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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 63 - 공회전 2
S#1. 전산동 앞 / 낮
아침 시간... 학생들이 더러 들어가고 나가고..
저만치에서 자료 등을 잔뜩 가슴에 안은 남희가 천천이 걸어오고 있다. 건물 앞까지 와서 문득 멈춰선다.
입구를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다가.... 급히 안으로 뛰어들어가는 어떤 학생에게 부딪혀서 정신을 차린다. 남희, 돌아선다.
S#2. 엔진랩 앞
자현, 엔진을 공회전시키고 있다. 그러면서 계기를 측정하고 있는데...
남희 : (E) 열심이네.
자현, 돌아보면 남희가 봉지 하나를 들고 오고 있다.
자현 : 우와 선배. 웬일이십니까. 이 구석까지 찾아주시고.
남희 : 그냥 괜히 구석을 찾아오고 싶어서. (웃는.. 봉지를 건네주며) 간식 좀 사왔어. 심심할 때 먹어.
자현 : 우와...저 감격할라구 그럽니다. (봉지 안을 헤집어보다가) 근데.. 정말 아무 일 없이 오신거에요?
그냥 이 추자현이 먹을 거 사줄라구요?
남희 : 자작자동차 대회 며칠 안 남았지? 열심히 하라구.
자현 : (가슴에 손을 얹고 감격한 표정으로) 이번 대회에서 우승을 하면 그 영광을 선배님께 돌리겠슴다. 진짭니다.
남희 : (웃다가... 옆에서 돌아가는 엔진을 보고) 저거 계속 돌려도 되는거야?
자현 : 아 지금 공회전을 시켜보는 중입니다.
남희 : 공회전?
자현 : RPM 체크를 해보느라구요. (생각난 듯 엔진을 끈다)
남희 : 끄지 말구 계속해. 나 갈거야.
자현 : 공회전을 오래 시키면 좋을 게 없거든요.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공회전을 5분 이상 하고 있으면 그 차에 딱지를 끊는대요.
남희 : 왜?
자현 : 아마 환경문제 땜에 그런게 아닌가 싶은데..에이..그렇잖아요. 하는 일도 없으면서 계속 배기가스만 내뿜게 하는건..죄죠. 죄. 범죄.
남희 : (어쩐지 그 말이 맘에 걸리며 다시 엔진을 돌아본다)
자현 : 사람두 그렇습니다. 생산적인 일은 아무것두 안하면서 독가스만 내뿜고 빨빨대구 다니면 안되잖아요. 환경공햅니다. 그건..
(해놓고 히히 웃는데)
남희 : (웃어지지 않는다)
자현 : (그제야 남희의 다운된 기분을 좀 느끼고....) 근데 선배 아무 일 없는거죠?
남희 : 내가? 왜?
자현 : 그냥 좀..수상해서요. 이렇게 느닷없이 과자를 사갖고 오시고..또 표정도 그렇고..어째 튜닝을 새로 시켜줘야 할거처럼 보이는데요.
남희 : (힘없이 웃더니) 잘 봤어. 사실은 나 지금 겁내구 있어. 어디 도망갈 데 없나 찾고 있는 중이야.
S#3. 복도 / 낮
기업의 실장과 대리가 걸어오고 있다. 대리가 손목 시계를 본다. 둘 다 일에 찌들린 무표정. 그 위로..
남희 : (E) 틀 자체를 튜닝하는 과정을 통해 시스템 성능을 향상시킬 수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S#4. 세미나실
남희가 앞에서 발표중이고 박교수와 지원, 규한. 그리고 실장과 대리가 듣고 있는 상황.
남희 : 이상 발표를 마치겠습니다. (눈치를 보면)
실장 : (영 못마땅한 얼굴로 대리를 돌아보더니) 문제가 너무 많잖아. 하나씩 좀 짚어주지.
대리 : (남희에게) 모터제어 부분에서 여러 모터의 제어를 몇 개의 롤로 일반적으로 표현한 이유가 뭐죠?
남희 : (자신이 없다) 그건 로봇팔이 사용되고자 하는 작업에 따라 간단하게 그 작업의 필요한 동작을 어.. 그 틀들을 이용해서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인데요.
대리 : 그런 일반적인 틀 자체는 어떻게 만들거에요?
남희 : 그건... 음.. 기존 로봇 팔의 움직임을 분해해서 만들 계획입니다만..
실장 : (대리에게) 그걸루 충분하겠어? 말이 되나?
대리 : 글세요.. (갸우뚱하면서 자료를 뒤지고 있다)
남희 잔뜩 긴장해서 박교수를 본다. 박교수는 멀뚱한 얼굴로 앉아서 실장과 대리가 머리를 맞대고 뭔가 숙덕거리는 걸 보고만 있다.
그 옆의 지원은 무표정하게 자료를 읽고 있고. 그 옆의 규한은 하품을 하고 있다.
남희, 저도 모르게 자기 손을 내려다본다. 레이저포인트를 두손으로 꽉 잡고 초조하게 비벼대고 있었다.
슬그머니 땀 난 손을 풀어서 치마에 닦는다.
S#5. 센터 랩
석우가 챠트를 보며 들어선다. 휘 둘러보면 내부에는 아무도 없다.
자기 자리로 가려다가 문득 돌아보는 곳. 거기 경진이 부품들 뒤에 박혀 앉아서 뭔가를 조립하고 있다.
석우 슬그머니 다가서 본다.
경진, 조립에 열중해 있다가 뭔가 부품을 찾으러 고개를 들다 비로소 석우를 보고 움찔 놀라서.
경진 : 에구 언제 오셨어요?
석우 : 너 지금 뭐하구 있는거야.
경진 : 보시다시피... 이거 조립하구 있는데요.
석우 : 그건 민재가 해놓기루 한 거 아닌가.
경진 : 아마...그럴걸요.
석우 : 넌 광선 계산을 하기로 했던걸로 기억하는데. 그건 다 한거야?
경진 : 그게.. 열심히 해야지..하고 각오하고 있는 중입니다.
석우 : .... (답답해서 딴데 보다가) 뭐야. 민재가 지꺼 해달라고 부탁한거냐?
경진 : 어이구 민재 성격에 그럴 리가 있습니까. 그냥... 그 녀석이 요즘 벤처땜에 아주 버벅대고 있거든요. 요즘은 집에두 못 들어가구
사무실에 돗자리 깔구 자는 모양이에요. 그래서... 그냥 옆에서 보기 짜증나서..그래서..
석우 : (책상에 아예 걸터앉아 자리를 잡고) 너 원래 그렇게 자주적인 성격이 못 됐었냐? 누군가에게 기대고 빌붙고 그런 성격이었어?
경진 : (시무룩) 이상한 해석이십니다. 친구를 위해 희생하는 의리의 민경진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으십니까?
석우 : 가슴에 손을 얹고 솔직하게 말해봐. 지금 친구로서 돕는거야. 아니면 딴 마음이 있는거야.
경진 : (가슴에 한 손을 얹고 잠시 생각하더니 풀이 죽어서) 딴 마음이 있나본데요.
석우 : 그렇지. 한 남자에게 어떻게든 잘 보이고 싶어서 기를 쓰는 자존심도 없는 여자의 마음이지 그거.
경진 : 그게... 나쁩니까?
석우 : 나쁜건 아닌데 한심하지. 니 인생에선 너 자신보다 한 남자가 더 중요한거냐? 니 일은 제쳐두고 한 남자한테 관심끌려고
딴 짓을 하는 게 아무렇지도 않어?
경진 : .... 사실은 이렇게 한다구 해서 관심을 끌 자신도 없습니다.
석우 : 그럼 너 지금 이게 뭐하구 있는 짓이냐고.
경진 : 일종의... 배수진입니다.
석우 : 배수진?
경진 : 난 할만큼 했다. 더 이상 잘 할수 없었다.. 이 정도는 되야 나중에 실패를 해도 후회는 안할 거 아닙니까.
괜히 몸 사리구. 자존심 계산하구 그러다가 나중에 죽을 때 눈도 못 감으면 어뜩합니까.
석우 : (보는)
경진 : (눈치보며) 당분간 그냥 좀 냅둬주세요. 나두 언젠가는 지칠거구. 그럼 기분좋게 손털겁니다. 아직은 그게 잘 안됩니다.
석우 보다가 일어선다. 자기 책상 쪽으로 가며...
석우 : 너 그거 XXXX를 잘못 연결해놨어. 할거믄 제대루 해. 민재 일 두 번 시키지 말구.
경진, 에그..해서 다시 작업한 것을 살핀다. 석우, 슬쩍 경진을 본다.
S#6. 세미나실
아까의 상황 연결.
대리 : 물류시스템에서 발생할 수 있는 특정한 예외적 상황에도 제대로 대응할 수 있겠어요? 아무래도 불안한데.
