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유명한 과학자 슈바이처 박사는 현대문명의 바람직한 발전 방향에 대해 다음과 같이 명확하게 규정했다. "전통은 존중되고 학문은 진보해야 한다" 즉, 전통적 가치의 보존과 토대 위에서 과학기술이 발전해야만 사회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급속한 사회변화와 해체 와중에 '전통적인 것'은 허망하게 사라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전통의 위기 속에서 한국문화의 자존심이라고 볼 수 있는 '서예'의 전통을 살리자는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특히, 11월 3일 오후 2시에는 천여명이 넘는 서예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서예교육 정상화를 위한 공청회"가 개최되었다. 좌석이 모자라 많은 청중들은 계단에 앉거나 서있는 자세로 5시까지 진행된 공청회를 끝까지 지켜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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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청회를 진지하게 경청하는 서예인 및 시민들 ©이슈아이 | 이들의 눈빛에는 서예 전통을 '시장의 자율'에 맡겨 고사하도록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생존과 부활을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절실한 요청'이 담겨 있었다. 주장의 핵심은 '서예의 독립교과 편성 요구' 청원으로 집약되었고 공청회에서는 '서예교육의 독립에 대한 당위성, 서예를 통한 인성교육, 미래 문화사업에 있어 서예의 독창적 위상"에 대한 다각적이고 종합적인 논의가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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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의 독립교과목 채택을 주장하는 학생들 ©이슈아이 | 서예인의 밥그릇 챙기기라는 오해도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한국서예협회 전명옥 이사장은 그런 협소한 관점으로 이해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 "서예가의 몫을 달라는 게 아니라 서예의 무궁한 가능성을 공교육의 현장에서 근본적으로 살려나가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서예의 부흥과 혁신을 위한 물질적 토대가 마련된다면 한국만의 고유한 21세기 문화컨텐츠로서 '서예예술'은 충분한 상품적 가치를 가진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 천여명이 넘는 서예인들의 높은 열기 속에서 개최된 이날 공청회에는 이날 행사를 주도하고 '의원들의 서예문화'를 이끌고 있는 곽성문 의원, 한화갑 민주당 대표, 박희태 국회부의장 등이 참석, 청중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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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자의 발표를 진지하게 듣고 있는 패널들 ©이슈아이 | 곽성문 의원은 "이번 공청회는 한국서예사에 획을 긋는 하나의 역사로 기록될 것"이라면서 "서예는 우리 민족문화의 정화일 뿐만 아니라 전인교육의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며 청소년들의 인격함양과 창의성 개발에 크게 기여한다"고 강조했다. 곽 의원은 특히 "한국서예협회, 한국서가협회, 한국미술협회 서예분과위원회 등 서예3단체의 회장들이 각 단체의 입장과 기득권을 버리고" 오로지 한국서예전통의 부흥과 발전을 위해 하나가 되어 노력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국회의원 서도회 회장을 맡고 있는 한화갑 민주당 대표는 환영사를 통해 "서예는 조화와 균형미, 공간미를 창출하는 예술이자 동양 고유의 문화와 정서를 담은 독창적인 예술세계"라면서 "독립된 예술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는 서예를 독립된 예술과목으로 편성하여 서예교육을 정상화시키는 것"은 시대적 요청이라고 주장했다. 한 대표는 "개인적으로 4살부터 서당에 다녔다. 연필보다 붓을 먼저 잡았던 것이다. 이러한 교육문화를 현대화해야 한다. 세계 최초의 예술이자 한국의 사상과 철학이 아로 새겨져 있는 서예를 한국문화의 주류로 육성해야 한다. 세계화 시대, 서예를 통해 문화한국의 이미지를 널리 확산시켜야 한다"고 주장해 청중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격려사에 나선 박희태 국회부의장은 "서예 대가와 애호가들을 앞에 모시고 이 자리에 선 것이 송구스럽다"고 말문을 연뒤 "공자앞에서 문자 쓸 자격도 없지만 서예문화의 부활과 발전을 위해 이 법안이 본 회의에서 통과되도록 '본회의 사회'를 잘 보겠다"고 말해 청중들의 웃음과 '폭포' 같은 박수를 오랫동안 받았다. 