 가진다고 믿는 병.
그게 널 파멸로 이끌었어. 니 자신을 한번 봐!
은자 ; 그 날 영미가 날 소개하면서 모델 수업도 좀 받고.... 하던 대목 기억나?
그 때부터 날 보는 눈빛이 달라졌었어.
메리 ; 얘, 모델로 활동한 것도 아니고 학원 몇 달 다닌거. 우리나라 모델지망생 중에 최단신 아니었니.
학원에서도 수강료 욕심에 널 받아준 거지. 너 어디 가서 그런 얘기 꺼내지 마. 돌 맞는다.
은자 ; (메리 얘긴 듣지도 않는다) 어떤 남자가 좋으냐고 전화해서 물어보는데 나한테 관심있는 게 맞아.
메리 ; 영미가 너 소개팅 시켜주라고 했잖아.
은자 ; 소개팅을 빙자해서 관심을 보이는 것 같아.
메리 ; 넌 니 자신을 사랑하는구나. 너의 장점이야.
은자 ; 나 때문에 걔네 깨지면 어쩌니. 영미한테 솔직하게 말할까.
메리 ; 니 머리통이 깨지겠지.
은자 ; 물어봐야겠어.
S#44. 점 집 / 밤
‘명상으로 운명을 맞춘다. 기적의 수면도사!’ ‘수면의 과학으로 당신의 인생을 찝어낼 수면도사’
등등의 광고문구와 지역방송 TV출연 사진 벽에 도배하듯 붙어있다.
자장가가 나오는 오르골이 돌아가고 있고 가습기가 켜져있고 쾌적한 잠자리를 위한 조건이 갖추어진 방.
비단금침 위에 3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수면도사. 잠자듯 누워있다.
은자는 앞에서 애가 타고
메리는 뒤로 물러나 앉아 싸 온 커피와 작은 상자에 든 치즈케잌을 플라스틱 포크로 먹고 있다.
은자 ; (나즈막히 기도하듯) 도사님.... 제발 잘 좀 보아주세요. 제 운명을요. 특히 제 남자를요....
메리 ; (먹으며 군시렁) 40분 째 잠만 퍼질러 자네. 저러구 돈 버는거야?
은자 ; 쉿! 달리 수면도사니? 잠을 자면 여기 앉은 사람의 미래가 다 꿈으로 나온대.
수면도사 ; . . .(코를 곤다) 크르릉..... 드릉....
메리 ; 드디어 신을 받는거야?
은자 ; 너, 그거나 먹고 입 다물어.
메리 ; 이런 데 오는 년이 정신 나간거지. 야, 가자. 일어나!
수면도사, 벌떡 일어나 앉는다.
은자와 메리, 놀라서 집중하면
수면도사 ; (잠 덜 깬 듯 눈 가물가물한 채) 남자가 생겨, 새 직업이 생겨, 인생이 열려.... 노래를 불러....
춤을 춥니다. 무대가 빛나요.
메리 ; . . . . .
은자 ; ??
수면도사 벌떡 일어난다.
탭 댄스를 추듯 오도방정을 떨더니 무대 위 커튼콜처럼 팔을 뻗고 객석을 향해서 인사, 인사.....
메리 ; (놀라) 도.... 도사님..... 그거 저 맞죠? 제 운명을 보셨군요.
은자 ; 도사님 얘가 아니라 전데요. 제가 친구 신랑이랑 사귀게 되냐구요.
수면도사 ; . . . .잠을 자야합니다. 오늘은 이만. (다시 눕는다)
은자 ; (버럭) 도사님!
메리 ; . . . . . 저한테 드디어 길이 열리는군요! 남자도 생기고!
은자 ; 가자! 이 도사 엉터리야.
메리 ; (희망으로) !
S#45. 황제수퍼 안 / 낮
대구, 일그러진 얼굴로 메리 사진이 인쇄된 종이를 들고 있다.
꽃들고 활짝 웃으며 찍은 메리의 사진. ‘상냥한 언니, 황메리! 가게를 일으키겠습니다. 으라차차’
황재 ; 경쟁잡니다.
대구 ; 정신도 온전치 않은 사람을 고용하시게요?
황재 ;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알지요.
메리, 기분 좋은 듯 팔랑팔랑 들어온다.