남희 : 그러니까 조건에서는... (이제는 버벅대고 있다) 시존의 시스템을 분석하는 거 말고, 그 외에도...그러니까.. 다양한 조건에 대한
로봇팔의 대응 또한 틀에 포함시켜야 할겁니다.
대리 : 그럼 이미 일반적인 틀이 아니게 되고, 필요이상의 오버헤드가 생길 거 같은데. 그리고 그렇게 한다해도 여러 로봇팔과 함께
일을 하는 환경에서 그 방식이 제대로 효율을 높혀주겠어요?
남희, 아예 대답을 못하고 곤란한 얼굴로 서있다.
실장 : (누구에게랄 것 없이) 이럴줄 알았어요. 여학생이 괜히 큰소리를 칠때부터 알아봤다고.
(박교수에게) 이거 괜히 시간만 버린셈 아닙니까. 애초에 우리가 제안했던 수동겸비식으로 가죠.
박교수 : (전혀 흔들림없는 경쾌한 얼굴로 남희에게) 남희양.
남희 : 네 교수님.
박교수 : 방법이 없는 건 아니잖아. 남희양이 그걸 생각해내지 못할 리가 없는데. 잘 생각해보라구.
남희 : (초조해서 본다)
박교수 : 자아.. 예외상황과 같이 특정 조건에서의 대응이나..여러 로봇팔들이 함께 작동할 수 있는 환경이라면?
남희 : (박교수를 보다가 실장네를 본다)
실장네는 못마땅해서 이게 뭐하는 짓인가..하는 얼굴로 박교수를 보고 있다.
박교수 : 응? 어떨까? 방법이 없을까?
남희 : (자신은 없지만) 그렇다면... 그 로봇팔들을 그룹지어서 제어하면 문제해결이 될까요?
박교수 : (즐거운 얼굴로 실장을 돌아보며) 문제해결이 된다는데요. 하하.
S#7. 복도
지원과 규한, 남희가 걸어오고 있다. 남희는 여전히 시무룩하다.
규한 : (딱 손을 마주치더니) 알았다. 남희선배의 문제가 뭔지 알았어요.
지원 : (언짢아서 보는)
규한 : 그러니까 남희선배는 대인공포증인거야. (남희의 팔을 잡아 세우며) 맞죠. 그쵸. 일단 사람앞에만 나서면 머리 속이 하얘지면서
아무 생각도 안나는 거. 그래서 버벅거리게 되는 거.
두어걸음 앞서나가던 지원이 기분이 나빠지면서 멈춰 돌아본다.
남희 : (말대꾸하고 싶은 기분이 아니라 팔을 빼어 걸어가려는데)
규한 : (앞을 막아서다시피 해서) 아까두 봐요. 그 사람들이 집요하게 질문을 해대니까 점점 숨쉬기도 어려워지는 거 같던데.
그거 얼른 고쳐요. 고치기두 쉬워. 지하철에서 소리지르구 내리기.. 이런 건 어때요.
지원 : 이규한.
규한 : 왜.
지원 : 너 지금 농담할 자격이 있다구 생각해? 오늘 발표 자료 니가 니 할 일만 제대로 해왔으면 훨씬 완벽할 수 있었어.
규한 : (빙글거리고 웃으며) 구지원. 넌 말야. 그렇게 정색을 할 때 더 매력적인 거 아냐?
지원 : (어이없어 보는)
규한 : 본인도 그걸 의식하고 있나보지? 그러니까 맨날 그런 딱딱한 얼굴을 하고 있는거잖아. 맞지?
지원, 더 이상 말을 말자..해서 돌아서다 보면.. 남희는 이미 저만치 앞을 걸어가고 있다.
S#8. 기숙사 전경 / 밤
그 위로.
경진 : (E) 그런 걸 그냥 놔뒀어?
S#9. 지원/ 경진의 방
경진, 책상 앞에서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다가, 지원은 세탁물을 개면서..
경진 : 아니 그렇게 속을 뒤집어 놓는 놈을 그냥 놔뒀단 말야?
지원 : 상대하면 또 뭐해. 상대해줄수록 더 기고만장해지는 스타일인데.
경진 : 너보구 매력적이라고 했대매. 그럼 그 자리에서 딜을 했어야지. 그래 나 매력적이다. 이 매력적인 얼굴을 공짜로는 못 보여준다.
앞으로 나 한 번 볼때마다 천원씩 내라.
지원 : (웃고) 남희 선배가 걱정이야. 요즘 너무 슬럼프인 거 같애. 그래서 매사 자신이 없는 거 같고.
경진 : (새삼..그러는 지원을 본다)
지원 : (빨래를 개다말고 경진의 시선을 의식하고) 왜.
경진 : 너.... 요즘 좀 변한 거 알어?
지원 : 내가? 뭐가.
경진 : 내가 널 처음 봤을때만 해두 너 어땠냐하믄 말이지. 지구가 무너지냐? 그럼 무너져라. 난 내 일만 하면 된다.
내 옆사람이 지금 죽어가냐? 그럼 조용히 죽어다오. 날 방해만 하지 마라. 이랬어 너.
지원 : (웃으며 손을 멈추고 보는데)
경진 : 근데 요즘 넌 잘 웃기도 하고. 그리고 누군가를 걱정하기도 한다 이말이야. 너 말고 다른 사람도 이 세상에 살아간다는 걸
이제 좀 알게 됐나봐. 그러냐?
지원 : 너하구 살다보니 전염됐나.. (다시 빨래개는)
경진 : 흥. 나때문이 아닐걸. 내가 짐작하기로 그건...
하는데 문이 벌컥 열리더니 자현이 뛰어든다.
자현 : 니들말야. 이번 주말에 뭐해.
그 뒤를 재밌어 죽겠는 얼굴로 따라 들어오는 해성.
경진 : 야. 암만 여자끼리지만 노크 좀 하고 들어오면 안되냐.
자현 : 알앗어. 해성아. 그거 얘들 좀 줘라.
해성, 얼른 들고 있던 종이중에 한 장을 경진에게 건네준다.
경진 : 이게 뭔데.
해성 : 주말에 자현이 자작자동차 대회 나가잖아. 이거 대회장 지도야. 버스 노선도 써놨어.
자현 : 응원팀이 필요하니까 니들 시간 좀 내. 피켓같은 거 만들어 와두 좋아. 알았지?
해성 : 추자현 파이팅. 필승 추자현.. 이런 거 써서 오면 좋대.
자현 : 자자 그럼 일찍들 자라. 안녕. 해성아 가자. 다음 방.
해성 : 잘 자. 안녕.
둘, 급하게 우당탕 나간다. 해성도 완전히 물들어있다.
경진 멍청이 그들이 나가는 거 보다가.
경진 : 확실히 사람은 변하는거야. 해성이 봐라. 그치?
지원 : (갠 세탁물을 들고 일어서며) 변하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지.
경진 : 사람 아니면 뭔데.
지원 : 그냥 동물이라고 해야 되지 않을까.
S#10. 민재 사무실 앞 / 밤
불켜진 민재의 사무실... 콘테이너. 문이 열리며 민재가 나선다. 늘어지게 하품을 한다.
S#11. 주변 어딘가 / 밤
민재, 가벼운 운동을 하며 걸어오고 있다. 잠을 깨려는 것. 무심코 한곳을 보고 지나갔다가 다시 돌아와 본다.
저만치 어두운 쪽 구석에 누군가 서있는 뒷모습. 남희다.
민재 부르려다가 이상해서 본다.
//남희쪽.. 남희는 어두운 공간을 향해 작은 소리로 뭔가를 중얼거리고 있다.
잘 들어보면 낮에 했던 브리핑을 다시 한번 해보고 잇는 중이다.
남희 : 다양한 조건에 대한 모든 경우수를 물론 생각해봤습니다. 여러개의 로봇팔이 함께 일하는 경우도 물론 생각해봤죠.
(잠시 생각해보고 더욱 자신있게) 그런 환경이라면 여러개의 로봇팔들을 그룹지어서 제어하면 아무 문제 없습니다.
더 질문 있으세요? 질문 없어요?
남희는 어두운 공간을 마치 실장을 보듯이 바라본다. 그러다가 한숨을 쉬더니 근처에 주저앉는다. 고개를 푹 숙인다.
S#12. 캠퍼스 아침
S#13. 이교수 랩
명환이 앞에 선 민재가 보여주는 회로도를 보고 있다. 옆에서 중희가 같이 들여다보고 있고.
명환 : 그러니까 이 회로도를 그 50대 아저씨가 그렸다는 거야?
민재 : 예. 아주 작은 공장을 가진 분이신데요. 이런 식으로 시스템을 바꾸고 싶으시대요. 그래서 일단 당신 공장에서 시험해보고..
별 문제 없으면 특허를 신청하고 싶다고 하시거든요.
중희 : 이거 아이디어가 아주 좋은 거 같은데. 이런건 하루라도 빨리 특허부터 내놓는 게 좋지 않겠냐.