특히, 박 부의장은 "서예를 단순히 옛날 필기방식으로 생각하여 고루하고 불편하게 여기는 젊은이들의 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 뒤, "붓글씨 차원을 넘어서 전통예술로서 서예를 정식교과목으로 채택할 수 있도록 국민적 합의를 모아나가자"고 제안했다. 대한민국 예술회 회원인 조수호 선생도 격려사를 통해 "서예는 인간적인 예술로써 바른 삶, 바른 도리를 깨우쳐주는 신비로운 마력이 있다. 민족문화예술의 뿌리인 서예를 독립교과로 편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조 선생은 "가치관의 혼란, 인간 소외와 이기주의 팽배, 도덕성의 결핍과 불안 등 심각한 사회불안 현상을 치유할 수 있는 인성교육으로서 서예는 소중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원광대 조수현 교수가 사회를 맡은 2부의 공청회는 발표자 및 토론자의 인상적인 열변과 토로, 청중들의 진지함 속에서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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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교육으로서 서예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공청회 장면 ©이슈아이 | 발제에 나선 김두한 동학사 승가대학교 교수는 "인성교육과 서예의 교육적 가치"라는 제목 하에 "컴퓨터 자판이 글쓰기를 대신하는 오늘날, 붓글씨의 한점과 한획은 우리들에게 인내와 자기수양을 통한 인성교육의 효과를 가져다준다"고 주장했다. 또다른 발제자인 곽노봉 문학박사는 "전통예술의 이해와 감상, 체험, 민족문화에 대한 자부심, 정신수양과 정서적 안정, 창의성 함양" 등 서예가 독립과목이 되어야 하는 이유를 구체적으로 열거하면서 성장기 학생들의 균형있고 건강한 인성 형성에 서예가 큰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 세번째 발제자인 김병기 전북대학교 중문과 교수는 "서예는 21세기 첨단문화사업의 주요 컨텐츠"임을 강조하면서 "문화유산으로서 서예의 보존 가치 뿐만 아니라 "서예 디자인, 서예 심리치료, 서예웰빙 등 대중적으로 상품적 가치가 무궁무진하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서예는 당위적 측면 뿐만 아니라 현실적 측면에서도 산업과 직결하여 많은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문화산업 컨텐츠의 보고이기 때문에 서예 관련 응용프로그램을 활성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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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실 밖에서 공청회 토론 내용을 듣고 있는 학생들 ©이슈아이 | 토론에 나선 박영진 경기대학교 미술학부 교수, 백영일 대구예술대학교 서예학과 교수, 허경무 초대작가, 김영봉 대전대학교 서예학과 학생, 박삼서 교육인적자원부 교육과정정책과 과장은 '서예의 독립교과 편성 요구'와 관련하여 뜨거운 논쟁을 벌였다. 이 자리에서는 인성교육으로서 서예의 구체적인 활용 방안, 문화산업으로서 서예의 본질 문제 및 구체적인 활용방안, 서예의 예술성을 극대화시키는 방안, 영어만능주의가 지배하는 현실 논리의 극복 방안 등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논의들이 진행되었다. 특히, 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통과될 경우 그에 따른 예산과 시설, 타과목의 형평성 문제 등 실질적인 추진 과정에서 제기되는 문제점 등은 향후 풀어나가야 할 과제로서 남겨졌다. 현재, '서예의 독립교과 편성 요구' 청원은 여야 의원 88명의 동의를 얻어 5만여명이 서명한 청원서가 9월 14일자로 접수된 상태이다. 교육위원회 통과는 무난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관건은 국회 본회의에서 얼마나 많은 의원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가이다. 본회의에서 통과되어 서예인들의 염원이 법적으로 제도화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전국 각지에서 1천여명의 서예인들이 모인 오늘 공청회와 5백만 서예인들의 간절한 소망과 열정적인 실천이 계속된다면, 우리의 학생들이 학교에서 '독립과목'으로서 서예를 배우는 모습도 현실화될 날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낙엽이 떨어지는 '서예' 같은 풍경과 고즈넉한 가을날의 여의도 국회. 돌아오는 길에 문득 어제 이슈아이와 인터뷰 했던 전명옥 한국서예협회 이사장의 마지막 화두가 떠오른다. "TV나 영화를 보면 주인공은 화날 때 물건을 집어 던집니다. 하지만 상상해 보세요. 서예가 전국민적인 문화로 자리잡게 된다면 우리는 화날 때 붓을 들게 될 것입니다. 국민들의 마음이 얼마나 정화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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