메리 ; 안녕하세요 사장님.
대구 ; . . . . (쏘아보는)
메리 ; 웬만하면 포기하시죠.
대구 ; 사장님, 저는 일단 가산점이 있습니다.
지난 주 비오는 날, 절 식빵도둑으로 착각해 명예훼손을 하셨지 않습니까.
메리 ; 낙하산 인사 절대로 안됩니다.
황재 ; 지금부터 2차 관문인 필기시험, 준비이.....
메리, 작은 수첩 들고 있고 대구 핸드폰 꺼내 들고 있다.
황재 ; 중학생 A가 들어와서 라면 하나에 사이다 하나, 두루마지 화장지를 사면서 만원을 내밀었다.
그러면서 똘이장군 소세지를 하나 집어 들었다. 이 때 거스름돈은?
메리. 대구 ; (메리는 수첩에 적고, 대구는 핸폰 계산기로 열심히 계산하는)
황재 ; 중년여자 B가 들어와서 두부 한 모와 5백 밀리짜리 우유 하나를 사면서 외상을 긋고 간다.
지난번 외상값 3천3백원과 함께 내일 월급타면 갚겠노라 말한다. 이 여자에겐 도합 얼마를 받아야 할까.
메리 ; 너무 어려워요.
대구 ; 4천 9백원요.
황재 ; 강대구 2차 통과.
메리 ; (대구를 째려보는)
황재 ; 그럼 내일 실기테스트를 거쳐 최종 선발하겠습니다.
메리 ; 사장님, 너무 하신 거 아니예요? 동네 구멍가게 아르바이트를 뽑는데 3차까지 시험을 보다니요.
황재 ; 요즘 세상이 그렇게 먹고 살기 어렵다는 증거입니다.
대구 ; 사장님,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저는 자전거, 스쿠터 다 됩니다. 배달도 만능이란 걸 알아주세요. (나간다)
메리 ; 여우같은 놈.
S#46. 메리 방 / 밤
낡고 작은 오디오에서 음악 소리 크게 흐른다. 아바의 'I have a dream'
인삼주 병 뚜껑 열려있다. 메리, 술잔을 들고 서서 리듬을 타며 흥얼흥얼
메리 ; 남자가 생겨, 새 직업이 생겨, 인생이 열려.... 그 담엔 또 뭐랬더라....
(한모금 꼴깍 마시고) 난 결국 잘되고 말꺼야. 수면도사의 말이 맞을꺼야!
메리, 춤추며 잔을 쭈욱 비운다.
한 잔 더 따르려고 보니 병이 확 비어있다.
메리 ; 이렇게 많이 마셨나? 안되는데....
메리, 생수를 인삼주 병에 콸콸 붓고 있는데 엄마 방문을 벌컥 연다.
메리, 경악!
성자 ; 어쩐지.... 인삼주가 날이 갈수록 싱거워진다 했다.
메리 ; (애써 웃으며) 엄마는 미각이 끝내줘. 전생에 장금이었나봐.
성자 ; 이 년을 그냥.....
메리 ; (튀어나간다)
메리, 마루로 뛰어나와 신발을 신으려는데 엄마 홍두깨 들고 달려 나온다.
메리, 맨발로 뛰어나간다.
S#47. 공 원 일각 / 밤
맨발로 뛰어가는 메리. 재활용품함으로 뛰어간다.
S#48. 동네 일각 / 밤
휘영청 달밤.
하와이 티셔츠를 입은 대구, 아령을 들고 팔운동을하며 열심히 걷고 있다.
걷다가 어디론가 시선, 흠칫 놀라 전봇대 뒤로 숨는다.
저 만치엔 맨발에 구멍난 남자 백구두(사이즈가 280M 정도로 큰)를 신고 덜그럭 덜그럭 걸어가는 메리.
대구, 놀란 표정으로 입을 벌린 채 바라보고 있다.
바람이 불어 대구의 머리칼을 날린다. 강한 영감이 떠오른다.
S#49. 대나무 숲 / 낮
햇살 쨍한 대숲. 바람이 인다.
애꾸 검객과 메리, 마주 서 있다. 옷자락과 머리카락이 날린다.
메리 ; 당신을 기다렸어. 30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검객 ; 당신은 여전하군. 30년 동안 발전이라곤 없어.