민재 : 저두 그렇게 말씀드리긴 했죠. 그런데 아무래도 먼저 검증을 해보고 싶다고 하시네요.
명환 : 그래 두고 가. 내가 시간나는대로 한번 시뮬레이션 넣어볼게.
민재 : (꾸벅 절하며) 고맙습니다. 그런데...이거 무료 봉사해주셔야 되는데요.
명환 : 임마. 내가 돈 받고 하자면 아주 비싼 사람이야.
민재 : 물론 압니다. 그래서 감히 요금을 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웃는데)
문을 열고 들어서는 만수.
만수 : 화창한 날..이 아니고 우중충한 날입니다. 간밤에 모두 별고 없으셨습니까. 아니이...위성센터의 이민재. 니가 여기는 웬일이냐.
먼 바람이 분거야 엉?
명환 : 저 녀석은 어떻게 된 게 지각을 할 때면 더 시끄러워.
중희 : 제어 데이터는 다 나온거야?
만수 : 한시간 20분만 기다려주십쇼. 따끈하게 뽑아드리죠 네.. (하며 책상 앞으로 붙는데)
민재 : 만수형. 요즘 남희선배 만나?
만수 : 남희선배? 왜?
명환 : (회로도를 들여다보다가 그들의 대화에 신경이 쓰인다)
민재 : 어제밤에 보니까 남희선배. 방황을 하고 있는 거 같던데.
만수 : 방황? 어디서. 어떻게.
민재 : 어두운 밤 학교 운동장 근처에서. 혼자 오락가락하고 있드라구.
만수 : 마. 그럼 산책이지. 근데 우리 남희씨가 왜 어둔 밤에 혼자 산책을 하고 있었을까. 아직 밤바람이 찬데.
민재 : 좀 힘이 없어보이든데. 한번 찾아가서 위문 공연 좀 하지 그래.
만수 : (주춤하는) 위문공연?
민재 : 형이 가서 10분만 떠들면 남희선배를 행복하게 해줄수 있대매. 언제나 그렇게 떠들었잖아.
만수 : 글세.. 그게.. 그렇지. 하하. 그랬었지.
민재 : 그랬었지?
만수 : 아..이민재. 오랜만에 온 김에 우리 점심이나 같이 먹을까.
중희 : 정만수. 지금 아침 열시다. 넌 열시에 점심먹냐.
만수 : 아아참. 점심먹는 시간이 헌법에 정해져 있기라두 합니까? 근데 정태하구 해성이는 어딜 간거야. 지금 몇신데 코빼기두 안보여.
중희 : 걔들은 벌써 실험실루 갔다. 남들 일 다 끝내갈 때 나타나서 뭐? 점심?
그들 떠드는 와중에 회로도를 들여다보고 있는 명환. 사실은 다른 생각을 하느라고 제대로 보고 있지 않다.
S#14. 석학의 집
점심시간. 점심을 먹는 학생들의 무리가 몇테이블 보이고.
미순이 쟁반을 들고 급히 지나가는데 문을 열고 뛰어드는 지민.
지민 : 늦었습니다. 실습이 늦게 끝났어요.
미순 : 그래 어서 와라. 점심시간까지 일해달라는 내가 미안하지. 근데 이왕이면 재빨리 좀 움직여라. 4번에 물 좀 갖다주고.
지민 : 주문 아직 안 받았어요?
미순 : (기분이 좀 나쁘다) 주문 받을 거 없어. 물이나 갖다줘. 도대체 바쁜 사람 붙잡고 뭐 할 얘기가 저렇게 많은지.. 에이..
미순, 언짢아서 가고.. 지민 이상해서 구석쪽 테이블을 기웃거려 보다가 어머..하고 놀란다.
거기 남희와 상현이 마주 앉아있다.
// 남희쪽.
남희 : 학교까지 오시라고 해서 죄송해요. 아무래도 밖에 나갈 시간이 없어서요.
상현 : 연구실에 일이 아주 많은가부죠?
남희 : 능력이 없으니까 시간만 잡아먹게 되네요.
상현 : 능력이 없다.. 재미는 있으세요?
남희 : (상대의 질문의도를 몰라서 보는..)
상현 : 내가 원래 직업이 이러다보니까 아무래도 사람들을 보는 눈이 좀 있습니다. 제가 남희씨를 볼 때는 연구실에 박혀있긴
좀 아까운데요.
남희 : 아까워요?
상현 : 아아.. 연구하는 걸 가볍게 보는 건 절대 아닙니다. 단지.. 연구라는 건 누가 해도 되는거고, 또 하는 사람도 많지 않습니까?
그런거 말고 남희씨만이 할 수 있는 거, 그런 걸 하는 게 더 낫지 않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남희 : ....잘 이해를 못하겠는데요.
상현 : 전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 중에 하나가 한 가정을 지키는 아내며 어머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요즘은 정말 괜찮은 아내도 어머니도 점점 찾기가 어려워지고 있죠.
남희 : (좀 굳는다) 그러니까 그 말뜻은 여자는 결혼을 해서 아내나 어머니의 역할을 잘해야지.. 연구니 뭐니 다른 일을 하는 건 우습다..
이런 건가요?
상현 : 어허.. 이거 저를 무슨 남녀차별주의자로 오해하시면 곤란합니다. 우리 당에서 중요하게 내세우고 있는 것도 여성정책이죠.
그런 의미가 아니고..
남희 : 국회의원 보좌관이라고 하셨죠.
상현 : 남희씨도 정치하는 사람을 부정적으로 보는 편이신가요?
남희 : 말을 아주 잘하는 사람들일거라고 생각하죠.
상현 : 난 말을 잘 못하는 편인데요. 지금도 보세요. 남희씨가 내 말뜻을 오해하구 계시잖아요. 난 여자가 일하는걸 반대하는 게 아니에요.
난 그저 남희씨가 가장 좋아하고 잘하고.. 또.. 행복해할만한 일이 뭘까.. 짐작해본 겁니다. 제 본 뜻을 좀 이해해주세요.
남희 : (말없이 보는..)
S#15. 박교수랩
지원이 혼자 자기 자리에서 작업을 하는 중. 옆에 놓인 자료를 뒤지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문을 본다.
빠끔히 열린 문으로 만수가 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만수 : (지원과 시선이 마주치더니) 안뇽.
지원 : 들어오세요.
만수 : (상체를 좀 더 안으로 들이고) 점심 안 먹어?
지원 : 먹었어요.
만수 : 엉...잘했어. (하면서 안을 살펴보는)
지원 : (웃음기 참으며) 남희선배는 약속있어서 나갔는데요.
만수 : 약속? 점심시간에? 누구하고?
지원 : 누군지는 모르겠구요. 어떤 남자분 전화받고 나갔어요.
만수 : (거의 안으로 들어왔다) 어떤 남자라니.. 그게 어떤 놈인데.
지원 : 모른다고 말했잖아요.
만수, 후다닥 나가며 문을 쾅 닫았다가 잠시 후 다시 벌컥 열더니.
만수 : 어디서 만나기루 했는지도 몰라?
S#16. 석학의 집
튀어드는 만수. 서빙을 하던 지민과 부딪힐뻔한다.
지민 : 아유 쏟을 뻔 했잖아요.
만수는 실내를 둘러보느라 정신없다. 남희네는 이미 나가고 없다.
만수 : 지민아.
지민 : 왜요.
만수 : 여기 내 남희선배 왔었지?
지민 : 좀 전에 갔는데요.
만수 : 혹시 나의 남희씨가 어떤 놈이랑 같이 있었냐?
지민 : 어떤 신사분이랑 같이 있었죠.
만수 : 누군데.
지민 : (얼버무리며) 모르죠. 오늘 손님이 많아서 정신이 하나두 없어서..
만수 : 아.. 어떤 놈이 같이 있는 건 봤대매. 그게 어떤 놈이었냐고
미순 : (끼어들며) 알면 뭐할라고. 넘의 선보는 자리에 가서 행패라도 부릴거야?
만수 : (기절하겠다) 서..선이요?
지민 : 오늘은 선이 아니죠. 선은 저번에 봤고. 오늘은 애프터라구 해야죠.
미순 : 하여간 만수 니가 나설 자리가 아니니까 조용히 가서 연구나 해. 그쪽은 내가 슬쩍 들어보니까 뭔 정치를 하는 사람이래드라.
너 괜히 촐싹대다가 남희 망신 시키지 말구..가. 어여 느네 랩으로 가라고.
만수 : (숨이 막혀서 미순을 보고 지민을 보고) 그..그럼 내 남희선배하구 그... 그 놈이 지금 어디루 갔는데요.
지민 : 밥먹으러 가지 않았을까요. 우리 집에선 물만 마셨으니까.
미순 : 길 안 비킬거야?
만수, 후다닥 뛰어나간다.
지민 : ....이렇게 다 소문내도 괜찮은 거에요? 나보구는 입단속하라구 했잖아요.
미순 : 재밌잖어.
지민 : 에?
미순 : 봐하니.. 이건 그냥 내버려둘 문제가 아냐. 판을 벌려서 굿을 하든 깨박을 놓든 결단을 내줘야지.
지민 : (뭔소린가 싶은데)
미순 : 그런데 이쪽엔 쓸만한 놈이 하나두 없단 말야. 하나는 실속없이 껍적대기나 하고, 또 하난 장승같이 눈만 껌벅거리고 있구...엥이...
미순, 영 못마땅해서 가고, 지민은 하나 또 하나가 누군가 손을 꼽으며 생각해보고 있다.
S#17. 교내 석사식당
석우와 동현, 명환이 줄줄이 서서 식판을 들고 반찬등을 담으며....
동현 : 이번에 후배들이 연다는 시낭송회 말이에요. 선배님도 한편 들고 참가해주시죠.
석우 : 시가 뭐냐. 그런 것도 세상에 있었나.
동현 : 아하 또 왜 이러십니까. 그 날카로운 사회풍자며 예리한 인간 성찰의 시들.. 저 그때 줄줄 외구 다녔었습니다.
석우 : (명환에게) 얘 언제부터 이렇게 말이 늘었냐.
명환 : 랩장되구 나서 더 저렇게 된 거 같은데요. 저 친구야 후배들 앞에서 내세울 게 말발밖에 더 있습니까.
동현 : 가만 있어봐. 저기 혼자 앉아있는 여학생...
보는 쪽을 돌아보면 거기 남희가 혼자 앉아서 밥을 먹고 있다.
동현 : 명환이 니가 요즘 매달려 있는 그 후배 아냐?
명환 : 마. 매달리긴 누가 뭘 매달려.
동현, 듣지도 않고 쟁반을 들고는 남희에게로 간다. 명환 당황해서 잡으려 하지만 식판을 들고 있어서 여의치 않다.
석우 재밌어서 보고 있다.
동현, 이미 남희 앞에 식판을 놓으면서.
동현 : 합석해두 될까요?
남희, 다른 빈자리들을 둘러보는데.
동현 : 저번 팔관대회 예선때 진행요원이셨죠? 인상 깊었습니다. (석우네를 향해) 선배님 일루 오시죠. 합석하기루 했습니다.
남희 당황해서 보면, 거기 명환이 어정쩡하니 서있다가 어정쩡하니 웃어보인다.
S#18. 쪽문 쪽
대욱이 과제재료들을 잔뜩 안고 들어오다가 보는 곳. 거기 만수가 우두커니 서있다.
대욱 : 여어.. 만수선배.
만수 : ....오이. 대욱이냐. (힘이 없다)
대욱 : 거기 서서 뭐하십니까? 누구 기다려요?
만수 : 누구를 기다리는가.... 거 심오한 질문이구만.
대욱 : 예?
만수 : 기다리는 건 쉬운 일이야. 문제는 기다리고 난 다음에 뭘 어쩌겠단 말인가. 이거지.
대욱 : 아이... 무슨 철학같은 소리를 하구 그러십니까? 하여간 여기 계속 계실거에요? 그럼 저 먼저 갑니다.
만수 : 대욱아.
대욱 : 예 왜요.
만수 : 혹시 오는 길에 너 아는 사람 못 봤냐?
대욱 : 아는 사람 누구요.
만수 : 그냥... 너 아는 사람.
대욱 : 글세. 누구요. 지금 누굴 기다리는 건데요.
만수 : (문득 대욱을 쳐다보다가) 너 사랑해본 적 있냐?
대욱 : 예에에?
만수 : 너두 사랑을 하는데 자격조건이 필요하다구 생각하냐?
대욱 : ....선배님 점심 아직 안 드셨어요? 어디 안 좋으십니까?
만수 : 그 조건이 제대루 되있어야 사랑두 맘놓고 하는 걸까? 무조건적인 사랑이란 건 무식한 양아치나 하는 짓일까?
대욱 : (아무래도 만수가 이상하다) 선배님 저 강대욱인데요. 지금... 새로운 개그하시는 겁니까? 내가 잘 이해를 못하구 있는 건가요?
만수 물끄러미 대욱을 보다가 빙그르 돌아서 학교쪽으로 걸어간다.
S#19. 석사 식당
네명 식사중.
동현 : (명환에게) 이번 전자과 성적은 어때?
명환 : 무슨 성적?
동현 : 교수 임용 말야. 자리 많이 찾아갔어?
명환 : 서너명 되나봐.
동현 : (남희에게) 전산과는요?
남희 : 잘 모르겠는데요.
석우 : 왜? 너도 나중에 교수되려고?
동현 : 되면야 좋죠. 근데 요즘은 차라리 하늘의 별을 따오는게 빠르대면서요.
명환, 슬쩍 남희를 보면 남희는 계속 조용히 먹고만 있다.
동현 : 이번에 내가 아는 여자선배 하나두 임용 떨어지고 홧김에 결혼했잖아요.
석우 : 야야 뭔 결혼을 홧김에 하냐.
동현 : 그렇게 보였다는거죠. 여자들은 좋겠어. 하다 안되면 결혼이라는 안전지대가 있잖아요.
남희 숫갈질을 멈춘다. 명환 그런 남희를 의식해서.
명환 : 안전지대라구만은 할 수 없지. 우리 연구야 하다가 안되면 다른 거 잡아서 다시 시작할 수 있지만 결혼이란 건 그런 게 아니잖아.
한 사람 만나면 그걸루 끝인데...
동현 : 모르는 소리 말어. 그 선배 보니까 뒤도 안돌아보구 가더라. 프로젝트 진행하던 거 그냥 휙 던지구 가더라구. 정말 독하대...
남희 : 그게 어때서요?
동현 : 네?
남희 : 교수 임용도 같은 조건이면 여자보다 남자를 선호하는데요. 업체 사람들이 와도 여자가 브리핑을 하면 일단 불신해서 보고,
죽어라 노력해도, 죽었다 깨나도 남자들 못따라 갈바엔 차라리 그만두는게 낫죠. 결혼하고 연구 그만두면.. 나쁜 거에요?
명환과 동현 당장 뭐라 말을 못하고 당황하는데...
석우 : 전산과라구 했죠?
남희 : 그런데요.
석우 : 지금 몇살이죠?
남희 : 네? (어이없는)
석우 : 기껏해야 스물다섯. 여섯. 그 나이로 시간강사라도 얻어서 교단에 서면 자기보다 나이많은 복학생들을 가르쳐야 될거에요.
그 친구들이 강사를 강사 대접 안해주면 집어치구 결혼할거에요?
남희 : (황당하고)
석우 : 업체 사람들이 프로젝트 맡길 때도 그래요. 여자들 프로젝트 진행하다가 좋은 남자 나타나면 집어던지구 간대잖아요.
내가 업체 사람이래두 불안하죠.
남희 : 그 여자들이 오죽하면 프로젝트 포기하구 다른 길 찾아가는지는 생각해보신 적 없죠?
석우 : 그걸 내가 왜 생각을 해야되죠. 당사자들이 해결해야지. 경쟁해보다가 조건이 불리하다. 억울하고 분하다.. 그래서 집어치든가
아니면 더 악착같이 해보든가.. 그건 당사자들의 문제 아닌가요? 내가 왜 그거까지 신경써줘야 됩니까.
남희 : (부들부들 떨리는 기분) 굉장한 기득권자의 논리군요. 대단해요.
석우 : 기득권자가 자기가 가진 권리를 나눠주길 바라는 거에요? 저기 돈 많이 가진 사람들 찾아가서, 당신들 돈 좀 나눠주세요.. 하고
구걸해 보지 그래요. 나같으면 그럴 시간에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겠어요.
남희 : (더이상 말하고 싶지 않아졌다. 식판을 챙겨서 일어난다) 죄송합니다. 먼저 가겠어요.
석우 : 매사 그런 식이에요? 싸워보다가 막히면 도망쳐요? 그런 식이라면 죽어라 노력했다는 말도 못 믿겠네.
지금 말로는 여자남자 따지고 있지만 사실은 능력이 딸리는 거 아닌가.
남희, 정말 식판이라도 집어던지고 싶은 심정이지만 그냥 돌아서 간다.
명환 다급해서 엉거주춤 일어서다가 도로 앉는다.
명환 : 말이 좀 심하신 거 아니에요. 안그래도 힘든 사람한테.
석우 : 넌 어째 기회를 줘도 못 잡냐?
명환 : 예?
석우 : 마. 이럴 때 니가 나서서 든든하게 편을 들어줘야 되는 거 아냐?
명환 : (아직 멍한데)
동현 : (명환의 어깨를 툭툭 치며) 너 석우선배의 장기 모르냐. 일발삼타. 한큐에 공 세 개는 넣는다.