메리 ; 강호 제일 신검이 되었다고, 정혼한 여자가 생겼다고 말을 했어야지.
검객, 품 안에서 유치하게 알록달록한 천을 꺼낸다. 메리 손에 쥐어주며
검객 ; 마지막 선물이다. 날 잊으라.
검객, 돌아서 걸어간다. 멀어진다.
메리, 눈에서 눈물이 또르르 구르다 진주알처럼 바람에 휙 날려간다.
메리, 회오리바람처럼 휙 날아오르며
메리 ; 내 반드시 널 베고 말리라.
석양의 벌판.
메리, 커다란 무쇠신을 신고 황야의 무법자처럼 고독하게 걷고 있다.
무거운 신발 뒤꿈치에 ‘기차표 무쇠신 特大'라 쓰여 있다.
땅바닥에 닿아 질질 끌릴 때 마다 연기가 피어오른다.
메리(E) ; 제게 강호의 그 어떤 지존도 무너뜨릴 수 있는 절대무공을 알려주십시오.
대구(E) ; 천 켤레의 무쇠신이 닳게 되면 나를 찾아오너라.
S#50. 동네 일각 / 밤
덜그럭거리며 가는 메리의 백구두에 주목하는 대구.
대구 ; 천 켤레의 무쇠 신을 닳게 하고 그녀는 정체불명의 신비한 무사로 새롭게 태어나는거지.....
복수를 위해서.... (손가락 딱) ! 이거야! 펜, 볼펜 어딨어.
메리 ; . . . . .(시선이 느껴져 쳐다본다. 대구가 빤히 쳐다보고 있다)
대구 ; (화들짝) !
메리 ; (다가가) 당신 왜 나를 염탐해?
대구 ; (구두 내려다보며) 밤만 되면 아프신 겁니까?
메리 ; 나한테 관심 갖지 말아요. 댁만 힘들어질 뿐이야.
대구 ; 그건 무슨 뜻?
메리 ; 당신은 죽었다 깨나도 내 타입이 아니란 뜻!
대구 ; 미친 거 맞으시네.
메리 ; (대꾸없이 걸어간다)
대구 ; 오늘 밤새 헤매다니고 내일 실기시험에 나오지 말아요.
F.O
S#51. 동 네 / 낮
동네를 뛰는 메리. 4kg 쌀 포대를 들었다.
뒤에선 쌀 10kg 포대를 여러 개 실은 대구의 자전거 씽씽 달려온다. 메리를 앞지른다.
메리, 더 열심히 뛰나 역부족.
대구, 약 올리듯 메리를 뒤돌아보며 가다가 자전거 비틀비틀 고꾸라진다.
자전거에 쌀 다시 싣고 추스르는 동안 메리, 쌩하니 대구를 추월한다. ...............
S#52. 황제수퍼 앞 / 낮
양손에 스톱워치를 들고 있는 황재.
대구와 메리, 파라솔을 펴고 테이블을 펴고 의자를 세팅했다가 다시 접고
의자를 차곡차곡 접어놓는 대구와 메리, 얼굴 가득 땀방울.
...화사한 봄 햇살 아래 최선을 다하는 두 백수의 사투.
두 사람의 모습, 우습기도 하지만 눈물겹다.
휴식시간.
땀 닦으며 앉아있는 메리와 대구. 하드 하나씩 물고 있다.
메리 ; 나 지금 절박하거든요. 그냥 나한테 양보하세요.
대구 ; 양복 열 벌 해주면 양보하지.
메리 ; . . . . 아이큐가 두 자리수는 되나요?
대구 ; 150인데요.
메리 ; 강대구가 본명 맞아요?
대구 ; 황메리가 본명은 아니겠죠?
메리 ; 크리스마스 이브에 태어나서 메리랍니다.
대구 ; 날 가지던 날 밤 부모님이 대구탕을 드셨답니다.
메리 ; 부모님도 참 무책임 하십니다.
대구 ; 부모님도 참 잔인하십니다. 어떻게 딸 이름을 개 이름으로 짓는 답니까? 누렁이가 아닌 걸 감사하세요.
메리 ; 이사 갈 생각은 없어요?
대구 ; 아는 형네 집에 얹혀사는 데 그 형이 이사가면 나도 뜨겠죠.