이구.. 이러니 옆에 있던 약혼자까지 뺏기지..
명환 : 야 너..
동현 : 아아 알았어. 방금 그 말은 취소. (웃는데) 말이 헛나왔다.
명환, 남희가 나간 쪽을 돌아본다.
S#20. 식당 앞
남희 빠른 걸음으로 걸어오고 있다.
석우 : (E) 그런 식이라면 죽어라고 노력했다는 말도 못 믿겠네.
S#21. 전산동 복도
남희 역시 빠른 걸음으로 쫓기듯 걸어온다.
석우 : (E) 말로는 여자남자 따지고 있지만 사실은 능력이 딸리는 거 아닌가.
남희 옆의 강의실 문을 열고 튀어 들어가더니 문을 쾅 닫는다.
S#22. 강의실 내부
빈 강의실, 남희 들어서는 여세로 의자를 하나 집어들어 던지려다가 멈춘다.
잠시 그대로 서있다가 의자를 그냥 내려놓는다. 이 짓으로는 풀릴 수 없는 기분이다.
남희, 휘청이듯 옆의 의자에 앉아서 멍하니 칠판을 바라본다.
거기에는 전 강의때 남긴 자국인 듯 전산과 강의 내용들이 빼곡하게 적혀져 있다.
S#23. 민재의 방 / 밤
민재가 들어서다 보면 정태와 만수가 마주앉아 소주를 기울이고 있다.
민재 : 어 만수형 왔네.
만수 : 어서 와라. 와서 이거 한잔 들어봐. 이거 이름이 소주라는 건데 말야. 이게 일종의 보조 베터리같은 거에요.
그러니까 내 안에 에너지가 한 개두 없다. 이럴 때 임시루 사용하는거지. 그렇지.
민재 : (가방이며 들고온 자료들을 책상에 쌓으며 정태에게) 만수형 뭔일 있어?
정태 : 몰라. 갑자기 소주 들고 찾아왔어. 넌 오늘은 사무실에서 안 자두 되는거냐?
민재 : 급한 건 하나 처리했어. 오늘은 내 이불 속에서 좀 자볼까하구 왔는데...(만수를 보며) 내 침대 벌써 임자가 있는 건 아니겟지.
정태 : (역시 만수를 돌아보는데)
만수 : (말없이 우두커니 소주잔만 보고 있다)
정태 : 오늘 만수형이 이상한 건 사실이야. 너 만수형이 이렇게 조용하게 술 마시는 거 봤냐?
민재 : (옆으로 붙으며) 나두 한잔 줘봐.
정태 : (민재에게 술 따라주고)
민재 : 형.. 뭐야. 세미나 망쳤어? 디리 깨진거야?
정태 : 만수형이 그런 걸로 기죽는 거 봤냐?
민재 : 그렇지. 그럼 뭐야. 어이....혀엉..
만수 : 그래 자 건배.. (민재의 잔에 자기 잔을 부딪히고는 마신다)
민재 : 얼레.
정태 : 한 십분쯤 상대해주면 묻지 않아두 다 털어놓을 줄 알았는데 말야. 지금 한시간 넘게 암말 안나오구 있어.
민재 : 이야... 기록이네. 이건 기념할만한 일이야 어?
정태 : 좋아. 오늘은 침묵주다. 아무도 아무 소리 안하구 그냥 마시기.
민재 : 좋지. 말한마디 하는 사람은 벌주 한잔씩 원샷하기. 시작!
민재와 정태 소리없이 건배하고 또 마시는데.
만수 : 그니까 말한마디 하면 술 한잔 주는거냐?
정태 : (얼른 술 따라주고)
만수 : (원샷으로 마시더니) 난 지금 어떻게 하면 가장 멋진 남자가 될 수 있나..그거 머리 굴리고 있는 중이다.
민재 : (한잔 따라주고)
만수 : (마시고) 남자가 한 여자를 사랑할 때. 사랑 알지? 몰라?
민재 : (정태를 손가락으로 가르킨다)
정태 : (민재의 손가락을 치워버리고)
만수 : 뭐..여기서 사랑의 개념을 갖고 따지진 말자. 내가 사랑이라면 건 사랑이야. 아니냐?
정태 : (술 따라주고)
만수 :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 가장 비참한 게 뭔지 아냐? 그 여자를 위해서 해줄 게 아무것도 없을 때야. 이거 정말 처참하다 니들.
민재 : (만수의 술잔을 들어준다)
만수 : (마시고) 그래서 이 비참한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서 해줄 수 있는 최종단계는 뭐냐. 그 여자를 보내주는 거야. 어디로?
그 여자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다른 남자에게로.
정태 : (만수 잔에 술 따르려다가 멈추고 본다)
만수 : 정말 멋지지 않냐? 난 생각만 해도 넘 멋져서 가슴이 뛴다.
정태와 민재 마주본다.
만수 : 니들 나 좀 다시 봐봐. 진짜 비참하게 생겼지? 어때? 어? 이 얼굴에 이 능력을 가지고 내가 어떻게 그 여자를 잡겠냐.
나두 주제파악은 되는 놈이야.
정태와 민재 멀뚱이 만수를 보고만 있다.
만수 : (빈잔 내밀며) 벌주 안줘? 뭐해?
정태, 술병을 든 채 만수를 보다 그냥 자기가 병째로 한모금 마신다.
S#24. 전산동 건물 외경 / 아침
그 위로 들리는 남희의 목소리.
남희 : 마이크을..
S#25. 박교수 랩
남희가 만화책을 여러권 들고 서서..
남희 : 이제 이런 거 랩에 갖구 오지 마. (화내는 것은 아님)
마이클 : 오우 쏘리. 오늘 갖다 줄거야. (받아드는)
남희 : 그리고, 저 쓰레기들..
저만치서 작업하던 규한도 돌아본다. 남희는 중앙 테이블에 너질러져 있는 쓰레기들을 가르키고 있다.
남희 : 이제 이런 건 너질러놓은 사람이 치워. 이제 나는 이런 거 못 치워주니까 이대로 놔두면 니들은 쓰레기장에서 일해야 될거야.
마이클 : 알았어. 누나 화내지 마. 이거 내가 치울라고 했어. (쓰레기통을 갖고 와서 치우기 시작하는)
지원 : (자기 자리에서 그런 남희를 돌아보고 있다)
남희 : 그리고 규한아.
규한 : 옙.
남희 : 전자과하구 DSP칩 연계 작업하는 거. 그거 니가 책임지고 맡아서 해볼래?
규한 : 내가요? 책임을 지라고?
남희 : 그래. 오늘 중으로 내가 갖고 있는 자료들 다 넘겨줄테니까 다시 정리해봐. 그거 4차 테스트에서 에러난 거 알고 있지?
전자과에서 모의 테스트 해본다구 했으니까 일정 알아보고 거기 참석해.
규한 : (안 믿긴다는 듯) 나 혼자 해보란 말이에요?
남희 : 책임을 맡겨주면 신이 나서 할 수 있다고 했잖아. 그러니까 해봐. 그리구 지원아.
지원 : 네.
남희 : 지금 나하구 교수님께 가보자. 자동 물류창고 시스템.. 그거 니가 좀 맡아줬으면 하는데. 같이 가서 말씀드리자구.
지원 : 선배. 그걸 내가 맡는다는 건....
남희 : 너 할 수 있어. 아마 내가 하는 거보다 훨씬 나을거야. 가자.
남희 먼저 자료를 들고 나간다. 지원, 황당해서 일어선다.
규한 : 와우. 이게 뭔 일이야. 아무래도 우리 랩장. 영악하게 살기루 마음 먹은 모양인데.
마이클 : 영악하게가 머야.
규한 : 잔머리를 좀 굴리고 살겠다이거지. 그래서 이제부터는 자기의 논문에만 신경을 쓰겠다.. 이런 거 아닐까?
지원, 나가려다가 규한을 돌아본다. 규한, 어깨를 으쓱하며 웃어보인다.
S#26. 박교수 연구실
박교수, 앞에 선 남희와 지원을 번갈아 본다.
박교수 : 책임제 역할분담이라... 그러니까 각 작업당 한명씩 팀장이 되고. 그 책임을 맡긴다..이거네.
남희 : 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요.
박교수 : (남희를 살피다가 지원을 보고) 어때 좋은 거 같애?
지원 : 글세요. 작업이라는 게 혼자 할 수 없는 거고. 어차피 랩식구들이 나눠서 해야 되는건데. 아무래도 랩장이 그런 건 나눠주고
정리해줘야 되는 게 아닌가 싶거든요. 이렇게 나눠주고 나면..
남희 : (잘라서) 당분간 이렇게 했으면 좋겠어요.
박교수 : 당분간이라니. 언제까지.
남희 : 그러니까.. (망설이다가) 모든 게 정리될때까지요.
박교수 : ....정리라.. 뭐가 정리되야 된다는 거지?
남희 : ...정리되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지원 : (그러는 남희를 돌아본다)
박교수 : (남희를 살피다가) 좋아. 난 어디까지나 우리 랩장의 판단을 믿어. 생각한대루 해.
남희 : 고맙습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돌아서려는데)
박교수 : 아참. 그런데 오늘 나 뭔가 스케쥴이 있었던 거 같은데. 그게 뭐지? 아까부터 계속 찝찝하드라고.
남희 : ... 교수님.
박교수 : 어?
남희 : 전 교수님의 개인비서도 아니고 조교도 아니에요.
박교수 : (당황) 물론...그렇지 그거야..
남희 : 그런 식으로 교수님의 스케쥴을 일일이 기억하고 관리해줄 사람은 없어요. 그러니까 너무 남한테 의지하지 마시구요.
제발 수첩에 적든가.. 메모지를 갖고 다니든가 하세요. 아셨죠?
박교수 : ..어. 그럴게. 미안.
남희 : 오늘 오후 3시에 처장님 방에서 차 한잔 하신다구 했어요. 이교수님도 오신다고 했으니까 테스트건 상의해보세요.
박교수 : 오케이. 알았어. 땡큐.
남희 : 그럼... (고개를 숙여보인다)
S#27. 복도
걸어오는 지원과 남희. 지원, 남희의 눈치를 살피다가.
지원 : 선배... 무슨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불안한데요.
남희 : 왜.
지원 : (멈추더니) 선배 지금 꼭... 무슨 재산 정리하는 사람같아요.
남희 : 그렇게 보였니? (웃어보이는)
지원 : 무슨 생각하세요?
남희 : ......그냥 주제파악 중이야. 참 난 전자과 좀 다녀올게. 업무 넘기기 전에 처리할 건 해놔야지.
남희는 먼저 걸어간다. 지원 그런 남희를 보고 있다.
S#28. 이교수 랩
중희, 해성, 만수 기분좋아서 명환을 중심으로 떠들고 있는 중이다.
중희 : 이야. 선배 정말 축하해요. 이게 벌써 세 번째죠? 그럼 박사학위 자격은 일단 확보한 셈이네요.
해성 : 그러니까 외국저널에 세편 이상 논문 발표되는 게 박사 학위 심사때 기본 조항인 거 맞죠?
만수 : 야야 무섭다. 이해성. 너 석사 건너뛰고 박사 바라보는 거 아니지?
명환 : 근데 난 내 논문이 발표됐는데도 어째 기쁘지가 않다.
만수 : 아아 왜 또 그러십니까. 한턱 내라고 할까봐 지금 연막치구 계신 거에요?
명환 : 정만수. 난 니 논문만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져. 내가 맡은 랩에서 낙오자를 볼 생각하믄 아주 억장이 무너진다.
만수 : 이거 연막 작전 맞어. 에에이. 거 탕수육 한그릇 사면 될걸 그게 아까워서 절 잡구 늘어지십니까?
해성 : (문쪽을 보고 일어서며) 어 오셨어요? 들어오세요.
모두 돌아보면 열려져있는 문가에서 남희가 보고 있다가 당황한다.
만수 : 선배.
명환 : (일어서며) 오셨어요?
남희 : 네.. 아.. 논문이 실린 모양이죠. 축하드려요.
명환 : 아...그냥 운이 좋았습니다. 들어오세요. 무슨 일로..
만수 : (명환과 남희를 번갈아 본다)
남희 : 이번 테스트 땜에 왔는데... 그게.. 생각해보니까 자료를 안 갖고 왔네요. 가서.. 일단 메일로 보내드릴게요. 그럼..
그냥 나가버린다. 해성이 중희를 본다. 중희, 나도 모르겠다...
만수, 두어걸음 문가로 가다가 명환을 돌아본다.
만수 : 저.... 이건 당사자가 책임져야 될 문제라고 봅니다.
명환 : 뭐?
만수 : 내가 듣기로 우리 남희선배는 저번에 아이트리플 이에 보냈던 논문이 안됐다구 합니다. 그래서 지금 기분이 안좋습니다.
명환 : (당황하고 있다) 그런데..
만수 : 그런데 그 앞에서 선배는 자기 논문이 세 번째 발표됐다고 희희낙낙했습니다. 그럴 수가 있습니까?
명환 : 마. 내가 언제..
만수 : 이건 책임져야 되는 문제라고 봅니다. 중희형 안그래요?
중희 : 뭐? 그게 무슨....(하다가 명환의 눈치를 보는)
만수 : 해성아 안 그러냐?
해성 : (눈만 꿈벅인다)
만수 : (명환에게) 정말 사람이 그러면 안됩니다. 뭡니까. 자기만 박사되면 답니까?
명환 : 야 임마. 너 지금 무슨 말을 어떻게 엮어가고 있는거야?
만수 : 그러니까 가서 풀란 말입니다. 결자해지. (억지로 익살맞게 웃어보이며) 그러지 않아요?
S#29. 복도
남희 걸어오는데 뒤에서 들리는 달리는 발걸음 소리.
남희 무심코 뒤를 돌아보다가 멈춘다. 달려오던 명환이 얼른 멈춰서며 어색해서..
명환 : 저 그게.... 그러니까 그...
남희 : 뭐요?
명환 : 그 자료가.. (마음 먹고) 차 한잔 하실래요?
남희 : (황당해서 보는)
명환 : 그러니까.. (하다가 갑자기 주머니를 뒤지며) 여기 동전이 있거든요. 그래서 차 한잔....
남희 : (멀뚱이 보다가 좀 웃는)
S#30. 전산과 휴게실
테이블에 놓여있는 종이컵의 커피잔 두 개.
명환이 한잔을 들어 마신다. 그 앞의 남희 창 밖을 보고 있다가...
남희 : 어쩐지 내가 환경공해를 일으키고 있는 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명환 : 환경 공해요?
남희 : 자현이가 그런 말을 하드라구요. 자동차가 공회전을 너무 오래 하고 있으면 그건 환경공해라구요. 자동차라는 건 뭔가를
실어 날라야 되는 건데, 지 역할은 하지 못하고 엔진만 돌리면서 배기가스를 내뿜고 있으면 안된다는 얘기겠죠.
명환 : ......
남희 : 내가 내 자리에서 내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거...그걸 깨닫게 되니까 정말 ....괴롭드라구요.
그러니까 나 아닌 다른 사람이 이 자리에 있으면 훨씬 잘할텐데.. 그런 생각이요. (억지로 웃는)
명환 : ...그래서 그만 둘 생각까지 하고 있는 건가요? 연구도 랩장도..
남희 : 내 능력에 맞는 일을 찾으면 나도 이 공회전을 좀 멈출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어요.
명환 : 남희씨 능력에 맞는 일이라면 어떤 걸 말하는 거죠?
남희 : (보는)
명환 : 선배로서 묻는 겁니다. 같이 프로젝트를 해오던 선배라고 생각하고 대답해봐요.
남희 : ...글세요. 누군가는 내가 아내나 어머니의 일이라면 아주 잘할 거 같다고 하드군요. 그럴지도 몰라요. 우리 랩에서두 내가 제일
잘하는 일은 쓰레기를 치우거나.. 교수님 챙겨드리거 나. 그런 일이었거든요. (쓸쓸하게 웃는다)
명환 : 그런 얘기를 했다는 사람... 저번에 선봤다는 그 분이겠군요.
남희 : ....네.
명환, 더 말하지 않는다. 그저 잔을 들어 남은 커피를 마신다. 이번에는 명환이 창밖을 본다.
S#31. 처장실
이교수 서교수 박교수가 둘러앉아있고.
처장, 손수 차를 교수들에게 돌리며.
처장 : 이 차는 제가 아는 스님이 보내주신 겁니다. 손수 차를 재배해서 직접 볶으신 거라구 하네요. 한번 드셔보세요.
서교수 : 저 아무래도 처장님 덕분에 차에 맛이 들릴 모양인데요. 요즘은 커피가 맛이 없어요.
처장 : 허허허 고마우신 말씀입니다.
이교수 : (한모금 마시면서) 근데 아무래도 차를 제대로 마시려면 너무 번거로와서 말이죠. 나는 그 차잎을 넣구 끓는 물 넣구
그리고 기다리는 거 있죠. 그걸 못하겠드라구요.
처장 : 허어..차는 그게 맛입니다. 덜러덩 물 부어서 마시는게 아니라..제대로 색과 맛이 우러날 때까지 기다리는 맛. 그걸 아셔야 되는데..
서교수 : (문득 옆을 보고) 박교수는 안 마셔?
박교수 : (테이블 손가락으로 톡톡쳐가며 생각에 빠져있다가 갑자기 이교수에게) 다 때려치구 시집가고 싶다. 이런 생각할때 없으셨어요?
이교수 : 네?
박교수 : 아이 왜. 여자로서 공학 공부하다보면.. 힘들때도 있고, 분할 때도 있고. 증말 드럽고 치사하다싶을 때도 있었을 거 아녜요.