메리 ; 그 형 전화번호 좀 알려줄래요?
대구 ; 여자한테 함부로 알려주지 말랬어요. 특히 못생긴 여자.
메리 ; (얼굴 일그러 지는데)
황재(E) ; 최종 실기테스트를 실시합니다!
S#53. 황제수퍼 / 낮
대구, 카운터에 앉아있다. 휘파람 불며
황재(E) ; 3차 실기 테스트. 각자 한 시간씩 가게를 맡아, 손님들의 반응을 보고
친절도와 정확성 기타등등으로 점수를 매기게 됩니다.
강미, 간장 한 병 들고 카운터로 온다.
강미 ; (대구를 끈적하게 훑어본다) 우리 동네에 이렇게 감 좋은 총각이 있었나?
대구 ; 2천 7백원입니다.
강미 ; 나 장작구이 통닭집 변강미 사장이예요. 언제 한번 오세요. 생맥주 5백 서비스 할께요.
대구 ; 감사합니다. 저희 수퍼도 자주 애용해 주십시오.
자전거 탄 용식이, 가게로 들어오려는데
대구 ; 자전거는 밖에 주차하고 들어오세요.
용식 ; 드라이브 인도 몰라요? 쵸콜렛 하나 던져주세요.
대구 ; 짜식이 건방지게.... 당장 자전거에서 내려서 못 걸어 들어와?
용식 ; 사장님한테 이른다.
대구 ; . . . . .(초콜렛 집어다 주며 머리 쓰다듬는다) 아이 참... 넌 정말 용감한 아이로구나.... 참 잘했어요!
메리, 카운터에 앉아있다.
왕가위, 들어온다.
메리 ; 어서오세요.
가위 ; 머리 할 때 됐네.
메리 ; 여기 취직해 월급받자마자 가겠습니다. 도와주십시오!
황재 앞에 서 있는 메리와 대구.
황재, 심사숙고의 표정으로 있다가
황재 ; 강대구 승리!
대구 ; (좋아서) 예스!
메리 ; 그 이유가 뭡니까!
황재 ; 강대구가 있을 땐 손님들 2명이 왔고, 황메리가 있을 땐 손님이 한 명 왔습니다.
메리 ; 그게 무슨 상관인데요?
황재 ; 난 운이 좋은 사람이 좋아요. 손님을 부르는 관상을 가진 사람. 미안합니다 메리씨. 행복하세요.
S#54. 황제수퍼 앞 / 낮
대구 ; (메리를 밀어내며) 안녕히 가십시오. 다음번에 고객으로 만나뵙길 바라겠습니다.
메리, 분한 표정으로 밀려 나온다.
메리 ; 말도 안 돼. 편파 판정이예요. 용납 못해! 말도 안돼!
대구(E) ; 영업방해 말고 얼른 가주세요!
메리, 가게 앞을 떠나지 않고 그 앞에 서서 계속 ‘말도 안돼! 억울해요’ 펄펄뛰고 있는데
이 때 쌩하니 바람이 분다.
아슬아슬 매달려있던 간판의 'ㅇ‘받침이 바람에 휙 날려 아래 서 있던 메리의 이마를 강타한다.
메리, ’으악‘ 쓰러진다.
황재와 대구, 달려 나온다.
대구 ; 이봐요! 눈 떠봐요...
메리 ; . . . .(눈 감은 채). . . .
황재 ; 황메리양! 황메리양! 큰일 났네. (안으로 뛰어들어간다)
대구 ; 이봐요.... 정신차려요..... 이봐요! 메리씨!
황재 ; (물 파스를 들고 나와 메리 이마에 칠하기 시작한다) 눈 떠요, 눈 떠.
대구 ; ......(황당한 듯이 사장을 본다)
황재 ; 메리양! 황메리양! 정신을 차려봐요!
메리 ; . . .(의식불명).....
황재 ; 수퍼에서 일하게 해줄 테니까 당장 눈 떠봐요.
메리 ; (눈 반짝) !!
대구 ; 사장님!
황재 ; 몸 바쳐 충성할 인재는 황양이었어. 최종 합격자는 황, 메, 리!
대구 ; 사장니임!
대구, 버럭 소리지르며 펄쩍 뛰는데서!
*출처 : 대본과시나리오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