그럴 때 다 때려치구 시집가고 싶다..이럴 때 없었냐구요.
서교수 : 이 사람은 하여간 뭔 질문을 해도 이렇게 홍두깨야.
처장 : 왜 박교수 제자 중에 누가 시집을 가고 싶댑니까?
박교수 : 아직 그런 말은 안하는데요. 그럴까봐 아주 겁나 죽겠거든요. 난 그 학생 없으면 안되는데..
(이교수에게) 그럴 때 어떻게 말려야 되요? 네? 네?
이교수 : 좋은 사람 만나서 시집을 간다구 그럼 축하해줘야지 왜 말려요.
서교수 : 하하 그거 봐. 질문이 엉터리니까 대답도 잘 안해주시잖아.
박교수 : 아깝잖아요. 그동안 그 학생 머리 속에 쌓아놓은 자료가 얼만데..그걸 설거지 하는데 낭비하란 말이에요?
이교수 : 설거지도 쉬운 거 아니에요. 난 그거 정말 어렵든데..
박교수 : 그니까 내 말은 설거지 문제가 아니구 그 학생이...
이교수 : 무슨 말인지 아는데요. 시집가는 것도 쉬운 게 아니란 얘기를 하고 있는 거에요. 한 가정이라는 프로젝트를 완성하는 것두
아주 어려운 거 아닐까요. 그 제자가 무슨 생각으로 시집을 가겠다는지 모르겠지만요. 연구하는 거 보다 그게 쉬울거라고
생각했다면 그건 오산이라구 말하고 싶네요.
박교수, 자기가 들으려는 대답이 아니다. 안절부절해서 다른 교수들을 보지만 처장이나 서교수는 웃고만 있다.
S#32. 기숙사 외경 / 밤 - 아침
밤에서 새벽이 밝아오는 기숙사 외경.
문이 열리더니 자현이 기운차게 나선다. 우뚝 서서 한껏 기지개를 켜는데...
느닷없이 터지는 폭죽 소리. 깜짝 놀라서 돌아보면..거기 경진과 지원이 해성이가 폭죽을 터뜨려주며 나선다.
경진은 자다 깨서 부시시한 얼굴.
경진 : 필승 추자현이다.
해성 : 응원하러 못 가서 미안해. 오늘 테스트를 하거든.
지원 : 가서 잘하구 와.
자현 : 어엉... 이거 너무 감격스럽다. 이 새벽에 이렇게 나와주다니..
경진 : (하품을 하며) 맞어. 꼭두새벽에 요기까지 응원나왔으니까 가서 이기구 와라. 알았지?
자현 : 알았어. 필승!! 야 근데 니들이 어떻게 이런 이벤트를 준비했냐.
지원 : 해성이가 준비한거야. 우린 끌려나온거고.
자현 : 해성아. 어엉...
해성 : 피켓은 준비 못했어. 그 대신 내가 치어리더 춤 보여줄게. 자아.. (옆의 경진과 지원을 밀어내고 자리를 확보하더니
어설픈 치어리더 흉내를 내며) 추자현 추자현 파이팅.
자현, 오예... 하며 장단을 맞추고 경진은 하품을 하고 지원은 웃고.. 떠들썩하며...
S#33. 전산과 건물 앞
남희가 등교를 하고 있다. 우울한 얼굴로 걸어오다가 보면 저 앞에 명환이 기다리고 있다가.. 자세를 바로한다.
남희 의아해서 보면 명환 남희에게 다가오더니.
명환 : 응원하는 거 좋아하세요?
남희 : 네?
명환 : 버스 타고 드라이브 하는 거 좋아하세요?
남희, 뭔말인가 싶은데....
S#34. 경기장 / 낮
자작자동차 네대가 휙휙 지나쳐간다. 다른 자작자동차는 pit에 주기되어있는 상황. 현재 예선전 경기중.
자현은 3위로 달리는 중.
//경기장 밖 학생들 사이에서 동현이 경기를 바라보고 있고
// 자현, 차 한대를 추격해서 2위로 앞서나간다. 1위로 앞서가는 앞차와 추월다툼을 벌인다.
피니쉬라인을 통과하는 자현의 자작자동차. 2위로 들어온다.
이어서 들어오는 3,4위 차량.
동현이 뛰어온다.
동현 : 제법인데.
자현 : (안타까운듯) 아우 일등할 수 있었는데.
동현 : 예선전인데 뭐. 본선경기에서 일등해.
자현 : 그럼 우린 그리드 몇번째가 되는거죠?
동현 : 다른 예선팀 결과도 지켜봐야지.
grid : 출발할때 차를 순서대로 배치하는 것.
S#35. 경기장
유니폼을 입은 자현이 달려오고 있다. 거기 모여서 얘기 중이던 명환과 남희와 동현.
자현 : 아니 이게 누구십니까. 이 근처에서 세미나라도 있는 거에요?
명환 : 그냥 응원하러 왔다.
자현 : 으하하하. (동현에게) 봤죠? 저 팬이 이렇게 많습니다. 저 응원해주러 왔대잖아요.
동현 : 미안하지만 명환이는 내 친구다. 니 팬이 아니라.
남희 : (자현에게) 일등할 자신은 있는거야?
자현 : 제가 누굽니까? 추자현이에요. 추.자.현.
동현 : 추자현. 뭐하구 있어. 빨리 옮겨야돼. (그리드 쪽을 보며) 우리가 젤 늦구있잖아.
명환 : (그리드를 보면)
그리드에 2열 종대로 21대 자작자동차가 옮겨지고 있다. 학생들이 전부 밀어서 이동중.
명환 : 왜 다 밀어서 옮기냐. 운전해서 옮기면 되지.
동현 : 경기라인 밖에서는 무조건 무동력 이동이 원칙이거든.
명환 : 아아.
남희 : (자현에게) 니들은 몇번째 자리야?
자현 : 왼쪽 네 번째요. 어제 예선전으로 결정된건데.. 뭐 걱정마십쇼. 진짜 중요한건 지금 이 본선이거든요. 무조건 우승, 우승뿐입니다.
동현 : 그만 가자 가.
남희 : 그래 얘. 얼른 가봐.
자현 : 그럼 힘있는 응원 부탁합니다. 아자! 파이팅!
자현, 주먹을 불끈 쥐어보이는데.. 동현이 자현의 뒷덜미를 끌어 간다.
남희, 주변을 둘러본다. 다리 아래 탁 터인 공터를 개조해 만든 경기장 모습.
경기장 바로 앞에 내(강이라고 하기엔 좀 작은)가 흐르고있고..바로 뒤엔 둑길이 길게 뻗어있다. 남희, 잔잔이 미소짓는다.
명환 그런 남희를 슬쩍 보고는...
명환 : 뭘 보구 웃는 겁니까?
남희 : 그냥..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명환 : 무슨 생각이요.
남희 : 뭐랄까.. 이 세상에는 학교 말고 다른 데도 있었구나.. 그런 생각이요.
명환 : (웃는데)
남희 : 이 세상에 학교말고 다른데는 없는 것처럼 그렇게 살아온 거 같애요. 너무 오래동안.
명환 : 마찬가집니다. 나두.
명환과 남희가 보는 곳에 자현과 동현이 자동차를 밀어가고 있다.
명환 : (그들을 보는 자세로) 그래서 밖으로 나가고 싶은 건가요?
남희 : (명환을 돌아보는)
명환 : 그리고 그 남자분은 남희씨를 안전하게 밖으로 데려다 줄 기사분인가부죠? (남희를 돌아본다)
남희 : .....
명환 : 아니..기사가 아니라 왕자라고 해야되나.. (어색하게 웃는) 최소한 프로젝트나 논문으로 부담은 주지 않을 왕자겠죠.
남희씨는 그 프로젝트와 논문에서 도망치고 싶은거니까요. 제가.. 잘못 아는 건가요?
남희 아무말없이 굳어서 명환을 본다.
// 이제 그리드엔 21대 차량이 거의 배열되고 있다.
자현, 동현, 자작자동차를 밀며 그리드를 향해 가면서 명환네쪽을 힐끗거리다가.
동현 : 쟤네들 사귀나.
자현 : 선배님은 어째 남자여자 함께 있다. 그럼 무조건 사귀는걸로 보입니까? 그럼 우리도 사귀는겁니까?
동현 : 농담이래도 그런말 하지마라. 머리칼이 다 설라 그런다.
자현 : (입을 비죽 내미는)
S#36. 경기장 밖
경기장을 보고있는 학생들 사이로 명환, 남희, 동현이 보인다.
S#37. 경기장 출발선
출발선을 기준으로 2열 종대로 21대의 차가 출발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21대 차에 꽂혀 펄럭이는 각 학교의 깃발이 빠르게 스케치되고..각 드라이버들의 긴장된 모습들도 스케치..
그중 자현, 헬맷을 바로 잡으며 입을 앙다물고 있는 모습.
// 출발선 옆에서 진행자가 출발신호를 한다. 깃발을 올리면서..
// 동시에 앞으로 달려나가는 자작자동차들.
S#38. 경기장 안밖
// 경기방 밖의 학생들 사이 명환, 남희, 고개를 빼고 보고 학생들의 응원소리들..동작들...
// 경기라인.
21대의 차가 질주해온다. 자현, 상위권 그룹에 끼어 달린다. 질주해가는 자현.
// 경기라인.
경기장 두 바퀴를 돌아가는 시점. 선두그룹 차들이 경기라인을 돌아 응원석 앞을 지날무렵 자현의 차가 덜컹 시동이 꺼지고 멈춘다.
뒤에서 따라오던 차들이 멈춘 자현의 자작자동차를 지나쳐 앞서 나간다.
// 경기장 밖.
놀라는 학생들과 명환, 남희, 동현.
동현, 그대로 튀어 자현이 쪽으로 달려나간다.
// 경기라인.
자현, 다급하게 차에서 내린다.
자현 : 너 왜그래 임마. (다급하게 엔진쪽을 살피며) 뭐야 뭐가 불만이야.
// 경기장 밖.
라인 밖을 따라 뛰어가는 동현.
남희 : 무슨 일이죠..
명환 : 문제가 생긴거 같은데..
명환도 동현이 뛰어간 쪽으로 달려간다. 남희도 따르는...
// 라인 안쪽.
자현의 자작자동차를 지나쳐 달려가는 자작차들.
아직 자현이 있는 데까지 못온 차들도 달려오는 중이고.
자현 : (엔진을 보다가 달려오는 동현을 향해 소리지른다) 물! 물 좀 던져줘요.
동현, 타대 학생이 마시고있는 물병을 그대로 채어 자현이 쪽으로 뛰어간다.
물마시던 타대학생, 벙하고.
동현, 물병을 라인 안쪽의 자현에게 던진다.
자현, 물병을 받아 그대로 엔진에 들이붓는다.
엔진에서 화악 수증기가 피어오르고 동현, 급하게 옷을 벗더니 자현에게 던진다.
동현 : 빨리 식혀. 부채질을 하란 말야.
자현, 그옷을 받아 수증기가 피어오르는 엔진쪽에 부채질을 한다.
뒤이어 동현의 뒤로 도착하는 명환과 남희.
남희의 시선으로 자현의 차를 지나쳐서 달려가는 다른 차들.
남희 : 이제 틀렸네요. 아유 아까워서 어뜩해.
명환 : (남희를 돌아본다) 아직 아니에요.
남희 : 네?
명환 : 봐요. 쟨 아직 안 끝냈잖아요.
남희, 명환이 가르키는 쪽을 본다.
자현, 미친 듯이 옷으로 부채질을 하고 있다.
이제 모든 차들이 자현을 앞질러가고 자현이 혼자 남아있는 상황.
자현, 동현의 옷을 라인 밖으로 던져버리고 다시 차에 오른다. 다시 달려나가는 자현의 차.
// 경기장 밖
구경하던 학생들과 남희, 명환, 시선집중해서 보고있고.
// 자현의 자작자동차, 꼴찌로 달리다가 한대 두대 추월해간다.
2바퀴를 더 도는 동안 자현은 중위권까지 추월에 성공한다.
S#39. 피니쉬 라인
피니쉬라인에 들어오는 타대 차량들. 결국 자현, 중위권으로 들어온다.
자현의 차를 이어 속속 들어오는 타대 차량들.
피니쉬 라인에 기다리고있던 동현. 얼른 자현에게 다가간다.
동현 : 대체 뭐야 뭐가 문제였어?
자현 : (차에서 내리며 기분이 좋다) 엔진케이블요. 프레임에 닿아 절단되버렸나봐요. 엑셀 페달이 리턴이 제대로 안되니까
알피엠을 높게 달릴 수 밖에 없었거덩요.
동현 : 엔진이 오버히트 되서 멈춘거구만. 너 어제 정비 제대루 한거야? 내가 뭐랬어. 그래놓고 뭐? 내 자식같은 자동차라고?
자현 : 어이구 선배님. 자식놈치구 사고 안치는 자식이 어딨습니까. 반항 한번 안하고 크는 자식놈이 그게 자식입니까?
그냥 말 잘듣는 로봇이죠.
동현 : 으이그 말이나 못하면.. 너 교수님께 가선 뭐라고 할래.
자현 : 뭐라 그러긴요. 환상적인 게임을 하고왔노라 그럼 되죠. 여기서 우리보다 스릴있게 경기한 사람 있음 나와보라 그래요.
(낄낄거리며) 아 진짜 아까는 심장마비 걸리는 줄 알았네. 앞이 노래지면서 기절하는 줄 알았다니까요.
동현, 자현을 한 대 팰 듯이 하고. 자현 낄낄대며 피하고..뒤에서 그런 그들을 보며 웃고 있던 명환이 문득 옆을 본다.
남희가 말없이 그들을 보고 있다. 어쩐지 울 것 같은 얼굴로.
S#40. 캠퍼스 / 낮
학생들이 오가고 있다. 앞 씬의 정신없음과 대비되는 조용함...
S#41. 도서관 내부
학생들이 조용히 공부를 하거나 책을 찾거나 하고 있다.
S#42. 어떤 강의실
학생들이 수업에 열중하고 있다. 앞에는 어떤 교수님이 강의중이고...
S#43. 박교수 랩
비어있는 랩을 주욱 훑어보다가 보면 거기 남희가 혼자 앉아서 모니터를 멍하니 바라 보고 있다.
그러다가 결심한 듯 타자를 치기 시작한다. 모니터에는 메일화면이 보이고. 남희는 메일을 쓰는 중.
남상현님에게.. 라는 글자가 화면에 쳐진다.
남희 : (E) 남상현님에게.. 전화를 할까하다가 편지를 씁니다. 이렇게 하면 스스로도 정리가 좀 더 잘 될 거 같아서요.
S#44. 운동장 근처
남희 걸어오고 있다.
남희 : (E) 우연히 님을 만나게 되었을 때 저는 아주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40도가 넘는 언덕길 중간에 멈춰서서 공회전만 하고 있는
낡은 자동차 같았습니다.
남희 멈춰서며 한 곳을 본다. 거기 자작자동차 2호를 옆에 두고 자현과 백곰이 싸우고 있다.
자현 : 아이참. 지금 테스트 중이잖아요. 테스트하는 차를 가지고 이러실 수 있습니까 네?
백곰 : 글세. 테스트고 테이프고 교내에서 시속 30킬로 이상은 안돼. 그게 학교의 규칙이고 이 캠퍼스 폴리스 백곰의 원칙이라고.
자현 : 그렇다고 번호판도 없는 이 차에 대고 딱지를 끊습니까? 보세요. 여기 어디 딱지 끊을데가 있기나 합니까.
이렇게 이쁜 것에 어떻게 딱지를 끊어요.
백곰 : 학과 학번. 이름. 이거 다 내가 아니까 (하면서 스티커 쓰려하면)
자현 : 아이구 아저씨.. (붙잡고..)
그들 실랑이하는 모습을 웃으며 보고 있는 남희.
남희 : (E) 그래서 그 언덕을 포기하고 평지로 내려갈까 생각했었지요. 그건 아주 쉬워보였어요.
엔진을 꺼버리고 가만이 있으면 뒷걸음질을 쳐서 평지에 도착하지 않을까...
남희, 자현네에게로 천천이 다가간다.
남희 : (E) 그러면 어디선가 레카차가 와서 나를 끌어가주지 않을까..그런 바램도 있었습니다. 레카차 뒤에 끌려가는 게 더 편하지 않을까.
자현과 백곰은 차에서 좀 떨어진 곳에 마주 서서 계속 실랑이를 하고 있다.
남희, 이만치에 세워진 자작자동차를 본다. 차는 공회전을 하고 있다.
남희 : (E) 그런데 그러기에는 아직 내 자신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 내게는 기름도 있고, 고장나지 않은 엔진도 있습니다.
한번 더 힘을 내어 언덕을 올라가보고 싶어요.
남희, 슬그머니 차의 운전석에 오른다. 그리고, 잠시 내부의 기기들을 살펴보더니 차를 출발시킨다.
자현과 백곰이 놀라서 돌아본다. 남희가 운전하는 차는 벌써 운동장으로 달려나가고 있다.
자현이 소리지르면 쫓아가는데.. 남희는 점점 속도를 더 낸다. 백곰도 놀라서 스피드 건을 꺼내며 차를 따른다.
남희 : (E) 이런 깨달음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언젠가 다시 우연히 만나게 되면 머리 숙여 인사 올리겠습니다.
남희, 웃으며 달린다. 저 뒤의 자현과 백곰이 점점 멀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